청년정치는 왜 퇴보하는가 - 청년세대의 정치무관심, 그리고 기성세대의 정치과잉
안성민 지음 / 디벨롭어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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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십대 청년들에 대해 언론이 주목하고 있다.

다만, 이 부분은 페미니즘과 관련된 남,녀의 대립구도와 상대적 박탈감을 조명하는데 집중되는데 아쉬움이 있다.

특별한 이슈가 있는 경우 잠시동안 청년들이 주목받는 때가 있다. 취업률에 대한 통계를 인용할 때.

그리고 선거 후 투표율에 대한 언급이 있을 때이다.

특별한 이슈가 있는 경우란 가령 대통령이 언급을 하는 경우이다.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을 추천하셨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기사가 난 시점이 여름휴가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고, 즉 이 책을 완독하기 전이었다는 점이 무척이나 아쉽다.

"90년생이 온다"가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관리자나 어른들이 신입사원과 각을 세우지 않고 일을 하는 방법이나 그들의 사고방식을 따라가기 위해 읽어야 할 필독서라면,

이 책은 정당정치를 하고 있는 정치인과 이제는 기득권이 되어버린 구386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말했다. '정치는 생활'이라고.

그런데 생활. 말 그대로 살아가는 것의 버거움을 느끼고 있는 20, 30 청년들에게 정치에 관심을 가지라는 단순한 말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정치권은 청년들의 진출기회를 실질적으로 제공하고 있는가.

현재 국회에 있는 청년정치인은 과연 청년들의 대표자로 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 책은 구체적인 수치와 표로 알려준다.

그렇다면, 청년들의 정치권 진출을 위해 각 정당들은 실제로 노력하고는 있는가.

한 정당의 대표가 청년들에게 의무적으로 발언을 하도록 강요한 기사를 보아도 기존 정치인들이 청년을 어떻게 대하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답은 "아니올시다"이다.

그런데 혹시 이거 아는가. "40대 기수론"이 처음 등장한 때가 1970년대였음을.

정치란 밑바닥부터 경험을 쌓아올려 역량을 키운 다음에 도전해야 하는 것일까?

아닌 것 같다. 과연 자격이란 무엇일까?

70년대에 40대 기수론이 등장했다면 시대의 흐름과 교육수준의 변화 등을 반영하면 30대 기수론은 나오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실제로 프랑스의 경우를 우리는 보아 알고 있다. 실제 사례가 있다면, 단지 바다 건너 먼 나라의 일이라 치부하고 말 이유가 없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매일을 살아내면서 엄청난 변화를 마주 하고 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요즘 10년이면 못해도 3번은 바뀌는 것 같다.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은 기존 정치인들보다 요즘 젊은이들이 훨씬 낫지 않을까? 당장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비교불가할 정도로 넓다. 단지 역량을 펼칠 판이 마련되지 않았을 뿐이다.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날들이 많은 이는 결국 청년들이다. 35.7%의 유권자 수를 가졌음에도 정치지분은 겨우 1%만을 가진 청년들이고 언젠가는 기성세대가 되겠지만 지금 정치에 관심을 갖고 도전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지금처럼 미미한 수준에만 그치지 않을까?

저자는 말한다.

“무슨 일이든지 실패하더라도 실험을 해야 새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청년 정치는 어찌 보면 짧디 짧은 한국의 민주 정치사에서 꾸준히 해야 하는 실험과 같은 존재일 수 있다. 우리는 아직 실험을 제대로 몇 번 해보지도 못했다. 이미 실험 결과를 예단하고 냉소적으로 보기에는 일러도 한참 이르다”

선거가 내년으로 다가온 이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관심을 갖는다면 적어도 우리 청년을 위한 정책이 어떤 것인지, 단지 입바른 소리일 뿐인지 실제 가능한 공약인지 여부 등은 쉽게 알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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