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속 인물은 작가일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시속 인물은 시인일 것 같다. "다 늦은 저녁 먹다 남은 된장찌개 다시 데워 / 아이와 먹는 중이라며 옛 애인에게서 문자가 왔다 / 한 시절 콧날 우뚝했던 그녀 무럭무럭 늙고 있구나 / 낮에 입은 여자를 벗고 어머니로 갈아입은 그녀가 / 주방과 거실 오가며 내는 발소리 환하게 보인다" (목련 피는 저녁, 이재무, 시집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에서) 옛 애인이었으나 이제는 서로 나이들어 친구처럼 만나는 사람이 있나보다. 문자도 주고받는 그런. 그러다 나는 예전에 읽은 이재무 시인의 사랑 얘기를 떠올린다. "생의 의욕을 잃어가는 위태위태한 기혼자"인 서른여덟 시인에게 "갓 쪄낸 떡살처럼 눈부신" 스물한 살의 여자가 등장하여 번개치듯 천둥 울리듯 빠져들어간 이야기. (떨림, 뜨거운 가슴을 잃어버린 당신을 위한 스물네 편의 사랑 이야기) "꿈길밖에 길이 없어 이제 당신은 그렇게 꿈으로나 찾아와 나를 울리곤 합니다. 당신을 떠올리면 당신 떠나온 지 10년이 넘은 세월인데도 아직 명치끝이 타는 듯 아프고 쓰라립니다. 10년 전 당신을 떠나는 일은 수만 평의 진흙밭에 들어선 구두처럼 내겐 너무 힘들고 벅찬 일이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시인. 물론 이루어질 수 없어 더 아프고 간절하겠지만 10년 세월에도 명치끝이 타는 듯한 감정이라니.... "당신과의 아프고 아름다웠던 추억은 나중에 시가 되었습니다. 그 시편들은 이미 간행된 시집속에 수록되었습니다."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소식이 오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소망도 가져봅니다. 모든 사물이 당신을 통해서만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었던 그 시절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안녕, 눈 초롱한 사랑이여!" 그 사랑이 토양이 되어 만들어진 시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도 한두 편이 아닐 터이다. 저 못된 것들이나, 좋겠다, 마량에 가면이거나, 혹은 제부도일 수도. 사랑시만 골라 만든 시집도 있으니 읽으면서 시인의 추억과 함께 내 추억을 되살려봐도 좋으리라. <누군가 나를 울고 있다면>(이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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