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프 시티 소설Q
손보미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야기는 그녀(나), 그(남편), 임윤성, 최진유, 그리고 그들이 머무는 세이프 시티에서 이뤄진다. 세이프 시티라는 제한적인 공간에서, 선택적으로 기억을 삭제하는 기술의 보급화. 그걸 목도하기 위해 임윤성이 무던히도 애쓰는 과정. 처음엔 나와 상관 없는 기사거리라 여겼으나 나와 엮여있는 사건. 내 사고를 눈앞에서 보았음에도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못했던 남편. 흉기를 휘두른 자는 피해자인 나를 못 알아보는 상황. 임윤성의 아내 최진유는 부부동반 모임에서와는 다르게 나와 있을 때 다른 갈래의 행태를 취한다. 넷이서 함께 할 때와는 다른 행동과 말들. 그들이 진짜 원하는 바는 무엇이고, 그들이 바라는 세상은 어떠한 것이길래 부부끼리든 이 모임에서든 속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것인지. 믿을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다들 함구하려는 지를 함께 생각하게된다. 불리워 지는 것에만 치중한 '세이프 시티'안에서 어느 것도 안전하지 못한 사람들의 심리를 따라가본다.



📖인간의 기억은 변합니다. 한때는 아주 중요했던 사실, 절대 잊어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한 기억을 잊은 줄도 모른 채 잊어버리죠. 인간은 고유하지 않아요. 한 인간이 고유하다는 건 환상일 뿐이죠.

천년만년 기억하고싶은 것들이라도 시간이 흐르면 자기가 원하는 방향대로 기억은 왜곡되고, 또 일부는 휘발되어 소실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유한하지 못하다는 것. 이건 어쩔 수 없는 팩트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외부의 자극으로 그것을 변형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을 어필한다. 이게 인간의 존엄성이라며 기억을 품고있는 인간을 껍데기 삼아 보존하려하는 일반적인 사람의 심리를 수면위로 끌어올린다. 그게 임윤성과 그녀가 대립 할 수 밖에 없다는 걸 보여주는 자리. 여기에 임윤성은 극단적인 상황을 예시로 들며 반대 입장을 하고있는 그녀를 자극시킨다. 범죄자의 존엄성까지 존중해주어야 하는 것인지, 비윤리적인 것에도 공평과 형평성을 논해야하는게 마땅한지를 이들의 대화에 독자의 의중을 끌어내고있다.

기억을 없애는 기술이 상용화 된다는 가정 하에, 우리는 어떤 것 부터 소거하게 될까. 그리고 우선 적용되는 대상을 누구로 선정할 것인가에대한 것도 이목을 끌기 딱 좋다.

임은 범죄자를 거론하며 우선시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하며 운을 띄운다. 그녀는 범죄자에게 존엄섬이 있음을 언급하며 비윤리적인 것에 대한 선정에 반문한다. 나는 임도, 그녀도 아닌 다른 편에서 서고싶다. 악행을 저지르고 단순히 기억을 지움으로서 형벌이 가벼워진다? 형량을 줄이는 것 보다 기억 자체를 소거 한다는 것은 죄책감 마저도 지워서 無의 상태로 만든다는 것인데, 과연 그게 형벌일까? 갱생하겠다며 꽁으로 얻어낸 얕은 속내 같아 적어도 그들을 우선 적용해선 안된다 여기는 입장이다. 역시 결론이 나오지 않는 논쟁이다.

헌데, 이 이야기의 끝엔 임이든 그녀든 누군가는 목표점에 도달하게 될 뉘앙스를 풍겨온다.


📖그날 밤 거기에서 일어난 '진짜'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없다.

거기서 일어난 일. 안전하지 않다고 미리 고지한 지역, 늦은 시간, 관리가 안되는 건물의 화장실, 흉기를 든 사람, 맨몸으로 달려든 여자. 범죄자는 환자의 관점으로 시선이 넘어감. 처벌이 아니라 치료의 수순. 거기서 그러한 사건이 일어 날 수 밖에 없던 정황이나 범죄자가 행한 목적이 중요하지 않았다. 범죄자가 환자가 될 것인가? 와 더불어 환자로 전환되어 때마침 진행하던 실험의 대상자로 전환 될 것인가? 만 주목하고있겠지.

피해를 입었고, 보호받지 못하는 환경에 있는 소외된 자들은 언론도, 경찰도, 시민마저도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자연스럽고 익숙한 세상임을 한번 더 확신하게된다. 그렇다 보니 임이 범죄자를 최초의 대상자로 선정하여 언론을 등에 업고 시행하려는 게 당연한 소릴지도 모르겠다. 최소 인원으로 최대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기회이니 쉽사리 놓칠 수 없는 타이밍인 것이다. 이른바, 이 지랄맞은 타이밍.

📖그러므로 그들은 같은 '편'이라고 할지라도 서로를 불신하고 무시하고 증오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다른 '편'에 섰다는 이유로 서로를 절대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쟤는 되는데, 왜 나는 안돼?'라는 심리. 편하게 죄를 탕감받는 범죄자. 좋아보이는 그거 나도 할래! 로 너나나나 할 것 없이 벌떼처럼 달려들게되는 군중심리. 부작용에 대한 것은 염두에 두지 않는 무작정 요청하는 생떼 같은 것. 그러니 어찌해도 공감하기 어려운 각자의 입장들. 화두는 던져졌고, 그걸 가지고 지지고 볶고 신나게 서로를 물어뜯는 판은 조성되었다. 임은 이전과 달리 더 편하게 시행 할 수 있는 구실을 얻어냈다.



📖그녀는 그게 회피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 이게 뭐지? 그냥 나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뿐이야. 하지만 무엇으로부터?

세이프 시티로 운영되는 레벨에 맞춰 안전하다 하는 1구역과 2구역으로만 다니게되고, 현수막으로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낡은 건물엔 들어가지 않는 것. 설령 지나치더라도 차로만 다니지 대로변을 걸어다니며 알 수 없는 위험에 노출되지 않는 것. 나 자신을 보호하는 방식. 그건 또 어떻게 보면 3구역 4구역 사람들이 모조리 범죄자로 여기는 무의식 중 의식의 편견일 수도 있음을 느낀다. 그렇다면 하위 구역 사람들에게도 기억 교정술을 우선 적용해야하는 상위 집단이 되는 걸로 치부하고 있는건 아닐지. 1구역 사람들만 남는다면 그게 최선의 선택이고 최고의 안전 구역이라 할 수 있을지. 이 모든 것이 각자의 관점이며 편견이고 착각이라는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 일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잘 안 하거든. 딴 세상의 일이지. 하지만 악행은 달라.

우리는 언론에서 보도되는 사건 사고를 마주 할 때마다 양가감정에 휩싸인다. 피해자가 안쓰럽고 걱정이 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당사자가 내가 되거나 내 가족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안도감.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지 않은 것에 대한 다행스러운 마음이 클 수 밖에 없다. 상대를 걱정하긴 하나, 결국 내가 살고 봐야하는 거니까. 내가 살아야 남을 걱정하든 돕든 할 테니 일단 나는 무탈하다는 것에 마음 놓인 채 측은한 마음을 갖게된다. 이게 도덕적 우월감인지 사회화가 잘 되어진 인간의 공감능력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게 악에 대한 것으로 전제가 옮겨지면 매번 다른 변수가 생긴다. 그래서 무섭고 그래서 예측이 안 되는 것이다.

일단 저자가 수면위로 끌어올리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지 인지했고, 주인공과 대립대는 임윤성, 부부인 최진유는 겉으로는 같은 결을 띄고 있지만 남편과 마주하지 않는 다른 공간에서는 다른 목적을 두고 약자의 편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타인을 돕게된다. 주인공과 같이 살지만 어떠한 도움이 되지 않는 듯 그려지는 남편의 입장. 평소와는 다른, 극한의 상황에 놓여졌을 때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는 것을 목격함에 있어 주인공은 속내를 드러내거나 예민한 논쟁에 대해서는 말을 줄인다. 그래서 그녀는 무엇을 지키고 무엇에 의견을 내며 어떠한 편에 서서 목소리를 높일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일단 임에게는 대립을 할 텐데 생각보다 답답한 면을 보이기도한다.

판세는 기억교정에 대한 작용, 범죄자에 대한 우선 적용을 찬성하지만 피해자이며 당사자인 본인은 반대하기에 어떻게든 여론을 돌릴 방향을 모색한다. 3자의 입장에서 볼 때 못하는게 아니라 안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며 살짝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한다. 기억 교정술을 시행하되 그 대상을 그 자로 해서는 안된다는 방향으로 여론을 이끄는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더 큰지라 주인공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게 되었다.

주인공이 좀 더 힘이 있었더라면, 차라리 최를 업고 다른 방향으로 틀게 되더라도 그것만 아닌 것으로 돌려 결론을 찢어내더라도 후반부 이야기는 좀 더 재미나게 읽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갖게된다.

완독을 하고나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요?'라는 말이 제일 정확한 듯, 이야기는 다소 답답함만 남긴채 끝을 맺어버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