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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레이의 겸손과 순종 - 겸손과 순종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한다
앤드류 머레이 지음, 임종원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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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겸손하라고 도전하는 설교를 많이 들었습니다만, 겸손이 무엇인지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앤드류 머레이를 통해 겸손의 본질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에서 겸손의 본질을 찾아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 “아무 것도 아니다”(nothing)라고 자주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겸손이란 하나님이 전부가 되시도록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한 순간도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지 않으셨고,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겸손을 실천하셨고, 또한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높아지지 위해 몸부림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우리는 자신을 낮추고 종의 자리를 차지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겸손을 하나님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하나의 예의(禮儀)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겸손이 없이는 구원을 받지 못함을, 겸손은 구원의 은혜가 뿌리 내리고 열매 맺게 하는 토양임을 배웠습니다. 최초의 인간은 피조물로서의 겸손을 버리고,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했습니다.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이 교만은 인간이 모든 죄악의 뿌리임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겸손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마음 자세일 것입니다. 겸손한 자만이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지 압니다. 그리고 죄인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것은 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머레이의 말은 그리스도인들이 깊이 명심할 진리입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은 겸손할 때, 구원의 은혜를 깊이 경험하며 자신의 참된 정체성을 발견하고 행복해집니다. 지금까지 나의 겉모습은 겸손했지만, 마음으로는 언제나 다른 사람보다 높아지고 싶었고 내 이름이 드러나기만을 원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다 교만하다고 비난했지만, 실상 내가 가장 높아지려는 욕망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도 아실 것이고, 아마 다른 사람들도 눈치를 챘을 것입니다. 부끄럽습니다. 내가 왜 행복하지 못한지, 왜 감사하지 못한지 알았습니다. 내가 겸손하지 못해 주님이 나의 전부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순종, 앤드류 머레이는 순종을 이야기할 때도 그리스도의 순종을 중심에 두었습니다. 그는 참으로 철저히 하나님 중심의 생각과 삶을 살았던 사람인 듯합니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야 했다는 히브리서 5장 8절의 말씀이 마음을 찔렀습니다. 그 분의 순종으로 내가 구원받았는데, 나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머레이에 따르면, 그 이유는 내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제 하나님의 순종의 학교에 들어가, 유일한 교과서인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가까이하고 기도 속에서 주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의 임재를 단단히 붙잡아야겠습니다.  

   아, 머레이의 겸손과 순종을 읽기 전에는 그래도 내가 괜찮은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했는데, 나처럼 교만한 자가 없으며 나처럼 불순종의 사람도 없다 싶습니다. 아,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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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 청림출판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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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터넷과 떨어질 수 없는 하루하루의 삶을 돌아보며, 스스로 위기의식을 느껴왔었다.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에서 콘텐츠의 방대함에 놀라며 그것을 즐겼고, 때로는 정보의 가벼움을 탄식했었다. 청소년들이 인터넷 때문에 망가지는 것을 보며, 또 나 자신도 때로는 인터넷에서 시간을 엄청 허비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인터넷의 폐해를 염려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콘텐츠를 제대로만 이용하면 인터넷은 참으로 유용한 도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말한다. 미디어의 콘텐츠보다 미디어 자체가 훨씬 중요하다. 미디어 자체가 “인식의 방식을 꾸준히, 아무런 저항없이” 바꾸어 놓는다. 내가 잘만 이용하면 인터넷은 언제나 유용한 도구라고 생각한 것은 얼마나 어리석을 정도로 순진한가!

   나는 단숨에 책을 읽어 내려갔다. 인간의 뇌가 얼마나 복잡한지, 더 나아가 얼마나 쉽게 변하는지(뇌의 가소성)를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글쓰기가 보편화되면서 기억 활동을 멈출 것이라고 우려했던 웅변가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는 동시에 오늘날 인터넷의 위험에 대한 인식과 관련해서 많은 통찰력을 주고 있다. 한편, 소크라테스는 글쓰기에 대해 걱정했지만,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글쓰기의 유익은 또한 얼마나 많은가! 글쓰기는 말하기보다 직관력은 떨어지지만, 사고를 훨씬 깊게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구텐베르크로 인해 새로운 책세상이 왔을 때, 고급문화와 저질문화가 함께 판을 쳤다. 책인쇄의 부정적 영향에 고민했지만, 역사는 긍정적인 면을 더 많이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인터넷은 또 한번 세상을 바꾸고 있다. 현재 많은 문제가 있지만, 인터넷의 영향력은 결국 긍정적인 결과로 끝날 것인가?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듯하다. 확실히 웹에서 읽는 행위를 하는 것은 읽는 방식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고방식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많은 링크가 있는 하이퍼텍스트가 오히려 학습을 방해하고 깊은 이해력을 갖지 못하게 한다는 일련의 연구결과들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어떤 글을 읽다가 링크가 되어 있으면 즉각적으로 참고해서 더 효율적인 이해가 생길 것 같았는데,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로 보면 인터넷이 집중력을 분산시키고 깊이 사고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저자가 지적했듯 컴퓨터는 인간의 신경 시스템과 너무나 닮아서 위험하다. 수많은 실험에서 보여주었듯, 자칫 인간은 모든 어려운 문제들을 컴퓨터에 맡기고 컴퓨터의 알고리즘을 단순히 따라갈 위험이 있다. 그리고 인간은 사색의 능력을 점차 잃어갈 뿐 아니라 감정의 깊이도 사라질 것이다.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밝혔듯,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잃게 될 것인가에 주목할 의무가 있다. 그것은 인간성이다!

   이 책은 나의 사고의 지평을 넓혀 주었고, 책읽기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주었다. 인터넷 세상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가끔은 자연 속에 머물며 깊이 사색하는 것이 중요함을 배웠다. 그리고 매일 일기쓰기 같은 생각훈련이 인간다운 풍성한 감정을 유지하고 내 삶을 깊게 풍부하게 해 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아이패드를 구입할지 고민했는데, 더 망설여진다. 모두에게 일독을 권하며, 해박한 역사와 과학 지식으로 날 도전한 니콜라스 카,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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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함께 본 영화
곽건용 지음 / 포북(for book)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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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는 내내, 저자 곽건용은 삶의 다양한 주제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그러기에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은 사람임을 느꼈습니다. 그가 소개하는 27편의 영화 중 제가 본 것은 겨우 7편 남짓, 저는 스스로 '영화광 목사'라고 자처하는 사람의 영화 이야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할 입장은 아닙니다. 하지만 상관없다 싶습니다. 저자도 이 책에서 영화에 대해 말하거나 영화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면서 떠오르는 삶의 다양한 주제들을 말하고 싶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정말 많은 이야기들을 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 묶음(영혼의 무게 21그램)에서는 자신의 정체성, 영원의 문제, 믿음과 회의, 삶의 가치를, 두 번째 이야기 묶음(하나님, 거기 계시지요?)에서는 삶의 영향력과 희망, 부부의 사랑과 이해, 소망과 기다림, 욕망과 희망 그리고 감사, 용서를, 세 번째 이야기 묶음(아름다운 바보의 아름다운 마무리)에서는 평범한 하루의 소중함, 아버지, 사형제도와 생명의 소중함, 아름다운 삶과 아름다운 마무리, 세상이 종교에서 바라는 것을, 네 번째 이야기 묶음(끌어안고 같이 울어주기)에서는 평등권과 인격권, 삶의 그늘, 사람들의 경계선과 하나됨, 모성(母性)을, 마지막 다섯 번째 이야기 묶음(욕망, 삶, 희망,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에서는 죄의식과 구원, 체험과 성찰, 역사와 소설, 이상과 현실, 존엄한 삶과 죽음,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삶의 주제들을 영화를 통해 풀어내는 저자의 솜씨에 감탄하며 책을 읽었습니다. 또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나름대로 잘 묶은 편집자의 솜씨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솜씨 좋은 편집 덕에, 이 책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존엄하게 사는 것과 존엄하게 죽는 것’에 대해 말하고, 결국 ‘죽음과 영원한 삶의 이야기’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영화 [다우트]와 함께 의심과 확신에 대한 이야기는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의심과 확신 모두 감정일 뿐, 사실이 아니다,” “의심이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에서 온다면, 확신은 자신을 모르는 것에서 온다,” “의심과 확신은 닮은 구석이 있다.” 결국 저자는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으니까 시니컬한 태도로 살 것인지 모든 것이 불확실해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뜨겁게 살아갈 것인지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저도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 자신이 가진 믿음이 100퍼센트 확실한 것이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 치열하게 믿음으로 사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믿음은 언제나 의심을 포함하고 있고, 자신을 정직히 들여다보고 의심할 줄 알 때만 진실한 믿음은 자리 잡는 법이니까요.

   이 책의 마무리 문장 - “예수님은 유한한 이 땅에서의 삶을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과 연결시켜 주셨습니다.” - 은 저에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참된 신앙은 죽어서 천국에 가는 티켓을 얻도록 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살 때 영원과 맞대어 가치 있게 살도록 해 주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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