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의 아침 문학과지성 시인선 437
김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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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은 게 소설을 읽는 것보다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리는 이유는 뭘까
시어의 의미를 생각하고 이 시를 쓸 때 작가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무슨 마음으로 썼는지 어떤 의도인지 곱씹다보면 진도가 나갈질 않는다. 왜지?
어느 날 창가에서 멋진 숲을 봤어. 아름다워서 눈물날 것 같은 그 숲을 보려 열심히 걷고 걸어 왔건만, 정작 소나무 몇 그루 자작나무 몇 그루 세며 이게 아닌데. 왜 아름답지 않지 고개 갸웃거리를 느낌.
12년의 세뇌교육이랄까
시를 보면 작가가 어느 시대를 살았는지 독립운동가성향인지 모더니즘인지 경향주의인지 , 시어마다 줄을 긋고 은유인지 직설인지 공감각인지 적어 대고, 특히 이 단어는 중요해하며 별표에 이어 무지개 긋던 그 12년의 세월이 시를 읽으나 읽지 못하는, 시를 느끼고 싶은데 어찌 할 줄 모르게 되어 버렸다.
아. 시를 읽고 싶은데 자꾸만 수능특강 문제집이 아른아른거린다.

아이랑 백석의 여우난골족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러면서 이 시 속 장면과 등장인물을 그리며 정리한 적이 있는데, 한참이 지난 지금도 그 설움많은 고모들과 아이들, 무우징게국 냄새가 나는 것 같단다.
그래. 한 폭의 그림처럼 ,가슴 속 작은 설렘처럼 시 하나 간직하는 거다
그냥 좋으면 줄긋고 행복해 하는 거다. 중심싯구나 시어에만 줄을 긋는 건 아닌거다. 내 마음에 쏙 드는 그 싯구가 바로 내 중심문장인거다 ( 앗 수능치는 우리 고 3 아이들은 제외. 제발 중심문장 잘 찾길 ㅠㅠ)


~먼지가 보이는 아침~


조용히 조용을 다한다
기웃거리던 햇볕이 방 한쪽을 백색으로 오려낼 때

길게 누워 다음 생애에 발끝을 댄다
고무줄만 밟아도 죽었다고 했던 어린 날처럼

나는 나대로
극락조는 극락조대로

먼지는 먼지대로 조용을 조용히 다한다


​~그래서~

잘 지내요,
그래서 슬픔이 말라가요

내가 하는 말을
나 혼자 듣고 지냅니다
아 좋다, 같은 말을 내가 하고
나 혼자 듣습니다

내일이 문 바깥에 도착한 지 오래되었어요
그늘에 앉아 긴 혀를 빼물고 하루를 보내는 개처럼
내일의 냄새를 모르는 척합니다

잘 지내는 걸까 궁금한 사람 하나 없이
내일의 날씨를 염려한 적도 없이

오후 내내 쌓아둔 모래성이
파도에 서서히 붕고되는 걸 바라보았고
허리가 굽은 노인이 아코디언을 켜는 걸 한참 들었어요

죽음을 기다리며 풀밭에 앉아 있는 나비에게
빠삐용,이라고 혼잣말을 하는 남자애를 보았어요

꿈속에선 자꾸
어린 내가 죄를 짓는답니다
잠에서 깨어난 아침마다
검은 연민이 몸을 뒤척여 죄를 통과합니다
바람이 통과하는 빨래들처럼
슬픔이 말라갑니다

잘 지내냐는 안부는 안 듣고 싶어요
안부가 슬픔을 깨울 테니까요
슬픔은 또다시 나를 살아 있게 할 테니까요

검게 익은 자두를 베어 물 때
손목을 타고 다디단 진물이 흘러내릴 때

아 맛있다,라고 내가 말하고
나 혼자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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