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편지라는 제목으로 된 서문만 읽어도, 혹은 실린 편지의 목차만 스윽 훑어봐도 독서의 욕구가 솟구치는 책이다.

 

믹 재거가 롤링스톤즈 앨범 커버 디자인에 대해 기가 막히게 편안한 태도로 주문사항을 조목조목 써서 앤디 워홀에게 보낸 편지가 있고(앤디 워홀은 이 앨범의 커버를 완성했는데 주문 사항을 싹 무시한 디자인이었다. 이 앨범 커버는 아주 파격적이고 매혹적이고 인상적이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정감넘치는 자필 편지에는 당신만의 팬케이크 레시피가 첨부되어 있고 (책에 실린 첫 편지다), 자유의 몸이 된 노예가 전주인에게 퍼붓는 재치발랄하고 통쾌한 반박 서한이 있는가 하면 (강추한다. 이런 글솜씨를 가진 노예(전직 노예라고 해야 하나?)라니....근사하다), 세계적인 명성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가 자살 직전에 남편에게 쓴 시리게 가슴아픈  편지도 있다. 60세 환자가 마취도 하지 않은 채 유방절제수술을 받은 과정을 딸에게 적어보낸 고통스러운 편지 (1855년 하와이에서 수술이 행해졌는데 환자는 수술 도중 내내 깨어있었으며 그 과정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대화도 오고갔다. 팔 아래 부분도 일부 잘라내야겠습니다. 그러세요 같은)도 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취업을 간청하는 편지도 있다. 악명높은 연쇄살인범 잭 더 리퍼가 연쇄살인사건 범인을 쫓는 시민모임의 단장에게 보내는 편지는 번역자가 틀린 맞춤법을 근사하게 번역해놓았다. (이 편지와 함께 보낸 상자에는 와인에 절인 인간의 신장 반 토막이 들어있었단다)

 

책 크기가 큼직하고 종이도 질이 좋아서 근사한 책이 되었지만 무게가 상당해서 들고 다니며 읽기는 거의 불가능. 편지의 원본사진을 보기 좋게 싣기에는 크기가 이 정도 되어야했지 싶다. 또 하나 더 부담스럽다면 가격인데,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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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경의 자서전 <회상과 모험>을 읽으면서 아서가 불편하게 여겼던 것들. 사실과 다른 것들, 아니, 거짓은 아니지만 온전한 사실이라 볼 수 없는 것들. 별 것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지나치게 예민하게 구는 듯하지만 그래도 다른 것들. 의도적 거짓은 아니지만 상대방 입장을 충분히 배려한 건 아닌 글들. 이야기의 모서리가 깎여나가면서 실제로 있었던 일보다는 화자 자신에게 중요한 일들이 더 부각되는 서술.

 

1906년에 아내가 오랜 병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둠의 시기였고, 나는 일을 손에 잡을 수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에들지 사건이 나타났고,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에 에너지를 쏟게 되었다.

 

조지는 항상 이 서두를 불편하게 여겼다. 이 사건이 아서 경을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끌어내는 데 딱 필요한 만큼만 특이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로서는 그 목사가 자신을 파르시로 여겼는지, 혹은 파르시가 어떻게 목사가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도 자유주의적 사고를 지닌 누군가가 영국국교회의 보편성을 증명해보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라건대 이 실험은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 목사는 정감있고 헌신적인 인물이었지만, 유색인종 성직자와 혼혈아들의 출현은 거칠고 투박한 교구에서 유감스러운 상황이 벌어진 계기가 되었다.

 

조지는 이 말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이 말은 사실상 그의 아버지에게 사제직을 주어 그 교구를 담당하게 했던 어머니 쪽 가족을 비난하는 셈이었다. 그는 '혼혈아들'이라는 표현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른 식으로 말할 순 없었던 것일까?

 

그 사건으로 나는 격분했고, 온 힘을 다해 천박한 사람들로 인해 난처한 상황에 처한 유색인종 성직자와 푸른 눈과 잿빛 머리를 지닌 용감한 어머니, 그리고 어린 딸로 이루어진 무기력하고 고통받는 한 가족을 돕기 시작했다.

 

무기력했다니? 아서 경이 개입하기도 전에 그는 이미 스스로 사건을 분석한 기사를 신문에 실은 적이 있었다. 어머니와 모드 역시 지속적을 편지를 쓰며 지지자들에게 호소하고 증인들을 모았다. 아서 경은 물론 상당한 신뢰와 감사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지만, 조지에게 그는 무한한 신뢰와 감사를 요구하고 있는 듯 보였다.

 

1906년 가을, 나는 우연히 <엄파이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신문을 집어들었고, 어떤 사람이 자기 사건을 직접 쓴 기사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아서 경이 처음 이 사건을 접하게 된 계기에 대한 언급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아서 경이 '잘 알려지지 않은 신문'을 '우연히' '집어들' 수 있었던 까닭은 조지가 그에게 기사 전문과 편지를 보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면, 아서가 자신의 자서전에서 조지와의 일을 쓴다면 저렇게 쓸 수밖에 없으리라. 인간 기억의 불완전성에 비추어보면 거짓말 아닌 게 어딘가 말이다. 조지처럼 문장을 파고들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조지도 아서가 쓴 글이 자신과 관계되어 있으니 그렇게 정확하게 알지 그렇지 않다면 어찌 알겠는가 말이다. 눌러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관점이란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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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 요리가 몸에 좋다고 하지만 고기를 외면하기란 참 힘든 일이다. 그래서 채소 요리를 먹으려는 나의 노력은 맛있는 조리법을 찾는 것부터 시작한다. 덕분에 이런저런 채소 요리책을 뒤적이게 되는데....... 어리둥절한 책을 발견했다. <채소의 신>이라는 제목이다. 제목은 평범하지만 내용은 이게 뭐지? 이게 요리책인가? 의문을 갖게 만든다.

 

"스윽 하고 당근에 칼집을 넣는 순간, 당근 특유의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마지막까지 당근을 정성껏 보내줘야 한다는 긴장감과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이 당근을 다시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내 안에서 간절한 기도처럼 솟아난다. 당근은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채기라도 한 것처럼 미소를 머금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당근이 내 행위를 받아들이고 허락한 것만 같은 신성한 미소다. 그 후의 동작은 당근과 나의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파도를 탄 듯 거침없이 움직인다."

 

당근의 미소, 당근의 에너지라니.... 여행은 삶과 닮았습니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데 이건 요리와 도는 같은 겁니다라는 의미? 게다가 이 저자, 진심이다. 그리고 당근 서술에서 이미 짐작할 수 있듯이 요리 재료는 온통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재배한 것들만 쓰인다. 오니기리 레시피가 있는데 재료가 이러하다. 자연농법으로 재배한 쌀, 천일염, 무농약으로 재배한 매실로 담근 매실장아찌. 요리법도 마찬가지다. "쌀에 소금을 약간 넣고 밥을 짓는다. 물은 정수를 사용하되, 한두 시간 햇볕에 쪼여 태양의 에너지를 받은 물을 사용하면 더욱 좋다." 이게 끝이 아니다. "요리를 마무리할 때는 양념을 넣어 간을 맞춘 후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운 빛과 함께 사랑의 향신료를 듬뿍 뿌려줄 것을 권한다." 뭐 당연한 말이겠지 먹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요리에 정성을 들이라는 말 아냐? 라고 생각하면 오산. 진짜 사랑의 향신료가 존재한다. 이 요리를 보자.

 

기적을 부르는 기쁨의 눈물 수프

 

재료 : 기쁨의 눈물, 보드카, 정제수, 좋아하는 수프.

 

요리법

1. 수프를 만든다

2. 기쁨의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린다.

 

기쁨의 눈물이 흐를 정도로 수프를 만드는 걸 기뻐하라는 소리로 이해하면 안된다. 정말로 기쁨의 눈물을 받아서 수프에 넣으라는 뜻이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 생각한다면 다음 글을 보자.

 

"수프를 만든 순간에 기쁨의 눈물이 흐르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을 경우에는 기쁨의 눈물을 미리 보관해두자. 기쁨의 눈물을 정제수로 희석하고, 방부와 살균을 위해 보드카를 조금 넣는다. 유리병에 넣고 뚜껑을 잘 여민 후 냉장고에 보관한다. 2주일 이상은 사용이 가능하다."

 

흠, 저자의 집 냉장고를 열면 정말 뜻밖의 것들이 가득하겠다. 이 책의 부제는 "행복해지기 위한 40가지 레시피"다. 채소 요리 레시피가 40가지 실려있다. 내 집 식탁에 올릴 수 있을 만한 요리도 있다. 의아하고 어리둥절한 요리도 있다. 결국 이 요리책을 쓴 저자의 깊은 뜻(이란 게 틀림없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은 내 방식으로 가감해서 받아들이면서 독서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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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한 일을 당하는 사람에게 세상은 '바보'라고 하거나 '너무 순진하다'고 얘기하지만, 정작 자신의 요구를 이야기하면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사회의 냉엄한 현실을 맛보게 됩니다.

 

어느 시대나 사회를 바꾸는 것은 비슷한 과정을 거칩니다. 세상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런 사람들이 모이고, 모든 사람들이 분노하여 문제가 터집니다. 그래서 세상에 대해 공부하고 조직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평범하지 않은 책값 10420원은 2014년에 적용되는 시간당 법정 최저임금의 두 배, 곧 두 시간 노동했을 때 받게 되는 최저임금입니다. 이를 알리고자 출판사에서 그렇게 가격을 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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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음직스러운 빵과 그 빵을 만드는 자세한 과정 사진이 가득하다. 사진은 여러 번 감탄해도 부족할 정도로 근사하다. 즐겁게 독서한 후 난 집 근처에 있는 빵집으로 갔다. 생긴 지 얼마 안된 동네빵집인데 식사 대신으로 먹을만한 빵을 만든다. 종류도 몇 가지 안되고 가게도 자그마하다. 앉아서 먹고 싶어도 테이블도 없다. 두어 개 사서 들고 집에 왔다. 저자는 책 속 레시피대로 빵을 만들어 먹고 싶은 의욕에 가득 차서 베이킹에 도전하는 독자를 보고 싶었을 텐데, 나는 빵을 먹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한 정도다. 어쩌겠나. 이책을 보는 동안 행복했다는 것만은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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