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면 매혹적인 죽음의 역사
기류 미사오 지음, 김성기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진중권의 죽음에 관한 책을 얼마전에 읽었었다.
그래서 일까.
기류마사오는 죽음이란걸 어떤 입담으로 풀어 나갈까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메멘토 모리의 그림들과
자살,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는 사람들~ 절대 좀비 이야기 아님. 성급한 매장의 부작용이랄까.
하지만. 장례식까지 다 치른 마당에, 머리 산발하고 손톱엔 흙이며 피 묻히고 들어오는 망자?의 모습은 모골이 송연했을듯.

죽어가면서 정말 사람들은 유언을 할 수 있을까.
고통과 두려움속에서 누군가의 손을 잡거나, 고통을 호소하다 가지 않을까.
정말 삶에 감사하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고고하게 작별하고, 그렇게 갈 수 있다면...
아니. 최소한 고통없이 갈 수 있다면 ...
그래서 조상들은 고통없는 죽음을 복중에 최고 복으로 쳤나 보다.
그런데,
유명인들은 뭔가가 달라도 달랐다.
유언부터, 마지막 모습까지 최선의 멋진 모습을 보였으니 말이다.
물론 후대에 더욱 귀감이 되라고, 쬐금....뻥도 쳤겠지만..

괴테는 마지막 유언으로
˝덧문을 열어줘, 좀더 빛을`˝
정말 멋있지 않는가..빛....마지막까지 사랑할 세상의 한 가지..빛이라..어쩌면 천국의 천사들의 광채가 아니었을까.

카이사르는 ˝부르투스 너마저도~˝
발자크는 ˝˝비앙송, 비앙송을 불러주게. 그라면 나를 살릴 수 있어!˝
(비앙송은 그의 작품 인간희극에 나온 의사이름이다.)

버나드 쇼는 간호사에게
˝나를 마치 골동품처럼 조심스럽게 다루는군, 이젠 됐네. 어차피 금방 죽을 테니까.˝
퀴리 부인은 병상에서 주사를 거부하며
˝아뇨 그냥 내버려 두세요.˝
아인슈타인은 마지막유언을 독일어로 하는 바람에..아무도 알아 듣지 못했다.
주변에 다 미국인들뿐이었다나....
그리고,
사형수 네빌 히스는 죽기전에 위스키를 부탁하며
˝더블로 주게.˝

왜 하필 사형수의 유언이 제일 쿨하고 멋있는 걸까..

죽음.
예전 사람들에게, 죽음은 삶의 이웃과 같았다.
숱한 병들에 전쟁에, 시체와 죽음을 보는 일은 흔한 일.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죽음에 집착한 것일까.
죽고 나서의 삶을 걱정하며 ,교회에 거액의 기부를 하거나
(귀족들이 못살게 된 이유가, 유언으로 다들 교회에 거액을 기부해서라나..)
현세를 즐기지 못하고 어둠속에서 웃음을 독으로 여기며 살아갔다.

그런 그들에게 중세 기독교 중심에서, 인간중심의 세상은 또 하나의 천국이 아니었을까.
지금 행복하기 우해 노래 부르고,
지금 미소짓기 위해, 연극을 보고
지금 앎을 위해, 책을 읽고
지금 따스하기 위해, 덧문을 활짝 열고
지금 즐겁기 위해, 춤을 추고..

알고 보면 매혹적일 수도 있겠으나, 서머셋 모옴의 유언처럼,
죽음이란 일에는 일체 연루되지 않는게 낫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