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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물일곱, 2등 항해사입니다 - 오늘을 견디는 법과 파도를 넘는 법, 2019 청소년 교양도서 선정
김승주 지음 / 한빛비즈 / 2019년 9월
평점 :
<나는 스물 일곱 2등 항해사입니다>
이제 세상에 여성이라고 못할 일은 없지만 그래도 이 책의 제일 큰 특징은 여자 항해사의 글이란 점이다. 사실 마도로스 남자 항해사 이야기는 흔하다. 이 책 제목도 저자가 남자였으면 평범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27세 여자 항해사의 글이라서 빛나는 이야기다.
세상에 작가가 아니라도 여러 직업의 사람들이 이런 에세이를 쓴다. 그래서 훌륭한 글이 아니라도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을 대신 살아본다는게 에세이의 매력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젊은 여자 항해사의 에세이다.

이 책에 엮인 글들은 대부분 항해사라는 일을 하면서 경험하고 느낀 ‘오늘을 견디는 법고 파도를 넘는 법에 대한 이야기’다. 조금은 진부한 듯한 인생이야기 일수도 있고 전문 작가가 아니지만 글솜씨는 꽤 자랑할 만한 정도였다.
배와 바다, 파도, 항해를 우리 인생에 빗대어 풀어내는 이야기들이 재밌었고 젊은이의 열정과 패기가 옅보여서 더 좋았다.
저자는 대학을 졸업한 후 스물네 살의 나이에 바로 3만 톤의 배를 운항해야 한다는 압박감, 책임감과 마주했다. 그 무게 앞에서 두렵지만 맹렬히 맞섰다. 두렵지 않다면 도전이 아니라는 멋진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한번 배에 오르면 6개월은 꼼짝없이 갇혀서 생활하고 1,000일이 넘게 배를 몰면서 매일 몰려오는 시련과 외로움은 오롯이 혼자 이겨내야 했고 누군가에게 기댈 수도 없었다. 바다 위 삶이 왠지 생소할 것 같지만 극단적 환경에서 매일 ‘혼자’를 견뎌야 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결코 낯설지 않다. 사실 우리도 드라마 같은 극적인 시련보다 매일 닥쳐오는 공허에 더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외로움과 난관을 억지로 극복하지도, 또 애써 무시하며 피하지도 않는다. 맘껏 속상해하고, 힘들어하고, 외로워하다가 자신만의 온도와 속도로 적절하게 넘겨낸다. 어디까지 버틸 수 있고, 또 어디까지 나아가야 하는지 자신에게 묻고 또 물으면서 묵묵히 헤쳐나갈 뿐이다. 유독 특별하거나 강인해서가 아니다. 조금 느리고 서툴러도 자신만 믿으면 언젠가 이 파도가 지나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하나의 정답이 아닌 여러 개의 해답을 건네주는 바다 위의 삶은 땅을 밟고 있는 이들에게도 큰 용기를 줄 것이다.

여러가지 단어, 화두를 두고 적어낸 글들중에 따로 챙기고 싶은 구절들이 꽤 있었다.
방향과 목표
고립된 상황에서도 우리는 방향과 목표, 자기 자신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계속 상기시킨다.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 그녀를 보면 주어진 오늘을 잘 견뎌낼 용기를 얻는다.
자기확신
무작정 힘내라는 말 대신 눈앞의 것들을 하나씩 넘으면 된다는 이야기는 무리하지 않고도 삶을 극복할 수 있으리란 확신을 준다.
도전
단언컨대, 어떤 일에 도전할 때 두렵지 않다면 그건 도전이 아니다. 도전의 크기는 반드시 두려움의 크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도전하는 자는 두려워하는 자이고, 두려움은 의지만으로 극복할 수 없다. 스스로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될 환경 속으로 자신을 던질 때 비로소 극복할 수 있다.

유연함
정답은 없다. 오른쪽으로 피하든 왼쪽으로 피하든 잠시 속도를 줄였다 가든 충돌을 피하기만 하면 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위험이 감지된 순간 결정을 빨리 내리는 것. 일단 결정을 내리고 행동으로 옮기면 길은 계속 이어져 있고, 이내 다음 갈 길이 보인다.
의지
흔들리는 배 안에서 고정되지 못한 것은 오로지 사람뿐이다. 흔들리는 배 안에서도 이제 잠을 청할 수 있다. 흔들릴 때 사람은 더 준비하게 되고 강해진다. 바다가 흔들어댈수록 우리의 극복 의지는 더 강해졌다.

행복
슬픔의 반대말은 행복이 아니라 일상이 아닐까. 일상에 늘 행복이 깃든 것이 아니라, 행복은 찰나의 순간 배어 나오는 일상의 선물 같은 것이다. 행복과 일상의 비중을 따지자면 1:99쯤 되지 않을까.
실행력
일단 뭐든 해보면 결국 잘된 일이 된다. 그러니까 무언가 고민하기 전에 일단 해보면 된다.
최선
목표가 없어도, 꿈이 없어도 좋다. 그리고 초조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저 눈앞에 놓인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일이 보였다. 그때 바로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도.
용기
일단 용기 내어 벽을 넘는 순간이 중요하다. 상상 너머의 세계에 일단 발을 들이기만 하면 해볼 만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에게 처음인 길일지라도 누군가는 비슷한 길을 걸었다. 결국 모두 할 수 있는 일이다. 두려움을 박찰 수 있는 조금의 용기. 그거면 충분하다.
시련
도망칠 수 없었기에 할 수밖에 없었고, 일단 부딪히니 해냈다. 내가 생각한 한계를 넘었다. 또다시 시련에 부딪히고 또 넘었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자신감이 생겼다. 중요한 건 시련의 크기가 아니었다.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용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