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하고 외로운 우리는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소설.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을 간절히 원하지만 한번도 가지지 못했던 남자. 그 불안한 심리가 흔들흔들 비틀비틀 뚝뚝 끊어지듯 전개되고, 악행은 자잘한 괴롭힘에서 시작하여 살인까지 이어진다. 읽고 있으면 뒤숭숭하고 머리가 아파오고 혼란스럽다. 릭토르는 분명 사이코패스처럼 보이는데 그래도 이놈은 인간도 아니야 하면서 완전 배제하기에는 꺼림칙한 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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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이 나쁜 놈, 그 모든 악행의 끄트머리에서 네가, 누군가를 위해 나쁘지 않은 행동 하나 겨우 했다고 해서 "나도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더냐. 그렇게 소설을 마무리해도 괜찮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올리버는 여전히 나쁜 놈이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나쁜 놈으로 태어나진 않았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나. 백퍼센트는 아닐지라도 구십오퍼센트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있다. 어떻게 그렇게 잔인하게 굴었을까. 어린 시절은 몰라도 어른이 되면 벗어날 수 있지 않나 툴툴 털어버리고 제 인생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나 말할 수도 있지만 올리버 같은 대우를 받으며 자란 사람이 과연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몸은 자라지만 정신은 아이에 머무르기 쉽다. 저지른 모든 범죄가 밝혀지고 난 뒤 올리버는 무시무시한 괴물로 취급받지만, 가만 들여다보자. 과연 올리버는 완전한 타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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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으로 번역자로 산 최승자. 산문집은 딱 두 권이다.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와 <어떤 나무들은>. 작가의 일상적인 모습을 알고 싶다면 <어떤 나무들은>을 읽는 것이 좋다. 1994년 8월 말경부터 95년 1월 중순경까지 미국 아이오와 대학에서 주최하는 International Writing Program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여 머무는 동안 쓴 글. 말 그대로 일기다.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주체할 수 없이 풀어진 글.

 

작가이기 때문에 말하게 되는 내용도 있고,

 

"오늘의 국제문학 시간의 주제는 '나는 왜 쓰는가, 나는 무엇을 쓰는가'라는 거였는데, 나는 정말로 이런 유의 질문을 싫어한다. 나는 왜 쓰지도 않고 나는 무엇을 쓰지도 않는다. 나는 나를 쓸 뿐이다. 그게 왜가 되고 그게 무엇이 된다면 좋고 안돼도 할 수 없다. 아무튼 이런 질문들은 나를 귀찮게 만든다. 내가 원고에서 쓴 요지는 나는 이런 질문을 이미 살아넘긴(survive) 한 사람이다. 한국에서도 이미 이런 질문을 넌더리나게 들어왔는데 왜 여기서도 내가 이런 질문에 마주쳐야 하는가로 시작해서, 나의 체험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내가 쓰고 싶어서 쓸 때 거기에 이미 왜와 무엇이 다 포함되어 있다는 얘기를 했다."

 

개인적인 성향 얘기도 있고,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계속 얼굴에 웃음을 띠고서 하이, 헬로우 하고 돌아다니려니 얼굴에 탈바가지를 쓰고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인사하는 습관이 붙질 않아서 인사를 할 때마다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때는 상대방이 저만큼 가버린 후에서야 아참 내 쪽에서는 인사를 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다. 아무튼 이 미소 탈바가지가 내게는 무지무지 무겁게 느껴진다."

 

"나는 이 여자가 너무나 애기처럼 재재거리고 무슨 투정하는 것처럼 말하고 항상 남에게 뭘 해 달라고 하기 때문에 싫다. 나는 어떻게 그렇게 상대방의 얼굴 표정이랄까 말투에서 그런 걸 못 느낄 수 있는지 참 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도 약 3천불의 여행 경비가 할당되어 있다는 걸 알지만 나는 한번도 여행을 하지 않았다. 한번도 아이오와를 뜨지 않은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움직이는 걸 싫어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다. 돌아다니는 걸 귀찮아하는 사람이니까. 방에 틀어박혀 누워서 공상인지 망상인지 온갖 것들을 생각하는 시간이 내게는 제일 편안하고 또 제일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는 구경에는 아무런 흥미도 없고 돌아다니는 일에는 아무런 흥미도 없다. 나는 언제나 나 자신으로 꽉차 있어서 나 외부의 것에는 흥미를 느낄 여유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를 꽉채우고 있는 그 나 자신은 죽음처럼 송장처럼 내 내부에 누워있기만 한다. 이 내 내부의 송장을 어서 치워버리지 않으면 나는 언제나 이 모양 이 꼴로 살아야 할 것이다. 일어나 문을 열고 나로부터 나가 다오."

 

"쇼핑에서 내가 제일 먼저 산 것은 인스턴트 커피였다. 여기 사람들은 대개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지 않고 브류드 커피를 마시는데, 나는 그 커피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가 없다. 너무도 밍밍해서 커피가 아니라 숭늉 같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내가 너무도 심하게 커피를 마신다고 핀잔을 주기 때문에 나는 늘 커피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정말로 나처럼 커피를 진하게 (머그 한 잔에 여섯일곱 스푼의 커피를 넣는 것을 보고 쇼나는 질색을 해댔다), 많이 마시는 사람은 드물 것이고, 나 자신도 나보다 더 진하게 더 많이 마시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일기라는 특성상 정제된 글은 아니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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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을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이다. 사건이 일어난 후 탐정이나 형사가 등장해서 누가 범인인지를 밝혀나가는 식이 아니다. 누가 왜 어떤 순서로 어떤 방법으로 범죄를 저지르는지를 자세히 알려준다. 그러니 독자는 추리력을 발휘할 필요는 없다. 독자에게서 추리의 재미를 빼앗은 소설인 거다. 그럼에도 재미있으려면 뭘 잘 드러내고 어떤 식으로 전개해야 할까. 이책의 경우는 인물의 심리묘사가 핵심이다. 비클리 박사가 왜 아내를 죽이고 싶어했는지, 그 이후의 살인은 왜 계획했는지, 재판을 받는 도중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인물이 나쁜 놈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뒤로 갈수록 비클리가 점점 이랬다저랬다 하는 면이 보이고 완전범죄 어쩌고 하는 책소개에 맞지 않게 계획이 어설프긴 하지만 현대범죄하고는 치밀성이 다르므로 전반적으론 재미있다.

 

내가 집중했던 인물은 마들레인이었는데, 누군가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아, 그래 맞아. 이런 식이었어. 그사람의 말, 행동.  "균형잡히지 않은 정신의 소유자." 그래, 이런 표현이 맞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자기 기만. 거짓말을 술술 하면서 남을 속이는데 그게 의도적인 게 아니라 그냥 그리 되는 것. 스스로도 그리 믿는 것. "그녀는 믿기 어려우리만큼 자기 본위적이었다. 어떤 화제이든 일반적인 문제로 머무르는 것은 겨우 처음 한동안뿐이었다. 마들레인은 자기와 관련시켜서 모든 것을 보았다. 예를 들어 자동차 이야기가 나와 데니스와 채트포드가 두 종류 자동차의 우열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하자 마들레인은 옆에서 말참견을 하며, 자기는 놀랄 만큼 운전을 잘한다느니, 냉정함과 침착성으로 어떤 무서운 사고를 용케 피할 수 있었다느니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또한 런던에서 상연되는 최근의 연극이 화제에 오르자 마들레인은 대뜸 자기가 만나본 적이 있는 유명한 여배우의 일화를 꺼냈다. 그때 모두들 입을 모아 자기에게 무대에 오를 것을 권하며 당장이라도 주연여배우로 계약하자고 제의했으나, 열심히 하고 있는 - 연기가 신통치 않은 - 여배우의 일자리를 빼앗을 수는 없다고 거절하자 거의 울상이 되더라는 등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누가 무슨 말을 하기만 하면 마들레인은 반드시 그것과 똑같은 일을 자기가 훨씬 더 잘한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었다."  시대와 국경을 넘어 내 앞에 존재하는 마들레인. 소설 속 인물로가 아니라 진짜 내 앞에 존재하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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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난 다음 포스트잇이 붙여진 부분을 다시 넘겨본다. 여덟 군데. 붙이려 하다가 그만두기도 여러번 했었으니 내용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괜찮았다. 공감가기도 했고. 자신의 약점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더라. "나 이렇게 찌질하게 산다고 광고해서 뭐하자는 건가. 실패로 점철된 연애사 같은 걸 털어놔서 어쩌자는 건가." 라고 적긴 하지만, 그게 독자와의 공감을 높이는 방법이라 생각했을 거다. 우아하고 폼나게 살면서 하는 연애마다 성공의 연속이었다고 썼다면 그런 재수없는 책을 뭐하러 보겠는가 말이다. "나의 상처란 게 다른 이들에 비해 더 아프다고도 특별하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그것을 털어놓는 일로 과연 치유가 될지 어떨지도 알 수 없다. 단지 나 자신과, 나와 비슷한 고민 때문에 밤잠을 설친 적이 있는 분들께 그저 작은 응원쯤은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우리를 위로하는 듯이 말하는데 글쎄... 응원이라기보다 내게는 그냥 누군가의 사는 이야기를 듣고 그래, 너도 그렇게 사는구나, 그래, 그 정도였다. 마지막은 좋았다. "좋아하는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시간, 나만 아는 기쁨을 점점 늘려가는 삶. 그것만으로도 썩 괜찮아 보인다. 그것들이 분명 어쩌다 어른이 된 나와, 그리고 당신에게, 돌연한 슬픔과 맞서는 두둑한 맷집이 되어주리라 믿으며, 그렇게 삶은 계속된다." 계속되는 내 시간에 작가의 도움을 받아 추가할 것 하나. 책을 읽으면서 만화책 제목들을 여러개 적어두었다. 어느 느슨한 날 검은비닐봉지 가득 빌려와 읽어볼 참이다. 그렇게 내 삶은 소모되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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