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프 시티 소설Q
손보미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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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그녀(나), 그(남편), 임윤성, 최진유, 그리고 그들이 머무는 세이프 시티에서 이뤄진다. 세이프 시티라는 제한적인 공간에서, 선택적으로 기억을 삭제하는 기술의 보급화. 그걸 목도하기 위해 임윤성이 무던히도 애쓰는 과정. 처음엔 나와 상관 없는 기사거리라 여겼으나 나와 엮여있는 사건. 내 사고를 눈앞에서 보았음에도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못했던 남편. 흉기를 휘두른 자는 피해자인 나를 못 알아보는 상황. 임윤성의 아내 최진유는 부부동반 모임에서와는 다르게 나와 있을 때 다른 갈래의 행태를 취한다. 넷이서 함께 할 때와는 다른 행동과 말들. 그들이 진짜 원하는 바는 무엇이고, 그들이 바라는 세상은 어떠한 것이길래 부부끼리든 이 모임에서든 속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것인지. 믿을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다들 함구하려는 지를 함께 생각하게된다. 불리워 지는 것에만 치중한 '세이프 시티'안에서 어느 것도 안전하지 못한 사람들의 심리를 따라가본다.



📖인간의 기억은 변합니다. 한때는 아주 중요했던 사실, 절대 잊어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한 기억을 잊은 줄도 모른 채 잊어버리죠. 인간은 고유하지 않아요. 한 인간이 고유하다는 건 환상일 뿐이죠.

천년만년 기억하고싶은 것들이라도 시간이 흐르면 자기가 원하는 방향대로 기억은 왜곡되고, 또 일부는 휘발되어 소실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유한하지 못하다는 것. 이건 어쩔 수 없는 팩트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외부의 자극으로 그것을 변형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을 어필한다. 이게 인간의 존엄성이라며 기억을 품고있는 인간을 껍데기 삼아 보존하려하는 일반적인 사람의 심리를 수면위로 끌어올린다. 그게 임윤성과 그녀가 대립 할 수 밖에 없다는 걸 보여주는 자리. 여기에 임윤성은 극단적인 상황을 예시로 들며 반대 입장을 하고있는 그녀를 자극시킨다. 범죄자의 존엄성까지 존중해주어야 하는 것인지, 비윤리적인 것에도 공평과 형평성을 논해야하는게 마땅한지를 이들의 대화에 독자의 의중을 끌어내고있다.

기억을 없애는 기술이 상용화 된다는 가정 하에, 우리는 어떤 것 부터 소거하게 될까. 그리고 우선 적용되는 대상을 누구로 선정할 것인가에대한 것도 이목을 끌기 딱 좋다.

임은 범죄자를 거론하며 우선시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하며 운을 띄운다. 그녀는 범죄자에게 존엄섬이 있음을 언급하며 비윤리적인 것에 대한 선정에 반문한다. 나는 임도, 그녀도 아닌 다른 편에서 서고싶다. 악행을 저지르고 단순히 기억을 지움으로서 형벌이 가벼워진다? 형량을 줄이는 것 보다 기억 자체를 소거 한다는 것은 죄책감 마저도 지워서 無의 상태로 만든다는 것인데, 과연 그게 형벌일까? 갱생하겠다며 꽁으로 얻어낸 얕은 속내 같아 적어도 그들을 우선 적용해선 안된다 여기는 입장이다. 역시 결론이 나오지 않는 논쟁이다.

헌데, 이 이야기의 끝엔 임이든 그녀든 누군가는 목표점에 도달하게 될 뉘앙스를 풍겨온다.


📖그날 밤 거기에서 일어난 '진짜'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없다.

거기서 일어난 일. 안전하지 않다고 미리 고지한 지역, 늦은 시간, 관리가 안되는 건물의 화장실, 흉기를 든 사람, 맨몸으로 달려든 여자. 범죄자는 환자의 관점으로 시선이 넘어감. 처벌이 아니라 치료의 수순. 거기서 그러한 사건이 일어 날 수 밖에 없던 정황이나 범죄자가 행한 목적이 중요하지 않았다. 범죄자가 환자가 될 것인가? 와 더불어 환자로 전환되어 때마침 진행하던 실험의 대상자로 전환 될 것인가? 만 주목하고있겠지.

피해를 입었고, 보호받지 못하는 환경에 있는 소외된 자들은 언론도, 경찰도, 시민마저도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자연스럽고 익숙한 세상임을 한번 더 확신하게된다. 그렇다 보니 임이 범죄자를 최초의 대상자로 선정하여 언론을 등에 업고 시행하려는 게 당연한 소릴지도 모르겠다. 최소 인원으로 최대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기회이니 쉽사리 놓칠 수 없는 타이밍인 것이다. 이른바, 이 지랄맞은 타이밍.

📖그러므로 그들은 같은 '편'이라고 할지라도 서로를 불신하고 무시하고 증오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다른 '편'에 섰다는 이유로 서로를 절대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쟤는 되는데, 왜 나는 안돼?'라는 심리. 편하게 죄를 탕감받는 범죄자. 좋아보이는 그거 나도 할래! 로 너나나나 할 것 없이 벌떼처럼 달려들게되는 군중심리. 부작용에 대한 것은 염두에 두지 않는 무작정 요청하는 생떼 같은 것. 그러니 어찌해도 공감하기 어려운 각자의 입장들. 화두는 던져졌고, 그걸 가지고 지지고 볶고 신나게 서로를 물어뜯는 판은 조성되었다. 임은 이전과 달리 더 편하게 시행 할 수 있는 구실을 얻어냈다.



📖그녀는 그게 회피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 이게 뭐지? 그냥 나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뿐이야. 하지만 무엇으로부터?

세이프 시티로 운영되는 레벨에 맞춰 안전하다 하는 1구역과 2구역으로만 다니게되고, 현수막으로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낡은 건물엔 들어가지 않는 것. 설령 지나치더라도 차로만 다니지 대로변을 걸어다니며 알 수 없는 위험에 노출되지 않는 것. 나 자신을 보호하는 방식. 그건 또 어떻게 보면 3구역 4구역 사람들이 모조리 범죄자로 여기는 무의식 중 의식의 편견일 수도 있음을 느낀다. 그렇다면 하위 구역 사람들에게도 기억 교정술을 우선 적용해야하는 상위 집단이 되는 걸로 치부하고 있는건 아닐지. 1구역 사람들만 남는다면 그게 최선의 선택이고 최고의 안전 구역이라 할 수 있을지. 이 모든 것이 각자의 관점이며 편견이고 착각이라는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 일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잘 안 하거든. 딴 세상의 일이지. 하지만 악행은 달라.

우리는 언론에서 보도되는 사건 사고를 마주 할 때마다 양가감정에 휩싸인다. 피해자가 안쓰럽고 걱정이 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당사자가 내가 되거나 내 가족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안도감.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지 않은 것에 대한 다행스러운 마음이 클 수 밖에 없다. 상대를 걱정하긴 하나, 결국 내가 살고 봐야하는 거니까. 내가 살아야 남을 걱정하든 돕든 할 테니 일단 나는 무탈하다는 것에 마음 놓인 채 측은한 마음을 갖게된다. 이게 도덕적 우월감인지 사회화가 잘 되어진 인간의 공감능력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게 악에 대한 것으로 전제가 옮겨지면 매번 다른 변수가 생긴다. 그래서 무섭고 그래서 예측이 안 되는 것이다.

일단 저자가 수면위로 끌어올리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지 인지했고, 주인공과 대립대는 임윤성, 부부인 최진유는 겉으로는 같은 결을 띄고 있지만 남편과 마주하지 않는 다른 공간에서는 다른 목적을 두고 약자의 편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타인을 돕게된다. 주인공과 같이 살지만 어떠한 도움이 되지 않는 듯 그려지는 남편의 입장. 평소와는 다른, 극한의 상황에 놓여졌을 때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는 것을 목격함에 있어 주인공은 속내를 드러내거나 예민한 논쟁에 대해서는 말을 줄인다. 그래서 그녀는 무엇을 지키고 무엇에 의견을 내며 어떠한 편에 서서 목소리를 높일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일단 임에게는 대립을 할 텐데 생각보다 답답한 면을 보이기도한다.

판세는 기억교정에 대한 작용, 범죄자에 대한 우선 적용을 찬성하지만 피해자이며 당사자인 본인은 반대하기에 어떻게든 여론을 돌릴 방향을 모색한다. 3자의 입장에서 볼 때 못하는게 아니라 안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며 살짝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한다. 기억 교정술을 시행하되 그 대상을 그 자로 해서는 안된다는 방향으로 여론을 이끄는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더 큰지라 주인공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게 되었다.

주인공이 좀 더 힘이 있었더라면, 차라리 최를 업고 다른 방향으로 틀게 되더라도 그것만 아닌 것으로 돌려 결론을 찢어내더라도 후반부 이야기는 좀 더 재미나게 읽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갖게된다.

완독을 하고나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요?'라는 말이 제일 정확한 듯, 이야기는 다소 답답함만 남긴채 끝을 맺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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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딩엄마 파란만장 인생 분투기 - 반드시 지켜주겠다는 약속
차이경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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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되었습니다.


브런치스토리를 보면 재미난 이야기들이 있다. 그저그런 단상이나 감정 쓰레기통 같은 것도 있지만 찾아보면 다음 회차가 궁금해지는 글들도 만날 수 있는게 이 플랫폼의 매력이거든. 제12회 브런치북 종합 부분 대상작인 이 글도 그 중 하나. 진짜 이게 될까 싶은 '미친 고난'을 혼자 다 겪어낸 저자의 찐 인생이야기. 이렇게 어찌 사나 싶지만 살다보니 살아지더라는 어르신들의 이야기처럼 살아 낸 이의 생생한 인생사를 만날 수 있다.

제목이 자극적이다. '고딩엄마 파란만장 인생 분투기' 고딩엄마라 하면 연상되는게 있다. '고딩엄빠'라는 케이블채널의 예능. 직접 본방을 사수 한 적도 없지만 클립영상이나 SNS에 올라오는 캡춰본, 기사들을 보면 선한 시선으로는 보기 어려웠다. 기획편성 의도가 어떻든간에 내가 이해 할 수 있는 선의 행동들이 아니었다. 뭐, 일찍 사랑에 빠지고 내 평생을 함께 할만한 인연이라 여겨 빨리 2세가 생긴다 한들 그에 대한 책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지들 즐거움에 애꿎은 아이만 불쌍해지는 꼴을 못 보겠더라는 거지. 그래서 이 단어를 썩 좋게 볼 순 없었다. 내 주변에 학생 신분으로 부모가 된 사람이 없어서 그런건지는 알 수 없으나 고딩부모라는 단어는 단단한 지붕과 튼튼한 집의 구조를 띄고 있단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 중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배경이 전제가 되는 그런 가족사? 세상에 사연 없는 가정이 어디 있겠냐만 시작부터 서로가 원하지 않는 사랑과 출생이라면 나는 무조건 반대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시작점도 그러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고딩엄마라는 책 제목이 있으니 저자의 남편이 자기부모에게 휩쓸려 처자식을 모르쇠하거나 도망 갈 줄 알았다. 이야기는 흘러가며 고딩엄마와 고딩아빠라는 전제만 주어질 뿐 어떻게든 내 새끼 지키는 빡빡한 세상살이라는게 소제목으로 와도 무방하다 여겨졌다.

부제로 적혀있는 '반드시 지켜주겠다는 약속'은 부정 할 수 없도록 약속을 지켰고, 지금도 지켜내는 이야기라 보면 된다. 시작은 고딩엄마였겠지만 지금은 그냥 두 아이의 엄마, 억척스러운 아내, 집안 일으키는 기둥, 여전히 배움에 열정적인 그녀로 보여질 뿐이다.

총 3부작으로 나뉘어진 이야기는 그녀의 시절을 기반으로 나눈 듯 했다. 주민등록증도 발급 받기 전인 아이가 엄마가 되었던 순간, 그리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지키기 위해 무던히 애썼던 애가 애를 키우던 날들의 짠함 한무더기가 '1부 주민등록증도 없는 엄마' 였다면, '2부 엄마는 어른이 된다'를 통해 어떻게든 가정을 지키고 식구를 챙기려 했던 억척스러움이 극에 달했던 시절을 보여준다. 매번 욕을 됫박으로 퍼붓는 시부모, 사고치며 온전한 가정을 꾸리지 못해 늘 흔들리던 친정엄마, 핏덩이랑 아직 솜털이 그대로인 애엄마를 두고 군대를 가야하는 어린 아빠. 어떻게든 먹고 살려고 시부모에게 무릎꿇고 손벌리며 장사 밑천 마련하며 뭐라도 해보려 했던 아등바등거림. 그 사이 아이는 자라고, 엄마도 단단해 진다 여길 때 마다 남편이 아프고, 아이가 아프고, 자신마저 희귀 난치성 질환자로 판명이 나며 열심히 좀 살아보려 그러는데 매번 발목을 잡는 것들이 생겨난다.

'3부 아주 작은 자유' 희망은 뜻하지 않는 곳에서, 기쁨은 가끔 한무더기 몰아서 오기도 한다는걸 보여주는 시기였다. 제대로 시를 써 본 적이 없는 저자가 주부백일장에서 장원이 되기도하고, 그 순간을 발판삼아 검정고시와 대입까지 도전하는 공부하는 엄마로서의 역할이 하나 더 추가된다. 큰 아이와 함께 수험생이 되기도하고, 또 자식 뒷바라지하는 엄마, 대학원 공부 하고싶다는 남편도 서포트하며 자신을 쪼개고 쪼개어 살아가며 자기만의 보람을 챙기는 중년의 시기를 겪어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일단 술술 읽히는데, 때때로 성질머리가 뻗치는 구간도 있다. 나이도 다르고, 결혼 한 시기도 다르지만 나도 며느리라 그런지 속에 천불이 나기도 했는데, 이 서글픈 마음과 서러운 순간을 풀어 둘 곳이 없었을 저자의 고달픔을 생각하면 짠함이 왈칵 밀려왔다. 당신 아들은 죄가 없고, 꼬리치고 꿰어내어 애가 덜컥 들어섰으니 며느리가 이뻐 보이진 않겠지. 근데, 손뼉도 부딪혀야 소리가 나기 마련인것을 왜 외면하려 하시나. 그리고 당신들 집안에 아들이 없는데 덜컥 손주 생긴건 좋아하면서 그 애미는 왜 밉게만 보려 하시는지. 그럼에도 시부모를 등지지 않았다는 것도 놀라웠다. 하긴, 남편 보고 사는거지 시부모 보고 사는건 아니니까. 이렇게 욱하다가도, 그럴 수 있지 라는 마음으로 수그러드는건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고, 또 고생스러웠던 순간이 많아 측은함이 컸는지도 모르겠다. 빈형도 그러려니 넘기고, 속 아파도 그러려니 넘기며, 굶는게 태반이니 그것마저도 넘길 수 밖에 없던 살림. 안되는 건 알았지만 쌀을 훔쳐서라도 애를 먹여야했고, 남편이 입대를 하더라도 참새같은 새끼는 보듬어야했다. 임대아파트 거지라며 손가락질 받는 아이 때문이라도 허리띠를 더 졸라매 학군은 못 바꾸더라도 집이라 할 만한 곳, 친구를 데리고 오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곳에서 살 수 있도록 돈을 모아야했고, 장사 능력이 하늘에서 떨어지는건 아니라며 아무것도 할 줄 몰라도 부딪혀가며 배우는 무대뽀정신도 밀고나가는 걸 보니, 이 엄마 진짜 안 해본게 없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잃을 게 없는 게 무서운거고 용감한것. 그래서 사력을 다해 살아내는 과정이었다. 지금 시대엔 그게 가능할까? 그건 잘 모르겠다. 시부모 복은 모르겠고, 시고모님의 보살핌이 감사했고, 매번 사랑타령하며, 옳게 가정 꾸린 적 없는 친정엄마지만 가끔은 의지 할 만한 어른이기도했다. 부모 복 보단 자식 복이 더 큰 사람 같고, 때때로 미운짓도 했지만 그래도 아플 때, 혹여 저자의 부재가 길어질 때 도망치지 않고 지켜내준 순간들에 감사했다. 제 아빠가 실적 돌려막기하듯 사서 쟁여둔 책으로 스스로 공부했던 대견한 첫째도 그러하고, 둘째는 눈치로 큰다는 말 처럼 병원생활이 길어졌던 엄마를 보채지 않고, 병원 이모 삼촌들이랑 지내며 무서움도 꾹 참고 기다려준게 기특하기만하다. 커 갈 때엔 사고 안 치더라도 재수 삼수로 속을 썩였지만 제 갈길로 가고있는건 분명해보이는 첫째는 물론이고, 고딩아빠에서 대학다니게해줘, 대학원도 지지해준 아내로의 삶을 보면 시부모보다 남편을 더 잘 키운 아내라 할 수 있겠더라. 엄마는 어른이고 나무같은 사람. 아파도 누워만 있을 수 없는 사람이었고, 안되면 되게 하는 청와대로 오라가라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라는 점에 서글픈 이야기 속 피식피식 웃던 날과 장하다며 욕봤다고 따뜻한 손으로 등을 쓰다듬어 주고 싶은 마음도 드는 에세이다.

버리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다. 약속한 건 지켜냈고, 아이를 지켰고, 가정을 놓지 않았다. 자신 마저도 포기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이렇게 떳떳하게 글을 쓸 수 있었다. 고딩엄마라서 곱지 않은 시선을 단박에 밀고 나갈 이유가 되는 삶이었다.

그런데 3부에서 끝났다. 크론병에 맞는 약이 없으니 매번 항생제와 함께 살아야했다. 시모는 폐암 말기로 세상과 등졌다. 아이는 다시 그 학교로 갔고, 남편은 안정적이며 오래 다녔던 직장에서 나와 세상의 풍파를 정면으로 맞딱들이기도했다. 그 중심의 그녀의 안부를 묻고 싶다. 괜찮냐는 뻔한 질문 대신, 약은 잘 챙겨 먹는지, 둘째놈은 요새 뭐하고 다니는지 에둘러 물어보며 그녀의 요즘 세상살이 이야기 물꼬나 좀 틔워보며 은연중 섞여나올 신세 한탄에 가뿟하게 맞장구라도 쳐 주고 싶다. 가끔 이렇게 터놓을 곳이라도 있어야 사니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며 대나무 밭 하나 얻어 속이라고 시원하게 게워내면 또 살아지니까, 그러한 구실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브런치를 통해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책으로 한데 모아 파란만장한 인생살이가 빛을 본지 이제 한달도 안 된 지금 애교섞인 재촉을 하며 '그래서 4부는 언제 만들 줘요?' 라며 옆구리 쿡쿡 찔러가며 썰 풀이 판을 꾸려주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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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뉴스로 출근하는 여자 - 빨래골 여자아이가 동대문 옷가게 알바에서 뉴스룸 앵커가 되기까지
한민용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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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티비를 보지 않았다. 원래도 라디오나 오디오가 익숙한 사람이기도 했지만, 티비를 틀어도 시선을 가게 하는 것들이 없었다. 부모님과 살 적에는 안방과 거실의 티비가 각각의 다른 방송을 송출했고 각자 떠드느라 바빴다. 내 가정을 꾸리고 거실 티비를 두었지만 일주일에 티비 트는 날이 한번 일때도 있었고, 그마저도 거르는 날이 있어 매번 켤 때마다 셋톱 업데이트로 긴 시간을 잡아먹기도했다. 뉴스야 SNS나 포털 메인에 있고, 유튜브로도 봐지니 굳이 찾아서 보지 않게되더라는 점. 그리고 학창시절과 대학때 질리도록 시사 스크랩을 했고, 방과 후 토론이 일상이었던 시절이 있어 질린 것도 있었다. 그리고 요즘 트랜드인건지, 이슈몰이를 위해서인지 자극적인 멘트나 호통치는 듯한 어조의 엥커가 싫었던 이유도 있었다. 그러니 일체의 감정이 섞이지 않은 기사를 보는게 더 받아들이기 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행동이 되려 익숙하게 젖어들어 갈 때즘 클립 영상을 본게 있다. 한민용 앵커가 전하는 '오픈마이크'라는 4분 남짓의 코너였다. 이런 뉴스의 클립이라면 찾아 볼만 하겠구나 싶은 내용들.

당장에 안본다고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보고 난 후에는 일렁임이 있어서 어떻게든 나도 변하고 싶게 만드는 세상의 이야기였다. 앵커가 직접 준비했다는 이 이야기에 시선이 쏠리게했다. 그래서 찾아봤고, 그게 이 책으로까지 이어졌다.

이 책은 최초의 여성 메인앵커라는 수식어를 가진 한민용 아나운서의 일대기를 다룬 것으로 비춰지지만,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해온 과정이 아닌 하고싶은 것을 하고 잘 하려 애쓴 사람의 부지런한 삶의 틈을 들여다 보는 성공한 내 친구의 자랑스러운 세상살이라 할 수 있겠다.(나보다 한 살 어려서 동년배라 해도 될만한 나이의 명사에세이라 더 반가웠는지도 모르겠다)

꿈을 좇는 것. 하고싶은 걸 하는 것. 이왕이면 잘 하는 것. 할 수 있을 때까지 무던히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진득함을 배우면서 어떻게 해야만 잘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눠 보며 무던히도 애썼을 날들에 대한 격려의 박수와 다가올 또 다른 세상에 대한 응원의 박수를 겹쳐서 보내게된다.


📖나는 지금도 넘어지며 배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이런 유의 말은 하지 않는다. 넘어지면 무릎만 까진다. 무릎만 까지면 다행이지, 다리가 부러지면? 뼈다 가 붙고 난 뒤에도 두려움 때문에 다시는 뛸 엄두를 못 낼 수도 있다. 더 크게 넘어져 영구적인 장애를 얻게 된다면? 영영 뛰지 못할 것이다. 실패도 마찬가지다. 한 번의 실패로 모든 게 끝나버릴 수도 있다. 결국 다시 일어날 수 있을 정도의 적당한 넘어짐, 다시 시도할 힘까지 몽땅 앗아가지 않을 정도의 인자한 실패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주관적이다.

내 삶의 흥망성쇠는 결국 누구 탓이다? 탓이라 할 것도 없지. 결국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나는 일인 것을. 저자는 여기에 괜한 연민을 부여하지 않았다. 뭐랄까, 우리 식으로 말한다 하면 박명수 어록처럼 일침을 놓으며 정확한 지점을 뚫고있었다. 그래서 속이 시원했다. 어떠한 대상을 탓하거나, 현상을 거론하며 나를 대변 할 수도 있겠으나 그럴수록 나만 비참해진다. 현실 직시하려 하지 않고 회피하는게 잘 보여서 그 꼴을 하며 위로하지 않는게 딱 저자다운 방식이었다.

꼭, 무조건이라 단언할 건 없었다.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더라도 결국 대성할 마음을 먹고 용을 쓰고 있는 사람이면 되는 것이라는걸 보여줬다.

뭔가, 요즘 청년들의 취업 포기에 이유에 정신이 번뜩 드는 저자만의 삶의 방식이었다. 인구는 줄고, 베이비붐 세대에 비해 경쟁 비율은 이전보다 덜하겠지만 여전히 좋은 곳에는 몰리기 마련이고, 다들 비슷한 목표에 목을 메곤 한다. 하나같이 스펙이 대단하다. 그러니 그 바늘구멍을 어떻게 통과해 합격 목걸이를 받을 것이냐에 대한 이야길 한다. 그래서 몇번이고 물을 먹고, 취업 자체를 포기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심심찮게 보게된다. 다들 그곳이 아니면 살 가치조차 상실한 사람처럼 군다. 차선책이라는 것도 있는데 그들의 시작점엔 그 차선책이 인생 실패의 선택지로 지정해버리니 주저앉아버리는게 부지기수였다.

저자도 저 이야길 한 문단 끝에 그런 말을 했다. '나는, 나란 사람은 이렇게 계속 넘어지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거라는 결론에 다다랐다'라고 솔직하게 말 해 주었다. 그러니 일어나지 못할 바엔 한쪽 무릎을 꿇더라도 안정되게 세상을 딛고있는 상태에서 그 시선의 세상을 보면 되는 것 이었다. 한쪽 무릎 꿇고 있다고 영영 그 자세로 있을 사람은 아니니까. 힘 좀 끌어모아 그 무릎을 딛고 일어나 서면 되는거니까. 그건 주저앉았다가 일어서는 것 보다 쉬운 방법이라는 걸 알려줬다. 몸소 실천, 나도 해보니 되더라, 안될거 같은데 되네? 에세이 인데, 계속 나도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하는 자기계발서의 기운을 갖고있어 읽으면서도 얻어갈 단락이 더 많이 보인다.


📖잘 모르면 욕하기는 쉬워도, 제대로 비판하긴 어려운 법이지. 아 물론, 가까워지면 비판하기 어려울 때도 있어.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해. 그거 못 하는 순간 기자 아니고 업자 되는거야.

비평가의 시선. 다른 이가 느낄 의문점에 대한 팩트전달. 그리고 그걸 자신의 펜과 자신의 입으로 다수의 사람에게 전달하게될 파급력에 대해. 저자의 선배는 이 당연한 진실을 잊고 놓치고 있을 후배에게 한 번 더 언급하며 어떠한 기자가 되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알지만 놓칠 수 있는 것, 알지만 외면 할 수도 있는 이 직업의 진짜 이유. 요즘 말하는 기레기가 되지 않기 위해서, 선배가 순화해서 말한 업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당연한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그 곧은 진실이 왜곡되지 않도록 한번 더 잡아보는 직업으로서의 이유였다. 직업이 곧 자신이라 여길만큼 아끼는 저자에겐 그 것이 삶의 목표와도 같아보였다.



📖무언가를 잘하려면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어쩌면 뻔하고 당연한 가르침을 경찰서를 뺑뺑 돌며 머리가 아닌 몸으로 깨우친 뒤, 나는 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 잘해내고 싶은 일에 시간을 쓰기로 했다.

핑계를 대고 싶어하지 않았기에 자신을 쪼개고, 그 틈을 만들어 다시 메꾸는 걸 반복하고 있었다. 여건을 탓해도 될만큼 빠듯한 삶으로 채워져있는게 맞으니 한 두번 정도는 투덜거리며 순간을 모면해도 되겠다만 그렇다면 자신을 향한 신뢰의 게이지는 줄어들 것임을 알았다. 저자는 늘 그랬다. 잘하고 싶었던 마음이 큰 사람이다. 이왕 제 몫의 것으로 온 것이라면 탓을 하지 않고 쥐고 있으려 애쓰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낸 것. 주변을 환기시킬만한 타이밍을 찾았고, 그로인해 얻어질 시선에 새로운 에너지를 얻고 있었다. 인파에 휩쓸리기보단 올곧게 서서 나를 다른 곳에도 놓아 볼 줄 아는 마음. 그리고 무리속에서 떨어져나왔다거나 집단활동에서 튀는 것이라 여기지 않도록 제 앞가림도 야무지게 할 수 있는자의 야무진 자기 관리의 방식. 이게 덜 지치고, 더 길게 볼 수 있는 밥벌이의 방식이라는걸 나도 공감하는 바다.


📖나보다 월등히 잘난 인간도, 못난 인간도 없다. 그러니 나는 모두에게 친절하되, 누구에게도 움츠러들지 않으려 한다.

기자이며 앵커의 시간을 보내며 일반인인 나보다 훨씬 다양한 계층의 사람을 만나봤을 것이다. 다들 성공한 삶이라 말해주는 이를 무조건적으로 동경하지 않는 저자의 태도. 이른바 '니나 내나'의 시선으로 보지만 그러함에 있어 예외를 두지 않았기에 사람들을 마주 할 수 있었고, 알아서 거르고, 또 알아서 얻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껍데기는 언제든 갈아 끼울 수 있다. 뭐, 비단 휴대폰 케이스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반질거리는 새 보호필름을 붙이고, 흠 하나 없는 탄탄한 케이스를 갈아 끼우면 액정화면을 켜 보지 않는 한 이게 새건지 헌건지 누가 알겠어. 그러니 그 허울에 속지 않으려하는 저자의 사람 대하는 방식이 이 '니나 내나'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겉 껍데기가 잘나면 혜택도 이득도 있긴 하겠지. 그런데 그게 천년만년 가진 않을거라는 말이다. 그러니 이 챕터를 읽는 그대도 움츠러들지 않으라는 말을 하고파 '니나 내나'정신을 독자들에게도 옮겨심어주고 있었다.

'그래... 사람 별거 없더라. 니나내나 소위 계급장 까고 보면 똑같은 기라.' (왜 이런 말 하면 구수한 사투리가 나오나 몰라)

개천에서 용? 빨래골에서 인재났다? 에이, 요새 그런 말을 왜 쓰겠어. 지 잘난 놈은 어디서든 빛을 보게 되어있고, 노력은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내어주기 마련인 것을. 그게 저자가 무던히도 애쓰고 노력해온 시간에 대한 보상인 셈이다. 꼼수가 없었다. 그건 유학생과 알바생의 과정을 쉴새없이 겹쳐둔 것 부터 시작하여, 하리꼬미 하던 꾀죄죄한 한기자의 시절이 모든걸 대변하고있었다. 처음부터 앵커가 꿈이 아니었던 사람. 그렇지만 얻어진 기회는 마다하지 않았던 사람. 그래서 주어진 것을 척척 해내니 뭐라도 더 기대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믿음직스러운데 일복도 많고, 징징거리긴 보단 무던히 쳐내는게 뭘 해도 될 놈 같은 인재상으로 보였다. 그래서 이 기운이 에세이로만 남기보단 자기계발서의 다른 갈래로 놓아두며, 가끔 무얼 할지 고민이고 쉬운길만 찾고싶은데 내 몫의 선택지는 없어 사는게 해이해짐이 느껴질 사람에게 일단 이거 읽고 말하라고 무심하게 툭 던져보고 싶어지는 책이다.

이제는 매일 뉴스로 출근이 아니라, 육아터로 출근이 되겠지만, 한민용 앵커의 뉴스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바뀐 환경, 새롭게 불려진 다른 호칭으로 마주하게될 세상을 시사해주길 기대해본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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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내가 원한 것
서한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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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포터11기로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여름은 모든 것을 실제보다도 부풀리고 없는 것을 상상하며 현실이 뭐라도 되는 것처럼, 사라진 것이 내 곁에 어떤 식으로든 존재한다고 여기는 것'으로 정의내린다. 여름은 저자에게 그런 것이다. 따끔거리는 햇살마냥 회피하고 싶으며, 나를 찌들게 만들기도 하여 한없이 예민한 인간으로 만들어버리는 현실. 그것을 '여름'때문이라 탓하기 좋도록 구실을 마련해주었다.

지나간 사랑도, 돌이킬 수 없는 날의 어떠한 한 때를, 그리워하기 딱 좋은 시절의 단상도, 유난히 반짝이고 화사하며 선명했던 여름이라는 카테고리안에 넣어두어 그 당시에는 외면하고 싶어했으나, 이제와 돌이켜보면 하염없이 그리워지게 만드는 생의 한 시절로 포장해두었다. 그게 매혹적인 여름이라는 계절이고, 그만큼 눈부신 삶의 어떤 순간이라는 걸로 '여름=청춘=그리움의 시절=돌이키고 싶은 순간=반짝였던 과거' 이러한 장면들로 엮어내어 주었다. 나는 여기에 인생의 순간을 쪼개어 내 여름은 어디에 머무는지를 생각해본다. 나이로 봐도, 삶의 형태를 봐도 뜨겁게 타오르던 여름은 지난 사람인 듯 하다. 그래서 저자의 순간들이 부럽다. 여전히 여름에 머물고 있을 것만 같아서. 그래서 남아있는 여름을 미리 맛 본 사람처럼 괜스레 알은척 해 보고 싶기도하며, 슬쩍슬쩍 스포 날리며 부러움의 표현을 잔뜩 해 주고 싶어진다.



📖선배_ 나는 그때 선배를 정말 좋아했다. 그가 타야 하는 버스의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나 그가 먹으면 좋아할 간식에 대해 생각하는 걸 좋아했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싱그러움을 가득 안고 있는 '1부 연인들'이 가장 탐이 났다. 여리기만하던 연녹색의 이파리들이 짙어지고 무성해지는 기운을 받았고, 그게 내 20대 초반 대학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어 나는 저자의 청춘을 핑계삼아 내 푸르르던 시절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던 페이지였다. 앞 뒤 잴 것 없이 심경을 표현하기에 주저함이 없었고, 내 사랑과 내 행복이 가장 우선시 되어지던 날들이었다. 그래서 선배를 좋아했고, 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애틋했으며 그러한 생각을 품는 내가 스스로도 예뻐보였으니까. 그게 선배를 좋아하는 마음, 단지 그 뿐인지. 아니면 다 커서 이렇게 좋아하는 감정도 생기고 누굴 향해 애틋함도 부릴 수 있는 어른같아보여 거울보며 '넌 멋진 녀석이야!'라고 하며 우쭐거리고 싶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선명해서 좋았고, 뚜렷하게 남겨있는 시작의 여름을 닮아있는 이 대목. 누구나 한번즈음 겪어 넘어갔을 시절. 저자 당신도 나도 이런 시절이 있었음에 이번 생의 여름은 허투루 보내지 않았단게 분명해 보여 조금은 만족스러워지는 순간이다.



📖펀치드렁크러브_ 사랑은 물리적인 일이다. 얻어맞은 것처럼 주저앉고, 어금니가 흔들리고, 몸은 붕 뜨고 시야가 흐려진다. 머릿속에는 내 맥박 소리로 둥둥거리고, 손은 식은땀으로 축축하다.

말하는대로, 원하는대로 이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만 세상만사 모두 뜻하는대로 이뤄지진 않았다. 고뇌하는 순간마다 어떤 할머니가 등장해서 '비비디 바비디 부!'를 외쳐줄 일도 없으니 매번 도파민 터지는 행복회로로 이어지진 않더라는 점. 그게 사랑이고 삶이었다. 세상 맛있게 먹던 자두맛 알사탕도 처음엔 향기롭고 달콤하지만 먹다보면 알사탕에 혀가 베이기도해서 비릿한 쇠맛이 느껴지기도해서 좋은데 싫은, 행복한데 두려운 일들이 항상 공존함을 느낀다. 양가감정을 느낌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도해 보는 것, 오묘한 긴장의 순간들에 생각이 많아진다.

📖우리는 서로에게 최면을 걸어줄 수도 있다_ 봄밤은 그런 식으로 어렵다. 도무지 느껴지지 않는다. 너무 좋은 것이 한 번에 펼쳐질 때, 그리고 머지않아 사라진다는 것을 알 때, 나는 좋은 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그것이 사라진다는 사실에 더 마음을 쓰게 된다.

너무 좋지만, 마냥 좋아 할 수 없는 어른의 우려. 이건 영원 할 수 없는 것이니 유한한 행복 속 어디쯤 도달해있는지 매번 확인해야 하는 과정. 설령 다 누리고 무(無)의 상태가 된다 하더라도 우린 같은 것을 보고 또 같은 마음으로 애틋 할 수 있느냐에 대한 생각을 하게된다. 매번 벚꽃을 보며 그 사람을 상상할지, 매번 싱그러운 잔디밭 위 구름 한 점 없는 파아란 하늘에서 그의 환한 미소를 떠올릴지, 함박눈이 내릴 때마다 매서운 추위를 뚫고 내 주머니로 들어와 손 잡아주던 따뜻하고 말캉한 손을 영영 기억해도 될런지. 그렇게 최면처럼 매 순간의 기억에 그 사람의 모습을 빗대어 두어도 상관없을런지. 그게 기억에 대한 최면이고 추억에 대한 환각 같아 이 좋음을 내 평생 좋음으로 명명해도 될런지 계속 의문을 갖게 만든다.


📖고등학교의 여름_ 밥을 먹은 뒤 학교 건물을 한 바퀴 천천히 걷는 애들, 빌려준 교과서나 체육복을 받으러 다른 반 교실에 가는 애들, 한쪽에서 춤연습을 하는 애들 사이에서 가슴 설레는 나.

확실히 1부의 연인들이 가장 또렷하게 기억이 될 초록(抄錄)의 기록일지, 2부와 3부의 감각과 장소에 대한 잔상이 주는 흔적의 기록이 될 지는 각자가 유념하는 바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어느 한 지점만 크게 부풀려 키울 순 없었다. 내가 떠올리는 감각의 흐름을 보면 미세하게 돋아나던 감각들이 커져 각 장소마다 잔상들이 남았고, 그곳에는 연접되어있던 이들에 대한 순간이 사진처럼 모든게 정지된 상태로 내 몸 어딘가에 박혀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움트기 시작하던 순간에서 확장되어 매 회차마다 새롭게 받아들이던 순간으로 넓게 퍼짐을 느낀다.


📖가짜여도 좋은 것_ 나는 지나간 여름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돌아갈 수 없는 여름을 좋아하고, 그런 여름을 노래한 음악이나 영화를 좋아한다. 여름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때 그와 더워하면서 돌아다닌 나무 아래 느티나무 밑에서 쉬는 사람을 한동안 바라봤던 것을 생각한다.

그게 하필 여름이었던 탓이다. 그게 아니라면 저자는 다른 계절을 사모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나간 여름의 사랑이라기보다 때마침, 하필이면, 우연찮게 라는 말들로 그 모든 순간이 여름이었음에 비식비식 웃게 된다. 앞으로 총 몇 번의 여름이 올 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모든 기쁨의 순간은 이때 누렸던 여름과 비교하게 될 테고, 이 계절의 싱그러움과 나의 생글거리던 젊음을 떠올리게 되겠지. 그래서 한바퀴를 돌아 다시금 찾아올 계절을 기대하며 살게 될 테고, 그럼으로 살아가는 이유 한가지가 추가됨에 살 맛나는 시절을 보내리라 가늠해본다.



어떤 지점은 짝사랑만 하던 아이가 상대와 눈맞춤을 했던 짜릿함처럼 여름은 그렇게 느껴질 것이고, 또 어떤 순간에서는 회전초밥 레일 위를 하염없이 돌던 석식 쉬는시간의 체육복 차림의 우리가 떠오르기도 할 것이다. 추워서 옹송그리지않았고, 흩날리는 꽃가루에 연신 코를 만지며 다른 데에 신경이 더 쓰이는 날들도 아니었다. 적잖히 덥지만 또 적잖히 살만한 뜨듯한 공기 속 가끔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좋아 우린 그러한 모든 날의 시절을 여름이라 명명하고있는지도 모르겠다.

괜시리 마음이 왈랑거리게 하는 에세이. 여름이 이래서 무섭다고 하는거야!!! 저자 덕분에 올 해 늦여름은 이렇게 몽글거리게 마무리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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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이야기
조예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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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여름이다. 그럼, 조예은 월드가 피어오르기 딱 좋은 시기라는거지. 조예은 월드를 사랑하는 독자로서 이 여름에 신작 발표는 눅눅한 세상을 티나지 않지만 서늘하게 만들어주는 무풍 에어컨 같은 존재. 뜬금없이 펼쳐지는 SF판타지형 소설이 아닌, 어딘가 한번쯤은 이러한 이야기가 휩쓸고 갔을지도 모를 세상의 소리라서 관심이가고, 저자가 이 이야기속에 숨겨둔 진짜 하고픈 말은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희열을 느끼고 싶어진다. 세상이 물에 잠긴거나 다름없어 보이는 습도에 어디든 시원한 곳만 찾게되는 요즘. 그리고 머리도 쉬고, 눈도 쉬고싶은 휴가. 집중하지 않으려 했으나 신간 출간이다. 그럼 어쩌겠어. 읽어야지.

혼자 맞이하는 휴가를 빌미삼아(=남편과 휴가가 달리 잡힘) 카페에서 내가 좋아하는 커피와 빵, 그리고 조예은 월드가 응축되어있는 신작 치즈이야기로 온전한 내몫의 행복을 찾아보게된다.

저자는 '무덥고 습한 계절에, 차가운 바닥을 뒹굴며 먹는 주전부리 같은 이야기들이 되기를'바란다고 전했다. '짜고, 달고, 역하고, 사랑스러운' 것들의 이야기인데, 이 단어들은 쉽사리 멀리 할 수 없는 마력의 무언가들이다. 그래서 나 역시도 별도의 추천사나 줄거리 서치 없이, 저자 이름 하나 믿고 고른거겠지. 2020년 봄의 '칵테일, 러브, 좀비', 2022년 여름의 '트로피컬나이트'. 그리고 2025년 7월의 '치즈 이야기' 조예은표 습기어린 3부작의 완결형 이야기. 서점 소설 MD는 이렇게 세 번째 여름 테마파트 개장을 표현했지만, 3부작으로 끝나기 아쉬우니 일단 이거 완독 후 다음 여름을 미리 기대하게만든다.


📖치즈 이야기_ 엄마에게 오랫동안 궁금했던 질문 한 가지를 던졌습니다. 그때, 집을 나간 후에 단 한 번이라도 방안에 두고 온 저를 떠올린 적 있느냐고요. 엄마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깜박햇서'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냄새. '나'의 유년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당신'의 현재를 대변하는 썩어가는 과정. 상황을 묘사하는 문장의 무게는 상당히 가뿟하다. 무게를 잡지 않는다. 그런데 그 속에 담긴 내용은 한없이 축축하고 무겁게 느껴진다. 화자는 이 일이 대수롭지 않은 듯 이야길 해주니 당황스럽다. 분명한 원망이 서려있는데, 그놈의 블루치즈라는 것으로 환상을 만들고 사랑의 대상을 그것으로 옮겨버린다. 자신을 측은하게 만들지 않으려 하는 상상이 더 저릿하게 만든다. 어린시절의 그는 슬프고 무서웠을텐데, 지금의 그는 여전히 응어리져있는게 분명해보이는데 썩어가는 엄마를 마주하며 '잘 숙성된 치즈의 냄새'로 이 상황을 묘사해내어 흥미로운 순간이 다가왔다는 듯 경쾌한 어조를 내비친다. 그래서 화자가 얼마나 고대한 날인지를 가늠하게 만든다.

한 두번 놓친 상황이 아니었다. 깜박했다 하기엔 그 횟수가 잦아졌고, 그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남겨진 이에 대한 걱정은 안중에도 없이, 당신의 쾌락만을 찾았다. 모정이 숨겨진게 아니라 애초에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사람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당신의 돌봄이 필요한 작은 생명에 대한 외면, 그렇게 시간이 지나 외소하고 몸이 쭈그러든 늙어버린 당신이 되려 돌봄이 필요 한 상황으로 전세는 역전되었다. 다 큰 자식에게 기생하는 과정. 똑같이 당하고, 똑같이 '깜박햇서'라는 말로 깊은 고립의 시간에 대한 대답을 듣는다면 과거의 행실에 반성을 하게될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생각보다 사람은 바뀌지 않더라. 사람은 고쳐 쓰는게 아니라 했다. 괜한 말이 아니라는 거지. 그래서 그런가 이야기 밖의 내가 화자를 뜯어 말리며, 그래도 자식된 도리를 운운하고, 똑같은 사람이 되면 안되지 않겠냐며 생각을 고쳐먹게 만들지 않게된다.

그리도 동경에 마지 않던 치즈를 마주하고 먹었을 때 허무했던 상황. 머릿속에 수없이 그려냈던 맛의 확장성이 아니었던 일종의 배신감. 그건 그대로 엄마에게로 대상이 옮겨진 것이기도 했다. 사랑을 갈구했고, 자신을 향한 몽글거리는 시선을 기대했던 이전, 꼼짝없이 자신의 앞에 누워 고분고분해진 늙은 엄마를 대하는 기대치가 확 떨어진 식어버린 관심까지. 사랑하려 했으나 미워할 수 밖에 없는 나의 부스러기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보증금 돌려받기_ 저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고요...... 제가 눌러드려요?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이렇게 만든건 다 당신이 자처한게 아니냐며 어금니를 꽉꽉 눌러가며 또박또박 말하게된다. 당신에겐 한낱 노후자금이거나 당장 필요하지 않는 여윳돈의 일부일텐데 나에겐 당장의 내일을 좌지우지할 삶이었다는 걸 알면서 그걸 쥐고 흔드는 꼴. 헌데 이게 책 속의 이야기 뿐일까? 당장 죽고 사는게 뚜렷하게 갈리는 상황이 아닌 것 처럼 보여도 당사자에게는 죽을 듯한 고통의 감각을 온몸으로 얻어맞는다.

집이 잘 팔리길 바라며 둘러보러 온 사람에게 한없이 상냥하고 친절하게 포장하며 집주인과 한통속이 되기도하며, 집이 안 팔리는게 왜 내 탓이냐며 성질을 내다가도 나도 이사갈 집에 돈을 내야하지 않겠냐고 읍소하게된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돈을 돌려주는게 당연하지 않냐며 몰아세우기도 하다가 그간의 전적을 살피며 단념하기도하며 매 순간마다 악인이 되었다 인간으로 돌아오는 무한 반복을 거듭한다. 꿈을 꾸고 환영을 마주하는건 어쩌면 본성의 자아가 악마를 끄집어내어 지금 네가 하는 모습이 딱 이 꼴이지 않냐며 비춰주지만 결국 본인의 또다른 자아임을 깨닫지 못한다. 악에 악으로 치닫게 만든건 결국 당신들이지 않냐는 식으로 나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만들지 않았냐는 것으로 사람이 악마가 되는 과정을 조근조근하게 일러준다.


📖수선화에 스치는 바람_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이런 선택을 했다는 걸, 그애의 다른 선택지를 막고 의사를 조종하며 삶의 의미와 즐거움을 얻는다는 건 모를 터였다.

나를 갈아 넣는다는 말. 내가 못하는 건 너라도 해야 되지 않겠냐는 연민어린 시선. 이건 단지 나 처럼 살지 말라는 뜻의 애틋함이 아닌 듯 하다. 나는 도저히 이 상황에서 꽃을 피워 낼 자신이 없으니 너는 할 수 있을 거라는 것으로 응축된 세뇌와 질척거리는 강요를 끼얹어주었다. 고맙지만 부담되는 과한 챙김. 하지만 그 이유를 모르지 않으니 받아들이는 현실. 희생은 대물림되고, 온전치 못한 애정도 엄마를 통해 딸들로 휘어져 흘러간다.

치즈 이야기의 모친이나 수선화에 스치는 바람의 모친이나. 그들도 그들의 부모에게 받은 사랑이 온전치 못했던건 아닐까를 생각한다. 사랑도 받아 본 사람이 잘 하는 걸테고, 학습된 효과는 무시 할 수 없을테니 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이들의 부모가 제대로 된 사랑을 주지 않았고, 두 이야기의 모친들 역시 사랑을 그렇게 받아 누린 적이 없었기에 이 사달이 난게 아닌지로 잘잘못의 영역을 확장하게된다.

이들와 관계가 어그러진 이유. 어떻게든 멱살잡아 옳게 만들고 싶어 언니가 엄마의 탈을 쓴 채 동생에게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 줄 것 처럼 하다가 인형놀이하는 주인으로 역할을 바꿔 꿰차기까지. 선희라는 아바타 게임에 목숨이 다 소진되어야 끝나는 게임일까? 누가 하나 죽어야 허탈하게 반성하며 닭똥같은 눈물 흘려야 제대로 된 반성을 할 듯 하다. 그전엔 이거 쉽게 안 끝날 꼴이야.



📖두번째 해연_ 축적한 지식과 기억이 한순간에 납작해지리라는 예감이. 보이지 않는 저만의 서랍에 늘 존재하던 애증의 순간들이 언젠가는 부옇게 뭉개질 거라는 사실이. 백연에게 기억이란 인간을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고유의 암호였다.

정체성의 변화. 관계의 재정립. 외형적 동일함, 기존의 축적된 데이터가 주는 동일성의 영역. 그렇다고 해연A와 해연B가 완벽히 동일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이었던 시절 해연A, 기억을 물려받고 데이터화 된 외형을 구축해낸 사이보그 해연B. 현실의 상실, 환각처럼 구현된 허상의 존재. 그것으로 우리는 상실에 대한 감정과 그리움에 대한 애틋함을 완벽히 충족 해 낼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소설속 인물 뿐만 아니라 나 역시도 진지하게 답을 찾게 만든다. 어디부터가 진실인지, 어디까지가 과정을 얹은 변질된 모습인지. 두번째 해연처럼 두번째의 내가 이 세상에 나인척 살아간다면 이미 죽어버릴 순간의 나는 마음이 편할까, 되려 미안함이 커질까?(각각의 단편들이 하나같이 나를 물음표 살인마로 만든다. 되묻게 만드는 지점이 너무 많네) 이로인해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고어로 분류가 되며 모든 인간들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기억의 굴레로 가둬두는 또하나의 감옥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은 걱정을 하게 만들었다. 괜한 걱정이겠다만 당장의 나의 노후에 해연B 만큼의 꽤나 정교한 남편B가 구축된다면 행복의 연장선이라면서 반길 자신이 없어진다. 적어도 나는 알잖아. 진짜 같지 않은, 진짜 인척 하는 진짜 같은 가짜라는 걸.



📖안락의 섬_ 저는...... 그냥 안 태어날래요. 소중한 것들이 사라지는 걸 보는 일은 너무 슬퍼요. 더군다나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게 하필 나라면.

안락의 섬에서 어딘가 모르게, 며칠 전 먼저 읽었던 손원평의 '젊음의 나라'가 떠오르기도했다. 손원평은 유닛A~F로 구분하여 젊음이 지난 이들의 남겨진 생의 분류를 보여주었다. 젊지 못한 이들이 젊었을 때 얻어낸 부로 살아가는 노년의 세상 분류를 보여줬다면, 안락의 섬에서는 안락을 제공하며, 이른바 자신이 선택하는 생의 끝을 제공한다. 이건 올 초 읽었던 '죽은 다음'이나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의 이야기의 소재들을 기반으로 한 행복의 끝을 찾으려는 인간의 결정을 보여주는 듯 하다. 반려견이 생의 끝이 보이니 생을 마감하고나면 자신의 끝도 이어 붙이려는 모습이 담긴다. 이는 반려견이 있는 이들에게 비슷한 양상을 보이던 견주의 마음이기도했다. 이게 비단 견주의 마음 뿐일까. 사랑하는 이률 보낼 준비하는 사람들이 갖게되는 심적 고통과 결정이기도했다. 그래서 그러한 마음을 실행에 옮기려 안락의 섬으로 찾아 간 것이다.

소중한 것들 덕에 행복했지만, 그 소중한 것이 소멸되면 모른척 외면했던 슬픔이나 고통이 한번에 밀려올까봐 두려워한다. 그게 무서워 다시 태어나길 거부한다면 현재의 행복이 얼마나 꽉채워져있길래 그러나 싶어하며 이 관계의 애틋함을 세세하게 말하지 않아도 어느정도 가늠하게 만든다.

반려견이 눈을 감았고, 이제 안락을 준비해야하는 후 작업. 사흘 뒤로 정해진 생의 끝. 안락에 드는걸 반려견이 반길까? 자신을 따라온다는걸 반가워하며 꼬리흔들고 달려올까? 한여름밤의 꿈같은 상황이었다. 변한건 없다. 아니, 변한게 있다. 반려견은 작은 유골함에 있고, 그는 죽지 않았다는 것.

혼자 감당하는 몫을 택했고, 반려견을 유일하게 기억하는 사람으로 남아 행복했던 순간이 소멸되지 않도록 번복하며 떠올리는 역할을 자처하기로했다. 둘이 안락에 들며 무(無)것으로 지우지 않고, 적어도 자신만이라도 반려견을 기억하는 방법을 택했으니 적어도 반려견만은 온전한 안락에 닿아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단순한 책 표지. '치즈 이야기'라며 전혀 가늠 할 수 없도록 만들어낸 제목. 치즈 구멍 마다 쿰쿰하게 묵히고 방치하며 쉽사리 꺼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곰팡이마냥 들러붙어있다. 그래서 이 덩어리들을 쉽사리 손대며 긁어내기어렵다. 휴지로 쓰윽 닦아내며 흔적을 지우고싶지만 야무지게 스며들어있어 결국 자국이 남는다. 그게 이 단편들이 가진 마음의 딱지였다. 역시나 여름의 기운처럼 습하고 눅눅하고, 개운치 못해 미련을 섞어가며 이 존재들이 멀끔히 살아내길 바라게되지만 어느하나 마음대로 될 수 없음을 안다. 하루 이틀 만에 이뤄진 일들도 아니다. 오랜시간동안 꾸준하고 진득하게 인물들을 쥐어짰으니 이건 두고두고 흔적이 남을 것이다. 옷으로 가릴지언정 적어도 나는 알고있는 표식이었다. 이 마음을 어떻게 달래야하나 고민이 많다. 정말 발치에 닿은 죽음은 아니지만 그 기운에 버금가는 다양한 형태의 자극들.

무덥고 습한 계절, 눅눅하고 진득한 시간이 지나면 조금은 달라질까? 계절이 바뀌는 것 처럼, 상황이 달라지면 숨 쉬는게 편해질지. 쉽게 변하지 않겠다만 이들이 겪는 이 여름이 지나 조금은 선선한 바람이 그들에게도 닿아지길 바라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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