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표지에 대한 제언



이 책. 상반신이 아니라 전신을 표지로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앞표지에 법대와 법복을 입은 상반신이 드러나게 정면에서 찍은 사진 혹은 그림을,

뒷표지에 법대 뒤에서 판사의 전신이 드러나게 찍은 사진을 비교되게 표현하면 좋을 것 같다.

혹시라도 많이 팔려서 리커버판을 낸다면 부디 표지만은 바꿔주셨으면.



2. 법정에 들고나갈 때, 시보시절 경험(책 내용과 무관하다), 책의 리뷰를 하기 전 소회



법정에 들고날때마다 법대에 앉아계신 판사님께 인사를 한다. 일종의 예절이라 배웠다.

우리쪽 의뢰인의 입장이 간절하면 그만큼 판사님에게 기대는 마음이 더 생긴다.



서울고등법원 시보를 한 때였다. 주로 민사사건 재판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판사실에 들어가 본 몇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아무일 없이 평온하고 무료하게 느껴지던 시간에 짖눌려 있었다.

항소심이다보니 대부분의 사건기록은 두꺼워질대로 두꺼워진 나머지 몇 개의 책으로 만들어진 것들이었고,

골무를 사용하지 않으면 기록을 넘기는 일도 버거웠다. 쉽사리 나오지 않을 결론이라 장고하게 되지만, 누군가는 합당한 판단을 내려야 하고 그 누군가는 다른 누구도 아닌 판사이다.

시보때 민사부 재판장이었던 분은 작년에 언론에 이름이 자주 오르내린 형사사건을 맡았다. 얼굴 한 번 뵈었다는게 이상하게 친근감이 들었다. 판결의 결론에 신뢰감이 들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최근 들어 나온 '검사내전'은 어느새 베스트셀러에 등극하고 리커버판이 나올 정도로 주목받았다. 얼마 안 있으면 드라마로도 나올 예정이다.



변호사와 검사가 주목받는 반면, 판사의 경우 최근에서야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친애하는 판사님께', '미스 함무라비' 정도. 사건에 따라 그 정도의 마음을 쓴다면 법대에서 오랜시간 버티지 못할 것 같다. 업무량을 따라가기에도 벅찬 현실을 비추어 보면 그 드라마들의 장르는 분명 '판타지'에 속할 것 같다.



간혹 소설 쓰는 판사님들 책을 접한다. 서울남부법원에 재직 중인 판사님 법정에 들어가 보기도 했는데, 역시 글로 하시는 말씀과 재판진행은 별개더라. 모든 사건에 같은 정도의 노력을 쏟을 수는 없다는 점을 감안해서인지 그렇게 큰 불만은 생기지 않았다. 역시.



이 책을 읽기 전에 들었던 생각 역시 '뭐, 다를게 있을까' 정도였다.



3. 이 책을 읽고



그런데, 구성이 특이하다.



1장 나는 개가 아니다

2장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3장 부탁받은 정의

라니....



실제 판결을 내린 사건의 사실관계를 적시하고 그 이후 사건의 경과를 서술하면서 마지막에 실제로 내린 양형과 그 이유에 대해 서술하는 방식으로 쓰였다.

양형이유 부분은 사실 정형화되어 있으나, 이 책의 저자는 상당한 고민을 한 후에 그 고민의 흔적을 양형이유에 공들여 적시하는 것 같다. 살면서 언젠가는 받아보고 싶은 판결문이다. 가끔 잘 쓰여진 판결문은 보관해두고 읽어보곤 한다.



하긴 이 정도로 본인의 직업과 법정에서 하는 일을 묘사하는 분이라면 판결문도 남다를 수 밖엔 없을 듯 하다.



법정은 모든 아름다운 구축물을 해체하는 곳이다. 사랑은 맨 먼저 해체되고, 결국 가정도 해체된다. 형사사건에서는 한 인간의 자유를 지지해준 법적 근거마저 해체시킨다. 재산을 나누고, 아이도 나눈다. 사랑의 잔해를 뒤적이고 수숩하다 보면 법정이 도축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법관은 굳어버린 사랑을 발라낸 다음 가정을 이분도체, 사분도체로 잘라내고 무두질한다. 법은 날카롭게 벼린 칼이고, 법관은 발골사다.

- 이런 비유는 들어본 적이 없다.





살다 보면 모든 일에 변곡점이 찾아온다. 시대적 소명일 수도 있고 개인적 변화일 수도 있다. 변곡점의 세찬 파동이 인생을 드높게 쏘아올릴지, 바닥으로 처박을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인생이라는 함수의 변곡을 예감하고, 그 파고에 기꺼이 몸을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수평 그래프로 사는 삶이 평온한 것 같지만 어쩌면 그런 삶은 삐 소리와 함께 벌써 생의 종지부를 찍은 상태인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것은 고유의 파동이 있기 때문이다.







후회로 남은 결정은 판사를 놓아주는 법이 없다. 변제가 불가능한 채무이자 지울 수 없는 화인이다.

- 간혹 판사님들께 질문하고 싶은 주제가 있었는데, 위의 문장과 아래에서 인용한 부분은 그 주제에 대한 완벽한 답인 듯 하다. "판사님은 본인이 내린 판결에 대해 후회하신 적 있으신가요?"



재판의 당사자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 건 재판장으로서 가장 견디기 힘든 순간이다. 재판 진행이나 결과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복기하고 또 복기한다.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이런 결과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든다. 불면의 밤이 이어진다.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정년을 앞둔 노법관은 법정에 들어가는 게 두렵다고 고백했다. 기자를 상대하는 나 역시 다리가 후들거렸다. 큰 문제 없이 진행된 재판이었다고 몇 번을 되짚어 자위했음에도 자책감을 피할 수는 없었다. 여전히 나는 그 사건의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본 후 판결문에 적시된 그 문장이 나오기까지의 고민과 노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 계기가 된 것 같다.

요즘 이례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판사님들이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그분들과 이 책의 저자는 출신이 다를 것이다(저자는 '향판'이자 '출포판'이라 자칭한다.). 그러나 입을 열기 시작한 그 분들이 자신의 과오에 대한 변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으면 한다. 적어도 자신들이 단죄?했던 기준이나 가치에 부응하는 선이었으면 한다.



오랜만에 군더더기 없는 문장의 글을 읽었다. 그리고 더 없이 따뜻한 판결문을 읽어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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