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낮은 곳에서 운다
김경진 지음 / 문학의전당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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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생리를 한다. <김경진 시집. 2001. 시와 사람에서 출간.>

사랑은 낮은 곳에서 운다. <김경진 시집. 2004.문학의전당에서 출간.>

뜨거운 멍. <김경진시집. 장현우 사진. 2013. 평사리에서 출간.(사진과 시가 함께 있는 사진시집)>


최근에 알게 된 블로그 분 중에 김경진 시인. "흔적남기기" 라는 블로그 이름으로 사진과 글을 올린다. 거의 대부분은 블로그에서 프로필을 본 적은 없지만 블로그 소개란에 언듯 시집을 소개하는 카테고리가 있어 몇 편을 읽었다. 그래서 시집을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 여쭈었다. 그런데 자신의 시집이라면서 선듯 시집을 3권이나 보내 주셨다.

받은 시집의 프로필을 보니 시집을 6권이나 낸 경력의 중견급 시인이셨다. 아, 이런 반가울 때가 있나. 어찌나 고맙던지요. 가만 있을 수가 없어서 나의 졸저도 한 권을 보답으로 보내 드렸다. 그리고 김 시인님에게 약속하기를 꼭 리뷰 써 드리기로 했다. 아니 쓰고 싶었다. 리뷰라도 쓸 요량으로라도 집중력 있게 읽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 사진도 점점 더 어렵고 글도 쓸 수가 없다. 이럴 때는 그저 읽는 것이 최고의 도리는 아니겠는가. 읽어야 나오는 것은 생존의 법칙과도 같은 것. 그래서 읽고 쓰고 싶었다. 더우기 시인의 월동 준비가 책이라고 했다. 나도 물론이다. 시인에게 받은 시집 3권에, 더불어서 양애경 시인의 시집도 3권을 또 주문을 넣은 상태다.


이 중에서 "사랑은 낮은 곳에서 운다"라는 시집을 리뷰하기로 한다.

 

 

 

나는 아버지라는 단어만 보면 가슴 밑바닥부터 인연의 멀미가 치밀어 온다. 차라리 철 모르는 아주 어린 나이에 이별하여 보냈더라면 기억이라도 희미해서 특별한 연민도 없겠지만, 대학 졸업식 직후에 병으로 돌아 가셨다. 이미 내가 늦둥이인 관계로 아버지는 그 나이에 떠나더라도 그리 적은 나이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졸업하고 겨우 아버지에게 새로운 추억을 쌓기 직전에 아버지는 생을 놓고 떠났다. 그렇기에 회한이 참 많다. 함께 여행도 못다녀 봤고 아버지와 함께 거나하게 소주잔을 주고 받을 수도 없었고 맺힌 속내를 솔찍하게 털어 내 본 적도, 또 아버지의 속내를 재대로 들어 본 적도 없었다. 이제 기억을 재대로 만들어가야 할 나이가 되었는데 아버지는 시간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후회가 될 수도 없을 만큼 이제 시작할 기회조차 얻지를 못했던 절실한 아쉬움 때문이다.


그런데, 시인의 "사랑은 낮은 곳에서 운다"라는 시집 목차에서 첫번째 소재목이 아버지였다. 아 뭔가 먹먹해질 것만 같은 낌새를 나는 미쳐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첫 페이지를 펴자 마자 아버지에게 묻는다. "(아버지 있는 곳은) 그 곳에서 꽃은 피던가요"라고 묻는다. 지금 여기는 너무 힘들고 괴로운데 아버지의 그 곳 천국에는 여전히 꽃이 피고 아름다운가요 라고 묻는다.이 질문 하나가 이내 뒷 목이 뻣뻣해지고 눈시울은 벌써 붉게 달아 오르며 눈물이 뚝 떨어진다. 마치 당신의 천국에 피는 꽃 잎 하나 아들에게 건내주듯이 주는 대답처럼 들렸다.


내가 돈 벌어서 아버지에게 밥 한끼 사드린 적이 없다. 근사한 식당에서 찬란한 내음의 색으로 물들인 성찬으로 포도주 잔을 부딪히며 건배조차 한 적이 없고  함께 맛있는 기억을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결핍은 결국 내가 딸아이에게 직접 함께 먹으면서도 떠오른 회한과도 같다. 시인의 아버지도 가난 했듯이 아버지들은 왜 그렇게 가난에 짓눌렸던지, 시장에서 벚나무 보며 울컥이게 만들었을까? 벚나무가 지는 꽃잎은 "거리를 나부끼는 지전처럼" 무심하다고 했다. 시장에서 한 푼이 아쉬웠던지 급기야 집으로 와서 못내 자족하듯 어머니에게 파전은 꿉게 만드시고 파전을 맛나게 자조적으로 드시고 막걸리를 부으며 "이러면 되지 이러면 돼지"라며 애써 자위로 무마 시키는 가난한 아버지가 한 없이 가엽지 않았을까? 가여운 아버지에게서 받은 미련이, 끝끝내 시인은 시어로 절절한 표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 않았을까. 아니 이런 절실함은 시인이 담당하는 세상에 대한 의무와도 같다. 딸 아이가 다쳐서 상처에 빨간약을 발라 주면서 아버지가 나에게 발라 주는 빨간약에 담긴 동질성에서 시인은 벌써 눈이 충혈되고 자연히 나의 충혈된 눈으로 나의 아버지의 눈물로 전이 되어 떠올리고는 다시 아버지가 그리워 또 내가 울고 있는 듯했다.


한마디로 내가 읽은 시는 눈물의 바다에 이는 하얀 포말같은 것이다. 바다물이 소금물인 이유가 지구가 흘린 눈물이듯이 아버지를 떠올린 회한의 눈물이 바다에 치미는 파도가 부서져 이는 거품를 이루는 것처럼 부성애는 시 언어의 첫 단에서 오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존재는 떠나고 난 후에 찾아 오는 부존성의 인식에서 비로소 확연히 드러나는 존재인 셈이다.


병석에 몇달도 누워 있지도 못했던 시간 동안 나는 왜 말이라도 아버지에게 따뜻하게 대하지 못했을까. 아파 누워 힘 없는 노인네에게 왜 살갑지를 못했을까. 그리 오래지 않는다는 것을 왜 느끼지 못했을까. 차라리 말이라도 아버지 가시고 나면 당신의 나라에서 천국의 주인과 함께 서서 행복한 미소를 지울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나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당신이 그렇게도 그리워 했던 천국이 다가 왔음을 아버지는 느꼈을까?

그야 말로 어린 나이에 철 없던 시절의 무감각이 후회가 되어 땅을 치게 만드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그해 여름에 나는 회사에 입사를 하고 첫 월급을 받아서 아버지가 누워 있는 곳에서 소주 한병을 따루었으니까. 이걸로 그간의 미련 따위는 싹 사라지는 줄 알았다.이럼 된 것이라고 애써 외면하였다. 그러나 나이가 점점 들어 갈수록 부존재의 아픈 실체가 점점 선명하게 부상한다. 세상 살이 하면서 자주 한탄을 퍼 부었다. 왜 이렇게 힘드는데 당신의 천국은 꽃이 피는 낙원인가요 라고 물었다. 아버지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유토피아를 믿었기에 말이다.

 

 

 

아버지의 아들은 늘 보듬는 대상이다. 아들은 늘 아버지가 큰 산과도 같다. 늙고 힘없고 지팡이 짚고 꾸부정한 아버지 일지라도 아버지는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위안이다. 어머니는 아들이 보살펴야 할 대상이지만 아버지는 심리적으로 의지해야 할 대상이다. 아버지에겐 살갑게 대하기보다는 투정 부리고 응석 부려도 좋은 유일한 대상이다. 자식에겐 아버지의 역할이지만 아버지는 나의 정신적 백그라운드와도 같다. 때로는 무심하다며 좀 잘해 달라고 요구를 거침없이 하고 그 요구에 들어줄 도리가 없어 일부러 가슴 아프게도 해도 아버지는 가능한 대상이다. 속으로 눈물을 삼키면서도 태연한 척하는 것도 안다. 세상살이 어렵고 힘겨울 때, 아비야. 힘들제? 나도 힘들었단다. 그래도 우자겠노? 힘들지만 더 힘을 내서 살아 봐야 안되겠나?라고 넌지시 힘을 주는 아버지는 삶의 둥지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투정과 응석의 대상이자 백그라운드였던 아버지는 살아 있을 때는 전혀 그립지도 않는다. 단지 좀 더 해주지 못함에 대한 원망의 대상이고 능력의 부재로 늘 아비는 미안해하며 더 잘 해줄 수없는 당신 자신을 한탄스러워했을 뿐이다. 그런데 언제까지나 살아 내 곁에 있을 줄 것만 같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부재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욱더 치밀어 오르는 부존재의 슬픔은 늘 아버지는 그리움의 원형질이자 내 슬픔의 근원적 세포를 만들어 낸다. 세포는 그리움이라는 광합성으로 불지 불식간에 눈물이 나오도록 만들고 가슴 한 켠이 늘 서늘하게 만들게 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아버지가 단순히 생물학적인 아버지도 많다. 아내를 쥐어 패고 버는 돈 족족히 노름과 술판으로 탕진하며 어딘가에 바람을 피워 대며 작은 마누라를 끼고 살다가 늙고 병들고 힘 떨어지니 쥐어 패던 첫째 마누라를 찾아와서 내 잘못했소 용서해서 거두어 달라는 비겁한 아비도 있다. 그런 자식은 단순한 생물학적인 아버지를 두고 멸시와 외면을 반복하기도 한다. 남보다 못한 아비일지라도 그 아비가 죽고 나서 그 원망의 통곡이 결국은 그리움이라는 원형질의 모순적인 접근도 때론 지켜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아버지를 만난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입에서 쌍스러운 모습이 튀어나온 적이 없었고 마치 내가 사진에 빠지듯 종교에 그렇게 심취했던 아버지였다. 물론 어릴 때 아버지가 읽으라는 성경을 억지로 읽었지만 지금은 아버지가 바라는 종교는 아닐지라도 아버지의 신은 믿지 않아도 만물에 신이 깃들었음을 사진을 통해서 느끼도록 익혔다. 

시인의 아버지는 그래서 늘 그리움으로 점철되어 있다. 아니 이 시집 한 권에 실린 시편들 전부가 다 그러한 시 형태로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이렇게 감정이입이 너무나도 간단하게 사부의 곡소리로 튀어나오고 있던 까닭이었다. 어느 책에서 봤던 구절로 이 리뷰를 마치겠다.

 

아버지는 죽어야만 그리워지는 존재라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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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그리운데, 이 그리움으로 펑펑 울고 싶은 분들에게 꼭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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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소년 2015-12-05 02: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버지는 죽어야만 그리워지는 존재라고 하더라.”

이 글이 굉장히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은 정말 현실적인 말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이 여러 방식이 있지요.

사람에게 정을 주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른데

보통 50대 이상의 아버지들의 자녀를 대하는 방식이 무뚝뚝하지요.

다정다감하게 이런 저런 많은 마음과 이야기를 공유해야

자녀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데 그것이 쉽지 않을겁니다.

자녀와 가까이 지내는 시간이 있어야 서로 공감대를 형성할 것인데 그러기가 쉽지 않지요.

게다가 현재의 아버지들도 그의 아버지에게 받은 영향도 상당하죠.

당시 대다수의 가정의 아버지들은 매우 보수적이였던 탓에

그러한 아버지를 모방하고 자란 아버지들이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조금씩 다정한 아버지가 되어가고 있다지만 그러한 문화가 자리 잡은지 얼마 안됐기 때문에 적응을 하기가 힘들 것 입니다.

부모에게 다정하게, 상냥하게 대하면서 사랑하는 방식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본인 스스로가 그렇게 하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큰 계기가 없으면 힘들지요.

유레카님의 글을 읽고 나니 옛날에 들었던 아버지와 관련된 노래가 떠오르네요.

김경호의 ‘아버지’란 노래인데 뮤직비디오 보고서 굉장히 뭉클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란 단어는 단어자체로 무언가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yureka01 2015-12-05 17:42   좋아요 1 | URL
아버지 세대는 참 무뚝뚝했죠.
아버지로 부터 배운 적도 없었으니 표현도 못하는 부정(父情)이었지요.

요즘은 아들 바보 딸바보처럼 정말 다정다감한 아빠들이 많으니까요.

사랑도 훈련이 필요한것은 아닐까 싶어요.

긴 댓글 좋은 느낌 ..감사합니다!~~~

주말 휴일 아름다운 시간 만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