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존재 : 코멘터리 북 - 이석원과 문상훈이 주고받은 여덟 편의 편지
이석원 지음 / 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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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존재코멘터리북 #이석원 #문상훈 #달 

<보통의 존재> 존재감이란 무엇일까. 15년이 지나도 여전히 읽히고 요즘 제일 핫한 문상훈과 이 책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만큼 이야기거리가 유효한 우리만의 책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이런 인기를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겸손하게 아닌 척 하지도 않는다. 15년이 지난 지금을 겪는 보통의 삶과 고민을 적절하게 솔직하게 풀어내고 있다. 말 그대로 이 책 답다. 

"유독 이삼십대 젊은 독자들이 석원님의 책을 사랑했떤 이유는,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명쾌하게 표현하지 못했던 불안이나 이기심 같은 감정들을 책에서 솔직하고 공감가는 표현들로 이불 빨래 털 듯이 시원하게 털어놓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13쪽

"하지만 본질보단 표현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어느 정도 삶의 테크닉은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상훈님도 자기혐오를 제 포장의 수단으로 쓰시고, '아직도 사랑을 잘 모르겠다'며 눙을 치는 것으로 사랑을 갈구하시듯, 저 역시 보고 싶은 사람일수록 더 쳐다보지 않는 나름의 삶의 전략을 구사하며 살아왔던 건 아닐까요?"

20년 나이 차이가 무색하게도 서로의 고민과 나눔은 비슷한 지점이 있다. 대중 앞에 결과물을 선보여야 하는 창작자 입장에서 이들은 자신을 꾸미고 드러내는 일에 기본적인 우울감을 느끼는 듯하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도 사회적 가면을 쓰며 연기를 하며 살아가고 인생의 쓴맛 앞에 휘청거릴 때가 있다. 서로 다른 시간대에 서 있는 두 사람, 이들의 대화를 지켜보는 독자들. 다들 각자의 현장에서 ‘보통의 존재’로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들의 질문과 답변의 편지가 마치 우리 복잡한 마음의 결을 하나씩 펼쳐주듯 섬세하게 어루만져준다. 

"이만하면 마지막으로 제게 물으신 '15년 전 처음 책을 쓸 때의 저와 지금의 저는 어떻게 다르고 또 어떻게 여전한지'에 대한 답이 됐을까요. 이렇게 평생 겁쟁이로만 살다 생을 마감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 이 나이에도 용기를 낼 줄 알게 됐으니 이 정도면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흥행에 대한 불안을 완전히 놓지는 못하는 걸 보면 여전히 저 같기도 하니 말입니다." 62쪽

여전히 저 같다는 작가의 말은 세월이 흘렸어도 자기 자신을 놓치지 않고 살고 있다는 말로 들린다. 책제목 그대로 딱 '보통의 존재'이다. 무얼 더 갖추려기보다 여전히 자기 같은 모습을 발견하며 사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출판사 제공 도서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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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집으로 간다
강성민 외 75명 지음 / 평산책방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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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집으로간다 #청소년시집 #평산책방

"우리 친구들이 풀어놓은 마음들이 여기 있다. 그 마음들을 찬찬히 읽어주시길 부탁드린다. 얼룩진 마음, 부서진 마음, 금이 간 마음들이 많다. 닦아 주고, 쓰다듬어주길 바란다." 10쪽

세상에는 여러 마음들이 있다. 소년재판을 받은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꽤 부담스럽기도 하다. 재판이라는 단어 앞에 여러 생각과 판단이 들지만 '소년'이라는 단어에 집중한다면 어떨까. 청소년회복센터에서 시집을 읽고 조금씩 변화되고 있는 마음의 풍경을 담은 시를 쓴 아이들. 세상을 향한 작은 몸짓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이제는 집으로 간다>은 경남의 청소년회복센터 6군데에 머물고 있는 76명의 아이들이 써 내려간 97편의 시를 담고 있다. 구호나 교훈이 아닌 날 것 그대로의 기록이다. 법정에서의 두려움, 친구에게서의 상처, 가족에 대한 미움과 그리움이 한 줄 한 줄에 묻어 있다. 어떤 시는 독백처럼, 어떤 시는 기도처럼 흐른다. “나는 집에 가고 싶어요”라는 짧은 한 문장이, 어떤 문학적 표현보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문학적 세련미보다 ‘살아 있는 말’을 품고 있다. 법정과 회복센터라는 차가운 공간 속에서, 청소년들은 자기 목소리로 세상과 화해하려 한다. 후회와 반성, 절망어린 외침들이 가득하다. 그들의 언어는 서툴지만 정직하고, 짧지만 깊다. “집으로 간다”는 말은 단순한 귀향이 아니라, 잃었던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는 여정으로 읽힌다.

읽는 내내 나는 ‘집’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새삼 느꼈다. 이 아이들에게 집은 단순히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용서와 환대의 가능성이다. 동시에 “나를 기다려주는 누군가가 있을까”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제도 속에 가두고만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본다. 우리 사회는 환대의 태도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가. 

아이들은 아직 멀리 가지 않았다. 다시 돌아오길 기다린다면 멈춘 그 자리에서 뒤돌아 올 것이다.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함께 살아가는 어른으로서 우리가 해야할 일이 아닐까. 

재판 -조승민

그렇게 안 서야겠다는 

재판에

또 서버렸다

재판에

벌써 재판이 7번이라니

무섭다

소년법정에 선 지도 2년 가까이 됐다니

참 안 믿긴다

재판을 너무 많이 본 거 같다

이제는 집으로 간다

반항 -심민찬

나는 중2 때부터 반항을 했지

쓸데없이 그냥 반항했지

나쁜 친구와 어울리고 술 담배하고

오토바이 타곤 했지

나를 달래도 보았지 화도 내어 보았지

부모님과 싸우고 가출을 했지

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었지

학교도 안 가고 밤새 친구와 놀았지

배고프니 절도도 했지

그러다가 긴급구속영장이 나왔지

오륜학교에 위탁되었지

나는 많은 생각을 했어

그리고 처분을 받고 지금 진해 샬청소년센터에 왔어

아직 멀리 오지 않았어

다시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어

난 돌아갈 거야

가족이 얼마나 좋은지 깨달았어

후회하고 후회되지만 앞으로 후회할 일 만들지 않으면 돼

죗값 다 치르고 다시 돌아갈게요 엄마! 아빠!

그리고 사랑해요

*출판사 제공 도서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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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최은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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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마무리할 때면 나는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찾게 된다. 올해의 우수작을 훑는 일이 아니라 지금 한국문학이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2025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은 그 질문에 또렷하게 응답한다. 단편이라는 짧은 형식 안에서도 세계의 균열과 인간의 내면을 세밀하게 포착하며 여전히 문학이 우리 곁에 필요한 이유를 보여준다.

이번 대상작인 최은미의 「김춘영」은 한 인물의 삶을 통해 기억과 기록의 윤리를 탐구한다. 탄광촌에서 술집을 운영하던 여성 김춘영은 남성 중심의 노동서사에서 철저히 배제된 존재였다. 작가는 그 인물을 다시 불러내 ‘기억의 공백’을 채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소설이 단순히 과거를 복원하지 않고, ‘누가 역사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를 끊임없이 묻는다는 것이다. 아카이브 문체로 구성된 문장은 냉정하면서도 묵직하고, 그 거리감이 오히려 독자로 하여금 더 깊은 몰입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나는 구술자들의 고유한 생를 사건으로 환원하려는 안의 방식에 그다지 동요하지 않았다. 김춘영의 구술이 사건의 증언으로 수렴되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이 작업의 주체는 사건이 아니었다. 김춘영이었다. 나는 오직 김춘영의 말을 들을 것이다. 김춘영이 말하는 김춘영의 기억을 들음으로써 김춘영이라는 대체 불가능한 한 개인에 대한 이해에 도달해갈 것이다." p.17

황정은의 「문제없는, 하루」는 이름 그대로 문제없는 하루를 살아내려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러나 작가는 ‘문제없음’이 얼마나 위태로운 말인지 보여준다. 폭력의 흔적은 일상 속에 은밀히 숨어 있고 인물들은 그 위를 걷는다. 황정은 특유의 건조한 문체는 오히려 감정의 긴장을 높인다. 그녀는 설명하지 않고 보여준다. 그 무표정한 문장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하루는 정말 문제없는가?”

강화길의 「거푸집의 형태」는 돌봄노동의 굴레를 여성의 몸과 감정의 언어로 표현한다. 작가는 관계 속에서 서서히 금이 가는 감정의 구조를 ‘거푸집’이라는 은유로 묘사한다. 무너짐이 아니라 틀어짐, 고통이 아니라 지속의 피로로 이야기를 밀어붙인다. 강화길의 문장은 언제나 현실보다 조금 더 가까운 온도를 가진다. 이 작품에서도 그 온도는 뜨겁지 않지만 오래 남는다.

김인숙의 「스페이스 섹스올로지」는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그러나 그 속엔 인간의 욕망과 모성, 죄책감이 교차한다. 외계적 상상력을 빌려 현실의 모순을 드러내는 방식은 김인숙 문학의 오래된 힘이다. 현실과 환상이 맞닿는 지점에서 인물은 자기 안의 타자와 마주한다. 이 작품은 욕망이 단지 본능이 아니라 ‘관계의 언어’임을 보여준다.

최진영의 「돌아오는 밤」은 상실을 다룬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인물이 남겨진 세계를 살아내는 과정을 그린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가 시간의 결을 따라 번져나가고 슬픔이 깊어진다. 작가는 애도를 서사화하지 않고 감정의 결을 느리게 따라간다. 그 느림 속에서 진짜 슬픔이 찾아 오게 된다.

이 작품집은 단순히 좋은 작품을 모은 선집이 아니다. 지금의 한국문학이 집중하고 있는 주제와 문체의 방향을 한눈에 보여주는 지표다. 인물들은 대개 거창한 영웅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자신을 버티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사회 구조 속에서 흔들리 격한 감정의 균열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리고 작가들은 그 틈새에서 언어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는 듯하다.

『2025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은 다양한 질문이 담겨 있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누구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며, 어떤 세계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가. 읽는다는 행위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세계를 다시 바라보는 책임으로 다가올 때 일상의 작은 변화가 되는 게 아닐까.

*출판서 제공 도서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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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 가족의 오랜 비밀이던 딸의 이름을 불러내다
양주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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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양주연 #한겨레출판사 #하니포터11기 #하니포터


양주연의 <양양>은 어느 겨울밤, 술에 취한 아버지가 던진 한마디 “너는 고모처럼 되지 말라”에서 시작된 기억의 탐색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인 저자는 40년 전 자살로 기록된 고모의 존재를 고모의 고등학교 동창, 친구, 선생님 인터뷰와 가족 앨범을 통해 추적하며 고모의 생애를 드러낸다. 저자는 단지 가족의 숨겨진 비밀을 밝혀내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그 누구도 이름조차 불리지 못한 여성들의 ‘잊힌 생’을 보고자 한다. 


이는 기록되지 않은 삶에 붙여진 낙인과 침묵을 마주하는 일이었다. 결국 ‘고모’라는 렌즈 뒤에 비춰진 것은 가족과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했던 ‘착한 딸’ ‘좋은 여동생’이라는 역할이었으며, 이별을 통보했다는 이유로 고통을 받아야 했던 한 여성의 비극적인 죽음이었다. 


"‘교제살인'이나 ‘페미사이드'라는 언어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 남자친구 집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던 이십 대 초반의 여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만 했던 존재로 남았을 뿐이다." p.153

"기록되지 못한 그날은 기억되지 못하고, 기억되지 못한 죽음은 낙인으로 남았다. 고모의 존재를 지워 가며 할아버지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화목하고 평범한 가족이라는 환상이었을까? 낙인으로 남은 고모의 죽음과 마주하며, 나는 화목하고 평범한 가족이라는 규범적 관념 속에서 가려졌을 또 다른 누군가의 이름과 존재를 떠올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보낸 안전하고 화목한 시간들이 누군가를 지워서 얻은 것이라면, 더 이상 그런 화목함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p.156


저자는 화목한 가족에 가려진 죽음과 차별을 직시하며 가족의 역사를 다시 쓰기 시작한다. 불편했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돌아보며 은근히 남동생과 차별받았던 기억을 떠올린다. 과거를 추적하는 일이 결국 지금 아버지와의 관계를 재해석하고 돌아보는 시간이 된다. 또한 고모의 죽음을 추적하며 알게 된 끔찍한 사실을 아버지에게 전하고, 모든 흔적을 없애고 이름 조차도 언급되지 않았던 고모의 이름 '지영'을 가족묘비에 새겨 넣어달라고 요청한다. 아버지는 과연 어떤 대답을 하셨을까. 


이 책은 여성 혐오 역사의 단면을 그린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다큐멘터리 감독 답게 고모의 삶과 죽음을 추적하는 과정은 큰 호기심을 유발시키며 독자를 마지막 페이지까지 끌고 가게 만들 만큼 빼어났다. 읽는 내내 마음이 아프고 불편하며 아렸지만 값진 희망과 작은 용기를 얻었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보이지 않았던 삶을 보면서, 말해지지 않았던 이름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제공 도서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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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부코스키 타자기 위픽
박지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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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소설가의 〈찰스 부코스키의 타자기>는 생의 전환기에 선 한 여성의 내면적 사유를 타자기라는 은유를 통해 그려낸 작품이다. 작품 속 사회는 40세와 66세에 생애전환기 건강검진을 받으면 다음 생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주인공 승혜는 묵묵히 자신의 삶을 감내하며 살아온 평범한 인물이다. 그녀는 66세 생애전환기 일 때 '타자기' 삶을 선택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몸을 빌어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놓는다. 승혜는 자신의 몸을 통해 기록된 다양한 이야기를 겪으며 인생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낀다. 타자기 인생의 마지막 즈음에 친구 '인애'를 떠올린다. 평생 애틋한 기억이 하나도 없다고 여겼던 승혜는 인애와의 마지막 만남과 아쉬운 이별을 기억한다. 


창세기를 반복해서 써 내려가는 해변의 타자기. 생명의 최초 순간을 반복하며 몸으로 기록하는 타자기라니, 작가를 꿈꾸거나 생애 의지가 가득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상상할 만한 자기 모습이다. 작가의 바람이 투명된 작품 속 이야기는 노인의 삶에 대해 여러 사유를 하게 만든다. 나이가 늘어 죽음 앞에 섰을 때 다른 생을 살아갈 기회가 된다는 건 희망으로 읽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더 이상 인간답게 살아갈 수 없는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장면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식으로 노령 인구가 인간으로서 순리대로 늙어갈 기본 권리와 사회적 효용 가치가 없어도 보장받아야 하는 기본적 인권을 말소당하는 사이 인권이니 자유니 하는 말은 점점 그 가치를 잃게 될 거라며 선주 언니는 개탄했다. 그러나 그건 아쉬울 것 없는 선주 언니니까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승혜는 생각했다. 아프면 치료할 돈이 있고 돌봐줄 가족이 있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배부른 소리라고. 그런 말은 인간의 삶이 가장 낫다는 오만에서 나온 것이기도 했다. (...) 알고 보면 전환기에 무생물의 생을 선택하는 건 빈곤하고 연고 없는 노인들뿐이라는데, 그것은 그러므로 선택하는 게 아니라 그 당사자와 사회 모두를 위해 나은 선택이라면 뭐가 문제인 걸까 승혜는 되묻고 싶었다.' p.40-41


작가는 인권 중심적 사고가 중요하지만 그것만 생각했을 때 놓치게 되는 부분을 지적하고 있는 듯하다. 인권을 운운할 수 있는 사람들의 위치는 그것을 지켜낼 만큼 권력을 있는 자리라는 것,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명제는 누군가에게는 더 큰 절망과 좌절을 안겨 줄 수 있는 냉정한 말이라는 것도 생각해 보게 된다. 


타자기가 된 승혜는 여러 인생의 이야기를 온몸으로 받아안는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말로 여기지 않고 온전히 경청하고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 타자기 자체가 그런 무게감을 안기도록 설계된 기계여서 그런 듯하다. 한 글자 한 문장 하나하나가 그저 가볍게 쓰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승혜는 고통과 슬픔, 버거운 인생의 과제 등 공포와 비명에 가까운 인생을 고스란히 겪는다. 지극히 평범했던 그녀의 인생은 타자기가 되고 나서야 격동의 세월을 통과한다. 놀랍게도 그녀는 타자기였기에 글쓰기의 효능을 금세 체득했고 고통 너머 해소와 치유의 영역까지 사유할 수 있게 된다. 


"허공중에 다 부서지고 기화되어 흔적 없이 사라질 때까지 끝나지 않고 계속되기를 바랐다. 그런 말들이 지나간 자리는 태풍이 지나간 자리처럼 부서지고 망가지고 폐허가 되었지만, 그럼으로써 비로소 다시 재건될 수 있는 사랑의 말과 글이 있다는 걸 승혜는 알고 있었다. 치욕에 대한 말은 실은 아름다움에 대한 말이었다. 수치에 대한 말은 실은 곱고 다정한 것에 대한 말이었다." p.56


타자기 앞에 있는 나는 타자기의 이런 응원에 힘입어 뭐든 쓸 수 있다. 모든 글쓰기는 아마도 이런 소망을 품고 있을 것이다. "비로소 다시 재건될 수 있는 사랑의 말과 글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나를 갉아먹는 아픔과 쓰라림을 대면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인생을 살고 싶다는 말은 여러 번의 생애가 주어지길 바란다기 보다 이렇게 글쓰기를 통해서 지금의 삶을 조금 다르게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다른 문장이 아닐까. 


"왜. 승혜는 두 번의 생을 살고 있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았다. 특히 바라는 것 없이 위해주고 내주는 마음에 대해서는 영영 알 수 없을 거였다." p.89


사랑, 환대! 그것만이 인생을 여러 번 산 것 같은 통찰과 의미를 부여하는가 보다. 한 번을 살더라도 사랑하고 환대하며 산다면, 다른 생을 굳이 바라고 욕망하지 않을 것 같다. 오늘 나는 바라는 것 없이 위하는 마음을 그, 그녀에게 전해주고 싶다. 


*출판사 제공 도서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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