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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시간 - 메소아메리카의 고대 문명
정혜주 지음 / 틀을깨는생각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라틴 아메리카'의 중부에 해당하는 메소아메리카
들어가는 글에서 연대기에 따라 서사적으로 풀어간다는 설명과 함께 비교적 잘 알려진 마야, 떼오띠우아깐, 아스떼까 문명을 기술하였다고 하니 TV나 인터넷기사 또는 유튜브를 통해 간간히 접했던 중남미에 존재했던 신비롭고 잘 알려지지 않는 고대문명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제 1장 마야문명
마야문명은 기원전 1500년경에 유까딴 반도 북부에서 시작하여 기원후 250년 경 사이를 전기 고전기로 분류되는데 초기 유적지 이사빠는 수치아떼 강의 삼각지와 이사빠 강의 하류 둔덕에 자리잡고 있었다고 하며 과일과 야채 그리고 코코아의 원료인 카카오가 많이 생산되었다고 하네요. 세계 4대 고대문명의 발상지가 강을 끼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볼때 마야문명의 기원도 다른문명과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풍요를 주는 비를 내려주기를 신에게 외치는 사제 그리고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를 통해 세상이 창조된 과정과 선조들이 남긴 또 다른 이야기
과테마라의 뻬뗀을 중심으로 300년경부터 왕권이 확립된 마을들이 도시로 성장하고 '아하우'라고 불리는 왕들을 중심으로 도시국가로 성장하였다고 하니 마치 고대 그리스를 보는듯 하네요. 고대 그리스도 도시국가로 성장하였다고 알고 있는데 마야도 초창기에는 도시국가로 먼저 성장하고 중앙집권화 되지 않았나 싶네요.
이어지는 신화와 시간을 거치면서 전개되는 역사적 사건들과 함께 유물 그리고 사진, 책 하단의 주석등을 통해 그들의 역사를 파악할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마야에 피라미드가 존재하였고 무덤도 발견되었다는 새롭고 놀라운 사실도 책을 통해 처음으로 접할 수 있었습니다.
왕권이 강화되고 도시국가의 성장과 전쟁 그리고 몰락, 새로운 도시의 등장과 정치 체제의 정비

신비롭고 베일에 쌓여 있던 마야의 역사와 문명에 대해 알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 2장 떼오띠우아깐 문명
'신이 되는 곳'이라는 뜻의 떼오띠우아깐은 기원전 300년에서 100년사이에 멕시코 중부에 있던 도시로 주민에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려지고 있지 않다고 하니 고대사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역사적 유물이나 기록들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인물(사람)도 중요하지 않나 봅니다. 결국 역사라는것의 주체는 인물이니 그 인물을 아는것이 역사를 공부한다는 의미도 되겠지요.
마야 지역의 여러 도시들의 초기 문명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p213
역사적으로 보아 문명이 발달하던 시기 타지역으로의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떼오띠우아깐 문명이 또한 그러지 않았나 봅니다. 문명이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발전한것은 징기스칸이 유럽으로 진출한후 더욱 활발해진것이 사실이긴 한데 그 이전에도 근거리의 부족이나 도시국가 사이에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음은 많은 역사적 사실들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태양의 탄생신화와 기원전 200년 화산폭발로 인한 이주후 해의 피라미드라고 불리는 피라미드의 건축
도시의 팽창과 인구의 증가 그리고 사제는 전사로서의 권위를 가지게 되어 피라미드 근처에 행정 건물의 세우고 아울러 <깃털-나비 궁전>이란 공공건물 만들었다고하니 도시의 발전과정이 고대에는 사제에 의해 주도되고 있고 그들의 영향력이 막강했음을 알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삼한시대 때 천신에 대한 제사를 맡아보던 제사장인 천군(天君) 있었다고 사실로 보아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하늘과 인간을 연결시켜주는 사제의 역활은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볼수 있는 현상이 아닐까 싶네요.
주요 생산물이자 수출품은 흑요석으로 된 칼과 장식품으로 수요 증대에 따른 생산지 확보와 영토의 확장을 꾀하던 창잡이-부엉이는 마야의 띠깔과 우악삭뚠을 점령하고 문명을 전파하였다고 하니 정복전쟁으로 인한 영토와 인구의 확보 그리고 문화의 전파라는 전쟁사의 공통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네요.
떼오띠우아깐의 신들로서 늙음과 불의 신, 비의 신과 물의 여신, 깃털-뱀 신이 소개되어 있네요
제 3장 아스떼까 문명
떼오띠우아깐 사람들이 도시를 버리고 이주하여 정착한 곳은 멕시코 중앙 고원의 남서부 지방으로 곡창지대였고 깃털-뱀을 믿는 지배층 사람들은 뚤라 지역에 자리잡고 스스로 "똘떼까"라고 불렀다고 하네요. 770년에 처음으로 왕을 세우고 정복전쟁을 통한 세력 확장을 하네요. 하지만 1150년~1200년에 발생한 극심한 가뭄때문에 도시를 버리고 멕시코 중앙 고원의 호수로 이동하게 되고 비슷한 시기에 다른 무리인 치치메까족과 접촉하게 되어 그들에게 말과 지식을 전파하였다고 하네요.
마치 백제가 일본에 문화를 전파하듯 우수한 부족이 열등한 부족에게 선진문물을 전파하는 과정이라고 생각되네요.
멕시코 북쪽의 황량하고 건조한 땅에 살던 "치치메까' 사람들은 남쪽으로 이주하여 여러지역에 나누어 정착하게 되고 8개의 지역 또는 집안의 이름을 따 불렀는데 아스떼까의 입장에서 서술한 '여정의 두루마리'의 내용은 땅을 찾아 길을 가던 중 매우 굵직한 노간주나무를 발견하고 <남쪽의-꼴리부리의 신전>을 세우고 자리 잡았으나 사제들과 아스떼까 사람들은 다른 마을 사람들과 헤어저 그들만의 여정을 하게 되고....
'아스떼까'라는 이름을 버리고 '멕시까'라고 이름을 바꾸고 아스까뽀찰꼬의 영향 아래에 있던 차뿔떼뻭에 정착하게 되나 영향력이 확대되는것을 확대되는것을 반대하던 도시들이 연합하여 아스까뽀찰꼬로 쳐들어오게 되어 패하게 되고.
이어지는 아스떼까의 역사속에 반복되는 전쟁과 불길한 8가지의 징조후에 쿠바를 점령한 스페인에 의해 멕시코 원정을 단행하게 되고 결국 전염병과 총포에 이기지 못하고 1521년 8월 13일에 무너졌다고 하니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하여 원주민들을 학살하였던 백인들의 예들 들지 않더라도 수많은 역사속에서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고 탄압하는것은 당연시 되어왔던 생각이 아니었나 싶네요.
문명마다 DISCOVERY를 통해 유적의 발굴과정과 미스테리에 대해 알수 있었습니다.
메소아메리카에 존재하였던 세개의 문명을 통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발전과정과 연관성 그리고 문화와 건축등을 알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