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제국 2
이주현 소설, 박경수 극본 / 소네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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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글

박경수 작가의 전작 '추적자'를 워낙 재밌게 본 터라 차기작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기대감을 안고 봤다.

전작보다 8부작이 늘어난 24부작. 매 회마다 하나의 완결된 구조를 가진 작품을 쓰고 싶다는 작가의 말대로 매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작품의 호흡도 상당히 길어서 한 회의 마지막과 다음 회의 처음 사이에 간격이 몇년이 훨쩍 지나있기도 하다. 그래서 몰아보는 것보다는 긴 호흡을 가지고 시간을 들여 보는 것을 추천한다.

드라마가 종영된지 몇 년 지났지만, 촌철살인의 대사가 생각이 나서 전자책을 구입했다. 종이책은 출간 즉시 구입했지만 고향 집 책장에 있는고로.

2. 인상깊은 구절

"잘못하긴요...하지만, 아버지가 판단하는 게 아니구. 이긴 놈이 판단하는 게 세상이에요."
"그래. 그라믄 태주야. 요번에는 아버지가 함 이기볼란다."

최민재는 최원재가 싫었다. 늘 한심했다. 하긴 그래서 최민재가 더 큰 꿈을 꾸게 되었는지도 몰랐다. 만약에 최원재가 자기만큼 열정적이었다면, 아니 최서윤 만큼이라도 똑똑했다면 애당초 자신의 꿈은 지금보다 작았으리라. 꿈이라는 건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목표들을 나는 할 수 있다고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으로 포장하는 것이니까.

"사람을 만나면 어디 사는지 물어보지? 그게 동네가 궁금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 강남 사는 애들은 대답할 때 눈빛이 달라. 근데 얄궂은 동네 사는 애들은 지 주소 말하는데 목소리가 기어들어가요. 주소가 계급이거든."


"미사일 단추 신드롬이란 말이 있습니다. 화려한 미사일 발사실에 앉아서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면서 단추를 누르는 군인한텐, 사람을 죽인다는 의식이 없죠. 그 미사일로 사람들이 죽고, 다쳐도, 자기는 단추만 눌렀을 뿐이라고. 당신도 그랬겠지. 상가를 철거하라는 전화만 했을 뿐이라고."

"당신하고 나, 같은 도박판에 앉아 있습니다. 이기고 싶으면 레이스를 하세요. 난요. 뻥카에는 한성제철 인수! 다이 안 합니다. 최서윤씨. 당신한테 있는 건, 나한테도 있습니다. 돈도 있고, 꿈도 있습니다. 당신이 나보다 판돈 좀 많은 거. 아, 그건 좀 부럽네요."

"성진그룹. 대단하네요. 하지만 이건 알아둡시다. 최서윤. 당신은 이 집 안방에서 태어나서 거실을 지나서 여기 서재까지 왔지만, 나 장태주는 신림동 판잣집에서 태어나서 여기 서재에서 당신하고 마주앉았습니다. 쉽지 않을 겁니다. 조심하세요."


3. 더 이상 없을 것 같은 신화

가진 것이 없어 잃을 것이 두렵지 않은 장태주는 끝을 모르는 높이로 올라간다. 찰라의 순간이 지나면 황금의 제국의 주인이 될 것만 같았다.

과거를 돌아보지 않던 이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본 순간. 거짓말 처럼 날개가 꺾이고 만다. 날개를 잃은 그에게 남은 것은 예정된 추락 뿐.

마냥 정의롭지만은 않았던 장태주를 응원할 수 있었던 건 그가 가졌던 절박함과 판에 뛰어들때 그가 잃었던 것을 연민의 감정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자신은 처음부터 가졌던 사람들과는 다르다. 아버지를 죽인 자들과는 다르다'는 신념이 절박한 순간 자신이 같은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다행스럽게도 그는 내려놓을 줄 알았다.

남이 아닌 자신이 결정한다는 신념대로 마지막도 그 답게 끝을 낸다.

더 이상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은 신화는 그렇게 미완으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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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 - 인생의 한 수를 내려놓다 가연 컬처클래식 19
이상민 지음, 조세래 각본 / 가연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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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의 영화.
아마 정우성 배우 주연의 '신의 한수'와 비슷한 시점에 나온 바둑을 모티브로 한 영화로 기억한다. 조세래 감독님의 유작이었고, 조세래 감독님의 아들인 조동인 배우(민수 역), 황혼에서 인생을 반추하는 듯 연륜있는 연기를 보여준 김뢰하 배우(남해 역), 군대바둑 3급인 충직한 조직2인자 역할 박원상 배우(인걸 역)의 연기가 인상깊었던 영화.

2014년에는 스크린과 브라운관에 바둑을 모티브로 하는 영화와 드라마가 여러편 나온 해였다(tvn 드라마 미생도 2014년에 방송되었다.).

흥행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이 영화는 나름의 미덕이 있다.

각 장마다 한글 제목 하에 바둑용어 부제가 들어있다.

부득탐승(不得貪勝) - 너무 이기려고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입계의완(入計宜緩) - 적의 세력권에 들어갈 때, 무모하게 서둘거나 깊이 들어가지 말라

공피고아(功彼顧我) - 적을 공격할 때 나의 능력과 결정 유무 등을 먼저 살펴라

기자쟁선(棄子爭先) - 바둑돌 몇 점을 희생하더라도 선수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내 바둑선생이 돼 줘. 난 살면서 한 번도 선생이 없었어.”
남해가 자조적인 목소리로 덧붙였다.


사소취대(捨小取大) - 눈앞의 작은 이득을 탐하지 말고 대세를 취하라

민수는 돌을 놓고 남해의 손을 흘끗 쳐다보았다. 저렇게 한 번에 많이 쥐고 있으면 불편하지 않을까. 항상 이유가 궁금했지만 좀처럼 물어볼 틈이 없었다.
둘만 남자, 남해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민수도 조용히 앉았다.
“이건 돌이고 이건 칼인데....”
남해가 칼과 바둑돌을 놓으며 말했다.
“넌 원래 이걸 가지고 놀았잖아. 앞으로도 한 가지만 가지고 놀아.”
그렇게 말하며 남해는 바둑돌을 민수 앞으로 밀었다.



봉위수기(逢危須棄) - 위험에 처할 경우 버리든가 아니면 보류하라

이 남자는 왜 나를 이곳에 데려왔을까.
나에게 바둑을 배우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에게 왜 이렇게 잘해주는 것일까.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지금은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잘은 모르지만 이곳에서만큼은 그도 ‘평범한 사람’으로 남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질문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뜯어봐도 도무지 ‘활로’가 보이지 않았다.
답답하게 꽉 막힌 자기 인생처럼.
숨이 탁 막혔다.


신물경속(愼勿輕速) - 경솔하게 빨리 두지 말고, 한 점 한 점을 신중히 생각하라

“돌을 많이 쥐고 있으면, 손 안이 꽉 차는 게 마음이 편안해져.”
“사장님은 왜 깡패가 됐어요?”
“넌 왜 바둑을 두게 됐냐?”
남해가 질문을 질문으로 받았다.
“엄마가 바둑을 두라고 해서요. 혹시 엄마가 깡패 되라고 그랬습니까?”
민수는 멋쩍게 웃으며 되물었다.
“되라고 한 적은 없었지만 내가 누굴 때리고 들어오면 잘했다고 칭찬한 적은 있었지.”
“그게 그거네요. 엄마가 깡패 되라고 했네요.”
“우리 엄마,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죽었다.”
남해가 말했다.
민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게 무슨 말이냐! 타이틀을 못 따면 프로기사가 아니냐? 이세돌이만 프로기사고 박지성이만 축구선수냐? 다른 축구선수는 선수도 아니냐? 다른 사람 인생은 인생도 아냐?”
민수는 깜짝 놀라 남해를 쳐다봤다.
“바둑이 먼저냐, 사는게 먼저냐?”
남해가 눈을 부릅뜨고 민수를 노려보며 나직이 물었다.
“그걸 알면 고수다. 잊지 마라.”

동수상응(動須相應) - 행마를 할 때는 서로 연관되게, 한 방향으로 행마를 전개하라

“바둑은 서로가 한 수씩 두는 세상에서 제일 공정한 게임입니다. 이건 아니잖아요. 이런 바둑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넌 아직 어려서 사는 걸 몰라.”
“사람들은 그러더군요. 뭐든지 하다가 안 되면 살기 위해서라고.”
“넌 살기 위해서 그런 적 없냐?”
남해가 물었다.
민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겠냐. 세월이 흐르고 살아보면 그것밖에 안 되는데...”
“정말 인생이 바둑이라면 첫 수부터 다시 한 번 두고 싶다.”

피강자보(彼强自保) - 주위의 적이 강한 경우에 우선 내 돌을 먼저 보호하라

“약속을 지켰네. 그럼 이제 내 차례인가.”
“월송정이라고 소나무 밭 앞으로 은빛 백사장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데, 내가 내려가면 한번 다녀갈래?”
“예.”

세고취화(勢孤取和) - 상대 세력 속에서 고립되어 있을 때는 신속히 안정하는 길을 찾아라

‘싸움에서 상대에게 기가 눌리면 지거든. 그건 바둑이나 싸움이나 비슷해. 큰 승부일수록 기에서 밀리면 끝이다.’
민수는 남해가 해줬던 충고가 떠올랐다.
내 바둑은 이제부터 시작이야!



살면서 선생이 없었다고 말하는 변두리 조폭 두목 남해.
입단을 포기하고 동네 기원에서 사범으로 지내면서 내기 바둑으로 연명하는 민수.
민수에게 남해는 스쳐가는 사람이 아니라 바둑제자이면서 인생의 멘토가 된다.
이 영화는 조폭을 미화하지 않는다. 남해는 10년 전에 본인의 손으로 ‘형님’을 은퇴시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수하에게 죽임을 당한다. 본인의 업보를 그대로 되받게 된 것이다.
“정말 인생이 바둑이라면 첫 수부터 다시 한 번 두고 싶다.”는 대사는 스스로 물러나고자 하는 본인의 의중과 그동안의 삶에 대한 회한을 그대로 드러낸다.
자신보다 까마득하게 어린 바둑 선생 민수가 바둑기사 입단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인생은 ‘국수’가 되지 않아도 그럼에도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것을 역설한다.
민수에게 입단심사를 보면 자신도 일을 그만 두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키려 하다 뜻하지 않게 생을 마감한다.
마지막 장면은 남해의 죽음 1년 후 자신만의 바둑을 시작하는 민수를 클로즈업하면서 끝이 난다.

나는 바둑을 하지 못한다. 바둑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래도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알 것 같다. 그럼에도 인생은 계속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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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 제25회 시바타 렌자부로상 수상작 사건 3부작
가쿠타 미츠요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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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은 영상화되는 경우가 많아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
영화 보는 걸 중간에 멈춘 경우에도 소설을 읽을 경우에 영화의 색감이나 분위기, 주인공이 대입되어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종이달은 뭔가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 책이다.
가끔 신문 사회면으로 접하는 '간 큰 경리직원'의 속사정을 알게 되는 듯한 기분으로 읽었다(혹은 보았다).

인간관계는 필연적으로 얽혀있게 마련이고, 학교나 직장처럼 한 곳에서 매일 마주쳐야 하는 구성원들이 있어 각자 일정기간 동안 지내다 보면 각인되는 이미지가 있다.

처음부터 고객들의 돈을 횡령한 것이 아니다. 처음 직장에 들어갈 때부터 범죄를 저지를 생각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악인의 얼굴이 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게도 처음과 계기가 있다.
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선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관심이란 어떤 것일까? 어릴 적엔 세상의 중심이 '나'인 줄 알았으나 점차 세상은 '나'없이도 돌아가고 '나'는 그저 대체할 수 있는 부속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그럴 때, 내가 살아있고 주목받을 수 있는 계기와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주인공에게 연민의 감정이 느껴진 대목은 범죄를 저지르면서까지 돈을 주었던 남자로부터 '자신은 강요한 적이 없다', '네가 알아서 한 일지 않냐'는 회피성 발언을 들었을 때였다.

멀리 타국에서 잠적하다 마지막에 검거되는 장면에서 클로즈업되는 그 얼굴. 종이달은 어떤 의미였을까? 가짜? 빛나보이지만 빛을 내지 못하는 달?

인상깊은 구절

리카는 얼마 전에 이 비슷한 기분을 느꼈던 기억이 떠올랐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무서운 것도 두려운 것도 무엇 하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기분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리카는 신기했다. 나는 무언가를 얻어서 이런 기분이 된 걸까. 아니면 무언가를 잃어서 이런 기분이 된 걸까.

화려하게 아름다운 것은 아니고, 갓 쓰기 시작한 비누 같은 아름다움을 가진 아이라고, 유코는 중학생 때부터 리카를 보며 생각했다.

리카에게는 이 숙소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하나같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매춘부도 여행자도, 몸에 걸친 것뿐만이 아니라 분위기까지 포함해 모든 것이 지저분하고, 얇은 코트 같은 피로를 걸치고 있고, 화사한 색의 옷을 입고 있어도 칙칙해 보였다.

다 얘기해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리카는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면서 생각했다. 있지, 당신들이 일본에 있을 수 없게 된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말이야, 정말로 돌아갈 수 없는 짓을 저질렀어.

리카가 자기 가족이 세상 사람들보다 혜택 받은 환경을 누리고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은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였다. 리카가 다녔던 학교는 종교 학교로 국내외 후원을 아주 열심히 했다. 예배 시간에도 후진국 사람들의 빈곤에 관해, 전쟁과 분쟁의 희생에 관해 날마다 기도했다. 리카는 그제야 자신을 포함한 주위 학생들이 유복하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자각과 함께 부끄럽게 생각했다. 뭔가의 희생 위에 자신들의 생활이 있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두 사람이 건넨 것은 50만 엔으로 그 금액을 볼 때까지 리카는 그걸 착복할 생각은 없었다. 50만 엔.

"주간지에는 지금까지 여자의 횡령 사건은 모두 남자가 관련되었다고 쓰여 있었어요. 그래서 우메자와 리카도 그럴 것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어요. 남자가 돈을 달라고 해서 줬을까요. 아니면 그녀가 본인 내겠다고 말하다 보니 점점 커졌을까요."

"리카 씨하고 있으면서 엄청나게 많은 걸 할 수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아직도 놀라요. 이 사람 도라에몽인가 생각할 때도 있어요."
고타는 거기서 웃었다. 밤하늘이 환하게 밝아지고, 한여름의 아름드리나무터럼 노란 빛이 동그랗게 퍼졌다. 셀 수 없을 정도의 빛이 밤하늘을 긁듯이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나는 무엇을 사달라든가 해달라는 말 한 번도 한 적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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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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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을 알게 된 계기


15년 전쯤. 예비역이 된지 얼마 안되었을 20
초반에 생일선물로 받아 읽은 책입니다. 당시에
읽었던 책은 판형이 크고 줄 간격이 넓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최근 다시 나온 책은 글씨가 작고 줄간격
이 좁아서 읽는데 애먹었습니다.


오프라인 독서모임에 가입해서 이야기 나눴던 첫책입니다.
당시 모집글 보고 지원했는데, 역시나 제가 나이가
제일 많더군요.

2. 감상평

각설하고.
언젠가 크게 공감이 갔던 글귀 중에
"변호사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정말 무고한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 알아보지 못하는 것."
이란게 있습니다.

법정에서 무죄를 다투는 것은 지난하기 때문에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다투기를 포기하고 자백하여 감형하는
길을 택하는 일이 많습니다. 변호인과 피고인 모두 무죄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감당해야 할 리스크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다만, 법정에까지 가는 사건은 대부분은 유죄임이 명백합니다. 그렇기에 무죄를 다투는 사건이 의미가 있습니다.

소설로 들어가보면
누가 보아도 무죄임이 명백함에도,
유죄판결을 받게되는 피고인이 등장합니다.
가해자가 흑인, 피해자가 백인.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60년대 미국이 배경. 유죄판결받을 경우 예정된 형은
사형.
이야기는 예측가능하게 흘러갑니다.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유죄임이 입증되었
는지, 사실은 범죄가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닌지, 피해자가 피해를 입은 것은 맞지만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이 아니라 강간이 아닌 폭행피해자이고 폭행을 한 것을 피고인이 아니라 피해자의 아버지가 아닌지.
피해자가 공개된 법정에서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야 했던 재판과정은 공정한 것인지. 자신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혹은 비난받을 행동을 한 사실을 털어놓지 않아 무고한 피고인을 죽게 만드는 것이 과연 '무지'라는 말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

어른들인 배심원들 대부분은 이런 의심을 눈감아버립니다. 결국 사형선고를 받게된 피고인.
항소심 판단에 기대를 걸어보자는 주변사람들.
피고인은 교도소 탈주를 하려다 총에 맞고 숨지게 됩니다.
재판이라는 제도를 믿지 못한 것일까요
아니면 진실은 상관없이 자신이 죽길 바라는 사람들에게서 절망을 느껴서일까요.

제목이 주는 상징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3. 읽고 나서

여전히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입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피고인이 무죄임이 명백하도록 기술된 방식입니다. 아이의 눈으로 서술한거라 사실관계를 단순하게 묘사한 점이 좋은 반면,
독자 입장에서 좀 더 고민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더 좋지 않았나 싶습니다.
변호사라면 누구든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칠만한 사건을 맡게 된다는데, 그때에 준비가 되어있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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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 제인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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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심 끝에 정한 책 제목은 원제인 'Young Jane Young'와 달리 '비바, 제인'으로 바꿔달았다고 합니다.

책장을 덮고 난 후의 개인적인 감상은 원제목이 더 와닿는 것 같아요.

20대 초반에 있었던 과오(?, 사실 이게 과오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를 극복하고 새로운 삶의 출발점에 서 있는 제인은 여전히 젊거든요. 응원한다는 의미를 제목으로 달지 않아도 그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본인이 원하는 결정을 여러 번 거친 결과 지금의 그녀로 남아 있습니다.
지켜봐 주는 것 이상을 바라는 것 같지도 않구요.

이 책은 화자가 여러 명입니다. 제인의 어머니, 제인, 제인의 딸, 정치인의 아내, 제인이 일기 형식으로 남긴 기록.
기시감이 든다고 하지만 이 책에서 보여지는 그녀(아비바 그로스먼 혹은 제인. 개명 전 이름이 전자입니다. 즉, 같은 사람)의 삶은 불행하지도, 타인에 의해 재단되는 삶을 살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비난할 권리가 같은 사람에게 과연 있는 것일까요? 유명한 문구인 '너희 중에 죄 없는 자,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까지 가지 않아도 답은 자명합니다.

어리고 자신감이 없는 여성이 있습니다. 외모가 아니라 능력으로 평가받기를 원합니다. 실제로 능력이 있음을 인정받게 됩니다.
그런 여성이 순간적으로 잘못된 선택(여러 차례)을 하게 됩니다. 어리고 판단능력이 부족하지만 당시에는 본인의 선택이라 믿었습니다.
그만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멀지 않아 현실적으로 끝이 날거라 생각했던 일은 본인이 원치 않은 우연한 사고(말 그대로 사고입니다. 교통사고의 피해자.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를 당한 차에 정치인과 동승하였고, 가해자가 사망하는 바람에 사건화되었습니다)를 통해 미디어에 노출됩니다.

이후 본인이 블로그에 남겼던 글이 회자되면서 이후의 삶을 찾기 어렵게 됩니다.
좌절하던 순간에 다른 어른(정치인의 보좌관인 남자)에게 순간적으로 넘어가 아이를 낳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다른 사람에 의해 삶이 휘둘린 것 같지만, 이후 그녀는 개명을 하고, 살던 곳을 떠나 자립하게 됩니다. 아이도 혼자 키우게 되고, 그곳에서 만난 재력가인 여성의 도움으로 시장선거에 출마하게 됩니다.

있을 법한 이야기. 하지만 국내에서 벌어진 사건과는 다른 사건입니다. 제인은 본인이 스스로 과거를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등장하는 여성들 모두 자신의 방식으로 견뎌내고 이후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인의 딸은 또래에 비해 똑똑한 아이입니다. 자신의 부친의 존재를 찾아보다 엄마의 과거를 알게 되고 정치인으로서의 자격을 묻습니다. 메인주에서 플로리다까지 직접 부친으로 추정되는 정치인을 찾아가게 됩니다.

정치인의 아내는 제인의 딸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정치인과의 만남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삶이 평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엔 메테'(일종의 반전입니다.)과 함께 살게 되었고, 암으로 힘든 세월을 보냈으나 정치인으로서의 남편을 인정하고 본인이 '힐러리 클린턴'이 아님을 인정할 줄 아는 어른입니다.

제인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하게 됩니다. 남편의 외도를 뒤늦게 알아차리지만, 외도의 상대방에게 안타까움을 느끼고, 딸에게 따끔한 조언자가 됩니다.

등장하는 여성들 모두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당당하게 살아갑니다.
과거는 과거이고 삶은 계속됩니다. 과거로 인해 미래를 부정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녀들에게 공개적인 지지나 응원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지켜봐 주는 것으로 족할 듯 합니다.

선거 결과는 부정적일 수도 있지만, 이후 그녀가 정치인으로서 더 성공적인 삶을 살지도 모르겠습니다.
살면서 여러 번 선택의 순간이 있을 것이고, 제인은 좀 더 신중한 선택을 할 것이고, 이후 결과에 대해서도 온전히 감내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삶이 그러한 것처럼.

아, 이렇게 글을 마치려고 하니 '비바, 제인'이라는 제목이 수긍되는 것 같아요. 레이첼, 제인, 루비, 엠베스, 그리고 아비바 응원하겠습니다!


인상적인 문구가 많아 조만간 이글에 더 덧붙일 예정입니다.


인상깊은 구절

제1장 레이철

50쪽
아무 일도 없었다, 특별한 건. 인생에서 행복의 열쇠는 언제 입을 다물어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예순 넷이 된다는 건 다시 고등학생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64쪽
'유일'한 사람이 되는 건 소수자나 심지어 가난한 이가 된다는 게 어떤 건지 상상하기에 좋은 연습이 된다. 정부의 가장 큰 위험 요소는 근시안적 사고와 자기중심주의다. 좋은 리더와 좋은 시민은 우리와 같지 않은 사람들의 요구 또한 고려되어야 한다.
역겨운 인간이 했지만 훌륭한 연설이었다.
77쪽
수사 결과 할머니의 잘못임이 드러났지만, 더불어 당시 조수석에 타고 있던 우리 딸이 하원의원과 불륜을 맺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드러났다. 그렇게 사우스 플로리다의 아비바 그로스먼 집중 추궁의 서막이 올랐다. 요컨대 아비바게이트의 시작이었다.
78쪽
나는 믿었다. 그가 부도덕한 남자일지는 몰라도 잔인한 남자는 아닐 거라고. 그러나 불행히고 사건에 관한 대중의 관심이 너무 컸고 아비바를 보호하려는 하원의원의 역량을 넘어섰다. 대중은 그날 밤 하원의원과 함께 차에 타고 있던 사람이 누군지 알아내기 전까지 결코 성이 차지 않았다.
83쪽
사우스 플로리다 사람이 아니더라도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내용이나 상상 못할 내용은 하나도 없다. 보도는 그런 유의 뉴스가 늘 진행되는 방식으로 똑같이 진행됐다.
87쪽
"기억하고 말고요, 선생님 말도 믿어요. 문제는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치는가 하는 겁니다."
92쪽
"아뇨, 당신은 탓하는 게 아녜요. 하지만 생각해봐요, 몹시 성차별적이고 노인 차별하는 혐오표현이잖아요. '할머니들의 속설'이란 말은 미신이라거나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거나 어리석다는 뜻을 담고 있잖아요? '할머니들의 속설'이라고 할 때는 기본적으로 뭘 모르는 할머니들이 하는 말은 전부 무시해도 된다는 뜻이니까."
"그런 생각은 못해봤는데." 최가 말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어요. 나 자신이 할머니가 되기 전까진."
96쪽
사람들은 재수없는 온라인 미팅남 루이스처럼 생각한다. 몇몇 자극적인 문구만기억한다. 자신이 한 사람의 인간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자신이 누군가의 딸자식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제2장 어딜 가든 나는 나
제인

111쪽
"불행한 신부들은 제각각의 사정으로 불행하지."
111쪽
내가 루비 나이였을 때 비만이었고 우리 어머니는 귀가 닳도록 내 체중 얘기를 하고 또 했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그래, 나는 내가 몇 가지 컴플렉스의 당당한 보유자임을 밝히는 바이다. 하지만 누군들 안 그렇겠는가?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기후와 풍토에 대응해 지어진 구조물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닌가?
133쪽
나는 일 년 동안 빈 화분에 물을 주었고, 처음엔 뿌리가, 그다음에 잎새가 하나둘 살아나더니, 이태쯤 지나서는 짜잔! 다시 꽃을 피웠다. 그것이 결혼과 난에 대해 내가 아는 바이다. 둘 다 의외로 죽이기 힘들다. 그것이 내가 슈퍼마켓 출신의 우리 난을 사랑하는 이유이고, 유부남을 사랑하지 않는 이유이다.
149쪽
네가 알 권리가 있는 과거는 오로지 너 자신의 과거뿐이야.
162쪽
과거는 절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바보들만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밖으로 나와 문을 닫았다. "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당신은 아는 게 없어요."
164쪽
하지만 이 말은 꼭 해둬야겠다.... 그 온갖 일들에도 불구하고 내가 레빈에게 호감을 느끼는 건, 그를 알게 된 당시의 나는 감화되기 쉬운 나이였으니까. 그를 알게 된 당시의 나는 어렸으니까.


제3장 메인 주에 관한 열세 가지, 아니 몇 가지 재미있는 사실
루비

178쪽
엄마 말이, 사람들이 자신을 가장 친한 친구라고 여기는 이유는 결혼식이나 각종 행사가 사람들한테 '친밀감의 환상'을 심어주기 때문이래. '친밀감의 환상'이란 사람들이 '자제력을 내려놓는다'는 걸 뜻해. '자제력을 내려놓는다'는 건 '사람들이 너무 많이 말하고 마시고 끌어안는다'는 뜻이야.
184쪽
하지만 사람들이 선거 때 듣고 싶어하는 얘기는 따로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지
189쪽
엄마는 아빠를 '사랑'했지만 한편으론 또 아빠를 '알지' 못했대.(난 이해가 안 가. 어떻게 알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가 있어?) 아빠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엄마가 임신한 줄도 몰랐대. 엄마는 아빠와 함께 다니던 곳들이 있는 고향 도시를 견디지 못하고 메인 주로 이사 왔대. 그건 아주 오래전 이이고, 엄마도 지금과 다른 사람이었다고.


제4장 집안의 천사
엠베스

243쪽
어떻게든 진실을 모르게 보호받는 아내들도 있지 않나? 어째서 아무도 엠베스가 보호받아야 할 타입의 아내라고 생각지 않는 거지? 남편의 결점을 보지 않도록 온실 속에 남겨져야 할 타입의 아내라고는?
십여 년 전, 딱 한 번 엠베스가 끼어들지 않은 적이 있는데, 그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보라.
247쪽
안경 속에 여린 녹색 눈이 있었고, 엠베스는 그 눈을 들여다보고 아이에게 학교 생활이 - 아니, 인생이 - 녹록지 않았겠구나 확신했다. 아이는 좀 무방비해 보였고 생존에 최적화되어 있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261쪽
엠베스는 혼자 단상에서 정적을 음미했다. 사람들과 함께 있지만 혼자였다. 편안하고 볼품없으며 중성적인 옷을 입은 청중을 들여다보며 그녀는 이 여자들 중 몇 명이나 자신이 에런을 사랑하듯 제 남편을 사랑할까 궁금했다. 그렇다, 모든 아이러니를 불식시키는 아이러니였다! 엠베스는 에런을 사랑했다.
270쪽
'여자는 결코 자신의 즐거움을 희생해서 남을 즐겁게 해주려 해서는 안 된다.'

제5장 선택하시오
아비바

296쪽
"나도 클린턴 좋아해." 당신이 말한다. "그는 부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모니카 르윈스키도 똑같이 책임이 있는 거 아냐? 사람들은 그들 사이의 권력 불균형에 대해 말하고, 나도 그건 중요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 여자는 성인이고 자기가 쫓아다녔잖아. 어쨌든 각자 알아서 선택하는 거지."
309쪽
엄마는 거의 종교적 열정으로 당신을 사랑한다. 너무 많이 사랑한다. 그 사랑 때문에 당신은 엄마에게 당혹감과 더불어 죄책감에 가까운 감정을 느낀다. 태어난 것 빼고 그런 사랑을 받을 만한 일을 뭘 했길래?
347쪽
"아냐, 여기 있어. 만약 저 여자가 죽었다면 수사가 이뤄질 테고, 넌 나의 증인이야. 네가 가버리고 나중에 네가 현장에 있었다는게 밝혀지면, 우리가 뭔가를 은폐하려 한 것처럼 보일 거야. 그게 스캔들과 범죄의 차이지. 지나가는 폭풍우냐 내 커리어의 끝장이냐의 차이야. 경찰이 오면, 넌 내가 집까지 바래다주던 인턴이야. 이건 자신 있게 말해도 돼, 왜냐면 사실이니까."
348쪽
"미안해, 아비비." 하원의원이 말한다.
"뭐가요?" 당신은 무심결에 말한다. "저 할머니가 들이받은 거잖아. 당신 잘못은 아니지."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350쪽
다들 매트리스에 매달린 여자를 그렇게 사랑하면서(미워하면서), 아무도 폭풍우에는 관심이 없어 보여 참 희한하다고, 당신은 생각한다.
352쪽
당신은 생활을 계속 이어간다. 당연하지. 사실 선택하고 자시고 할 게 뭐 있는가?
354쪽
그래도 당신은 희망을 품고 있다.
당싱은 스물두 살이다.
385쪽
당신은 공직에 출마하면 안 된다는 걸 안다.
그랬다간 당신과 당신의 과거를 너무 정밀한 현미경 앞에 갖다대는 꼴이 된다는 걸 안다.
만약 선거에서 지고, 비밀이 탄로나면, 당신의 사업과 지역 사회 내 당신의 평판에 타격이 올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안다.
다른 한편으로, 당신은 서른일곱이다.
당신은 루비의 엄마라서 기쁘지만, 루비를 사랑한다고 해서 자신을 위한 뭔가를 바라지도 말아야 하는 건 아니다.
393쪽
"왜냐면 그 편이 더 나으니까. 결국 언젠가는 나오게 될 얘기였어. 난 그때 일이 부끄럽지 않아, 더이상은. 또 당시 내가 처했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내가 했던 일들도 부끄럽지 않아. 그리고 만약 사람들이 그때 일로 나를 평가하고 싶어서 나에게 투표하지 않겠다면, 그건 그들의 선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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