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힘에는 지배당하는 사람에 대한 감지하기 어려운 미세한 경멸이 스며있다. 예속당하는 자를 인식하고 이해하여 아주 능숙하게 경멸할 때에만 인간의 영혼을 지배할 수 있는 법이다."

 

"그들은 이 만남이 자신들을 죽을 때까지 옭아매리라는 것을 첫순간에 이미 알았다."

 

"일생동안 준비를 하는 것이 있다. 처음에는 당황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복수를 계획한다. 그리고 기다린다. 그는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당황이 언제 복수심과 기다림으로 바뀌었는지 그 자신도 알지 못했다."

 

"나도 살아있고, 크리스티나도 한동안은 다른 도리가 없기 때문에 살아있지. 그녀는 기다릴 수밖에 없네. 그녀와 하나로 묶여있지만 그녀를 피해간 두 남자, 자네와 내가 끝까지 입을 다물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그녀는 기다려야 하네. 그녀는 이 침묵의 진실한 의미를 인식하고 알아내기 위해서 기다리지. 그리고는 세상을 떠나네. 그러나 나는 이곳에 남아서 모든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것이 있네. 이제 내 물음에 답변을 들을 순간이 왔네. 자, 대답해주게."

 

"어느 날 우리의 심장, 영혼, 육신을 뚫고 들어와서 꺼질 줄 모르고 영원히 불타오르는 정열에 우리 삶이 의미가 있다고 자네도 생각하나? 무슨 일이 일어날지라도? 그것을 체험했다면, 우리는 헛산 것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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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신선이라는 자는 책을 파는 아쾌로 붉은 수염에 우스갯소리를 잘하였는데, 눈에는 번쩍번쩍 신광이 있었다. 모든 구류, 백가의 서책에 대해 문목과 의례를 모르는 것이 없어, 술술 이야기하는 품이 마치 박아한 군자와 같았다. 그러나 욕심이 많아 고아나 과부의 집에 소장되어 있는 서책을 싼 값에 사들여 팔 때에는 배로 받았다. 그러므로 책을 판 사람들이 모두 언짢게 생각하였다."<책쾌 송신용>에서 인용하고 있는 책쾌 조생(조신선)에 대한 역사기록이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책장수 조생은 고아나 과부 같은, 생계가 곤란해 책을 파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아주 싼값에 책을 사들여선 팔 때는 두세 배도 훨씬 넘는 값을 받는, 좋지 못한 짓거리를 한다는 거야. 탐욕스럽기 이를 데 없는 책장수라나."

"대체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대체 어떤, 혹 짐작 가는 사람 없어요?"

<책쾌>는 조생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로, 소문은 사실이 아니며 다른 책장수가 조생에게 덮어씌운 일이라고 서술한다.

 

소설은 역사적 기록과 다르니 캐릭터를 어떻게 잡아서 서술하건 뭐라 할 바는 아니지만, 조생이 세속적 욕심이 전혀 없는 신선같은 인물로 그려져서 오히려 아쉬웠다. 바람처럼 사라진다거나, 나이를 먹지 않는 것 같은 능력, 홑겹 삼베옷 품속에서 수십 권의 책이나오는 마술같은 상황 같은 걸로 뭘 드러내고 싶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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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자식만을 위해 살지 말 일이다. 자식 또한 마찬가지. 보답을 요구하는 헌신과 희생은 거래와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공짜는 없다. 핏줄이 그러할진대 타인과의 인간관계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건너편 섬>이라는 책에 "서른네 살, 시작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나이 같았다. 그 여자의 나이는 자기 인생에게 있지 않고 자식 앞으로 다달이 들어가는 적금 같았다."라는 부분이 나온다. 적금이라....그것도 자식 앞으로 들어가는 적금.... 결국 이 여자는 그 적금이 만기되어서 목돈이 되는 기쁨을 누리고자 할 것이다. 성공해서 어머니 호강시켜드릴게요라는 아들의 말을 진심으로 믿고 기대하리라. 저 하나 잘 살면..... 이 말을 기도처럼 생각했다지만 아파트를 장만하면서 언젠가는 혼자 이곳에 남겨질 거라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니. 생각했어야지. 받아들여야지. "짐승들, 새들은 모두 새끼를 키워서 떠나보냈다. 자식을 품에서 놓지 않으려 하는 건 사람뿐이다."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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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좋아하고 싶었다. 술자리에 어울리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인간관계가 원만해질 건가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안주는 좋지만 술은 좋지 않았다. 소주건 와인이건 맥주건 모두 쓰고 떫기만 해서 도저히 친해질 수가 없었다. <취하는 책>을 읽으면서 내가 왜 술을 마시지 못하는지 왜 싫어하는지 알게 되었다. 몸이 그렇게 생겨먹은 거다. 술이 받지 않는 이유 하나. 알데하이드 탈수효소 활성도가 낮아서.(술을 분해하는 능력이 떨어진단다) 그리고 또하나는 미각이란다. 미각 중에서 쓴맛을 잘 느끼는 미각수용체 유전자가 있는데 이것이 예민한 사람은 술이 쓰게 느껴지고 무딘 사람은 술의 쓰고 떫고 자극적인 맛보다는 달콤하고 시원한 맛을 주로 느낀단다. 그러니 주량에 차이가 날밖에. 생김새나 키나 두뇌처럼 술도 유전적 요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니 마음에 들지 않아도 깔끔하게 포기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을 터. 미련을 두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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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속 인물은 작가일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시속 인물은 시인일 것 같다. "다 늦은 저녁 먹다 남은 된장찌개 다시 데워 / 아이와 먹는 중이라며 옛 애인에게서 문자가 왔다 / 한 시절 콧날 우뚝했던 그녀 무럭무럭 늙고 있구나 / 낮에 입은 여자를 벗고 어머니로 갈아입은 그녀가 / 주방과 거실 오가며 내는 발소리 환하게 보인다" (목련 피는 저녁, 이재무, 시집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에서) 옛 애인이었으나 이제는 서로 나이들어 친구처럼 만나는 사람이 있나보다. 문자도 주고받는 그런. 그러다 나는 예전에 읽은 이재무 시인의 사랑 얘기를 떠올린다. "생의 의욕을 잃어가는 위태위태한 기혼자"인 서른여덟 시인에게 "갓 쪄낸 떡살처럼 눈부신" 스물한 살의 여자가 등장하여 번개치듯 천둥 울리듯 빠져들어간 이야기. (떨림, 뜨거운 가슴을 잃어버린 당신을 위한 스물네 편의 사랑 이야기) "꿈길밖에 길이 없어 이제 당신은 그렇게 꿈으로나 찾아와 나를 울리곤 합니다. 당신을 떠올리면 당신 떠나온 지 10년이 넘은 세월인데도 아직 명치끝이 타는 듯 아프고 쓰라립니다. 10년 전 당신을 떠나는 일은 수만 평의 진흙밭에 들어선 구두처럼 내겐 너무 힘들고 벅찬 일이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시인. 물론 이루어질 수 없어 더 아프고 간절하겠지만 10년 세월에도 명치끝이 타는 듯한 감정이라니.... "당신과의 아프고 아름다웠던 추억은 나중에 시가 되었습니다. 그 시편들은 이미 간행된 시집속에 수록되었습니다."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소식이 오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소망도 가져봅니다. 모든 사물이 당신을 통해서만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었던 그 시절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안녕, 눈 초롱한 사랑이여!" 그 사랑이 토양이 되어 만들어진 시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도 한두 편이 아닐 터이다. 저 못된 것들이나, 좋겠다, 마량에 가면이거나, 혹은 제부도일 수도. 사랑시만 골라 만든 시집도 있으니 읽으면서 시인의 추억과 함께 내 추억을 되살려봐도 좋으리라. <누군가 나를 울고 있다면>(이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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