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합본 특별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20년 6월
평점 :
품절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 원더랜드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다는 건 20대를 읽는 것.

맥주와 껍질 깐 땅콩들의 수북함. 턴테이블이 돌아가는 방에서 이젠 아무도 제대로 읽지 않는다는 투르게네프를 읽다가, 맥주 한 잔을 더 따르며 윌리엄 포크너를 안주 삼는 밤.

이름들만 빼면 비 오는 아일랜드나 영국의 어느 곳일 것 같은 배경, 그래서일까 주인공들이 부르는 이름을 되뇌이면 소설 속에서 갑자기 훅하고 현실로 돌아오는 느낌이 든다.

누가 그러더라.

하루키 소설은, 그 소설의 주인공보다 늙은 후에 펼친다면, 적나라한 거울 속 주름을 보듯 실망할거라고.

젊음의 소설이라 그런걸까.

그래도 내겐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갈증 속 맥주처럼 술술 잘 넘어간다.

그의 문장은 20대 때 끼워 놓은 말린 은행잎같다.

그래서 이 책을 살 수 밖에 없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 원더랜드

제목도 얼마나 멋진가.

세계의 끝에서 그림자를 보내고 남은 주인공.

눈 오는 쓸슬함과, 낡은 대령의 모자, 죽어가는 일각수와 그 마음의 빛 줄기.

작년엔가 아이가 해변의 카프카를 읽더니 좀 모호하고 어렵지만 뭔가 중2병같기도 해요 란 말을 했다. 아이야. 엄마는 그런 중2병 같은 문체가 좋아. 그렇지만 세련되고 담담하고 군더더기 없는 그의 글들은 내 맘에도 희미한 한 줄기 빛을 남긴다.

내 내면 어딘가 벽으로 둘러쌓인 심연의 그 곳을 여는 열쇠는 어떤 문장일까.

세계의 끝? 일각수? 좀 멋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고 대니보이를 무한 반복중, 위스키는 없으니 맥주로, 그리고 하루키. 더 할 나위 없는 주말의 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