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을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이다. 사건이 일어난 후 탐정이나 형사가 등장해서 누가 범인인지를 밝혀나가는 식이 아니다. 누가 왜 어떤 순서로 어떤 방법으로 범죄를 저지르는지를 자세히 알려준다. 그러니 독자는 추리력을 발휘할 필요는 없다. 독자에게서 추리의 재미를 빼앗은 소설인 거다. 그럼에도 재미있으려면 뭘 잘 드러내고 어떤 식으로 전개해야 할까. 이책의 경우는 인물의 심리묘사가 핵심이다. 비클리 박사가 왜 아내를 죽이고 싶어했는지, 그 이후의 살인은 왜 계획했는지, 재판을 받는 도중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인물이 나쁜 놈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뒤로 갈수록 비클리가 점점 이랬다저랬다 하는 면이 보이고 완전범죄 어쩌고 하는 책소개에 맞지 않게 계획이 어설프긴 하지만 현대범죄하고는 치밀성이 다르므로 전반적으론 재미있다.

 

내가 집중했던 인물은 마들레인이었는데, 누군가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아, 그래 맞아. 이런 식이었어. 그사람의 말, 행동.  "균형잡히지 않은 정신의 소유자." 그래, 이런 표현이 맞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자기 기만. 거짓말을 술술 하면서 남을 속이는데 그게 의도적인 게 아니라 그냥 그리 되는 것. 스스로도 그리 믿는 것. "그녀는 믿기 어려우리만큼 자기 본위적이었다. 어떤 화제이든 일반적인 문제로 머무르는 것은 겨우 처음 한동안뿐이었다. 마들레인은 자기와 관련시켜서 모든 것을 보았다. 예를 들어 자동차 이야기가 나와 데니스와 채트포드가 두 종류 자동차의 우열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하자 마들레인은 옆에서 말참견을 하며, 자기는 놀랄 만큼 운전을 잘한다느니, 냉정함과 침착성으로 어떤 무서운 사고를 용케 피할 수 있었다느니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또한 런던에서 상연되는 최근의 연극이 화제에 오르자 마들레인은 대뜸 자기가 만나본 적이 있는 유명한 여배우의 일화를 꺼냈다. 그때 모두들 입을 모아 자기에게 무대에 오를 것을 권하며 당장이라도 주연여배우로 계약하자고 제의했으나, 열심히 하고 있는 - 연기가 신통치 않은 - 여배우의 일자리를 빼앗을 수는 없다고 거절하자 거의 울상이 되더라는 등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누가 무슨 말을 하기만 하면 마들레인은 반드시 그것과 똑같은 일을 자기가 훨씬 더 잘한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었다."  시대와 국경을 넘어 내 앞에 존재하는 마들레인. 소설 속 인물로가 아니라 진짜 내 앞에 존재하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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