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적 완성이라든가 문학적 가치를 밀쳐두고 오로지 내 감각으로만 볼 때 참 좋은 책이다. 사회 문제를 고발하는 기능도 있고 다양한 인간군상을 더듬어보게도 한다. 나는, 그냥 범죄소설로 읽었다. 연쇄살인범 얘기. 살인범, 정신과의사, 변호사. 세 사람의 시선으로 서술해서 제목이 <시선>이 되었을 수 있고, 동남아 혼혈아 넓게는 나와 (겉모습 혹은 핏줄이) 다른 사람을 보는 시선 문제를 얘기하고 싶었을 수도 있겠다. 내용은 불편하지만 전개는 매끄러워서 잘 읽힌다. <완득이>와 비슷하지만 결말은 전혀 훈훈하지 않다. 완득이는 소설 같은 느낌이지만 이책은 르뽀 같다. 난, 시선 편이다. 다 읽고 난 뒤 접은 부분을 훑어보니 모두 정신과의사가 서술한 부분이다. 나, 뭐냐.
사람들은 특정 단체나 무리에 속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어떤 집단에 속한다는 것은 정체성과 안정감을 준다. 정상적인 성장과정을 거친 사람이라면 10대 후반에 집단에서 정체성을 찾는 것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게 된다. 그런데 정서 발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집단에서 정체성을 찾으려고 한다. 정상적인 발달 과정을 거치지 못한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사회경제적으로 낮은 지위에 속할 수밖에 없다. 결국 그들이 내세울 것은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민족, 지역 따위나 내 앞의 백발 노인처럼 누구나 다 가는 군대뿐이다.
오감 중에 정보량이 가장 많은 것은 시각이지만,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후각이다. 코에서 시작되는 후각기관은 후각로를 따라 편도체로 들어가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에서 끝이 난다. 따라서 후각은 기억과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되고 그 결과 가장 오래 기억된다. 그래서 사람에게 "가장 오래된 기억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냄새를 떠올린다면, 그는 적어도 진실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