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
강지나 지음 / 돌베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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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강지나, 돌베개, 2023)는 25년 경력의 교사인 저자가 10년 동안 빈곤층 청소년들의 삶의 여정을 관찰하고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가난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복지와 교육 등과 관련해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정책을 제안한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직장을 가진 어른이 되었어도 여전히 관계 맺기가 어렵고, 부모의 빚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여러 일을 전전하는 등 빈곤이 대물림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 성장한 청년들의 솔직한 목소리는 안쓰럽기도 하고, 나 자신의 모습과 겹쳐져서 가슴이 시리기도 했다. 나와 가장 비슷한 상황에 놓였던 학생의 인터뷰는 한 문장도 빠짐없이 내 이야기 같았다. 자주 다투는 부모님, 무관심과 대화 단절 속 무기력한 분위기. 가난에 대한 수치감과 아무리 발버둥 쳐도 엄마 아빠처럼 살게 될 거라는 패배주의적 생각에 사로잡힌 채 보냈던 나의 20대가 떠올랐다.


"돈이 많지 않지만 화목하고 평범한 가정." 이것은 빈곤층 청소년들을 인터뷰하면서 내가 가장 자주 들은 말이다. 이들은 모두 가정 내에서 어느 정도의 가난을 경험했지만, 그것이 반드시 불행과 연결된다고 보지 않았다. 가난해도 가족 간에 충분히 화목하고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p.109)


나도 한때 이렇게 생각했다. 돈이 없어도 화목할 수 있는데 부모님은 왜 저러시나, 하고. 돈도 없는데 화목한 분위기도 만들지 못한다며 부모님을 이중 삼중으로 원망했었다. TV에 나오는 가족처럼 거실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으며 대화하는 모습만이 행복한 가족이라고 여겼고, 그렇지 못한 우리 집은 불행하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화목하기 어렵다. 차라리 이 사실을 더 빨리 알았다면 부모님을 덜 원망했을 것이고, 내가 덜 불행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는 저자가 지적한 정상가족 프레임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가난한 가족일수록 가족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들이 취약하기 때문에 '비정상가족'일 가능성이 높고, 가난한 가족의 청소년들 상당수가 바로 여기에 속한 약자들이다. 정상가족의 배타성이 높은 사회일수록 가난한 가족의 청소년들은 소외감과 열패감을 경험한다. (...) 다시 말해, 정상가족이 아니었을 때 경험한 편견 가득한 시선과 차별, 배타성이 가난한 청소년들의 마음에 비수를 꽂은 것이다." (p.65-66)


어떤 학생에게는 정상가족을 향한 열망이 자신의 삶을 더욱 열심히 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이 또한 정상가족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태도일 수 있다. 여전히 정상가족의 범위에서 벗어난 청소년들이, 가뜩이나 어려운 형편에다 더 차갑고 차별적인 시선까지 받아야 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 정상가족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한부모 가정이나 조손 가정, 비혈연 가족 등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긍정적이고 현실적인 논의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 책은 특히 가난의 의미를 다층적이고 심층적으로 다룬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가난은 너무 단편적이다. 가난은 단지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태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신체·정신적 건강과 기본 교육 기회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대학에 가거나 제대로 된 직장을 가져도, 어린 시절 겪었던 가난과 학대의 트라우마는 시시때때로 발목을 잡는다. "이제는 좀 벗어나도 되지 않느냐"며 쉽게 말하지만, 정작 당사자에게는 그 말이 얼마나 어려운 주문인지 잘 모른다. 가난하다는 사실 자체가 사회적 낙인처럼 여겨지고, 게으르고 부족한 사람처럼 취급받기도 한다. 이런 오해와 부정적인 인식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즉, 생존 자체에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합리적 판단을 하고 미래 지향적 사고를 할 에너지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그래서 빈곤층이 전략적 사고나 내면의 강인한 힘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지현의 '도움 요청'과 '성찰하는 힘'은 가난한 상황 속에서도 에너지를 생존에만 다 쏟아붓지 않으면서 어떻게 자신의 사회적 존재 가치를 보듬고, 어떻게 자아의 욕구를 발견할 수 있는지 하나의 훌륭한 전략을 보여준다. 이는 빈곤 정책을 고민할 때 단순한 경제적 지원이나 기회 제공을 넘어서서, 다른 차원을 고려해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준다."(p.99-100)


저자는 여러 사회적 자원을 활용해 현명하게 청소년 시기를 보낸 사례를 소개한다. 그 청소년은 가난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았고, 가난의 원인에는 사회적 모순과 구조적 한계도 있다는 점을 인식했다. 위축되거나 무기력해지지 않고 자존감을 지키며 학교생활을 하고, 친구 관계도 무난하게 유지했다. 몸이 불편하지만 헌신적인 어머니 덕분에 돌봄 센터나 복지제도 등을 통해 단순한 생존을 넘어,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꿈을 키우는 등의 욕구도 충족할 수 있었다. 이 바탕에는 주변 어른들의 역할도 컸다. 적극적으로 상담을 요청하는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어른들이 있었다.


결국, 가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한 빈곤 정책뿐만 아니라, 이를 실제로 수행하는 어른들의 태도와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 제공 도서,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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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말하는 사람
안규철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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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규철. 예술가이자 작가, 미술원 교수였던 분. <그림자를 말하는 사람>(현대지성, 2025)책을 읽자마자 폭풍 검색하여 이 분의 모든 책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이 책 처음 시작부터 마지막 단어 하나까지 모든 문장이 나에게 스며들었다. 군더더기, 중언부언 전혀 없고 어렵지 않는, 산뜻하고 깔끔한 문장들의 향연. 다채롭고 신선하면서도 과함이 없고 아주 매끈하다. 간결하고 밀도 높은 문장 안에 부담스럽지 않게 음미할만한 내용이 알맞게 놓여 있어 배려받는 느낌도 든다. 적당하게? 지적 예술적 생활적 자극을 받아, 읽는 내내 은은하게 행복했다.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을까. 30년 넘게 예술 활동을 하시면서 부단히 읽고 썼을 게 분명하다. 


<그림자를 말하는 사람>은 생활 속 여러 사물 안에 담긴 속성을 작가 특유의 감성과 통찰을 담아낸 책이다. 너무나도 익숙한 사물에 대한 재조명은 또다른 차원에서 일상과의 창조적인 연결 고리를 만들어낸다. 얼마나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고 탐색했을까. 문장 마다 탐복했지만 어쩌면 나는 작가의 삶의 태도와 사유의 흐름에 매혹되었는지도 모른다. 화려하고 빛나보이는 것들을 추구하기보다 작고 소소하고 보잘 것 없는 사물에 집중하여 예리한 시선이 담긴 단단한 사유를 살포시 흘려 둔다. 강요하지도 않고 강조하지 않는 그의 태도도 너무 좋다. 


"잠은 매일 작은 용량으로 복용하는 죽음이다. 인정머리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삶의 손아귀에서 풀려나는 달콤한 마법의 외출이다. 수면제 과다 복용이 전통적인 자살법이듯, 잠은 삶과 죽음 사이를 잇는 가장 가까운 통로다. 매일 밤 우리는 이 작은 죽음의 품에 안겨서 얼룩진 낮의 악몽을 씻어내고 하얗게 빛나는 이마를 들어 새날을 맞이한다. 기적이 따로 없다." (p.173)


이 글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하얗게 빛나는" 나의 이마를 쓰윽 문질러본다. 기적 같은 하루을 엳어주는 잠의 효능을 적확한 문장으로 직시하니 순간 내 인생이 또렷해진다. 사소한 물건 하나에 담긴 통찰이 나에게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다독이는 듯하다. 이런 문장들이 이 책에는 백 개가 넘는다. 여기에 다 적지 못하는 게 아쉽고 또 아쉬울 따름이다. 너무 과한 칭찬은 반감을 일으킬 수도 있기에 여기서 그만해야겠다. 내가 읽은 책 중에 유일하게 밑줄도 플래그 하나 없다. 어떤 문장을 선택해야할지 몰라서. 모두가 밑줄이여서. (너무 과한가^^;)


나는 이 책을 읽고 그림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림자 같은 어둡고 음침한, 눈에도 띄지 않으며 누구도 알아봐주지 않는 것들에 일말의 관심도 없었다. 그것의 역할과 의미 따위가 무슨 대수인가. 당장 눈에 보이고 쫓아가야할 것들이 천지인데. 하지만 그림자가 나의 일부이며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것이며 "나를 생생한 실체로 떠오르게 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우리가 실제로 그리는 것은 석고상 자체가 아니라 그 위에 드리워진 그림자이다. 밝은 회색에서 가장 짚은 어둠 사이로 풍부한 음영의 스펙트럼을 섬세하게 구분해 묘사함으로써 화면 위에서 석고상이 생생한 실체로 떠오르게 하는 것이다. 그림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국어사전에서 꽃을 설명하는 글에는 꽃이라는 말이 들어갈 수 없다. 꽃 주위의, 꽃이 아닌 모든 것을 이야기함으로써 꽃이 저절로 드러나게 해야하는 것이다... 사물의 뒷모습을 말하는 것은 사물의 그림자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 회색의 다채로움을 말하는 것이다."(p.4-5)


그림자를 말하는 사람, 안규철. 이분의 책을 더 읽어봐야겠다. 그 회색의 다채로움을 더 경험하다보면 나도 그림자를 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도서제공,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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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나는 영국 동화 - 곰 세 마리부터 아기 돼지 삼 형제까지 흥미진진한 영국 동화 50편 드디어 시리즈 3
조셉 제이콥스 지음, 아서 래컴 외 그림,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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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 평론가와 곽재식 소설가의 추천사 때문에 서평단 신청을 했다. "인생은 여정과 여정과 여정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우리에겐 언제나 이야기가 필요하다"(p.8)문장과 "영국 동화의 신비로운 맛을 느껴보고 싶은 사람"(p.11)에게 추천한다는 말에 끌렸다. 또한 항상 자기 전에 "이야기 해줘~"라고 요청하는 8살 막둥이에게 새로운 소스를 발견하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적극적으로 읽어내려갔다. 


익숙한 이야기도 있고 낯설고 새로운 이야기들도 있다. 어떤 이야기든 교훈이 담긴 주제와 다양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스토리가 읽는 재미는 더해준다. 우리나라와 다른 배경과 시대, 인물이 등장해도 왠지 결말을 알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고개가 끄덕여지고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해진다. 이국적인 일러스트에도 눈길이 머물기도 한다. 결국, 아이를 위한 읽기가 아니라 나를 위한 읽기였다!


<드디어 만나는 영국 동화>(현대지성, 2025)는 ‘영국의 그림 형제’라 불리는 조셉 제이콥스의 동화 50편을 엄선해 소개하는 책이다. 용기, 사랑, 욕망, 재미, 운명이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로 이야기를 분류하고, 각 동화의 핵심을 한 줄 속담으로 정리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의 검은 황소 -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 '세상 끝의 우물 - 제 복은 귀신도 못 물어 간다' '장미 나무 - 남의 눈에 눈물 내면 제 눈에는 피눈물 난다'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 아래 익숙한 한 줄 속담은 다양한 이야기 세계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한다. 


이 책은 동화가 단순히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본성과 사회의 이면을 담아내는 중요한 문화적 기능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잭과 콩나무>는 용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피리 부는 사나이>는 지나친 욕심이 부른 비극을 경고하며, <아기 돼지 삼 형제>는 성실함이 결국 보답받는다는 진리를 들려준다. 특히 한국 전래 동화와 닮은 작품들을 함께 소개하면서, 다른 문화 속에서도 비슷한 교훈이 반복된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이야기에는 시대적, 지역적 경계를 넘어서는 보편적인 지혜를 담고 있음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막내 윈드는 아버지의 왕위를 물려받았고 그 후 그들은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까지도 밤버러 성의 인근에는 흉측한 두꺼비가 눈에 띄는데, 그 두꺼비는 바로 사악한 마녀 왕비랍니다."(p.220)


대부분의 이야기가 권선징악, 해피 엔딩의 결말을 보여준다. 뻔하지만 윈드와 함께 모험을 했던 우리는 이 결과에 만족스럽다. 과거의 이야기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교훈과 메시지는 지금 우리 삶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강조도 놓치지 않는다. 다만 자주 '징악'의 대상이 '사악한 마녀 왕비'인지 질문을 하게 된다. 


*도서제공,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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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오후에는 철학이 필요하다 - 키케로부터 노자까지, 25명의 철학자들이 들려주는 삶, 나이 듦, 죽음에 관한 이야기
오가와 히토시 지음, 조윤주 옮김 / 오아시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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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오후에는 철학이 필요하다>(오아시스, 2025)는 나이 듦, 질병, 인간관계, 인생, 죽음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를 통해 25명의 철학자가 들려주는 통찰을 담고 있다. 잠 못 이루는 밤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나이 든 사람은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 질병과 죽음을 어떻게 마주할 수 있을까? 언젠가는 직면하게 되는 까다로운 질문들앞에서 철학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해답을 건넨다.

" 가장 큰 선은 물과 같다. 물은 선하고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으며 모든 이가 꺼리는 곳에 머무르므로 도에 가깝다 -<도덕경> " (...) 나이가 들면 완고해지는 데다 주변에 어떤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자기 경험에서 나온 의견을 이것저것 전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일부러라도 신경 쓰지 않고 사는 것이 피곤하지 않게 사는 비결이다. 젊은 사람과 사고방식이 다르더라도 실제 손해를 입는 게 아니라면 자신은 물이라고 생각하고 흘러보내는 것이 좋다."(p.96-97)

어렵게만 느껴지는 철학책의 핵심 메시지를 쉽고 간결하게 소개하고 있다. 어디서 들어본 철학자와 책이지만 그 두께와 무게감에 접근하기 어려운 적이 많았는데 이 책은 그런 어려움을 해소시켜준다. 원문이나 해설서 등 여러 구절을 인용하여 메시지의 정수만 가려내서 이해 쉽게 표현하고 있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노년>, 와시다 기요카즈의 <노년의 공백>, 메를로 퐁티의 <지각의 현상학>,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전체성과 무한> 등 부담스럽지 않게 다루고 있다. 무거운 질문 앞에 무너지기 보다 자기만의 해답을 찾아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주는 듯하다. 철학이 어렵고 무거운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삶을 지탱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철학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하다. 문제의 본질을 생각해 보는 일, 그간 당연하게 생각했던 우리의 관점을 바꿔 보는 일은 곧 철학이 요구하는 발상이다."(p.6)

이 책은 노년의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안한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생산주의 관점에서만 판단하는 노년의 개념을 전복시켜 '약함', '불가능함'과 '무위'와 같은 개념을 활개치도록 만들어야한다고 강조하는 점이다. 이는 와시다 기요카즈의 <노년의 공백>에서 주장하는 내용인데, "누구나 생산의 속박에 벗어날 수 있을 때 비로소 노년은 더이상 문제가 아니게 된다"(p.61)고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노년은 젊음과 생산을 기준으로 판단하며 늙음과 무능으로만 보고 아주 큰 문제로만 인식했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노년을 특별한 것으로 정의하려는 순간, 설사 그것이 긍정적인 뉘앙스를 띠고 있다고 해서 이미 순수하게 노년을 누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불온한 공기가 감돌기 시작한다. 바꿔 말해서 그런 식으로 노년을 특별하게 보는 것을 멈출 수 있다면 노년은 문제가 되기는커녕 사회가 만든 모든 차별을 극복할 계기로 작용하며 우리 사회에 복음을 전하는 종소리가 될 것이 분명하다."(p.62)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은 부분은 레비나스의 타자론을 다룬 '나와 다른 존재와 관계 맺는 법' 챕터이다. 인간관계 문제는 지금도 나의 발목?을 잡고 있고, 앞으로 계속 나이가 들어 죽기 직전까지 따라올 것 같다. 왜냐면 인간은 죽는 그 순간만 온전히 혼자일 뿐, 매 순간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인간으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문제라며 넘어가고 싶지만 나는 항상 나와 너무 다르면 힘겹고 나(의 단점)와 너무 비슷하면 괴로워한다. 이런 나에게 레비나스는 이렇게 말한다. "타자는 절대적으로 다른 것이다. 즉 '나'에게 포섭되지 않은 존재"(p.137)라고. 나에게 포섭되는 존재는 사물 밖에 없다. 타인에 대해 다르면 다르다고 불편해하고 같으면 같다고 싫어하는 태도는 타인을 존중하지 않고 사물 취급을 하는 것과 동일하다. 이는 전체주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비슷하다는 레비나스의 경고가 섬뜩하게 느껴졌다.

인생의 오후 뿐만 아니라 오전과 저녁, 밤까지 모든 삶의 여정에는 철학이 필요한 게 아닐까.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 다시 질문을 던지고 본질적인 면을 들여다보며 독특한 시선으로 재해석하는데 철학자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큰 도움을 준다. 이 책은 어렵지 않게 철학의 핵심 메시지를 접하고 적용하게끔 이끌고 있다. 철학 하면 머리부터 아팠던 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페이지가 술술 넘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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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과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 기다리고, 의심하고, 실패하고 그럼에도 과학자로 살아가는 이유
이윤종 지음 / 어크로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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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과학을사랑하지않을수있겠어

#어크로스

#이윤종


<어떻게 과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어크로스, 2025)은 이윤종 방송 작가가 대한민국 과학계를 이끄는 과학자 8명과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다. 고생물학자, 우주물리학자, 실험물리학자, 과학기술학자 등 각자의 분야에서 치열하게 연구하는 이들은, 과학을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인생을 걸어볼 만한 여정이자 세상을 통찰하는 도구라고 강조한다. 과학이 단순한 지식을 넘어 새로운 시선을 열어주는 힘이라는 사실도 삶으로 보여준다. 과학이 낯선 이들에게도, ‘과학하는 마음’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더욱 넓고 깊게 조명하는지를 섬세하게 들려준다. 


"노벨상이나 인류의 지적 진보를 이끄는 연구도 좋지만,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과학을 실천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거든요. 과학이란 사물을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고, 그 말인즉슨 단순히 믿는다는 것에서 벗어난다는 뜻이죠. 누가 어떤 이야기를 했을 때 진짜가 맞는지 의심하고 확인하고 검증하는 것이 과학의 시작인 거예요. 한번은 시골의 작은 도서관에서 열리는 화학 강연에서 달고나 커피와 왕갈비통닭 연구를 소개했는데, "과학이 나와는 별개의 세상인 줄 알았는데, 주의의 사소한 것에도 과학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는 쪽지를 받고 정말 반가운 마음이 들었어요."(p.96-97)


저자는 과학자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통해 과학이 어떻게 삶의 의미를 확장하고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지 탐색한다. 각 분야의 과학자들의 연구와 활동을 드려낼 수 있는 저자의 좋은 질문에 과학자들은 솔직하고 담백한 내용으로 화답하고, 또 이어서 심도 있는 질문과 구체적이고 세밀한 대화가 이어진다. 대화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사진과 자료를 통해 독자는 생소한 분야라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1980년대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공룡 발자국이 발견되기 시작했어요. 그걸 보면서 발자국이 있으면 분명히 뼈도 있을 텐데 왜 아무도 관심이 없지? 내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한편으론 이런 바보 같은 생각도 있었어요. '석사 때 가장 조그만한 거 했으니까 박사 때 가장 큰 거 한번 해보자'"(p.149)


가장 기억하고 싶은 과학자는 황정아 우주물리학자 이다. "인공위성을 개발해 띄우는 일에 인생과 경력을 걸었"(p.47)던 그녀는 2023년 5월 누리호에 군집 큐브위성 도요샛 4기를 탑재하는 일을 수행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뛰어난 전문가이며 화려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여성이 흔지 않는 분야에서 능력과 실력을 인정받는 일은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게다가 세 아이 엄마이면서 일하는 여성 과학자로서 생존하느라 "피 터지게 살아야"했다. "일하는 여성으로서 끝까지 내 자리를 지키며 우리 사회가 좀 더 합리적인 사회가 되도록 이 자리에서 할 수 잇는 일을 하는 것이 아이들을 위한 길이라고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죠."(p.69)


그녀의 행보는 현재 22대 국회의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좀 더 합리적인 사회가 되도록 하는 일의 연장선이 아닐까 싶다. 또한 돈이 되지 않더라도 순수하게 알고 싶은 마음에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정책과 제도를 추친하고 있으리라 예상된다. 왜냐하면 과학 자체의 어려움보다 연구비를 확보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오래 걸리는 일이라는 것을 수없이 경험했고, 우리나라 '연구개발' 개념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연구만 하고 논문만 쓰면 안 되고, 뭔가 상품을 개발하고 만들어서 그것이 얼마만큼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지는 설명할 것을 과학자들에게 강요한다고요. 무슨 말이냐면, 우주 환경을 이해하고 싶다거나, 오로라가 왜 생기는지 알고 싶다거나, 우주의 나이는 몇 살인지 알아내는 일에는 연구비를 받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무조건 어떻게 도착할지만 중요하게 생각하죠. 그런데 미국 같은 우주 선진국은 그게 아니죠." (p.57)

"이제 나는 내가 원래 알던 우주가 아니라, 또 다른 우주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내게 익숙했던 사람들 규칙들과 너무 다른, 완전히 새로운 세계입니다. 이 새로운 우주에서 나는 또다시 나만의 별을 만들고 있습니다. '희망'이라는 이름의 별을."(p.75)


황정아 물리학자처럼 각자의 우주에서 열정을 쏟으며 탐구하며 자기만의 희망을 만들어가는 과학자들을 알게 되어 반가웠다. 일상 깊숙히 스며든 화학 이야기도 흥미로웠고, 내가 밟고 서 있는 땅 아래에 태고적부터 살아왔던 생명의 흔적이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가늠할 수 없이 멀리 있는 우주를 향해 인공 위성을 쏘며 길을 만드는 작업이 얼마나 의미있는지 알게 되었다. 


또한 나 같은 독서가에게 유익했던 부분은 각 챕터 마지막에 과학자들이 추천하는 인생책 두 권을 소개한 페이지이다. 지금의 모습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했던 과학자들의 인생책 목록과 소감도 과학자들의 인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인생의 방향을 선택하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위해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할 때 책의 역할이 크다는 것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남극의 탐사지와 기지 사이를 오가는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의 도서관에서 이 책을 만났다. (...) 내게는 내향인을 위한 자기계발서로 읽혔다. '콰이어트'라는 책의 제목처럼 혼자 조용히 몰입하는 시간을 좋아한다. 그런 면에서는 나도 내향인이 맞는 듯하다. 자연 속에 고요히 있는 것도 좋지만, 노트에 주상도를 세밀하게 그려 넣는 시간 또한 몰입할 수 있어 좋다. 주상도를 그리는 일은 요즘에야 얼마든지 컴퓨터로 가능하지만 여전히 수기를 선호하는 이유다."(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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