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내가 원한 것
서한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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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포터11기로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여름은 모든 것을 실제보다도 부풀리고 없는 것을 상상하며 현실이 뭐라도 되는 것처럼, 사라진 것이 내 곁에 어떤 식으로든 존재한다고 여기는 것'으로 정의내린다. 여름은 저자에게 그런 것이다. 따끔거리는 햇살마냥 회피하고 싶으며, 나를 찌들게 만들기도 하여 한없이 예민한 인간으로 만들어버리는 현실. 그것을 '여름'때문이라 탓하기 좋도록 구실을 마련해주었다.

지나간 사랑도, 돌이킬 수 없는 날의 어떠한 한 때를, 그리워하기 딱 좋은 시절의 단상도, 유난히 반짝이고 화사하며 선명했던 여름이라는 카테고리안에 넣어두어 그 당시에는 외면하고 싶어했으나, 이제와 돌이켜보면 하염없이 그리워지게 만드는 생의 한 시절로 포장해두었다. 그게 매혹적인 여름이라는 계절이고, 그만큼 눈부신 삶의 어떤 순간이라는 걸로 '여름=청춘=그리움의 시절=돌이키고 싶은 순간=반짝였던 과거' 이러한 장면들로 엮어내어 주었다. 나는 여기에 인생의 순간을 쪼개어 내 여름은 어디에 머무는지를 생각해본다. 나이로 봐도, 삶의 형태를 봐도 뜨겁게 타오르던 여름은 지난 사람인 듯 하다. 그래서 저자의 순간들이 부럽다. 여전히 여름에 머물고 있을 것만 같아서. 그래서 남아있는 여름을 미리 맛 본 사람처럼 괜스레 알은척 해 보고 싶기도하며, 슬쩍슬쩍 스포 날리며 부러움의 표현을 잔뜩 해 주고 싶어진다.



📖선배_ 나는 그때 선배를 정말 좋아했다. 그가 타야 하는 버스의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나 그가 먹으면 좋아할 간식에 대해 생각하는 걸 좋아했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싱그러움을 가득 안고 있는 '1부 연인들'이 가장 탐이 났다. 여리기만하던 연녹색의 이파리들이 짙어지고 무성해지는 기운을 받았고, 그게 내 20대 초반 대학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어 나는 저자의 청춘을 핑계삼아 내 푸르르던 시절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던 페이지였다. 앞 뒤 잴 것 없이 심경을 표현하기에 주저함이 없었고, 내 사랑과 내 행복이 가장 우선시 되어지던 날들이었다. 그래서 선배를 좋아했고, 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애틋했으며 그러한 생각을 품는 내가 스스로도 예뻐보였으니까. 그게 선배를 좋아하는 마음, 단지 그 뿐인지. 아니면 다 커서 이렇게 좋아하는 감정도 생기고 누굴 향해 애틋함도 부릴 수 있는 어른같아보여 거울보며 '넌 멋진 녀석이야!'라고 하며 우쭐거리고 싶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선명해서 좋았고, 뚜렷하게 남겨있는 시작의 여름을 닮아있는 이 대목. 누구나 한번즈음 겪어 넘어갔을 시절. 저자 당신도 나도 이런 시절이 있었음에 이번 생의 여름은 허투루 보내지 않았단게 분명해 보여 조금은 만족스러워지는 순간이다.



📖펀치드렁크러브_ 사랑은 물리적인 일이다. 얻어맞은 것처럼 주저앉고, 어금니가 흔들리고, 몸은 붕 뜨고 시야가 흐려진다. 머릿속에는 내 맥박 소리로 둥둥거리고, 손은 식은땀으로 축축하다.

말하는대로, 원하는대로 이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만 세상만사 모두 뜻하는대로 이뤄지진 않았다. 고뇌하는 순간마다 어떤 할머니가 등장해서 '비비디 바비디 부!'를 외쳐줄 일도 없으니 매번 도파민 터지는 행복회로로 이어지진 않더라는 점. 그게 사랑이고 삶이었다. 세상 맛있게 먹던 자두맛 알사탕도 처음엔 향기롭고 달콤하지만 먹다보면 알사탕에 혀가 베이기도해서 비릿한 쇠맛이 느껴지기도해서 좋은데 싫은, 행복한데 두려운 일들이 항상 공존함을 느낀다. 양가감정을 느낌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도해 보는 것, 오묘한 긴장의 순간들에 생각이 많아진다.

📖우리는 서로에게 최면을 걸어줄 수도 있다_ 봄밤은 그런 식으로 어렵다. 도무지 느껴지지 않는다. 너무 좋은 것이 한 번에 펼쳐질 때, 그리고 머지않아 사라진다는 것을 알 때, 나는 좋은 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그것이 사라진다는 사실에 더 마음을 쓰게 된다.

너무 좋지만, 마냥 좋아 할 수 없는 어른의 우려. 이건 영원 할 수 없는 것이니 유한한 행복 속 어디쯤 도달해있는지 매번 확인해야 하는 과정. 설령 다 누리고 무(無)의 상태가 된다 하더라도 우린 같은 것을 보고 또 같은 마음으로 애틋 할 수 있느냐에 대한 생각을 하게된다. 매번 벚꽃을 보며 그 사람을 상상할지, 매번 싱그러운 잔디밭 위 구름 한 점 없는 파아란 하늘에서 그의 환한 미소를 떠올릴지, 함박눈이 내릴 때마다 매서운 추위를 뚫고 내 주머니로 들어와 손 잡아주던 따뜻하고 말캉한 손을 영영 기억해도 될런지. 그렇게 최면처럼 매 순간의 기억에 그 사람의 모습을 빗대어 두어도 상관없을런지. 그게 기억에 대한 최면이고 추억에 대한 환각 같아 이 좋음을 내 평생 좋음으로 명명해도 될런지 계속 의문을 갖게 만든다.


📖고등학교의 여름_ 밥을 먹은 뒤 학교 건물을 한 바퀴 천천히 걷는 애들, 빌려준 교과서나 체육복을 받으러 다른 반 교실에 가는 애들, 한쪽에서 춤연습을 하는 애들 사이에서 가슴 설레는 나.

확실히 1부의 연인들이 가장 또렷하게 기억이 될 초록(抄錄)의 기록일지, 2부와 3부의 감각과 장소에 대한 잔상이 주는 흔적의 기록이 될 지는 각자가 유념하는 바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어느 한 지점만 크게 부풀려 키울 순 없었다. 내가 떠올리는 감각의 흐름을 보면 미세하게 돋아나던 감각들이 커져 각 장소마다 잔상들이 남았고, 그곳에는 연접되어있던 이들에 대한 순간이 사진처럼 모든게 정지된 상태로 내 몸 어딘가에 박혀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움트기 시작하던 순간에서 확장되어 매 회차마다 새롭게 받아들이던 순간으로 넓게 퍼짐을 느낀다.


📖가짜여도 좋은 것_ 나는 지나간 여름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돌아갈 수 없는 여름을 좋아하고, 그런 여름을 노래한 음악이나 영화를 좋아한다. 여름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때 그와 더워하면서 돌아다닌 나무 아래 느티나무 밑에서 쉬는 사람을 한동안 바라봤던 것을 생각한다.

그게 하필 여름이었던 탓이다. 그게 아니라면 저자는 다른 계절을 사모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나간 여름의 사랑이라기보다 때마침, 하필이면, 우연찮게 라는 말들로 그 모든 순간이 여름이었음에 비식비식 웃게 된다. 앞으로 총 몇 번의 여름이 올 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모든 기쁨의 순간은 이때 누렸던 여름과 비교하게 될 테고, 이 계절의 싱그러움과 나의 생글거리던 젊음을 떠올리게 되겠지. 그래서 한바퀴를 돌아 다시금 찾아올 계절을 기대하며 살게 될 테고, 그럼으로 살아가는 이유 한가지가 추가됨에 살 맛나는 시절을 보내리라 가늠해본다.



어떤 지점은 짝사랑만 하던 아이가 상대와 눈맞춤을 했던 짜릿함처럼 여름은 그렇게 느껴질 것이고, 또 어떤 순간에서는 회전초밥 레일 위를 하염없이 돌던 석식 쉬는시간의 체육복 차림의 우리가 떠오르기도 할 것이다. 추워서 옹송그리지않았고, 흩날리는 꽃가루에 연신 코를 만지며 다른 데에 신경이 더 쓰이는 날들도 아니었다. 적잖히 덥지만 또 적잖히 살만한 뜨듯한 공기 속 가끔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좋아 우린 그러한 모든 날의 시절을 여름이라 명명하고있는지도 모르겠다.

괜시리 마음이 왈랑거리게 하는 에세이. 여름이 이래서 무섭다고 하는거야!!! 저자 덕분에 올 해 늦여름은 이렇게 몽글거리게 마무리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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