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 가족의 오랜 비밀이던 딸의 이름을 불러내다
양주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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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연의 <양양>은 어느 겨울밤, 술에 취한 아버지가 던진 한마디 “너는 고모처럼 되지 말라”에서 시작된 기억의 탐색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인 저자는 40년 전 자살로 기록된 고모의 존재를 고모의 고등학교 동창, 친구, 선생님 인터뷰와 가족 앨범을 통해 추적하며 고모의 생애를 드러낸다. 저자는 단지 가족의 숨겨진 비밀을 밝혀내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그 누구도 이름조차 불리지 못한 여성들의 ‘잊힌 생’을 보고자 한다. 


이는 기록되지 않은 삶에 붙여진 낙인과 침묵을 마주하는 일이었다. 결국 ‘고모’라는 렌즈 뒤에 비춰진 것은 가족과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했던 ‘착한 딸’ ‘좋은 여동생’이라는 역할이었으며, 이별을 통보했다는 이유로 고통을 받아야 했던 한 여성의 비극적인 죽음이었다. 


"‘교제살인'이나 ‘페미사이드'라는 언어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 남자친구 집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던 이십 대 초반의 여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만 했던 존재로 남았을 뿐이다." p.153

"기록되지 못한 그날은 기억되지 못하고, 기억되지 못한 죽음은 낙인으로 남았다. 고모의 존재를 지워 가며 할아버지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화목하고 평범한 가족이라는 환상이었을까? 낙인으로 남은 고모의 죽음과 마주하며, 나는 화목하고 평범한 가족이라는 규범적 관념 속에서 가려졌을 또 다른 누군가의 이름과 존재를 떠올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보낸 안전하고 화목한 시간들이 누군가를 지워서 얻은 것이라면, 더 이상 그런 화목함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p.156


저자는 화목한 가족에 가려진 죽음과 차별을 직시하며 가족의 역사를 다시 쓰기 시작한다. 불편했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돌아보며 은근히 남동생과 차별받았던 기억을 떠올린다. 과거를 추적하는 일이 결국 지금 아버지와의 관계를 재해석하고 돌아보는 시간이 된다. 또한 고모의 죽음을 추적하며 알게 된 끔찍한 사실을 아버지에게 전하고, 모든 흔적을 없애고 이름 조차도 언급되지 않았던 고모의 이름 '지영'을 가족묘비에 새겨 넣어달라고 요청한다. 아버지는 과연 어떤 대답을 하셨을까. 


이 책은 여성 혐오 역사의 단면을 그린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다큐멘터리 감독 답게 고모의 삶과 죽음을 추적하는 과정은 큰 호기심을 유발시키며 독자를 마지막 페이지까지 끌고 가게 만들 만큼 빼어났다. 읽는 내내 마음이 아프고 불편하며 아렸지만 값진 희망과 작은 용기를 얻었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보이지 않았던 삶을 보면서, 말해지지 않았던 이름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제공 도서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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