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 요리가 몸에 좋다고 하지만 고기를 외면하기란 참 힘든 일이다. 그래서 채소 요리를 먹으려는 나의 노력은 맛있는 조리법을 찾는 것부터 시작한다. 덕분에 이런저런 채소 요리책을 뒤적이게 되는데....... 어리둥절한 책을 발견했다. <채소의 신>이라는 제목이다. 제목은 평범하지만 내용은 이게 뭐지? 이게 요리책인가? 의문을 갖게 만든다.

 

"스윽 하고 당근에 칼집을 넣는 순간, 당근 특유의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마지막까지 당근을 정성껏 보내줘야 한다는 긴장감과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이 당근을 다시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내 안에서 간절한 기도처럼 솟아난다. 당근은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채기라도 한 것처럼 미소를 머금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당근이 내 행위를 받아들이고 허락한 것만 같은 신성한 미소다. 그 후의 동작은 당근과 나의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파도를 탄 듯 거침없이 움직인다."

 

당근의 미소, 당근의 에너지라니.... 여행은 삶과 닮았습니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데 이건 요리와 도는 같은 겁니다라는 의미? 게다가 이 저자, 진심이다. 그리고 당근 서술에서 이미 짐작할 수 있듯이 요리 재료는 온통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재배한 것들만 쓰인다. 오니기리 레시피가 있는데 재료가 이러하다. 자연농법으로 재배한 쌀, 천일염, 무농약으로 재배한 매실로 담근 매실장아찌. 요리법도 마찬가지다. "쌀에 소금을 약간 넣고 밥을 짓는다. 물은 정수를 사용하되, 한두 시간 햇볕에 쪼여 태양의 에너지를 받은 물을 사용하면 더욱 좋다." 이게 끝이 아니다. "요리를 마무리할 때는 양념을 넣어 간을 맞춘 후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운 빛과 함께 사랑의 향신료를 듬뿍 뿌려줄 것을 권한다." 뭐 당연한 말이겠지 먹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요리에 정성을 들이라는 말 아냐? 라고 생각하면 오산. 진짜 사랑의 향신료가 존재한다. 이 요리를 보자.

 

기적을 부르는 기쁨의 눈물 수프

 

재료 : 기쁨의 눈물, 보드카, 정제수, 좋아하는 수프.

 

요리법

1. 수프를 만든다

2. 기쁨의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린다.

 

기쁨의 눈물이 흐를 정도로 수프를 만드는 걸 기뻐하라는 소리로 이해하면 안된다. 정말로 기쁨의 눈물을 받아서 수프에 넣으라는 뜻이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 생각한다면 다음 글을 보자.

 

"수프를 만든 순간에 기쁨의 눈물이 흐르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을 경우에는 기쁨의 눈물을 미리 보관해두자. 기쁨의 눈물을 정제수로 희석하고, 방부와 살균을 위해 보드카를 조금 넣는다. 유리병에 넣고 뚜껑을 잘 여민 후 냉장고에 보관한다. 2주일 이상은 사용이 가능하다."

 

흠, 저자의 집 냉장고를 열면 정말 뜻밖의 것들이 가득하겠다. 이 책의 부제는 "행복해지기 위한 40가지 레시피"다. 채소 요리 레시피가 40가지 실려있다. 내 집 식탁에 올릴 수 있을 만한 요리도 있다. 의아하고 어리둥절한 요리도 있다. 결국 이 요리책을 쓴 저자의 깊은 뜻(이란 게 틀림없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은 내 방식으로 가감해서 받아들이면서 독서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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