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렁이는 음의 밤
최지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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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렁이는음의밤 #최지인 #한겨레출판 #하니포터11기


"예술은 실패를 향해 있다. 어떠한 것도 완전히 재현할 수 없다. 진실은 보이는 것 너머에 있다. 게다가 하나가 아니다. 예술적인 게 있다면 일상의 아주 작은 면일 것이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건 결국 태도다. 일상을 세심히 살피고 낯설게 응시하는 게 예술의 태도가 아닐까. 이제 실패를 살아내고 싶다."p.32


<일렁이는 음의 밤>은 글쓰기를 향한 열정과 분투가 음악을 통하여 해소되고 깊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를 쓰며 사는 일은 녹록지 않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는 꿈이자 생활이기에, 저자는 흐르는 선율 속에서 멈춰 있던 문장을 밀어낼 힘을 얻는다. 저자가 소개하는 음악의 가사들도 왠지 모르게 시적이며 저자의 심경을 더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저자만의 고유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 산문 자체가 섬세하고 낮은 톤의 울림이 있는 분위기의 음악같다. 현실 앞에 흔들리는 예술가의 뒷모습과 같은 씁쓸함도 풍기지만 거기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도 엿볼 수 있어 매우 입체적이고 읽을 맛이 난다. 작가와 같이 그에게 생기를 불어준 음악을 들으며 그의 방황과 불안에 공감하다가 그 너머에 가닿은 다른 관점과 지점에 머물러 보면 어떨까.


"그럴 듯한 것을 쫓아 삶을 완성하고 싶었다. 주어진 관문들을 넘고 넘어 근사한 누군가가 되고 싶었다. 이름을 얻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되는 것임을 뒤늦게 알았다. 이제 다른 누구도 되고 싶지 않다. 그저 단 한 명을 위해 노래하고 싶다. (...) 나를 살게 하는 것은 결코 '박제된 정답'이 아니다. 길을 헤매다 지쳐 쓰러졌을 때 홀연히 나타는 길이 있다. 그 길의 끝에는 네가 있을 것이다." p.79-80


"모두가 떠난 자리에서 노래는 시작된다. 누군가 있었으나 이제는 없는,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하찮고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곳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모든 이야기는 부재의 그림자다. 그 그림자들이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 걸까. 앞을 내다보는 게 부질없이 느껴질 때면 바다에 가 파도를 바라본다. 밀려오는 물결을 가만히 지켜본다. 어떤 미래가 닥쳐올지 알 수 없다. 단지 삶은 미지에서 미지로 가는 여정일 것이다. 새로운 시간이 오고 있다."p.131-132


**출판사 제공 도서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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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치매에 걸린다 - 두려워 말고 가볍게 노후를 즐기자
와다 히데키 지음, 김현정 옮김 / 라라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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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치매에걸린다 #와다히데키 #라라출판 #서평단

일본의 치매 전문의사 '오나리 히사오'의 <누구나 치매에 걸린다>는 치매를 '극복하거나 치료해야 할 질병'이 아닌 장수 시대에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으로 재정의한다. 저자는 치매 환자를 억지로 교정하거나 현실로 끌어들이려 하기보다, 그들이 머물고 있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공감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치매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내려놓고 이를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때, 환자와 가족 모두가 존엄성을 잃지 않고 평온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먼저 치매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는다. 치매에 걸렸다고 해서 당장 큰일이 나는 것이 아니며 곧바로 불행한 삶으로 어이지는 것도 아니다. 치매가 심해지더라도 약물 치료나 병원 입원 등 다양한 방법이 있으니 처음부터 겁을 먹을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이러다가 치매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비관적인 생각과 불안에 사로잡히는 것이 건강에 제일 좋지 않다"라고. 치매에 걸렸다고 당황하지 않아도 되고 치매에 걸려도 관리하면서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치매에 걸리면 불행할 것이라는 생각에 기저에는 가족에게 고통을 준다는 거정과 불안이 있다. 그래서 치매에 걸린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말을 쉽게 하곤 한다. 특히 자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런 것 같다. 긴 병에 효자 없고 특히 치매는 돌발적인 상황을 포함하고 있어 긴장도가 더 크다. 하지만 저자는 "주변에 피해를 준다고 한다면 삶의 가치가 없는 것일까."라고 묻는다.

"더욱이 노인은 지금까지 일하고 세금을 내며 사회에 이바지해 온 존재다. 졸저 <어차피 죽을 거니까>에서도 밝혔듯이 누구나 살아오면서 사회로부터 도움받아왔기에 인생의 마지막에는 당당히 도움받을 권리가 있다. 치매에 대한 이해 부족은 결국 "안락사해 달라"는 말까지 나오게 하는 무서운 병이라는 인식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고령자에 대한 차별의 뿌리가 되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p.81-82

치매는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이다. 오해와 편견이 더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불러일으키는 현실을 직시하고 '치매가 걸려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책과 제도 마련을 위해 힘을 써야 할 때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지역 사회 안에서 치매 노인이 일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치매 진행을 늦추는 데 있어 결정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p.65

**출판사 제공 도서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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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보다 예술 - 세 여자의 예술 이야기
이운진.김윤선.강미정 지음 / 소월책방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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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보다예술 #이운진 #김윤선 #강미정 #소월책방

<로맨스보다 예술>은 세 명의 시인이 예술을 사랑하며 삶의 위기를 극복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밑줄이 너무 많아서 어떤 문장을 옮겨야 할지 고민스러울 정도로 읽는 내내 행복한 시간이었다. 시인들의 산문을 좋아하는 이유다. 나도 알 수 없었던 감정의 결이나 당황스럽고 민망했던 상황들이 선명하고 부드러운 표현으로 다시 해석된다. 그때마다 치유와 회복의 순간을 맞이하며 심호흡을 한번 하고 나면 뭔가 정돈되고 이전과 다른 내가 된 것 같다.

등단한 시인이고 책도 어러 권 출간한 작가의 삶이지만 문장 곳곳에 느껴지는 생활감은 보통의 인생과 비슷하다. 이들이 솔직하게 드러내는 실패와 좌절, 아쉬움과 두려움, 막막함과 주저함에서 같이 공감하고 해소가 된다. 그들이 꼽은 여러 예술 작품을 찾아보며 함께 울고 웃는 시간을 보낸다. 그들과 다른 나의 서사 속에서 이 작품들이 다시 살아나고 움직여 나를 들였다 놓았다 하도록 내버려둔다. 모처럼 오랜만에 역동적이고 의미 있는 독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 하여 고흐의 <슬픔>을 마주하는 순간 간신히 막고 있던 둑이 무너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돼가고 있는 듯해서 잔뜩 겁먹은, 열아홉의 내가 그림 속에 있었으니까. 그때의 나를 돌이켜보면 위로와 손길이 필요한데도 그 무엇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사람이 보인다. 거친 태도를 방패처럼 두르고 나약함을 숨기려는 한 사람이." p.32

"삶은 이런 것일까.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운명과도 기어이 함께 살도록 만드는 것이 삶일까. 틀림없이 슬픔은 여기가 끝일 거야, 하고 생각할 때마다 다른 일이 계속 일어나는 게 삶인 걸까. 아픈 시절을 아프게 통과하는 앤을 보며 생각했다. 사람이 크는 것은 어려움과 고통을, 힘든 문제들을 어떻게 대면하고 해결하고 넘어가느냐에 달린 것이라고. 영혼의 어두운 밤에도 다만 바른 길로, 선한 선택을 해야 한다고." p.61

"모든 것이 평범하지만 삶이 걸작이 되도록 살아낸 이들. 특별하려 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한 존재인 당신들. 그들의 삶에서 피어나는 생생한 미감이야말로 예술이라는 이름에 부족함이 없다는 지당한 결론에 닿아서 흡족했다."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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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쓰다 : 중등 1
정은주 지음 / 쥬쓰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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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쓰다 #정은주 #쥬쥬북쓰


수많은 필사책 중에 제일 마음이 끌렸다. 색다르고 기발하다고 느끼면서 무척 반가웠다. 수학을 어려워했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필사라는 방식으로 접근했다면 좀 더 수학과 친해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진학 후 수학과는 아무런 연고 없이 지내다가 한 독서 플랫폼에서 일반 성인을 대상으로 수학 문제집 푸는 모임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수학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수학 개념을 이해하며 문제를 천천히 푸는 것이라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욕심 같아선 바로 등록하고 싶었지만 읽고 싶은 책들이 쌓여 있어서 그러지 못했다. 


대신 아이들이 모르는 수학 문제를 가져올 때 남다른 마음가짐으로 대했다. 그전까지는 좀 귀찮아하면서 얼른 답을 찾기만 했다면 나도 연필을 손에 쥐고 문제를 같이 읽으며 천천히 해결해나갔다. 가끔 답이 안 나오거나 모를 때도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과정 속에서 충분히 고민하며 새로운 자극과 감각을 살짝 경험했기 때문이다. 


<수학을 쓰다> 제목을 보자마자 나의 뇌가 갑자기 환해지는 듯했다. 책표지와 내용, 목차, 글씨 모양 등 기존의 책들과는 구별되는 아름다움이 있다. 색채와 제본 형식도 개념을 이해하고 천천히 필사하기 위해 꼼꼼히 신경 쓴 책이다. 어렸을 때 힘들게 배웠던 익숙한 수식과 문자에도 그저 문학작품처럼 다가온다. 수학이라고 할 때 느끼는 벽과 고정관념, 방어적 기제를 내려놓게 만든다. 


어떤 내용물이든 담긴 그릇의 역할도 한몫하는 것 같다. 빡빡한 글씨와 문제들이 가득했던 다른 수학 책과 달리, 간결하고 부담 없는 길이로 핵심 내용을 보기 좋게 담아냄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수학 공부를 절로 하고 싶게 한다. 내가 뒤늦게라도 수학의 묘미를 느껴보면 어떨까. 곧 중1이 되는 아들과 5학년, 3학년이 될 아이들을 위해 고른 책이지만 나를 위해 사용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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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지 않고 사랑하는 법 - 원샷한솔 가족 이야기
김한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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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의 기억은 내 현재의 안녕을 갉아먹지 못한다." p.189

김한솔 <후회하지 않고 사랑하는 법>

김한솔 저자는 현재 30대 중반, 시각장애인이자 토리라는 반려견을 키우는 160만 유튜버이다. 그는 부모님의 이혼과 두 명의 새 엄마, 아빠의 갑작스런 죽음을 겪으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5학년 때 큰아빠와 큰엄마 품에서 안정감을 찾았지만 고등학교 때 갑작스럽게 시력을 잃게 된다. 절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큰아빠와 큰엄마의 사랑의 힘이 컸고 시력 대신 다른 주어진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잃지 않았던 태도가 큰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반려견 토리의 아빠가 되는 과정이 무척 눈물겨웠다. 많은 우려와 걱정 속에서 끊임없는 노력과 반복으로 토리의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간다. 그 마음에는 버려진 자신을 사랑과 애정으로 키워준 큰아빠와 큰엄마, 그리고 여러 이웃에 대한 감사함이 컸다. 자신도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고 사랑을 주고 싶었다고 한다.

눈은 보이지 않지만 사랑에 눈을 크게 뜬 자. 나는 그가 이렇게 느껴졌다. 평범한 사람도 갈 곳 없는 반려견을 받아들이고 키우는 일이 쉽지 않는데 그는 자신의 부족함이 걱정되었을 뿐 토리를 기꺼이 품에 안았고 고생과 어려움을 자처하는 모습에서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일이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 안내견은 보호자를 안내하는 역할을 아무래도 많이 하게 되고,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게 더 행복한 사람이었다. 편리하게 만들어진 결과를 누리는 것보다 고생스럽더라도 함께 만들어가는 여정에 더 큰 의미와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 여정에 뜻밖의 난관이 따른다 해도 그만큼 기대할 행복도 늘어나는 거니까, 조금 불편하더라도 함께 걷는 길을 택하고 싶었다." 112쪽

가끔 저자는 과거의 슬프고 외로웠던 기억이 떠오른다고 한다. 한동안은 우울해지고 어두워지기도 했다. 이제는 더 이상 현재의 안녕을 해치는 일이 없다. 평범한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인지 알기에 충분한 현재에 집중하고 누리고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불행한 과거가 더이상 현재의 안녕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나도 오늘의 일상에 만족하며 누리는데 마음을 모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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