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기담 수집가 헌책방 기담 수집가
윤성근 지음 / 프시케의숲 / 2021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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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헌책방을 운영하는 사장님이다. ( 원래 컴공전공 it업계에서 일하셨다고 한다 ) 헌책방을 운영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책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사람들이 오래된 책들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도 개정판에 신간이 나와있음에도 어느 년도에 출판된 책을 고집하는 이유.
첫사랑의 그녀, 아버지가 책 앞에 써 주신 글귀, 친구가 준 그러나 읽지 못하고 잃어버린 책, 그 시절이 그리워 찾게 된 그 해의 출간본 책들.

그러고 보면 책이란 정말 묘한 사물이다.
사물로서의 가치, 책 속 내용에서 얻게 되는 삶의 지침, 그리고 책으로 전하는 조금 수줍은 사랑도 있다. 어린 시절 분노하며 읽었던 책이, 나이가 들면 어느 순간 이해와 슬픔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커보이기만 했던 주인공들이 이젠 내게 너무 어린 소년같이 느껴지고, 혹은 겁쟁이처럼 한심했던 어른들의 모습에 나를 찾는다.

친구와 함께여서 더 좋았던 책, 나를 동굴에서 나와 햇빛 아래 서 있게 해 준 책, 병상에 누운 누군가에게 읽어주고 싶은 책, 내 마음을 대신했지만 버려진 책, 외면당한 책.
그렇지만 책은 책일뿐, 단지 책에 진심인 이들이 있을 뿐.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좋아할마한 책이다. 헌책방 사장님들은 어쩌면 책의 셜록홈즈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연이든 사연이 담긴 책이라면, 온 동네를 뒤져서라도 몇 년이 걸려도 찾아주는 저자의 이야기 속엔 책 냄새 뿐만 아니라 온정도 가득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난 어떤 책을 찾고 싶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80년대 초딩시절, 아버지가 지인들의 부탁에 못 이겨 사들고 오셨던, 계몽사 전집이나 삼중당 전집? 처음으로 용돈모아 샀던 안네의 일기?(이 책 덕분에 혹은 때문에 내 일기장들은 이름을 얻었다. 주로 왕자님들같은 이름이었는데, 언니들이 일기를 훔쳐보곤 놀리곤 했다. 일기 첫머리가 지그프리드 왕자님께 혹은 알프레드 후작님 이러면 웃기지 않겠는가. 거기다 왕자님께 쓰면서 뭔 떡볶이 먹고 친구랑 싸운 이야기란 말인가. 부끄럽다 진짜)

80년대에 맞춤법 규정이 바뀌면서 숱한 책들이 버려졌다. 그 때 함께 버려졌던 내 소중한 책들도 기억이 난다. 이미 그 옛날 강냉이로 승화해버렸지만.

여러분들은 찾고 싶은 책이 있나요.
절판은 아니지만, 그 시대 그 시절 내게만 의미깊었던 그 책, 꼭 그 해의 연도가 붙어있는, 그래서 그 시절의 추억이 꼬리표처럼 달려있는, 책갈피로 표시된 부분에서 청춘의 간지럼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책, 밑줄그은 문장에서 얼굴이 달아오르는 그런 책, 싸이월드 감성처럼 눈물이 번져 있는 책, 넘 야해서 이걸 누가 보면 어쩌나 싶어 혼자서 오래도록 들여다봤던 그래서 그 부분만 빛바랜 것 같아 괜시리 다른 장도 열심히 넘겼던 책.


( 이 책 읽음 헌책방순례하고 싶어짐. 그리고 북플에서 자주 만나는 로쟈님 이야기도 담겨 있음 )

"인생은 보다시피 그렇게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가 봅니다."
S씨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외우고 있었다. 이 문장 때문에 화가나서 책을 쓰레기통에 버린 일을 반성하는 의미로 똑같은 책을 찾아 이번엔 소중하게 간직하겠노라 다짐했다. S씨는 꽃과 우리 인생이 비슷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피고, 지고, 열매 맺고, 향기를 전하고……. 이 전부가 삶이 아니겠냐는 수수께끼 같은 얘기를 마지막으로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책은 예전 모습 그대로네요. 기억이 납니다. 수십 년 전 일들이요. 부끄럽던 제 생각과 행동도 이 책은 다 알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변한 건 접니다. 진짜 감옥에 있던 건 신영복 선생이 아니라 저였어요. 저 자신을 가둔 생각의 감옥에 갇혀 살면서도 부끄러움을 몰랐어요."
책방을 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가 찾던 책 한 권이 과연어떤 의미였을지 상상해봤다. 저 가방 속에 들어 있는 작은 책은 책이 아니라 얼굴조차 떠오르지 않는 잊힌 친구다. 젊은 시절 막연하게 꿈꾸었던 세상이며, 우주로 향해 나 있던 작은 창문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바벨이라는 거창한 이름은 붙일 수 없더라도, 오늘은 그만의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한동안 부끄러운 생각은 떨쳐버릴 수 있기를 바란다. 개정판이 나왔지만 일부러 초판을 찾는 이유처럼, 때론 오래된 친구가 더 속 깊은 위로를 해줄 수 있는 법이니까.

"세상이 완벽했다면, 장석주는 시를 쓰지 않았을 겁니다. 시라는게 존재하지도 않았겠지요. 이제야 알겠더라고요. 제가 머리로는 이시를 완벽하게 알았지만, 마음으로는 전혀 몰랐다는 사실을요. 그래서 이 책을 찾고 싶었던 겁니다. 이제부터는 마음으로 읽어보려고요."
낡은 시집을 손에 들고 책방 문을 나서는 L씨의 얼굴이 환하다.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의 얼굴은 늘 저렇게 깨끗하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온전한 사랑을 마음에 품은 따뜻한 표정이 부러웠다. 내게도 어느 날 그런 순간이 오겠지. 마음으로, 그리고 몸으로도 이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는 법을 알게 되는 날까지, 나는 시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계속 책이 가득한 이 가게를 지켜야겠다.

"집에 분명히 있는 책인 걸 아는데도 사는 일이 있습니다. 그 이유.
는 두 가집니다. 첫째는, 집 어딘가에 책이 있다고 기억으로는 확신하지만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경우입니다. 두 번째는 더 우스운경우입니다. 책을 갖고 있고 그게 어디에 있는지도 정확히 알고 있지만, 워낙 꺼내기 어려운 곳에 있어서 차라리 그 책을 다시 사는 겁니다. 물론 이 경우는 책값이 저렴하다는 단서가 있어야겠지요."
집에 책이 많다 보니 여기저기 제법 쌓여 있는 모양이다. 바닥은물론이고 책상 위, 의자에도 책을 쌓아서 앉을 자리조차 없이 해놓고 사는 사람을 여럿 봤다. 로쟈도 그와 다르지 않으리라. 그 속 어딘가에 작은 책 한 권이 들어 있다면, 책을 꺼내기 위해(로쟈는 이때 ‘발굴‘이라는 말을 썼다) 몇 시간에 걸쳐 그 모든 책더미를 들어내는 수고로움을 겪기보다 만 원 정도 돈을 쓰는 게 더 나은 거라는 얘기다.
이 말을 듣고 거기 모인 수강생들은 떠들썩하게 웃었다. 모든에 철두철미할 것 같은 로자에게 그런 느슨한 구석이 있을 줄이야.
책이 가득 쌓인 무더기 앞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허리에 손을 짚고 서 있는 로쟈라니. 그가 강의 때 자주 쓰는 말처럼 난센스‘ 같은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라 나도 웃었다. 하지만, 날마다 이어지는 강의에 몸과 마음이 다 지쳐 있을 걸 생각하면, 차라리 그런 방법을 택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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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덕 2021-12-20 0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헌책 방
삶의 정감을 느끼고자 종종 방문함니다.
다소 색바래고 손 때가 묻은 것이 새것보다 더 아음에 들어요.

mini74 2021-12-20 09:25   좋아요 0 | URL
삶의 정감 공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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