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식은 달콤하지만 이제 나이가 드니 떨어지는 소화력으로 아침이면 늘 후회한다.

그렇지만 밤이면 또 나름의 정당성을 부여하며 인생 뭐 있나 식의 낙관적 자세로 야식과 마주한다. 아주 기쁜 마음으로.



이렇듯 확증편향에 스스로의 선택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비난하는 가족들에게 오히려 더 확고한 신념을 피력한다.

이 책을 읽으며 아, 이런 나의 모습이 인간의 본성임을 알게 되어 나름 안심되면서도 살면서 내가 저지른 수많은 흑역사도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인간의 흑역사가 되풀이되듯, 나의 선택과 후회도 반복되지만 다른 점이라면, 나의 흑역사는 아직까지 역사에 미치는 영향력이 미비하다 못해 거의 없다는 것, 그저 나만 후회할뿐이라는게 가장 다행인 점이 아닐까. 이만하면 되었다며 낙관적 회로를 돌린다.
이 책은 인간이 저지른 말도 안되는, 정말? 이라며 의문을 갖게 하는 광기와 오류, 어리석음에 대한 고찰이며, 이런 일들을 되돌아보며 반성과 나아지는 방향으로서의 진보를 이야기한다 어쨌든 인류는 점점 지혜와 분별력을 더 갖춰가고 있단다.

루시가 나무에서 떨어지던 그 날, 지켜보던 다른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그런 루시의 흑역사를 보며 웃다가 놀랐을지도. 루시는 나무에 떨어져 죽었고, 어느 고고학자의 손에 파헤쳐져 아디스아바바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먼저 작가는 농경의 시작이 바로 인간 흑역사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농경으로 부의 불평등이 시작되었으며 특권층이 등장하고 환경파괴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면 누군가가 황무지 만평 개간, 밀을 심을까 하며 인스타에 올릴지도, 그럼 그 흑역사는 영원히 남겠지만 지금 우리에게 남은 건 그저 탄 밀알이나 살았다는 흔적일 뿐이다.
그러면서 이스터 섬의 모아이석상의 그 유명한 공유지의 비극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모두가 나무를 베고, 나쯤이야 뭐 하는 순간 나무들은 모두 베어지고 이스터 섬의 사람들은 모두 사라진다.

또한 무분별한 동물의 이주로 흑역사를 이룬 사례들도 나오는데 오스트레일리아에 토끼를 가져온 그 유명한 오스틴과 (그것도 영국처럼 여우사냥을 하고 싶다는) 셰익스피어에 한 구절 나오는 찌즈레기를 미국에 퍼뜨린 유진 시펠린. 둘 다의 공통점이라면 돈도 많고 시간도 많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고, 또한 그 당신 자신들의 행동이 굉장히 멋지다고 믿었다는 것. 그들이 망쳐놓은 오스트레일리아와 멸종시킨 미국의 새들을 모르고 세상을 떠난 것이 오히려 축복일 수도 있는 엄청난 흑역사다. 지금도 두 나라는 토끼와 찌르레기와 싸우는 중이다.

그 외에도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히틀러 같은 모자란 최악의 지도자들이 저지른 일들, 코르테스를 귀빈대우해 준 모크테수마, 징기즈칸을 우습게 본 호라즘제국의 왕, 우생학이란 말도 안되는 주장으로 수많은 이들이 원치 않는 불임수술을 당하게 한 골턴 등 개인의 흑역사로 보기엔 파장이 큰 사례들을 열거했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오로지 몇 푼 더 벌겠다는 이유로 휘발유에 납을 넣은 미즐리 연구팀이다. 그 때문에 온통 납중독에 그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 사이의 범죄율도 높았다. 납중독은 조증이나 공격성에도 관련이 있다. 또한 미즐리는 프레온을 만들어 지구 오존층에 구멍을 뚫는데도 일조를 한 인물이다.



이와 비슷한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책 제목은 <지금은 당연한 것들의 흑역사>이다.

주로 세상에 큰 영향을 준 발명품을 알아보지 못한 이들이나. 롤리타나 비틀즈 등 새로운 문화의 시류를 읽지 못하거나 명작에 대해 알아보지 못한 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원제가 그들은 갈릴레오를 비웃었다 이니 대략 어떤 내용인지 감이 올 것이다.

결국 개개인의 무지나 판도를 읽지 못한 것에 대한 내용이라면, “인간에 대한 흑역사”는 좀 더 스케일이 큰 흑역사라고 할까. 개개인보단 역사를 통틀어 보며 개인에 의해 인류가 입은 피해들이나, 단체의 행동으로 인해 본 피해들에 대해 작가의 생각들과 같이 담겨 있다.

둘 다 좋은 책이니 같이 읽으면 더 재미있을 듯하다.



사람들은 왜 가짜 뉴스에 속을까. 왜 저런 말도 안되는 만병통치약을 사는 거지? 그들을 걱정하며 말리는 이들에게 왜 더 화를 내거나 적개심을 드러내는 걸까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주기도 한다. 인간은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며, 그 결정을 내린 순간 자신의 어리석음을 숨기려, 더욱 더 가열차게 자신의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하려 애쓴다. 어리석은 작은 불길이 순식간에 큰 불이 되어 엄청난 피해를 불러오게 된다. 나 또한 그러하다. 무지에 고집까지 세면 일단 우기고 본다. 틀린 걸 알아도 아닐거라며 현실부정을 하기도 한다. 높은 자리에 있지 않음이 얼마나 다행인가 모른다.



이 책에 소개된 더닝 크루거 효과라는 인지편향 현상이 있다. 어떤 일을 잘하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잘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엄청나게 과대평가한다는 것이다.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말이었다.



작가의 재치있는 글 솜씨에 키득키득 웃으며 읽다가도 마냥 웃으며 읽을 수 없는 책이다.

지금 당장 괜찮다고 해서, 지금 당장 내 손에 떨어지는 이득이 조금 더 있다고 해서 서슴없이 수많은 사람들을 몰살시키고 미래를 망칠 선택을 할 수 있는 건 인간이란 종밖에 없다.

이렇게 자만하며 마음대로 어리석게 굴다간 정말 나무에 올라가 다시 한 번 떨어질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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