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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딩엄마 파란만장 인생 분투기 - 반드시 지켜주겠다는 약속
차이경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8월
평점 :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되었습니다.

브런치스토리를 보면 재미난 이야기들이 있다. 그저그런 단상이나 감정 쓰레기통 같은 것도 있지만 찾아보면 다음 회차가 궁금해지는 글들도 만날 수 있는게 이 플랫폼의 매력이거든. 제12회 브런치북 종합 부분 대상작인 이 글도 그 중 하나. 진짜 이게 될까 싶은 '미친 고난'을 혼자 다 겪어낸 저자의 찐 인생이야기. 이렇게 어찌 사나 싶지만 살다보니 살아지더라는 어르신들의 이야기처럼 살아 낸 이의 생생한 인생사를 만날 수 있다.
제목이 자극적이다. '고딩엄마 파란만장 인생 분투기' 고딩엄마라 하면 연상되는게 있다. '고딩엄빠'라는 케이블채널의 예능. 직접 본방을 사수 한 적도 없지만 클립영상이나 SNS에 올라오는 캡춰본, 기사들을 보면 선한 시선으로는 보기 어려웠다. 기획편성 의도가 어떻든간에 내가 이해 할 수 있는 선의 행동들이 아니었다. 뭐, 일찍 사랑에 빠지고 내 평생을 함께 할만한 인연이라 여겨 빨리 2세가 생긴다 한들 그에 대한 책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지들 즐거움에 애꿎은 아이만 불쌍해지는 꼴을 못 보겠더라는 거지. 그래서 이 단어를 썩 좋게 볼 순 없었다. 내 주변에 학생 신분으로 부모가 된 사람이 없어서 그런건지는 알 수 없으나 고딩부모라는 단어는 단단한 지붕과 튼튼한 집의 구조를 띄고 있단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 중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배경이 전제가 되는 그런 가족사? 세상에 사연 없는 가정이 어디 있겠냐만 시작부터 서로가 원하지 않는 사랑과 출생이라면 나는 무조건 반대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시작점도 그러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고딩엄마라는 책 제목이 있으니 저자의 남편이 자기부모에게 휩쓸려 처자식을 모르쇠하거나 도망 갈 줄 알았다. 이야기는 흘러가며 고딩엄마와 고딩아빠라는 전제만 주어질 뿐 어떻게든 내 새끼 지키는 빡빡한 세상살이라는게 소제목으로 와도 무방하다 여겨졌다.
부제로 적혀있는 '반드시 지켜주겠다는 약속'은 부정 할 수 없도록 약속을 지켰고, 지금도 지켜내는 이야기라 보면 된다. 시작은 고딩엄마였겠지만 지금은 그냥 두 아이의 엄마, 억척스러운 아내, 집안 일으키는 기둥, 여전히 배움에 열정적인 그녀로 보여질 뿐이다.
총 3부작으로 나뉘어진 이야기는 그녀의 시절을 기반으로 나눈 듯 했다. 주민등록증도 발급 받기 전인 아이가 엄마가 되었던 순간, 그리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지키기 위해 무던히 애썼던 애가 애를 키우던 날들의 짠함 한무더기가 '1부 주민등록증도 없는 엄마' 였다면, '2부 엄마는 어른이 된다'를 통해 어떻게든 가정을 지키고 식구를 챙기려 했던 억척스러움이 극에 달했던 시절을 보여준다. 매번 욕을 됫박으로 퍼붓는 시부모, 사고치며 온전한 가정을 꾸리지 못해 늘 흔들리던 친정엄마, 핏덩이랑 아직 솜털이 그대로인 애엄마를 두고 군대를 가야하는 어린 아빠. 어떻게든 먹고 살려고 시부모에게 무릎꿇고 손벌리며 장사 밑천 마련하며 뭐라도 해보려 했던 아등바등거림. 그 사이 아이는 자라고, 엄마도 단단해 진다 여길 때 마다 남편이 아프고, 아이가 아프고, 자신마저 희귀 난치성 질환자로 판명이 나며 열심히 좀 살아보려 그러는데 매번 발목을 잡는 것들이 생겨난다.
'3부 아주 작은 자유' 희망은 뜻하지 않는 곳에서, 기쁨은 가끔 한무더기 몰아서 오기도 한다는걸 보여주는 시기였다. 제대로 시를 써 본 적이 없는 저자가 주부백일장에서 장원이 되기도하고, 그 순간을 발판삼아 검정고시와 대입까지 도전하는 공부하는 엄마로서의 역할이 하나 더 추가된다. 큰 아이와 함께 수험생이 되기도하고, 또 자식 뒷바라지하는 엄마, 대학원 공부 하고싶다는 남편도 서포트하며 자신을 쪼개고 쪼개어 살아가며 자기만의 보람을 챙기는 중년의 시기를 겪어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일단 술술 읽히는데, 때때로 성질머리가 뻗치는 구간도 있다. 나이도 다르고, 결혼 한 시기도 다르지만 나도 며느리라 그런지 속에 천불이 나기도 했는데, 이 서글픈 마음과 서러운 순간을 풀어 둘 곳이 없었을 저자의 고달픔을 생각하면 짠함이 왈칵 밀려왔다. 당신 아들은 죄가 없고, 꼬리치고 꿰어내어 애가 덜컥 들어섰으니 며느리가 이뻐 보이진 않겠지. 근데, 손뼉도 부딪혀야 소리가 나기 마련인것을 왜 외면하려 하시나. 그리고 당신들 집안에 아들이 없는데 덜컥 손주 생긴건 좋아하면서 그 애미는 왜 밉게만 보려 하시는지. 그럼에도 시부모를 등지지 않았다는 것도 놀라웠다. 하긴, 남편 보고 사는거지 시부모 보고 사는건 아니니까. 이렇게 욱하다가도, 그럴 수 있지 라는 마음으로 수그러드는건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고, 또 고생스러웠던 순간이 많아 측은함이 컸는지도 모르겠다. 빈형도 그러려니 넘기고, 속 아파도 그러려니 넘기며, 굶는게 태반이니 그것마저도 넘길 수 밖에 없던 살림. 안되는 건 알았지만 쌀을 훔쳐서라도 애를 먹여야했고, 남편이 입대를 하더라도 참새같은 새끼는 보듬어야했다. 임대아파트 거지라며 손가락질 받는 아이 때문이라도 허리띠를 더 졸라매 학군은 못 바꾸더라도 집이라 할 만한 곳, 친구를 데리고 오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곳에서 살 수 있도록 돈을 모아야했고, 장사 능력이 하늘에서 떨어지는건 아니라며 아무것도 할 줄 몰라도 부딪혀가며 배우는 무대뽀정신도 밀고나가는 걸 보니, 이 엄마 진짜 안 해본게 없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잃을 게 없는 게 무서운거고 용감한것. 그래서 사력을 다해 살아내는 과정이었다. 지금 시대엔 그게 가능할까? 그건 잘 모르겠다. 시부모 복은 모르겠고, 시고모님의 보살핌이 감사했고, 매번 사랑타령하며, 옳게 가정 꾸린 적 없는 친정엄마지만 가끔은 의지 할 만한 어른이기도했다. 부모 복 보단 자식 복이 더 큰 사람 같고, 때때로 미운짓도 했지만 그래도 아플 때, 혹여 저자의 부재가 길어질 때 도망치지 않고 지켜내준 순간들에 감사했다. 제 아빠가 실적 돌려막기하듯 사서 쟁여둔 책으로 스스로 공부했던 대견한 첫째도 그러하고, 둘째는 눈치로 큰다는 말 처럼 병원생활이 길어졌던 엄마를 보채지 않고, 병원 이모 삼촌들이랑 지내며 무서움도 꾹 참고 기다려준게 기특하기만하다. 커 갈 때엔 사고 안 치더라도 재수 삼수로 속을 썩였지만 제 갈길로 가고있는건 분명해보이는 첫째는 물론이고, 고딩아빠에서 대학다니게해줘, 대학원도 지지해준 아내로의 삶을 보면 시부모보다 남편을 더 잘 키운 아내라 할 수 있겠더라. 엄마는 어른이고 나무같은 사람. 아파도 누워만 있을 수 없는 사람이었고, 안되면 되게 하는 청와대로 오라가라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라는 점에 서글픈 이야기 속 피식피식 웃던 날과 장하다며 욕봤다고 따뜻한 손으로 등을 쓰다듬어 주고 싶은 마음도 드는 에세이다.

버리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다. 약속한 건 지켜냈고, 아이를 지켰고, 가정을 놓지 않았다. 자신 마저도 포기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이렇게 떳떳하게 글을 쓸 수 있었다. 고딩엄마라서 곱지 않은 시선을 단박에 밀고 나갈 이유가 되는 삶이었다.
그런데 3부에서 끝났다. 크론병에 맞는 약이 없으니 매번 항생제와 함께 살아야했다. 시모는 폐암 말기로 세상과 등졌다. 아이는 다시 그 학교로 갔고, 남편은 안정적이며 오래 다녔던 직장에서 나와 세상의 풍파를 정면으로 맞딱들이기도했다. 그 중심의 그녀의 안부를 묻고 싶다. 괜찮냐는 뻔한 질문 대신, 약은 잘 챙겨 먹는지, 둘째놈은 요새 뭐하고 다니는지 에둘러 물어보며 그녀의 요즘 세상살이 이야기 물꼬나 좀 틔워보며 은연중 섞여나올 신세 한탄에 가뿟하게 맞장구라도 쳐 주고 싶다. 가끔 이렇게 터놓을 곳이라도 있어야 사니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며 대나무 밭 하나 얻어 속이라고 시원하게 게워내면 또 살아지니까, 그러한 구실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브런치를 통해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책으로 한데 모아 파란만장한 인생살이가 빛을 본지 이제 한달도 안 된 지금 애교섞인 재촉을 하며 '그래서 4부는 언제 만들 줘요?' 라며 옆구리 쿡쿡 찔러가며 썰 풀이 판을 꾸려주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