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스트, 화가, 농원주인, 와이너리 오너, 카페주인이라고 책날개에 소개되어 있다. 이 부부의 생활 참 근사하구나라고 감탄하고 부러워하면서 구경하면 좋을 책. 나도 이사람처럼 전원생활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시도해보려 하면 자본이 아주 넉넉해야 한다. 직접 지었다는 (육체적으로 직접이 아니다) 주택은 평범한 농가가 아니라 저택이다. 어떤 집이어야 하는지 건축가에게 설명한 부분. "일본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영국인이 은퇴하고 북이탈리아나 남프랑스에 지은 빌라의 이미지로 새로 완성되었을 때 이미 10년은 지난 것 같이 보이는 집, 그리고 20년이 지났을 때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집." 완성된 집이 이 설명과 맞아떨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아보이는 건 분명하다. 그중에서도 부엌이 집의 중심이란 점에서 내 취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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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6개월동안 하루에 한두 시간씩 걷는다. 꼬박꼬박이라고 말할 순 없다. 몸에 밴 게으름이 어디 가진 않으니 일주일에 두어 번쯤 빼먹는다. 나름 선전이다. 잘 정비된 개천 옆길도 걷고 가로수 좋은 거리도 걷고 낮은 산도 오르락내리락한다. 요 며칠은 벚꽃이 흩날리는 가로수 아래를 걷고 있다. 상투적이지만 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 꽃잎이 눈처럼 날린다. 파르르 날리는 하얀 꽃잎속으로 시간이 팔랑팔랑 지나간다. 자주 걷다보면 눈에 익은 사람들이 보인다. 나이든 사람들이 많다. 알록달록한 아웃도어를 입고 자그만한 등산가방 하나 메고 모자도 쓰고. 예전엔 부지런히 걷는 나이든 사람을 보면 건강에 신경을 많이 쓰는군하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외로운거군 생각한다. 건강에 특별히 신경쓰지도 않고 외롭지 않은 사람도 걷는다. 안다. 그렇게 보는 건 내가 그렇기 때문이다. 주체해야 할 시간은 많은데 그 시간을 메꿀 수 있는 일이 없고 비어있는 시간을 물끄러미 보는 일이 외롭기 때문에 자주 걷는다. 그러면 뭐라도 하지 그러냐 한다면 이유를 말하기는 싫다. 이재무 시인의 시집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를 읽다가 "하루에 두 시간 한강변 걷는 것을 생활의 지표로 / 삼은 것도 건강 때문만은 아니다 한 시대 내인생의 나침반이었던 / 위대한 스승께서 사소하고 하찮은 외로움 때문에 / 자신이 아프게 걸어온 생을 스스로 부정한 것을 목도한 이후 / 나는 걷는 일에 더욱 열중하였다 외로움은 만인의 병 한가로우면 / 타락을 꿈꾸는 정신 발광하는 짐승을 몸 안에 가둬 / 순치시키기 위해 나는 오늘도 한강에 나가 걷는 일에 몰두한다 / 내 일상의 종교는 걷는 일이다" (내 일상의 종교)라는 부분에 밑줄을 그으면서 생각했다. 걷는 일은 몸보다 마음 때문일 경우가 더 많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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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적 완성이라든가 문학적 가치를 밀쳐두고 오로지 내 감각으로만 볼 때 참 좋은 책이다. 사회 문제를 고발하는 기능도 있고 다양한 인간군상을 더듬어보게도 한다. 나는, 그냥 범죄소설로 읽었다. 연쇄살인범 얘기. 살인범, 정신과의사, 변호사. 세 사람의 시선으로 서술해서 제목이 <시선>이 되었을 수 있고, 동남아 혼혈아 넓게는 나와 (겉모습 혹은 핏줄이) 다른 사람을 보는 시선 문제를 얘기하고 싶었을 수도 있겠다. 내용은 불편하지만 전개는 매끄러워서 잘 읽힌다. <완득이>와 비슷하지만 결말은 전혀 훈훈하지 않다. 완득이는 소설 같은 느낌이지만 이책은 르뽀 같다. 난, 시선 편이다. 다 읽고 난 뒤 접은 부분을 훑어보니 모두 정신과의사가 서술한 부분이다. 나, 뭐냐.

 

사람들은 특정 단체나 무리에 속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어떤 집단에 속한다는 것은 정체성과 안정감을 준다. 정상적인 성장과정을 거친 사람이라면 10대 후반에 집단에서 정체성을 찾는 것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게 된다. 그런데 정서 발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집단에서 정체성을 찾으려고 한다. 정상적인 발달 과정을 거치지 못한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사회경제적으로 낮은 지위에 속할 수밖에 없다. 결국 그들이 내세울 것은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민족, 지역 따위나 내 앞의 백발 노인처럼 누구나 다 가는 군대뿐이다.

 

오감 중에 정보량이 가장 많은 것은 시각이지만,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후각이다. 코에서 시작되는 후각기관은 후각로를 따라 편도체로 들어가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에서 끝이 난다. 따라서 후각은 기억과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되고 그 결과 가장 오래 기억된다. 그래서 사람에게 "가장 오래된 기억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냄새를 떠올린다면, 그는 적어도 진실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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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 붐에 편승해서 이사람 책을 다 읽었다. 이번에 읽은 건 <하기 힘든 말> 맨 먼저 든 생각은 내가 이사람 책을 너무 많이 읽었구나였고 두번째는 번역자가 고생했겠구나였다. 뭐 그렇게까지 하기 힘든 말인가 싶은 게 많았는데 그건 어쩌면 문화적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게 말야 싶었던 건 "망설이고 있어요. 언제부터 내 얼굴에 주름을 그려넣어야 할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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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뭔 소린지 원 싶다가 좀더 집중해서 읽으면 내속으로 쑥 들어올거야 기대하다가 읽어도 읽어도 머리 바깥에서 빙빙 돌 때는 책장을 훌훌 넘기게 된다. 어서어서 지나가라. 가끔은 책속 인물 중 하나가 되어서 허우적거리는 바람에 책속 세계에 빠져나오기 어려울 때도 있다. 차가운 내 현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하지만 가장 내 마음에 드는 독서는 책과 내가 팽팽한 거리를 유지할 때다. 마치 원심력이 작용하는 것만 같다. 도망가려 하지만 튼튼한 끈에 묶여 있으며 외면하려 하지만 시선은 중심을 향해 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가 아니다. 나는 보고 듣는 자다. <자전소설>이라는 책에 실린 김숨의 <럭키슈퍼>가 그랬다. 아빠 이마에는 유통기한이 박혀있는데 그 날짜는 이미 지났다. 십년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백수가 되었으니까. 그러나 럭키슈퍼에는 유통기한이 지난 상품이 종종 팔리고 그 상품을 사먹은 사람이 멀쩡하기도 하다. 물론 벌레가 들끓는 생태처럼 분명히 팔지 말아야 할 물건인 경우는 욕을 먹으면서 환불해줘야 하지만. 어느날 엄마는 소주 마시고 티브이만 보는 아빠를 팔기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지금 박힌 유통기한을 지우고 새로 새겨넣어야 한다. 그러면 제값을 받고 팔 수 있을 거라면서 엄마는 바늘을 든다. 화자인 나와 엄마와 아빠, 오빠, 동생이 잘 보인다. 내 눈은 아주 활짝 열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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