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 가장 고마워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사람이다. 이렇게 말고 다르게 사는 방법도 있다는 걸, 그리고 나는 그 다른 삶을 감행할 용기가 있다는 걸 알게 해준 사람. 누군가는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지만 나는 ㄱ과의 짧은 연애 기간 동안 인생을 다 배운 듯하다. 내 인생이 풍성해질 수 있게 나를 벼려준 ㄱ, 아무 감흥도 없이 살던 내가 불에 달궈지고 두들겨지고 결국은 지금처럼 예리해졌다. ㄱ은 자신의 역할을 몰랐을 테지만.
"처음에는 저희 셋이 편하게 서술형으로 나누던 대화가 간결한 단답형으로 바뀌었고 나중엔 사지선다형으로 변했고 결국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오엑스 문제가 됐답니다." <스물아홉 장의 전당표> 오늘 아침 나는 어, 그래, 아니, 알았어, 짧은 대답을 네 번 했다. 답하지 않을 수 없어서 낸 소리일 뿐 대화라 보긴 어렵다. 대화를 해본 게 언제던가.
"평생 그 사람 얼굴 보며 살아야 되나.... 라고 생각하니 참을 수가 없어서" <심야식당 14>에 나오는 여자의 말이다. 자신을 좋아해주고 직업도 안정적인 사람이었지만 끌리진 않아서 헤어졌던 사람. 그 남자가 만들어주었던 나폴리 우동을 심야식당에 오면 주문해 먹는다. 그러다 그 남자를 다시 만나게 되고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되지만 얼마 후 잘 생긴 남자에게 프로포즈를 받고 결혼하게 된다. 사토무라 씨는 어쩌고? 라고 묻는 친구에게 여자는 말한다. 뭘 어쩌겠어. 한 달에 한 번 정도라면 나폴리 우동도 괜찮지만 매일은 좀.... 그 여자에게는 무엇보다 얼굴이 중요했던 것이다. 외모지상주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마다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조건이 있다. 아는 선배 하나는 그 조건이 키였다. 선을 수십 번 봤지만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마음이 맞아도 키가 작으면 막판에 포기하게 되더라 하면서 남자 키 뜯어먹고 살 거냐는 부모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막상 눈앞에 작은 남자가 서 있으면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거였다. 결국 선배는 키 큰 남자와 결혼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게는 입술과 뻥이었다. 심야식당의 그 여자는 아마도 결혼한 후에도 가끔은 나폴리 우동을 먹지 않을까 싶은데 매일매일 평생이 아니라면 괜찮으니 말이다.
언제부터 유행했는지 기억은 없지만 카페나 식당에서 봤다. 저거 근사한데 생각만 했지 집에 설치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인테리어 원 북>에서 거실과 베란다 사이에 설치했다는 걸 읽고는 참 적절한데 감탄했다. 이름도 여기서 처음 들었다. 폴딩 도어란다. 베란다를 없애고 그걸 거실로 만들면 넓긴 한데 문제점도 있다. 그러지 않고도 거실을 확장하는 방법으로 이만한 게 없겠다. 이책은 북유럽 스타일로 아파트를 셀프 리모델링한 과정을 담았다. 북유럽 스타일이 뭔지도 모르고 아파트를 리모델링할 일도 없고 더구나 셀프는 생각지도 못하는 나같은 사람에겐 실용서가 아니라 사진 위주의 잡지에 가깝지만 폴딩 도어 부분은 아주 꼼꼼히 읽었다. 쓸모가 없어도 관심이 저절로 가서 말이지.
팟캐스트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에서 다룬 책. 2012년 6월 19일 방송. 여름이라 납량특집으로 으스스한 이야기를 골랐다고.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오싹한 이야기는 많을 텐데 이책은 좀 촌스러운 편인데 선정되었다. 그래서 이책을 고른 게 마음에 들지 않나 하면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귀여웠다. 3년 전에 나는 이런 팟캐스트가 있다는 것을 몰랐으니 그해 여름의 더위를 김영하의 목소리로 견디는 기쁨을 누리진 못했다. 그건 아쉽다. 올해가 2012년보다 더 더운지 덜 더운지는 모르겠지만 공포특집이 필요없다는 건 분명하다. 현실로 이미 충분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