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 이야기
조예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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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여름이다. 그럼, 조예은 월드가 피어오르기 딱 좋은 시기라는거지. 조예은 월드를 사랑하는 독자로서 이 여름에 신작 발표는 눅눅한 세상을 티나지 않지만 서늘하게 만들어주는 무풍 에어컨 같은 존재. 뜬금없이 펼쳐지는 SF판타지형 소설이 아닌, 어딘가 한번쯤은 이러한 이야기가 휩쓸고 갔을지도 모를 세상의 소리라서 관심이가고, 저자가 이 이야기속에 숨겨둔 진짜 하고픈 말은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희열을 느끼고 싶어진다. 세상이 물에 잠긴거나 다름없어 보이는 습도에 어디든 시원한 곳만 찾게되는 요즘. 그리고 머리도 쉬고, 눈도 쉬고싶은 휴가. 집중하지 않으려 했으나 신간 출간이다. 그럼 어쩌겠어. 읽어야지.

혼자 맞이하는 휴가를 빌미삼아(=남편과 휴가가 달리 잡힘) 카페에서 내가 좋아하는 커피와 빵, 그리고 조예은 월드가 응축되어있는 신작 치즈이야기로 온전한 내몫의 행복을 찾아보게된다.

저자는 '무덥고 습한 계절에, 차가운 바닥을 뒹굴며 먹는 주전부리 같은 이야기들이 되기를'바란다고 전했다. '짜고, 달고, 역하고, 사랑스러운' 것들의 이야기인데, 이 단어들은 쉽사리 멀리 할 수 없는 마력의 무언가들이다. 그래서 나 역시도 별도의 추천사나 줄거리 서치 없이, 저자 이름 하나 믿고 고른거겠지. 2020년 봄의 '칵테일, 러브, 좀비', 2022년 여름의 '트로피컬나이트'. 그리고 2025년 7월의 '치즈 이야기' 조예은표 습기어린 3부작의 완결형 이야기. 서점 소설 MD는 이렇게 세 번째 여름 테마파트 개장을 표현했지만, 3부작으로 끝나기 아쉬우니 일단 이거 완독 후 다음 여름을 미리 기대하게만든다.


📖치즈 이야기_ 엄마에게 오랫동안 궁금했던 질문 한 가지를 던졌습니다. 그때, 집을 나간 후에 단 한 번이라도 방안에 두고 온 저를 떠올린 적 있느냐고요. 엄마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깜박햇서'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냄새. '나'의 유년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당신'의 현재를 대변하는 썩어가는 과정. 상황을 묘사하는 문장의 무게는 상당히 가뿟하다. 무게를 잡지 않는다. 그런데 그 속에 담긴 내용은 한없이 축축하고 무겁게 느껴진다. 화자는 이 일이 대수롭지 않은 듯 이야길 해주니 당황스럽다. 분명한 원망이 서려있는데, 그놈의 블루치즈라는 것으로 환상을 만들고 사랑의 대상을 그것으로 옮겨버린다. 자신을 측은하게 만들지 않으려 하는 상상이 더 저릿하게 만든다. 어린시절의 그는 슬프고 무서웠을텐데, 지금의 그는 여전히 응어리져있는게 분명해보이는데 썩어가는 엄마를 마주하며 '잘 숙성된 치즈의 냄새'로 이 상황을 묘사해내어 흥미로운 순간이 다가왔다는 듯 경쾌한 어조를 내비친다. 그래서 화자가 얼마나 고대한 날인지를 가늠하게 만든다.

한 두번 놓친 상황이 아니었다. 깜박했다 하기엔 그 횟수가 잦아졌고, 그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남겨진 이에 대한 걱정은 안중에도 없이, 당신의 쾌락만을 찾았다. 모정이 숨겨진게 아니라 애초에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사람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당신의 돌봄이 필요한 작은 생명에 대한 외면, 그렇게 시간이 지나 외소하고 몸이 쭈그러든 늙어버린 당신이 되려 돌봄이 필요 한 상황으로 전세는 역전되었다. 다 큰 자식에게 기생하는 과정. 똑같이 당하고, 똑같이 '깜박햇서'라는 말로 깊은 고립의 시간에 대한 대답을 듣는다면 과거의 행실에 반성을 하게될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생각보다 사람은 바뀌지 않더라. 사람은 고쳐 쓰는게 아니라 했다. 괜한 말이 아니라는 거지. 그래서 그런가 이야기 밖의 내가 화자를 뜯어 말리며, 그래도 자식된 도리를 운운하고, 똑같은 사람이 되면 안되지 않겠냐며 생각을 고쳐먹게 만들지 않게된다.

그리도 동경에 마지 않던 치즈를 마주하고 먹었을 때 허무했던 상황. 머릿속에 수없이 그려냈던 맛의 확장성이 아니었던 일종의 배신감. 그건 그대로 엄마에게로 대상이 옮겨진 것이기도 했다. 사랑을 갈구했고, 자신을 향한 몽글거리는 시선을 기대했던 이전, 꼼짝없이 자신의 앞에 누워 고분고분해진 늙은 엄마를 대하는 기대치가 확 떨어진 식어버린 관심까지. 사랑하려 했으나 미워할 수 밖에 없는 나의 부스러기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보증금 돌려받기_ 저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고요...... 제가 눌러드려요?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이렇게 만든건 다 당신이 자처한게 아니냐며 어금니를 꽉꽉 눌러가며 또박또박 말하게된다. 당신에겐 한낱 노후자금이거나 당장 필요하지 않는 여윳돈의 일부일텐데 나에겐 당장의 내일을 좌지우지할 삶이었다는 걸 알면서 그걸 쥐고 흔드는 꼴. 헌데 이게 책 속의 이야기 뿐일까? 당장 죽고 사는게 뚜렷하게 갈리는 상황이 아닌 것 처럼 보여도 당사자에게는 죽을 듯한 고통의 감각을 온몸으로 얻어맞는다.

집이 잘 팔리길 바라며 둘러보러 온 사람에게 한없이 상냥하고 친절하게 포장하며 집주인과 한통속이 되기도하며, 집이 안 팔리는게 왜 내 탓이냐며 성질을 내다가도 나도 이사갈 집에 돈을 내야하지 않겠냐고 읍소하게된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돈을 돌려주는게 당연하지 않냐며 몰아세우기도 하다가 그간의 전적을 살피며 단념하기도하며 매 순간마다 악인이 되었다 인간으로 돌아오는 무한 반복을 거듭한다. 꿈을 꾸고 환영을 마주하는건 어쩌면 본성의 자아가 악마를 끄집어내어 지금 네가 하는 모습이 딱 이 꼴이지 않냐며 비춰주지만 결국 본인의 또다른 자아임을 깨닫지 못한다. 악에 악으로 치닫게 만든건 결국 당신들이지 않냐는 식으로 나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만들지 않았냐는 것으로 사람이 악마가 되는 과정을 조근조근하게 일러준다.


📖수선화에 스치는 바람_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이런 선택을 했다는 걸, 그애의 다른 선택지를 막고 의사를 조종하며 삶의 의미와 즐거움을 얻는다는 건 모를 터였다.

나를 갈아 넣는다는 말. 내가 못하는 건 너라도 해야 되지 않겠냐는 연민어린 시선. 이건 단지 나 처럼 살지 말라는 뜻의 애틋함이 아닌 듯 하다. 나는 도저히 이 상황에서 꽃을 피워 낼 자신이 없으니 너는 할 수 있을 거라는 것으로 응축된 세뇌와 질척거리는 강요를 끼얹어주었다. 고맙지만 부담되는 과한 챙김. 하지만 그 이유를 모르지 않으니 받아들이는 현실. 희생은 대물림되고, 온전치 못한 애정도 엄마를 통해 딸들로 휘어져 흘러간다.

치즈 이야기의 모친이나 수선화에 스치는 바람의 모친이나. 그들도 그들의 부모에게 받은 사랑이 온전치 못했던건 아닐까를 생각한다. 사랑도 받아 본 사람이 잘 하는 걸테고, 학습된 효과는 무시 할 수 없을테니 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이들의 부모가 제대로 된 사랑을 주지 않았고, 두 이야기의 모친들 역시 사랑을 그렇게 받아 누린 적이 없었기에 이 사달이 난게 아닌지로 잘잘못의 영역을 확장하게된다.

이들와 관계가 어그러진 이유. 어떻게든 멱살잡아 옳게 만들고 싶어 언니가 엄마의 탈을 쓴 채 동생에게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 줄 것 처럼 하다가 인형놀이하는 주인으로 역할을 바꿔 꿰차기까지. 선희라는 아바타 게임에 목숨이 다 소진되어야 끝나는 게임일까? 누가 하나 죽어야 허탈하게 반성하며 닭똥같은 눈물 흘려야 제대로 된 반성을 할 듯 하다. 그전엔 이거 쉽게 안 끝날 꼴이야.



📖두번째 해연_ 축적한 지식과 기억이 한순간에 납작해지리라는 예감이. 보이지 않는 저만의 서랍에 늘 존재하던 애증의 순간들이 언젠가는 부옇게 뭉개질 거라는 사실이. 백연에게 기억이란 인간을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고유의 암호였다.

정체성의 변화. 관계의 재정립. 외형적 동일함, 기존의 축적된 데이터가 주는 동일성의 영역. 그렇다고 해연A와 해연B가 완벽히 동일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이었던 시절 해연A, 기억을 물려받고 데이터화 된 외형을 구축해낸 사이보그 해연B. 현실의 상실, 환각처럼 구현된 허상의 존재. 그것으로 우리는 상실에 대한 감정과 그리움에 대한 애틋함을 완벽히 충족 해 낼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소설속 인물 뿐만 아니라 나 역시도 진지하게 답을 찾게 만든다. 어디부터가 진실인지, 어디까지가 과정을 얹은 변질된 모습인지. 두번째 해연처럼 두번째의 내가 이 세상에 나인척 살아간다면 이미 죽어버릴 순간의 나는 마음이 편할까, 되려 미안함이 커질까?(각각의 단편들이 하나같이 나를 물음표 살인마로 만든다. 되묻게 만드는 지점이 너무 많네) 이로인해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고어로 분류가 되며 모든 인간들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기억의 굴레로 가둬두는 또하나의 감옥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은 걱정을 하게 만들었다. 괜한 걱정이겠다만 당장의 나의 노후에 해연B 만큼의 꽤나 정교한 남편B가 구축된다면 행복의 연장선이라면서 반길 자신이 없어진다. 적어도 나는 알잖아. 진짜 같지 않은, 진짜 인척 하는 진짜 같은 가짜라는 걸.



📖안락의 섬_ 저는...... 그냥 안 태어날래요. 소중한 것들이 사라지는 걸 보는 일은 너무 슬퍼요. 더군다나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게 하필 나라면.

안락의 섬에서 어딘가 모르게, 며칠 전 먼저 읽었던 손원평의 '젊음의 나라'가 떠오르기도했다. 손원평은 유닛A~F로 구분하여 젊음이 지난 이들의 남겨진 생의 분류를 보여주었다. 젊지 못한 이들이 젊었을 때 얻어낸 부로 살아가는 노년의 세상 분류를 보여줬다면, 안락의 섬에서는 안락을 제공하며, 이른바 자신이 선택하는 생의 끝을 제공한다. 이건 올 초 읽었던 '죽은 다음'이나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의 이야기의 소재들을 기반으로 한 행복의 끝을 찾으려는 인간의 결정을 보여주는 듯 하다. 반려견이 생의 끝이 보이니 생을 마감하고나면 자신의 끝도 이어 붙이려는 모습이 담긴다. 이는 반려견이 있는 이들에게 비슷한 양상을 보이던 견주의 마음이기도했다. 이게 비단 견주의 마음 뿐일까. 사랑하는 이률 보낼 준비하는 사람들이 갖게되는 심적 고통과 결정이기도했다. 그래서 그러한 마음을 실행에 옮기려 안락의 섬으로 찾아 간 것이다.

소중한 것들 덕에 행복했지만, 그 소중한 것이 소멸되면 모른척 외면했던 슬픔이나 고통이 한번에 밀려올까봐 두려워한다. 그게 무서워 다시 태어나길 거부한다면 현재의 행복이 얼마나 꽉채워져있길래 그러나 싶어하며 이 관계의 애틋함을 세세하게 말하지 않아도 어느정도 가늠하게 만든다.

반려견이 눈을 감았고, 이제 안락을 준비해야하는 후 작업. 사흘 뒤로 정해진 생의 끝. 안락에 드는걸 반려견이 반길까? 자신을 따라온다는걸 반가워하며 꼬리흔들고 달려올까? 한여름밤의 꿈같은 상황이었다. 변한건 없다. 아니, 변한게 있다. 반려견은 작은 유골함에 있고, 그는 죽지 않았다는 것.

혼자 감당하는 몫을 택했고, 반려견을 유일하게 기억하는 사람으로 남아 행복했던 순간이 소멸되지 않도록 번복하며 떠올리는 역할을 자처하기로했다. 둘이 안락에 들며 무(無)것으로 지우지 않고, 적어도 자신만이라도 반려견을 기억하는 방법을 택했으니 적어도 반려견만은 온전한 안락에 닿아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단순한 책 표지. '치즈 이야기'라며 전혀 가늠 할 수 없도록 만들어낸 제목. 치즈 구멍 마다 쿰쿰하게 묵히고 방치하며 쉽사리 꺼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곰팡이마냥 들러붙어있다. 그래서 이 덩어리들을 쉽사리 손대며 긁어내기어렵다. 휴지로 쓰윽 닦아내며 흔적을 지우고싶지만 야무지게 스며들어있어 결국 자국이 남는다. 그게 이 단편들이 가진 마음의 딱지였다. 역시나 여름의 기운처럼 습하고 눅눅하고, 개운치 못해 미련을 섞어가며 이 존재들이 멀끔히 살아내길 바라게되지만 어느하나 마음대로 될 수 없음을 안다. 하루 이틀 만에 이뤄진 일들도 아니다. 오랜시간동안 꾸준하고 진득하게 인물들을 쥐어짰으니 이건 두고두고 흔적이 남을 것이다. 옷으로 가릴지언정 적어도 나는 알고있는 표식이었다. 이 마음을 어떻게 달래야하나 고민이 많다. 정말 발치에 닿은 죽음은 아니지만 그 기운에 버금가는 다양한 형태의 자극들.

무덥고 습한 계절, 눅눅하고 진득한 시간이 지나면 조금은 달라질까? 계절이 바뀌는 것 처럼, 상황이 달라지면 숨 쉬는게 편해질지. 쉽게 변하지 않겠다만 이들이 겪는 이 여름이 지나 조금은 선선한 바람이 그들에게도 닿아지길 바라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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