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다니던 길에 있던 고기집이 문을 닫았다. 한 석달쯤 비어있더니 어느날 가림막을 치고 공사를 한다. 가림막 한쪽에 적힌 글귀. 11월말 카페 오픈 예정. 12월초, 스산한 바람이 부는 날 지나다 보니 이미 문을 열었다. 통유리로 된 전면, 연한 갈색 원목 탁자와 의자. 환한 조명. 안은 분명 따듯하겠지만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긴다. 탁자와 의자가 썰렁해보였고 무엇보다도 모든 자리가 길가에서 훤히 들여다보였다. 나는 안락하고 포근한 의자가 좋고 (더구나 지금은 겨울이니) 숨어있는 자리를 원한다. 커피맛이야 내게 별 상관없으니(난 원두커피맛을 정밀하게 느끼는 사람이 아니다) 내 시간을 잘 채워줄 내게 맞는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거긴 내게 맞는 카페는 아니다. 자주 지나다니는 길이니 여름엔 아이스커피를 테이크아웃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요즘 같은 날씨에야 뭐. 유리 너머로 본 그 카페 주인은 아가씨처럼 보였는데 어쩌면 시집갈 밑천을 털어 가게를 열었을지도 모르겠다. 향기로운 커피향이 퍼지는 깨끗한 카페에서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걸 상상했을지도. 아니, 아니다. 한두푼 드는 것도 아닌데 설마 그리 단순한 마음이었을라고.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지는 않는 길이라 장사가 그다지 잘될 것 같지는 않은 염려를 하면서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닌데도 괜히 촉촉한 눈길을 보내게 된다. 드러내서는 안될 오지랖이라 마음으로만.
"오래 준비하고 큰돈을 들여 카페를 열었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포기하는 모습을 수없이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손님이 내 카페에 앉아있는 모습이 남들에게 괜찮아 보일 것, 숨어서 쉴 수 있도록 밖에서 잘 드러나지 않을 것, 게을러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할 것, 환대를 받는 듯한 편안함이 느껴질 것."
"제아무리 테크닉이 출중한 바리스타라 해도 원두가 가진 맛과 향을 온전히 뽑아내는 것 이상을할 수는 없습니다. 테크닉의 차이는 그저 종이 한 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위생과 청결을 유지하지 못하면 최고의 바리스타라도 품질이 떨어지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결국엔 경쟁력이란 위생과 청결 같은 기본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중략) 기본을 지켜내지 못하는 곳이 수없이 많을 때 '탄탄한 기본기를 가진 카페'라는 것은 무한한 경쟁력을 가집니다. 제가 이 책을 통해 나누고 싶었던 것도 '더 잘하는 방법'이라기보다는 '기본을 지키는 방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