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안읽고 안보면 이상한 듯 대유행이다. 나도 읽고 보았다. 몇 화였던가. 누군가에게 바둑 만환데 재미나더만이라는 말을 듣고 보기 시작. 첫화부터 찾아보고  다음부터는 날짜를 꼽아가며 기다렸다. 웹툰이 끝나고 책으로 나왔을 때도 찾아봤다. 그리고 요즘은 드라마를 보고 있다. 본방을 챙기진 않아도 그 시간에 테레비 앞에 앉게 되면 딴 채널 안 돌리고 미생 본다. 어제 봤다. 어제 오차장이 그랬다. 살다 보면 끝을 알지만 시작하는 것도 많아. 그럼요, 오차장님. 짧고 우스웠던 그해 여름의 내 연애도 그랬을까. 절대로 달라질 수 없는 끝을 나도 알고 상대도 알았다. 그 끝장에 불만도 없고. 그래도 시작하고 싶었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시작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시작과 끝 사이에 있는 그 시간들. 누려야 할 때 제대로 누리지 못해서 누추하기 그지없었던 내 젊은 시절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 무모하리만치 몰두햇고 끝장을 향해 달렸다. 끝장의 모양새는 우스웠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오차장 말의 속뜻은 이게 아니었을지라도 그 대사에 나는 다른 반응을 보일 수는 없었다. 각자 듣고 싶은 쪽으로 듣고 나름으로 상상하는 거지.

 

그리고 하나 더. 오차장의 그 대사를 들으면서 고마웠다. 끝을 발음을 제대로 해주셔서. 끄슬이나 끄츨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이 많은데 끄틀이 정확한 발음이다. 꽃이, 빚이, 빚을, 햇볕이, 이런 걸 제대로 발음하는 걸 보기 어렵다. 김희애가 하는 광고에 항산화 관리라는 단어가 있는데 화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 게 볼 때마다 신경쓰이는 걸 보면 나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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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뛰며 하나하나 실마리를 풀어가는 추리소설, 좋다. 사고를 조금씩 확장해가며 하나하나 실마리를 풀어가는 추리소설, 마찬가지로 좋다. 사실, 이 둘은 같은 거다. 사고를 확장하여 뭔가를 추리한 다음 발로 뛰어 그걸 확인하는 거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이책은 병원에 꼼짝 못하고 누운 경찰이 주인공이라 발로 뛰는 역할을 해줄 사람이 추가되었다. 둘의 조합, 좋았다. 그 사건으로 누가 득을 보는가. 진실은 소문이 아니라 회계 장부에 있다. 그 순간에 그들은 무엇을 했는가. 말보다는 행동. 페이지가 줄어가는 게 아까울 만큼 재미있었다. 리처드 3세가 누구인지 몰랐고 장미 전쟁도 이름만 알고 있었으니 읽고 싶은 책이 더 생긴 건 말할 것도 없다. <리처드 3세>라는 세익스피어 희곡을 읽었고(서로 싸우기만 하는 내용이군 싶었다. 잔인하기 그지없는 악당으로 리처드 3세를 묘사했고) 영국 역사를 적은 책을 몇 권 뒤적였는데 리처드 3세 언급은 세익스피어 희곡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두 왕자를 살해한 사람으로 리처드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라고 하고 헨리 7세일 가능성도 남겨두기도 했다. <시간의 딸>과 비슷한 구조로 되어있는 추리소설이 몇 권 언급되어 있어서 읽어보기로 한다. <빙과>, <옥스퍼드 운하 살인 사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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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성장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세요?

스스로를 낮게 생각하게 되었고요. 그렇기 때문에 좋았던 것은 뭐냐하면, 조금만 잘해주면 만족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죠. 사소한 친절에 과잉으로 은혜를 갚거나 이런 거. 인정에 굶주린 것도 아버지 영향이에요.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자 글을 열심히 쓰게 되었으니, 감사할 점도 있는 거죠."

 

"대표적인 게 콜레스테롤이죠. 물론 좋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 몸에 필요한 성분이고 비타민 D 합성의 원료이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콜레스테롤을 악의 축으로 만들면 콜레스테롤 낮추는 약을 팔아먹어서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지요. 화이자라는 제약 회사가 이 약으로 우리나라 국가 예산에 해당하는 돈을 매년 벌어요. 그런데 이 콜레스테롤 약이 나와서 심장병이 줄어들었느냐, 잘 모르겠더라고요. 콜레스테롤 약이 많이 팔리는데, 심장 질환으로 죽는 사람이 줄지 않는 것 같은데요. 실제로 심장병으로 죽는 사람들 중 해로운 콜레스테롤이 높은 사람이 별로 없었다는 통계도 있어요."

 

텔레비전에도 출연하고 신문에 칼럼도 쓰고 대학교수로 근무하고 개를 키우고 아내와 자식을 낳지 않기로 합의하고 기생충 박물관을 만들 꿈을 갖고 사는 사람. 꼭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읽어보고 난 다음에는 시간 낭비는 아니었다 괜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 속에 <의사는 수술 받지 않는다>가 언급되어 있었지만 이미 읽은 것이었고 콜레스테롤에 대해 더 읽어보고 싶어서 <콜레스테롤은 살인자가 아니다>를 읽었다. 내 건강검진을 담당한 의사는 200 이상이면 약을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책의 저자는 수치를 얘기하진 않았다. 수치 따위는 상관없다는 뜻일까. 콜레스테롤은 살인자가 아니라고 높아도 상관없다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약은 오히려 부작용이 있다고 말한다. 이 사람 의견에 따르면 전문가 집단인 제약회사와 의사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인데 판단을 내릴 전문적 지식이 전혀 없는 나같은 소비자는 혼란스러울 뿐이다. 결국 어느 쪽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말. 평소 내가 믿는 대로 평소 내가 살고 싶은 대로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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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다니던 길에 있던 고기집이 문을 닫았다. 한 석달쯤 비어있더니 어느날 가림막을 치고 공사를 한다. 가림막 한쪽에 적힌 글귀. 11월말 카페 오픈 예정. 12월초, 스산한 바람이 부는 날 지나다 보니 이미 문을 열었다. 통유리로 된 전면, 연한 갈색 원목 탁자와 의자. 환한 조명. 안은 분명 따듯하겠지만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긴다. 탁자와 의자가 썰렁해보였고 무엇보다도 모든 자리가 길가에서 훤히 들여다보였다. 나는 안락하고 포근한 의자가 좋고 (더구나 지금은 겨울이니) 숨어있는 자리를 원한다. 커피맛이야 내게 별 상관없으니(난 원두커피맛을 정밀하게 느끼는 사람이 아니다) 내 시간을 잘 채워줄 내게 맞는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거긴 내게 맞는 카페는 아니다. 자주 지나다니는 길이니 여름엔 아이스커피를 테이크아웃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요즘 같은 날씨에야 뭐. 유리 너머로 본 그 카페 주인은 아가씨처럼 보였는데 어쩌면 시집갈 밑천을 털어 가게를 열었을지도 모르겠다. 향기로운 커피향이 퍼지는 깨끗한 카페에서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걸 상상했을지도. 아니, 아니다. 한두푼 드는 것도 아닌데 설마 그리 단순한 마음이었을라고.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지는 않는 길이라 장사가 그다지 잘될 것 같지는 않은 염려를 하면서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닌데도 괜히 촉촉한 눈길을 보내게 된다. 드러내서는 안될 오지랖이라 마음으로만.

 

"오래 준비하고 큰돈을 들여 카페를 열었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포기하는 모습을 수없이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손님이 내 카페에 앉아있는 모습이 남들에게 괜찮아 보일 것, 숨어서 쉴 수 있도록 밖에서 잘 드러나지 않을 것, 게을러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할 것, 환대를 받는 듯한 편안함이 느껴질 것."

 

"제아무리 테크닉이 출중한 바리스타라 해도 원두가 가진 맛과 향을 온전히 뽑아내는 것 이상을할 수는 없습니다. 테크닉의 차이는 그저 종이 한 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위생과 청결을 유지하지 못하면 최고의 바리스타라도 품질이 떨어지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결국엔 경쟁력이란 위생과 청결 같은 기본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중략) 기본을 지켜내지 못하는 곳이 수없이 많을 때 '탄탄한 기본기를 가진 카페'라는 것은 무한한 경쟁력을 가집니다. 제가 이 책을 통해 나누고 싶었던 것도 '더 잘하는 방법'이라기보다는 '기본을 지키는 방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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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에 실린 강준만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무려 강준만인데다가 인터뷰어가 정희진이다. 고립과 중독이라. 그 수많은 저작의 원천. 그의 삶의 방식이기도 하겠다.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숲의 여러갈래 길 중의 하나. 자박자박 따라 걸어보고 싶은 길. 우습게도 밑줄 그은 부분은 이거였다. "저는 세상 이치가 다 어찌 보면 우연과 운의 산물이라고 봐요. 이렇게 생각하면 상처도 덜하고 사람이 겸손해지죠. 크게 아웅다웅할 것이 없어요."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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