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뭔 소린지 원 싶다가 좀더 집중해서 읽으면 내속으로 쑥 들어올거야 기대하다가 읽어도 읽어도 머리 바깥에서 빙빙 돌 때는 책장을 훌훌 넘기게 된다. 어서어서 지나가라. 가끔은 책속 인물 중 하나가 되어서 허우적거리는 바람에 책속 세계에 빠져나오기 어려울 때도 있다. 차가운 내 현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하지만 가장 내 마음에 드는 독서는 책과 내가 팽팽한 거리를 유지할 때다. 마치 원심력이 작용하는 것만 같다. 도망가려 하지만 튼튼한 끈에 묶여 있으며 외면하려 하지만 시선은 중심을 향해 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가 아니다. 나는 보고 듣는 자다. <자전소설>이라는 책에 실린 김숨의 <럭키슈퍼>가 그랬다. 아빠 이마에는 유통기한이 박혀있는데 그 날짜는 이미 지났다. 십년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백수가 되었으니까. 그러나 럭키슈퍼에는 유통기한이 지난 상품이 종종 팔리고 그 상품을 사먹은 사람이 멀쩡하기도 하다. 물론 벌레가 들끓는 생태처럼 분명히 팔지 말아야 할 물건인 경우는 욕을 먹으면서 환불해줘야 하지만. 어느날 엄마는 소주 마시고 티브이만 보는 아빠를 팔기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지금 박힌 유통기한을 지우고 새로 새겨넣어야 한다. 그러면 제값을 받고 팔 수 있을 거라면서 엄마는 바늘을 든다. 화자인 나와 엄마와 아빠, 오빠, 동생이 잘 보인다. 내 눈은 아주 활짝 열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