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제인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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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심 끝에 정한 책 제목은 원제인 'Young Jane Young'와 달리 '비바, 제인'으로 바꿔달았다고 합니다.

책장을 덮고 난 후의 개인적인 감상은 원제목이 더 와닿는 것 같아요.

20대 초반에 있었던 과오(?, 사실 이게 과오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를 극복하고 새로운 삶의 출발점에 서 있는 제인은 여전히 젊거든요. 응원한다는 의미를 제목으로 달지 않아도 그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본인이 원하는 결정을 여러 번 거친 결과 지금의 그녀로 남아 있습니다.
지켜봐 주는 것 이상을 바라는 것 같지도 않구요.

이 책은 화자가 여러 명입니다. 제인의 어머니, 제인, 제인의 딸, 정치인의 아내, 제인이 일기 형식으로 남긴 기록.
기시감이 든다고 하지만 이 책에서 보여지는 그녀(아비바 그로스먼 혹은 제인. 개명 전 이름이 전자입니다. 즉, 같은 사람)의 삶은 불행하지도, 타인에 의해 재단되는 삶을 살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비난할 권리가 같은 사람에게 과연 있는 것일까요? 유명한 문구인 '너희 중에 죄 없는 자,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까지 가지 않아도 답은 자명합니다.

어리고 자신감이 없는 여성이 있습니다. 외모가 아니라 능력으로 평가받기를 원합니다. 실제로 능력이 있음을 인정받게 됩니다.
그런 여성이 순간적으로 잘못된 선택(여러 차례)을 하게 됩니다. 어리고 판단능력이 부족하지만 당시에는 본인의 선택이라 믿었습니다.
그만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멀지 않아 현실적으로 끝이 날거라 생각했던 일은 본인이 원치 않은 우연한 사고(말 그대로 사고입니다. 교통사고의 피해자.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를 당한 차에 정치인과 동승하였고, 가해자가 사망하는 바람에 사건화되었습니다)를 통해 미디어에 노출됩니다.

이후 본인이 블로그에 남겼던 글이 회자되면서 이후의 삶을 찾기 어렵게 됩니다.
좌절하던 순간에 다른 어른(정치인의 보좌관인 남자)에게 순간적으로 넘어가 아이를 낳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다른 사람에 의해 삶이 휘둘린 것 같지만, 이후 그녀는 개명을 하고, 살던 곳을 떠나 자립하게 됩니다. 아이도 혼자 키우게 되고, 그곳에서 만난 재력가인 여성의 도움으로 시장선거에 출마하게 됩니다.

있을 법한 이야기. 하지만 국내에서 벌어진 사건과는 다른 사건입니다. 제인은 본인이 스스로 과거를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등장하는 여성들 모두 자신의 방식으로 견뎌내고 이후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인의 딸은 또래에 비해 똑똑한 아이입니다. 자신의 부친의 존재를 찾아보다 엄마의 과거를 알게 되고 정치인으로서의 자격을 묻습니다. 메인주에서 플로리다까지 직접 부친으로 추정되는 정치인을 찾아가게 됩니다.

정치인의 아내는 제인의 딸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정치인과의 만남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삶이 평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엔 메테'(일종의 반전입니다.)과 함께 살게 되었고, 암으로 힘든 세월을 보냈으나 정치인으로서의 남편을 인정하고 본인이 '힐러리 클린턴'이 아님을 인정할 줄 아는 어른입니다.

제인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하게 됩니다. 남편의 외도를 뒤늦게 알아차리지만, 외도의 상대방에게 안타까움을 느끼고, 딸에게 따끔한 조언자가 됩니다.

등장하는 여성들 모두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당당하게 살아갑니다.
과거는 과거이고 삶은 계속됩니다. 과거로 인해 미래를 부정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녀들에게 공개적인 지지나 응원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지켜봐 주는 것으로 족할 듯 합니다.

선거 결과는 부정적일 수도 있지만, 이후 그녀가 정치인으로서 더 성공적인 삶을 살지도 모르겠습니다.
살면서 여러 번 선택의 순간이 있을 것이고, 제인은 좀 더 신중한 선택을 할 것이고, 이후 결과에 대해서도 온전히 감내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삶이 그러한 것처럼.

아, 이렇게 글을 마치려고 하니 '비바, 제인'이라는 제목이 수긍되는 것 같아요. 레이첼, 제인, 루비, 엠베스, 그리고 아비바 응원하겠습니다!


인상적인 문구가 많아 조만간 이글에 더 덧붙일 예정입니다.


인상깊은 구절

제1장 레이철

50쪽
아무 일도 없었다, 특별한 건. 인생에서 행복의 열쇠는 언제 입을 다물어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예순 넷이 된다는 건 다시 고등학생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64쪽
'유일'한 사람이 되는 건 소수자나 심지어 가난한 이가 된다는 게 어떤 건지 상상하기에 좋은 연습이 된다. 정부의 가장 큰 위험 요소는 근시안적 사고와 자기중심주의다. 좋은 리더와 좋은 시민은 우리와 같지 않은 사람들의 요구 또한 고려되어야 한다.
역겨운 인간이 했지만 훌륭한 연설이었다.
77쪽
수사 결과 할머니의 잘못임이 드러났지만, 더불어 당시 조수석에 타고 있던 우리 딸이 하원의원과 불륜을 맺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드러났다. 그렇게 사우스 플로리다의 아비바 그로스먼 집중 추궁의 서막이 올랐다. 요컨대 아비바게이트의 시작이었다.
78쪽
나는 믿었다. 그가 부도덕한 남자일지는 몰라도 잔인한 남자는 아닐 거라고. 그러나 불행히고 사건에 관한 대중의 관심이 너무 컸고 아비바를 보호하려는 하원의원의 역량을 넘어섰다. 대중은 그날 밤 하원의원과 함께 차에 타고 있던 사람이 누군지 알아내기 전까지 결코 성이 차지 않았다.
83쪽
사우스 플로리다 사람이 아니더라도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내용이나 상상 못할 내용은 하나도 없다. 보도는 그런 유의 뉴스가 늘 진행되는 방식으로 똑같이 진행됐다.
87쪽
"기억하고 말고요, 선생님 말도 믿어요. 문제는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치는가 하는 겁니다."
92쪽
"아뇨, 당신은 탓하는 게 아녜요. 하지만 생각해봐요, 몹시 성차별적이고 노인 차별하는 혐오표현이잖아요. '할머니들의 속설'이란 말은 미신이라거나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거나 어리석다는 뜻을 담고 있잖아요? '할머니들의 속설'이라고 할 때는 기본적으로 뭘 모르는 할머니들이 하는 말은 전부 무시해도 된다는 뜻이니까."
"그런 생각은 못해봤는데." 최가 말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어요. 나 자신이 할머니가 되기 전까진."
96쪽
사람들은 재수없는 온라인 미팅남 루이스처럼 생각한다. 몇몇 자극적인 문구만기억한다. 자신이 한 사람의 인간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자신이 누군가의 딸자식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제2장 어딜 가든 나는 나
제인

111쪽
"불행한 신부들은 제각각의 사정으로 불행하지."
111쪽
내가 루비 나이였을 때 비만이었고 우리 어머니는 귀가 닳도록 내 체중 얘기를 하고 또 했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그래, 나는 내가 몇 가지 컴플렉스의 당당한 보유자임을 밝히는 바이다. 하지만 누군들 안 그렇겠는가?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기후와 풍토에 대응해 지어진 구조물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닌가?
133쪽
나는 일 년 동안 빈 화분에 물을 주었고, 처음엔 뿌리가, 그다음에 잎새가 하나둘 살아나더니, 이태쯤 지나서는 짜잔! 다시 꽃을 피웠다. 그것이 결혼과 난에 대해 내가 아는 바이다. 둘 다 의외로 죽이기 힘들다. 그것이 내가 슈퍼마켓 출신의 우리 난을 사랑하는 이유이고, 유부남을 사랑하지 않는 이유이다.
149쪽
네가 알 권리가 있는 과거는 오로지 너 자신의 과거뿐이야.
162쪽
과거는 절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바보들만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밖으로 나와 문을 닫았다. "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당신은 아는 게 없어요."
164쪽
하지만 이 말은 꼭 해둬야겠다.... 그 온갖 일들에도 불구하고 내가 레빈에게 호감을 느끼는 건, 그를 알게 된 당시의 나는 감화되기 쉬운 나이였으니까. 그를 알게 된 당시의 나는 어렸으니까.


제3장 메인 주에 관한 열세 가지, 아니 몇 가지 재미있는 사실
루비

178쪽
엄마 말이, 사람들이 자신을 가장 친한 친구라고 여기는 이유는 결혼식이나 각종 행사가 사람들한테 '친밀감의 환상'을 심어주기 때문이래. '친밀감의 환상'이란 사람들이 '자제력을 내려놓는다'는 걸 뜻해. '자제력을 내려놓는다'는 건 '사람들이 너무 많이 말하고 마시고 끌어안는다'는 뜻이야.
184쪽
하지만 사람들이 선거 때 듣고 싶어하는 얘기는 따로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지
189쪽
엄마는 아빠를 '사랑'했지만 한편으론 또 아빠를 '알지' 못했대.(난 이해가 안 가. 어떻게 알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가 있어?) 아빠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엄마가 임신한 줄도 몰랐대. 엄마는 아빠와 함께 다니던 곳들이 있는 고향 도시를 견디지 못하고 메인 주로 이사 왔대. 그건 아주 오래전 이이고, 엄마도 지금과 다른 사람이었다고.


제4장 집안의 천사
엠베스

243쪽
어떻게든 진실을 모르게 보호받는 아내들도 있지 않나? 어째서 아무도 엠베스가 보호받아야 할 타입의 아내라고 생각지 않는 거지? 남편의 결점을 보지 않도록 온실 속에 남겨져야 할 타입의 아내라고는?
십여 년 전, 딱 한 번 엠베스가 끼어들지 않은 적이 있는데, 그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보라.
247쪽
안경 속에 여린 녹색 눈이 있었고, 엠베스는 그 눈을 들여다보고 아이에게 학교 생활이 - 아니, 인생이 - 녹록지 않았겠구나 확신했다. 아이는 좀 무방비해 보였고 생존에 최적화되어 있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261쪽
엠베스는 혼자 단상에서 정적을 음미했다. 사람들과 함께 있지만 혼자였다. 편안하고 볼품없으며 중성적인 옷을 입은 청중을 들여다보며 그녀는 이 여자들 중 몇 명이나 자신이 에런을 사랑하듯 제 남편을 사랑할까 궁금했다. 그렇다, 모든 아이러니를 불식시키는 아이러니였다! 엠베스는 에런을 사랑했다.
270쪽
'여자는 결코 자신의 즐거움을 희생해서 남을 즐겁게 해주려 해서는 안 된다.'

제5장 선택하시오
아비바

296쪽
"나도 클린턴 좋아해." 당신이 말한다. "그는 부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모니카 르윈스키도 똑같이 책임이 있는 거 아냐? 사람들은 그들 사이의 권력 불균형에 대해 말하고, 나도 그건 중요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 여자는 성인이고 자기가 쫓아다녔잖아. 어쨌든 각자 알아서 선택하는 거지."
309쪽
엄마는 거의 종교적 열정으로 당신을 사랑한다. 너무 많이 사랑한다. 그 사랑 때문에 당신은 엄마에게 당혹감과 더불어 죄책감에 가까운 감정을 느낀다. 태어난 것 빼고 그런 사랑을 받을 만한 일을 뭘 했길래?
347쪽
"아냐, 여기 있어. 만약 저 여자가 죽었다면 수사가 이뤄질 테고, 넌 나의 증인이야. 네가 가버리고 나중에 네가 현장에 있었다는게 밝혀지면, 우리가 뭔가를 은폐하려 한 것처럼 보일 거야. 그게 스캔들과 범죄의 차이지. 지나가는 폭풍우냐 내 커리어의 끝장이냐의 차이야. 경찰이 오면, 넌 내가 집까지 바래다주던 인턴이야. 이건 자신 있게 말해도 돼, 왜냐면 사실이니까."
348쪽
"미안해, 아비비." 하원의원이 말한다.
"뭐가요?" 당신은 무심결에 말한다. "저 할머니가 들이받은 거잖아. 당신 잘못은 아니지."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350쪽
다들 매트리스에 매달린 여자를 그렇게 사랑하면서(미워하면서), 아무도 폭풍우에는 관심이 없어 보여 참 희한하다고, 당신은 생각한다.
352쪽
당신은 생활을 계속 이어간다. 당연하지. 사실 선택하고 자시고 할 게 뭐 있는가?
354쪽
그래도 당신은 희망을 품고 있다.
당싱은 스물두 살이다.
385쪽
당신은 공직에 출마하면 안 된다는 걸 안다.
그랬다간 당신과 당신의 과거를 너무 정밀한 현미경 앞에 갖다대는 꼴이 된다는 걸 안다.
만약 선거에서 지고, 비밀이 탄로나면, 당신의 사업과 지역 사회 내 당신의 평판에 타격이 올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안다.
다른 한편으로, 당신은 서른일곱이다.
당신은 루비의 엄마라서 기쁘지만, 루비를 사랑한다고 해서 자신을 위한 뭔가를 바라지도 말아야 하는 건 아니다.
393쪽
"왜냐면 그 편이 더 나으니까. 결국 언젠가는 나오게 될 얘기였어. 난 그때 일이 부끄럽지 않아, 더이상은. 또 당시 내가 처했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내가 했던 일들도 부끄럽지 않아. 그리고 만약 사람들이 그때 일로 나를 평가하고 싶어서 나에게 투표하지 않겠다면, 그건 그들의 선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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