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로셀라 포스토리노 지음, 김지우 옮김 / 문예출판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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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논술시험때문에 올라온 서울.
아무래도 난 떠나야겠어~ 서울의 달 노래가 절로 나온다. 사람도 차도 너무나 정신없는 곳. 하 ㅠㅠ 길 찾기의 난이도는 거의 상급이다.
아이를 고사장에 보내놓고 읽기 시작한 책. 불안한 마음을 잠시 잊게 할 정도로 몰입한 책이다.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

예전 살아 남은 자의 슬픔, 시로 혹은 책 제목으로 접하는 순간 마음이 복잡해졌다.
주로 강자가 살아남으니 그래서 슬픈걸까. 혹은 뒤에 숨는 자가 야비한 자가 살아남으니 그래서 슬픈걸까. 야비한 자라면 오히려 살아남은 걸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을까.
친구들을 떠나보내며 어쩌지 못하고 어떠한 사정으로 살아남을 때, 그래서 더 이상 단잠을 잘 수도 누군가 사랑하거나 품는 게 불가능해지는, 살았지만 슬픔만 바닥에 남은 삶, 즐거움은 죽은 자가 모두 무덤으로 쓸고 가 버린 죄책감만 남은 삶.
살아 남아 슬프다면 그 것만으로도 그 삶은 속죄의 삶, 그러니 다시 웃어도 다시 사랑해도 되지 않을까.
그렇지만 시대와 역사 속에서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비극에 놓이게 되고, 비극의 주인공이 아닌 조연이었기에 다행히 살아남는다 해도 그게 온전할 수 있을까. 상실과 아픔앞에선 온전히 주인공이었는걸.

살아남아서 미안해요. 그런 상황에서 구차하게 살아남아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그래서 죄책감이 목까지 차올라 음식을 삼킬수가 없다
얼떨결에 잡혀 와서 히틀러의 음식을 미리 먹게 된( 독극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로자의 이야기다. 선량한 시부모와 군에 간 남편을 기다리며, 낮에는 히틀러의 음식을 미리 맛보며 하루 하루를 살아낸다.
11명의 여자들은 각기 사연이 있다. 아이를 부양해야 하고 누구는 유대인임을 숨긴다. 누구는 그 전쟁 중에도 사랑을 꿈꾸고 누구는 나치 장교와 헛간에서 바스라진 건초냄새와 말라버린 밤의 기운을 느낀다. 사랑? 살아 있다는 걸 느끼는 것 ? 죽지 않고 살기위해, 살아 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기만하는 행위였을까. 자포자기였을까. 사랑이었을까. 사랑이란 감정 그 자체에 대한 그리움일까

그리고 살아남는다. 히틀러의 음식을 꾸역꾸역 먹으며 살아내야 했던 일들을 비밀로 가슴에 묻고, 나치 장교와의 일을 삼키고 끌려간 유대인 친구에 대한 오열을 누르며 살아가는 로자, 로자의 삶은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가며 감내하는 것, 더 이상 사랑할 힘도 없다. 남편옆을 지킬 수도 누구에게 자리를 내어 줄 마음도 없다. 늙어버린 로자옆엔 아무도 없다. 목까지 차오른 죄책감으로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비밀로 그렇게 조용히 살다 죽겠지.

나치를 지지하진 않았지만 독일인으로 태어나 가지게 되는 원죄, 배고픈 전쟁통에 히틀러의 독살을 막는다는 미명아래 그래도 배불리 먹는 일, 그리고 급기야 나치 장교에게 흔들리기까지 하며 로자는 자신을 용서하기가 힘들다. 어찌할 수 없는 전쟁과 악몽 속에 흔들리는 개인의 삶을 누가 어떻게 재단하고 판단할 수 있을까.

12년 동안이나 독재 체제하에 살면서도 우리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인간은 무엇 때문에 독재에 순응하는가?
대안이 없었다는 것이 우리의 변명이다. 나는 고작해야 내가씹어 삼키는 음식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을 뿐이다. 음식을 먹는무해한 행위 말이다. 그것이 어떻게 죄가 될 수 있겠는가. 다른여자들은 한 달에 200마르크를 받고 몸을 파는 것을 수치스러워할까? 높은 급여를 받으며 호식을 하는 이 직업을 부끄럽게 생각할까? 그들도 나처럼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에 자기 생명을 희생하는 것을 비윤리적 행위라고 생각할까? 나는 지금도 돌아가신아버지를 보기가 부끄러웠다. 내게 아버지는 수치심을 느끼게하는 재판관이었다. 히틀러에 대해서는 대안이 없었다고 말할수 있지만 치글러는 그렇지 않았다.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는데도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나는 그런 짓까지 저지를 수 있는 인간

"아뇨, 베를린은 처음이에요. 하지만 이 방법밖에는 없었죠."
루돌프가 말했다. "가면 어떻게든 되겠죠."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베를린에 도착하면 나도 루돌프가 하자는 대로 해도 될 것 같았다. 그라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크리스타는 접은 담요를 쌓아올려 만든 침대에 아이를 내려놓았다. 아이가 드디어 잠이 든 것이다. 그러는 동안 성냥이 꺼지는 바람에 루돌프는 새 성냥을 켰다. 우리는 각자 가져온 음식을 꺼내놓았다. 우리는 아직은 인간다운 식사를 함께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증명하듯 두 장의 행주 위에 가져온 음식을 펼쳐놓고 함께 먹었다. 짐을 실을 용도로 만들어놓은 짐칸에 갇힌 사람들끼리도 인그렇게 되는 것이다. 세상과 격리된 상태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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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12-06 16: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 논술시험치던 딸아이를 따라 서울갔던 때가 생각나네요. 오늘 고생 많으셧겠어요. 전 작년에 힘들더라구요. ㅎㅎ 저희집 애는 다 떨어지고 지금은 집옆에 학교를 다니지만 mini님 좋은 결과 있으시기를 바래요. ^^

mini74 2020-12-06 17:3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바람돌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