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비실
이미예 지음 / 한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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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유행하던 말이 있다.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무서운 말. 어느 조직이드 일정량의 진상, 무능력자, 얌체 등 일명 '또라이'가 존재한다는 법칙이다. 어? 우리 조직에는 그런 인간은 없는데? 라고 느끼는 순간. 자신이 그 또라이가 되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는 무서운말. 그게 번뜩 떠오른 진짜 빌런들 사이에 숨은 가짜 빌런 찾기.


이야기는 7일간의 합숙 리얼리티 쇼 '탕비실'에 섭외된 이들의 촬영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로부터 '함께 탕비실 쓰기 싫은 사람'으로 뽑혀 캐스팅 된 각각의 직장인들이다. 출판사 소개글이었던 내용인데 다음 문장이 마음을 쿵 하게 내려 치더라. 평소 자신이 동료들을 위해 베풀었던 친절과 배려가 동료들에게 더없이 불쾌하고 오싹한 소름으로 전달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며 찰영이 시작된다는 것. 누군가에게 밉상으로 보였던 점들이 정작 본인은 남을 위한답시고 일부러 하곤했던 행동들이라는 것. 그러한 면면들이 모여 미워하게되고 눈살찌푸리게 만들었다는 사실.

그래서 진짜 싫은건 누구일까? 그 사람의 행동이 싫었던 걸까, 그저 그 사람 자체가 싫어서 모든게 미워보였던 걸까를 생각해보며 읽다보면 밉상짓에 짠함이 베여있고, 잘해주려 했던 마음도 슬쩍 보여서 씁쓸하기까지 하다.



📖알 수 없는 사람으로부터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뒷말을 듣는 것이 으스스했다. 텀블러는 자기에 대한 이 설명을 얼마나 납득할 수 있을까? 내가 이걸 듣고도 앞으로 그를 선입견 없이 대할 수 있을까?

각각의 사무실 빌런으로 뽑혀 여기까지 온 사람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여기까지 온 이유를 가지고 닉네임이 불려진다. 싱크대에 안 씻은 텀블러를 늘어놓는 자칭 환경 운동가라는 사람은 이름이나 직책보다 텀블러로 불리운다. 그가 여기까지 온 이유를 자료화면을 통해 보게되는데 전후 사정을 모르는 출연자들로서는 화면속 동료들이 싫어했던 꼭지들에 대한 말만 담아듣게된다. 일면식도 좋고싫음도 없던 이가 색안경을 끼고 보게 만드는 아주 좋은 인간 분류의 방법. 내가 이러한 면들 때문에 싫었으니 너도 당연히 싫어하겠지? 라는 동조를 구하는 뉘앙스다. 이래서 사람의 입이 제일 무서운 거지.



📖나는 살면서 싫어하는 사람을 더 알아보려고 한 적이 없었다. 항상 그랬던 것 같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건 쉽지만 정말로 알아보려고 노력하는 건 어렵다.

보통은, 아니 대부분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굳이'라는 단어를 덧붙여가며 싫은 점에 대한 이유를 찾아내며 인과관계를 따져보는건 아니니까 말이다. 싫음에 대한 정확한 것은 잘 없었다. 그냥 단면적인 모습이 싫었고, 그게 계속 거슬리고, 그러니 그가 하는 모든것들이 아니꼬워 보이면서 사람 자체가 싫어지는 수순을 밟게 된다. 그러니 노력은 필요 없지. 알아볼 이유가 뭐 있을까. 그냥 시작부터 '싫다!'로 시작되는 벽이 생긴 것이니 알고싶은 마음을 안 가지게 되는 느낌이다. 그게... 정말 나만, 그리고 여기 주인공만 그러할까?

그렇다. 이건 진상 콘테스트의 단순한 게임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람을 싫어하게되는 과정, 인간과 인간 사이에 좋고 싫음이 변해가는 흐름. 그리고 알려고 하지 않으며 타인의 입으로 전해진 단면적인 상황에 전체를 덧입히는 과정으로 그렇게 사람은 구분짓는 걸 드러내고 싶었던 거다.


📖나는 그들이 내가 베푼 친절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의아했다.

누군가는 타인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고자 자신이 번거로움을 자처한 행동이었고, 누군가는 시키지도 않은 일에 대한 것과 더불어 자신을 일거수 일투족 지켜보고 따라하려는건 아닐지. 그리고 왜 이러한 정성을 들여가며 나의 편의를 봐주려하는 건지를 생각하며 감사함보다 이후에 일어날 일에 대한 걱정과 부담으로 작용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서로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잣대로만 단정지으며 좋아할 거라 기대하고, 싫어하는 짓을 저렇게 고생스럽게 하나를 생각만 할 뿐이다. 왜 말하지 않았냐고? 말 하지 않아도 알아 줄 거라 믿은 것과 함께, 내가 생각한 방향으로 상대도 그리 알아 줄 거라는 확신만 있었던 것이다. 당연한 공감을 기대했고, 의문을 넘은 의뭉스러운 두려움으로 겨루는 중인 것이다. 이 대립 관계 괜찮은걸까?


📖요약하자면 나를 오해했던 것 같다는 얘기였다. 나는 그런 걸 오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게임이 끝난 후 후일담으로 이 리얼리티 쇼를 본 후 동료들의 반응이다. 방송 잘 봤다며 미안하다고 먼저 말을 건넸다. 오해라는 말과 함께 가볍게 사과하고 넘겨보려는 두루뭉술한 반응이다. 오해라고 말은 하지만, 다들 자신들이 본 그대로가 그런 사람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굳어진 뒤 였던 것. 영상을 통해 이미 그가 했던 행동의 목적이 나왔으니 더이상 입밖으로 꺼내어선 안되는 비뚤어진 시각. 오해라 하면 모든게 없던 일이 되는건 아닌데 말이다. 이렇게 한 사람이 빌런이 되어가고 토끼몰이가 시작되며 이구역 또라이를 생성해 가는 것이겠지.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어 생활하면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소문과 뒷담화의 덩어리들 인데 매번 마주하고 나도 일원이되고 또 피해를 받는 당사자가 되기도 하지만 도통 적응하기 어려운 심리들이다.


📖작가의 말_ '싫음'에 관한 내 나름의 분출이다. 탕비실은 일상적 휴식의 공간이지만 원하는 만큼 무한정 머물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내게 필요한 것이 구비되어 있지만 그것이 완전히 나의 소유는 아니다. 나에게 허락된 공간이지만 나에게만 허락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꼭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의 축소판 같다.

회사생활을 하다보면 일이 힘든건 적응해 가면 그만이지만 사람 때문에 힘든건 참기가 어렵다. 그래서 퇴사를 하는 사람 여럿을 보았고, 나도 그러한 빌런 몇몇의 고자극 고스트레스로 인해 머리카락이 숭덩숭덩 빠지며 사람이 퀭해지는 걸 경험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냥 그 사람이 숨쉬는 것 조차 싫어지더라. 시작은 단편적인 모습이었지만 그 끝은 눈덩이 굴리듯 커지니 존재자체로 완성이 되는 싫음이었다.

탕비실은 인사만 나누면 되는 공간이다. 굳이 사생활을 공유하며 일명 노가리까고있을 곳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안면있는 사람들끼리 공유하는 잠깐의 찰나 정도겠다. 그러니 딱 오해하기 쉬운 애매함의 아는척의 시간인 것. 그러니 이해를 바라지도 이해를 해주려 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게 탕비실 빌런 생성의 시작점이다. '왜?'는 없지. 굳이 '왜?'를 들먹여가며 잡담지수를 올릴 에너지를 쓸 이유를 못 찾는 거지만 흠집 내는건 세상 재미난 못된 성질이니 계속 그렇게 밉상에 밉상을 얹어가는 온상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싫어하니 같은 동료도 그 점을 동조해주길 바라는 마음. 하지만 나는 그런 미움을 받기는 싫어하고 세상 착한 사람이고픈 어이없는 선긋기.

이게 책에서만 나오는 내용이 아니고, 현실은 더 과장되었고, 더 악독하며, 더 표독스럽게 사랍을 긁어부스럼 낸다는걸 알지만 그러한 못되쳐먹은 짓을 하는건 내가 아니라 늬들이라고 믿고픈 세상이다.

리얼리티쇼야 다른 공간에 있던 빌런들을 모아 술래를 찾고 상금을 타면 그만이지만, 현실은 상금도 없고 이 쇼가 끝나면 해체되는 일도 없는 가족보다 더 자주 보게되는 사람들로 대면하게 될 것이다. 아침부터 퇴근까지 쭉 보게될 현실. 차라리 리얼리티쇼가 낫지 현실은 매번 이렇게 전쟁이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나는 빌런을 동조하는 무리중 하나인가 빌런인가를 생각해보면 딱 경계에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에 씁쓸해진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빌런일 것이고, 내가 바라보는 시선에는 나 이외의 인간들이 빌런일 테니 말이다.

이래서 형체가 없는 귀신보다 형체가 있으면서 내 앞에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헤실헤실 웃고있는 사람이 제일 무섭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

... ... 이래서 퇴근이 마려운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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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속 지느러미 TURN 1
조예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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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의 편집장은 '여름, 장르소설, 조예은'이렇게 명명하고있다. 그리고, 완독하고보니 그 말이 맞다고 100% 공감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야기의 후반으로 갈 때 이 여름의 축축하고 기나긴 장마가 없었으면 어쩔뻔 했을까 싶어지게 만든다. 그에 반해 책 표지는 어찌나 예쁜지. 조예은 저자의 책들이 하나같이 화사한 표로 만들어지곤 하는데 한 곳의 출판사와 이뤄지지 않은 제작임에도 하나같이 화사하다.

한겨레 출판사에서 출간된 턴 시리즈의 일부인 이 책은 장르소설로서 계속 시리즈가 나올 듯 하다.


이 이야기를 이끌어갈 선형, 선형의 친구이며 동경과 이상향과도 같은 경주, 이 이야기가 선형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던 삼촌 민영, 그리고 민영과 민영을 쏙 빼닮은 선형을 매료시킨 피니로 이야기가 구성된다.

선형, 대학 작곡 동아리가 시작일까. 아니면 대대로 이어지는 핏줄의 성향이 그리고 향하게 된걸까. 동아리에서 만난 경주의 목소리에 반했고 그 목소리라면 모든걸 씹어 삼킬 수 있는 대단한 음악을 할 수 있을거라 여겼다. 선형에게 없는 것들을 다 가진 경주. 그래서 동경을 넘어 자신의 소유로 만들어두길 바라는 걸지도 모르겠다. 애정은 넘쳤고, 그렇게 넘치도록 갈구했지만 결과는 그러하지 못했다. 애정이든 음악성이든, 사람 자체로서의 됨됨이든, 그 무엇하나 까면 깔수록 선형은 경주에게 반했던 그 강렬한 만큼이나 정떨어지게 멀어진다. 이제는 꿈이 아니라 현실을 쫒아야 함을 자각하고 공무원시험을 준비한다. 필기 합격 후 그나마 집안에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있게 될 즈음. 삼촌의 사망 소식을 듣고 급히 내려간다.

경주, 반반한 얼굴, 날티나도록 살아도 걱정없을 듯한 재력(부모님의 재력), 그리고 선형을 홀려버린 목소리. 재미로 시작한 밴드는 재능만 갖고는 안되는 결과를 보여준다. 어쩌면 노력 없이 기대하는 목표치라 20대를 다 받친다 한들 그들이 높은 곳까진 도달하지 못한다. 돈이 궁했고, 그래서 선형의 재능을 제 멋대로 사용하며 선형과 경주 사이의 더러운 꼴의 끝을 보게된다.

민영, 선형의 삼촌. 다들 말하길 민영과 선형은 닮은 구석이 많다고 했다. 생김새보단 성향이 닮았단 말. 삼촌은 밀수꾼 일을 했다. 몇년 전 선형이 밴드 무대를 본게 마지막이었다. 손가락일부가 잘렸고, 귀도 붕대로 감아둔 채. 그게 무얼 뜻하는 건지 그땐 알 수 없었으나 삼촌을 빼다 박은 그는 결국 그 의미를 알게된다. 삼촌의 사망, 그리고 삼촌이 선형에게 남긴 유서와 물건. 그리고 피니.

피니, 민영에 선형에게 남긴 수족관(건물)을 처분하고 부모의 병원 수발 비용으로 처분하려던 차에 지하에서 만난 피니. 사람도 동물도 그 어떤것도 명확하게 닮지 않은 인어를 만난다. 방치하고 숨길 수 밖에 없던 이유, 그리고 삼촌이 그 몰골이었던 이유. 인어 피니를 데리고 와서 민영의 소유물로 남겨 둘 수 밖에 없던 그 모든 이유를 피니의 허밍으로 답을 얻는다. 삼촌의 부재 동안 관리 받지 못한 피니는 선형에게서 보살핌을 받아 빛이 나는 비늘을 가졌으며 신이 하사한듯한 목소리의 재능도 발견한다. 마치 민영이 피니를 알아 본 것 처럼, 선형도 피니의 허밍에 홀린다.

피니에게 갖은 노력을 하며 보살피며 목소리에 혼을 뺏긴듯 살았고, 다 갖추지 못한 피니의 혀는 어떻게 재생시켜야 하는지를 삼촌이 남긴 메모를 통해 온전한 피니를 위해 그가 그토록 아꼈고 사랑에 마지 않았던 이전의 목소리를 피니에게 받치며 인어의 혀를 살림으로서 선형이 만든 노래를 피니가 듣고 노래로 구현해주길 바라게된다. 선형이 소중하게 여겼던 모든걸 맞바꿀만한 그 목소리 하나를 위해.



인어공주에서 에리얼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갖고싶은 우르술라의 만행을 떠올려보면 '도대체, 얼마나. 정말 어떻길래'라는 물음을 속으로 되뇌게된다. 세이렌의 이야길 찾아보면 뱃사람을 홀리고도 남을 정도로 아름답다 한것 또한 소리에 집착하던 선형의 행동들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된다.

청춘의 중심에서 내가 동경하던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제 더럽고 추악한 잔상만 남겨두었으니 그 보기싫은 흔적까지 덮어버릴 피니의 완성된 목소리가 간절했던 선형의 행동. 아름다운 소리를 사랑하는 걸까 그 소리를 사랑하는 과정에 겹쳐있는 나를 사랑하는 걸까. 더이상의 완벽함이 없을거라 확신하게 만드는 피니의 음성. 그러니 그거면 된다, 더이상의 무엇은 감흥이 없을 것이라고 여기며 거기서 담백한 안녕을 고하는 모습을 에서 과연 삼촌이어도 그랬을까를 묻게된다. 아마도 삼촌이 그랬던 것 처럼 자신만의 소유물로 남기길 바란 결말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삼촌은 피니의 치유되지 못한 혀를 알기에 놓아 줄 수 없었음을 짐작해본다. 만약, 삼촌이 피니의 허밍이 아닌 진짜 노래를 들었다면 놓아줄까? 소유할까? 인어에게 귀소본능이 있다 했지만 그건 확신 할 수 없으니 전유물로 남겨 둘까? 내가 들었으니 된거다. 그거면 되었다는 식으로 자기 몫의 아름다움을 채운 후 미련없이 인사를 할까?

준과 블루러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엔 경주가 변화는 과정을 알려주기 위한 일종의 밑밥 과정인데 이 이야기엔 다소 밋밋하게 그려지는 갈등의 과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누가봐도 준이 선형의 곡을 옮겨 썼고, 경주가 중간에서 그걸 가로채거나 제 것인냥 행세를 할게 뻔해보이는 일일드라마의 갈등 코스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책의 소재가 갖고 있는 특이성 때문에 이러한 중간 갈등 과정이 더욱 얄팍해 보인건 아닌가를 생각해본다.



📖시간은 시간대로 버리고 자존심 때문에 네 전부를 베팅했겠지. 내가 안 그랬으면 넌 평생 허황된 꿈맞 좇다 모든 걸 잃었을 거야.

누군가에겐 세상 없는 행복의 시간이었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봐 온 이가 꽂아버리는 비수. 한낱 꿈이라고 그건 밥먹여 줄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렇게 내리 꽂아야 속이 시원했나 싶은 동경의 산물이 내려준 칼날. 결국 선형만 간절했고, 경주는 잠깐의 재미삼에 즐긴 놀음거리에 불과했다는 서로 다른 온도차를 느낀다.



📖그거 알아?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을 계속 계속 생각하다 보면 이해에 도달하는 게 아니라 다 상관없어져. 이해하려는 모든 노력이 무의미해지지. 어차피 끝내 알 수 없을 테니까. 나 아닌 모든 존재는 결국 미지의 영역이니까. 그 지점에 이르러서야 깨닫는 거야.

아름다운 소리를 사랑했던 사람. 그 노래 한곡이면 모든걸 얻은 듯 행복했던 순간. 그러나 온전히 내것이 될 수 없는 현실. 내 손으로 피워낸 곡을 내가 사랑하는 목소리로 덧입혀서 제일 먼저 들으며 그거면 된거다, 그걸로 만족한거다 그렇게 담백하게 여길 수 있는 선형만의 사랑.

피니를 만나기 이전에 경주가 지금까지 굴었던 행동과 조금이라도 다른 방식으로 선형의 노래를 불러주었다면 선형은 경주의 목소리에 만족하고 한없이 행복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피니를 만나기 이전엔 선형의 세계엔 경주가 가득했었는데 그랬었는데 말이다.


사랑은 욕심이지만 때로는 되돌아 오길 바라는 것. 나에게서 뻗어나간 소리가 마주한 곳에 부딪혀 다시 되돌아와 덮여지는 그 과정과 닮아 있음을 말해주는건 아닐지를 멋대로 해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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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여름에 내가 닿을게 창비교육 성장소설 12
안세화 지음 / 창비교육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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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열여덟로 돌아가 너를 구할 수만 있다면" 이라는 문장과 반짝이는 서로의 청춘을 구원했다는 말. 너를 구하면서 나의 청춘도 구원하려한다는 말로 그 여름이 얼마나 뜨거웠고 치열했으며 아린 순간이었는지를 가늠하게하는 문장 덕에 가제본 서평단을 자처하였던 6월이었다. 그간 읽어왔던 청소년소설들과 또 다른 소재였기에 완독 후 정식 도서로 남겨두고파 또 이렇게 출간일에 맞춰 쟁여두는 청소년 소설 매니아의 완독 기록이다.

짧아서 더 강렬했으며 눈부셨던 수빈과 나은의 시절, 누군가의 청춘을 덧대어둔 덕에 당연하듯 겪어낼 수 있는 은호와 도희의 시절이 교차된다. 이 글을 다 읽어야만 수빈의 마음을, 나은이 바라는 진심을 알게된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속도가 빠른 편인데 그럼에도 자극적이며 톡톡 쏘아대는 악역이 없다. 그 흔한 밉상 캐릭터도 없다. 그래서 더 마음이 쓰이고 어떻게 해서든 잘 다독여주고픈 인물들만 가득하다. 그런데도 지루하지 않다. 다만 어린 은호와 도희,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 여름에 머무는 나은이 더 이상 슬퍼하고 괴로워하지만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읽게된다.


누군가에겐 지루하고 더딘 여름이라 할 수도 있겠다. 햇살이 머리 꼭대기에 올라 앉아 성가신 시간이라 하겠지. 하지만 어떤 이에겐 그 한낮의 더운 여름만큼이나 애타게 그 시절을 그리워 하는 이가 있다는 걸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한여름의 그림자처럼 드리워져있다. 당신의 여름이 헛되지 않았으며, 너희의 여름이 결코 무의미 하지 않기를, 그리고 우리의 여름이 덕분에 두고두고 기억될 순간이며 영영 잊지 않기로 했던 날이었다는 걸 열여덟의 청춘들에게 얻어가는 글이다.


📖어떤 비밀은 비밀인 채로 있을 때 가장 이로운 법인데, 그 비밀을 간직한 이가 누구보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 주는 가족이라면 파헤치지 않는 편이 안전한 법인데, 은호는 그 사실을 몰랐다.

아무런 접점이 없던 두 아이가 이렇게 예민하게 그 시절에 집착하는 이유.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길래로 시작한 의문과 누가 자신을 미행한다고 여기는 불안한 시선이 6살의 여름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영영 몰랐으면 하는 어른들의 마음. 그리고 영영 들춰내어주지 않았으면 하는 그 때의 사건. 내가 이들의 보호자이며 곁에 있던 어른이었다면 똑같은 생각과 마음으로 십이 년 전 소소리 마을의 이야기를 묻어두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청춘이 사그러들었으니, 어른들에게서 얻어지는 죄책감과 죄스러움에서 끝나는게 맞지 뭣도 모르던 고작 6살짜리 아이가 기억도 못하는 일들로 미안해하며 살아있다는 것에 무거운 마음을 얹어살길 바라진 않았을 것이다.

📖수빈을 입에 올린 사람들은 하나같이 웃었다. 호프집 아저씨와 지훈이 그랬던 것처럼. 그때였다.

"괜찮은 인생이지 않아?"

그런거 있잖아. 영상 매체든 허구의 책속 이야기든, 심심찮게 올라오는 카더라 썰들 속에서도 죽은자는 말이 없다 하고, 살아있다는 것에 미안해하며 또 그 유족들은 덕분에 살게된 아이들을 보고싶지 않아하며 원망도하고, 영영 서로의 눈에 띄지 않았으면 하는 고맙고 밉고, 야속하며 내 새끼 대신 살아가는거면 잘 살아야지 이게 뭐냐는 듯의 애통함. 형언하지 않아도 그런게 당연히 이 이야기에도 깔려있길 바란건지도 모르겠다.

두 아이에겐 낯선 지역의 낯선 마을. 그리고 바라보는 눈빛에서 그런걸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을 사람들과 말을 하기 전까지. 헌데 이 사람들은 내가 아는 그 눈빛의 말을 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을 바라봤던 거다. 잘 컸구나. 너희가 그 아이들이구나. 수빈이가 봤음 얼마나 기뻐했을까. 그래도 잊지는 않았구나. 그 여름의 수빈이 나이가 되었구나. 와줘서 고맙다. 더 늦지 않아주어 고맙다.

이런 말들로 마음을 모아 잘 커줘서, 잘 살아줘서, 모든 형용사를 이어붙여 고마워하고 있었다.

수빈이를 원망하리만큼 애틋하게 보고싶어하고, 비어있던 자리를 그리워하며 진득히 그 시절을 남겨놓는 것. 밝고 명랑하다못해 다정하고 사려깊으며 어른아이 할것없이 여전히 보고파 한다는 것. 시간을 되돌리더라도 그 녀석은 여전히 망설임 없이 그러할 것이라는 말들까지. 그래서 짧은 생이었었고 저 혼자 아직 열여덟로 남아있지만 그럼에도 넘치게 사랑받고 있는건 여전하니 괜찮은 인생이라 여겨주고픈 씁쓸한 웃음의 대답으로 보였다.




사랑하는 이의 시간이 멈췄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열여덟로 멈춰있고, 우리는 그가 없는 몇번의 여름을 살아온다. 어떻게 보면 희생이고, 또 어찌 보면 주변인들은 상실로 인한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한다. 다른이의 희생 덕에 살아난 은호와 도희, 수빈의 희생으로 수빈을 잃은 가족과 친구, 마을사람들. 우리 주변에 심심찮게 일어나는 소재로 이야기가 구성되었고, 쉽게 잊혀져서는 안 되는 소재로 청소년 성장소설이 만들어졌다.

매체를 통해 의인으로 소개되지만 딱 거기서 끝난다. 그 이후 살아난 이의 이야기나 희생한 이의 주변 이야기는 큰 흥미의 소재가 되지 못한다. 서로가 고통이니까. 살아난 이는 도움을 받아 살았지만 희생으로 얻어진 삶이니 미안함과 죄송스러움으로 살게되고, 사망한 이의 주변은 그 때를 어떻게 해서든 되돌려 살리고픈 마음으로 시간을 버티게 되니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그리움을 굳이 들춰내지 않으려 하는게 암묵적인 룰과도 같았다.

모르길 바랬던 도희와 수빈의 가족들. 궁금은 하지만 찾아내어 물어보는게 미안했던 수빈의 지인들. 어느 한 쪽이 극단적인 상황으로 살아내지 않아 다행이었다. 깊은 고마움을 표현하는 아이들과 더이상 미안해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며 다시 또 그런 일이 생겨도 수빈이는 꼭 너희를 구하고 말 것이라는 걸 상기시키며 누구라도 그러했을 상황이라는걸 알려주는 어른들. 이 친구들이 매일 아침 눈뜨고 일상을 보내는 과정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면서 누군가의 지난한 여름으로 얻어진 시간을 더 알뜰히 살아야 하는 목적을 말해주고 있다.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 속에서 마주하게되는 다양한 사건, 현재 일어나고있는 상황들. 팩트만 알려줄 뿐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떠한 마음으로 품어야 하는지는 개인의 숙제로만 남겨두었던 걸 속 시원히 풀어준 글이었다. 완독 후 은호와 도희의 입장에서 이야기 할 수도 있겠고, 또 수빈의 주변 사람들 입장을 대변해 자신을 투영할 수도 있으니 말할거리가 가득한 이야기임은 분명하다. 겪어보지 못했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 모아온 감정들을 대입해보며 감정을 유추 해 보는 과정. 부디 '슬프겠다','힘들었겠다'라는 단순한 표현법으로만 공감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뭉뚱그려 표현하기보단 사건을 인정하고 이해했을 때 온전히 느껴지는 감정을 공유하며 이 생의 순간에 소흘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된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기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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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시 봉급 생활자 - 복잡한 도시를 떠나도 여전히 괜찮은 삶
조여름 지음 / 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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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문장의 책 제목이다. '작은 도시 봉급 생활자'라니. 그리고 정규직이라는 줄을 끊고 번지점프를 했다는 카드 리뷰를 보고선 의아했다. 제11회 브런치북 출간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이라 하던데, 누적 33만 뷰의 화제의 브런치북으로 입소문이 났고, 정식출간된 에세이다.

서울 살이에 종지부를 찍고 남쪽으로 도망친 저자. 대도시가 주는 거대한 플랫폼을 벗어나 내가 진짜 원하는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겠다는 의지가 큰 역할을 하여 남들은 거기서 기를 쓰고 버틴다는데, 반대로 자진 퇴장을 자처한다. 30대 중반을 넘어선 애매한 나이. 안정적인 삶의 밸런스를 털고 우리나라 곳곳의 크고 작은 도시로 거처를 옮겨 다니며 다양한 경험과 직업을 이어간다. 그래서 제목도 작은 도시 봉급 생활자가 되었다.



📖굶어 죽을 일이 없다, 적어도 시골에서는_ "좋겠다. 돌아갈 곳이 있어서."

다행이 저자가 돌아갈 수 있는 곳엔 연고가 있었다. 안전한 바운더리가 쳐진 곳이었다. 통장 잔고를 외면하고도 비빌 언덕인 가족이 오래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시골이라고 다를거 없다. 아니, 때때로 더한 텃새가 존재한다. 심심찮게 들었던 사건도 있는데, 외부인이 들어오면 공동으로 사용하던 것도 값을 메기기도 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못 살고 나가게 하기도 한다. 그러니 일단 저자는 돌아갈 곳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한 템포 쉼의 생활인 것이다. 돌아가서 비빌 언덕이 존재했던 걸 알고 있었기에 한편으론 퇴사의 불안감보다 휴식과 안도감의 안락함이 자연스레 베여있었지 않았을까.



📖시골 직장인으로 살아가기_ 돈을 많이 준다고 업무 강도가 유별나게 센 것도 아니다. 다시 직장을 얻을 줄 몰랐던 나의 열의에 가득 차 야근과 주말 출근을 자처햇지만, 대개 다른 직장과 마찬가지로 바쁠때만 바쁜 편이다.

저자의 업무 특성상 전문직의 성향을 가진 임기제의 공무원이라는 점이 작용되었을 수도 있겠다만 지방 공기업이든 사기업이든 대개가 이러한 형태의 근무 방식을 갖고 있다. 다만 저자가 이 곳에 입사 하기 전 면접 볼 때 처럼 운전의 여부는 필수 조건이 되기도 한다. 나도 그러한 편인데 지방의 기업들은 대부분 시 외곽에 자리잡고 있다. 서비스업을 제외하곤 대부분이 제조업 기반의 사업체인데 그렇다보니 빌딩에맞 갖혀있는 사무직의 조합이기 보다는 넓은 부지가 필요한 제조시설+사무실의 형태이니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근하기가 어려운건 사실이다. 그렇다보니 시에서는 도심부터 시 외곽의 산업단지를 오가는 무료 통근버스를 운행해 주기도 하는데 그마저도 시간대를 내가 원하는 때에 맞추기 어려워 운전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나 역시도 본사에 있을 때에는 통근버스를 이용하거나 때때로 남편의 차로 같이 출근을 했으나 사옥 이전 후 장롱면허를 꺼내 운전을 하고 다닌 실정이다. 운전면허역시 자차 소유가 안되더라도 회사 차를 이용해 업무를 보러 다닐 수 있는 조건이 되어야 한다 하여 속성으로 운전면허를 땄던 새내기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왕복 56km를 오가다 보면 시간뿐만 아니라, 차량유지비에 홀랑홀랑 드는 비용을 무시할 순 없으나 좀 더 편히 회사 생활 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게 작은 도시 봉급자의 단점이기도 하겠다. 버스나 지하철 출퇴근이 안되는 조건이니 기업 입사를 포기할 것인가, 월세가 무서워 수도권 변두리 오피스텔을 살면서 장거리+환승 지하철 출근지옥을 경험할 것인가. 선택은 각자의 몫이겠지.




📖답답한 일상의 판을 뒤집고 싶을 때_ 이 지경이 되도록 나를 밀어붙인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 왜 이렇게 건강을 해칠 만큼 일에 몰두했을까? 사실은 오랜 가난이 만들어낸 불안을 성실이라는 말로 맹목적으로 덮어온 게 아닐까? 혹은 내 실력이 뒤처진다고 생각해 '열심히 하는 모습'이라도 보이려고 애써온 걸까? 그것도 아니면 '시키는 대로 다 하는'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었나?

저자가 스스로에게 퍼 부었던 질문은 명확하게 답할 수 없었다 했지만 다 같은 답이라서 대답하기 싫었던 걸 지도 모르겠다. 이미 너무 잘 알고 있기에 그게 자신을 찌르고 있는 답이라 모른척 하고 싶었던 거였다. 이 모든 질문에는 모두 YES가 담겨있었으니 말이다. 이왕이면 잘하고 싶고, 그래서 성과와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크니 그나마 자신이 갖고 있는 것 중 소진되어도 리스크가 적다고 여기는 자신의 체력과 시간과 열정을 갈아 넣은 결과였다. 이렇게 하면 결과적으로 보여지는 성과와 주변의 평판이 그에 상응하는 답을 내어줄테니 말이다.

일을 하는 것에 있어 과정을 즐기면서 하라 하지만 우린 청소년시절부터 해왔던 그거 있잖아. 성적으로 줄세우기. 그거에 익숙한 사람이라 성실은 곧 결과라고 보여지는 삶에 익숙해져 있어 육신을 갈아 넣어 보다 빨리 소진시킨 결과였다. 무조건 열심히는 배신하지 않는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게 맞는 도시를 찾는 새로운 대안, 워케이션_ 새로운 세대에게 지방이 그저 '낯설도 불편한 곳'으로 각인되지 않기를 바란다. 넓지도 않은 국토에서, 그마저도 아주 좁은 수도권에서만 살아본 미래 세대가 우리나라를 전반적으로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을지 고민이다.

요즘 아이들은 서울을 제외한 지역을 모두 지방이라고 불리운다며? 광역시나 특정 시도의 개념보다 서울을 벗어나면 모두 시골. 모든 문명혜택이 충족되지 않는 곳으로 분류한다는 점에서 이 또한 비슷한 뉘앙스를 느꼈다. 어디든 사람은 다 살고 있고, 땅파고 농사만 짓는게 아니라 똑같이 사무업무도 보고, 기술 개발이나 다양한 서비스업도 존재하며, 똑같이 사원증 걸고 다니는 사람사는 동네인데 어째 작은 도시에는 봉급자가 아니라 자급자족을 하는 듯한 느낌으로 인식이 되었을까 싶어진다. 지금껏 태어나고 자란 곳인 부산과 경남을 벗어나 살아보진 못했으나 대학 졸업도 하기 전부터 사무실에서 일하는 기업 실무자로 살고있다. 물론 수도권에서 말하는 대기업은 아닐지라도 꾸준히 한 분야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아 한국에서도 손꼽히고, 다양한 나라와 거래를 하고있는 조선쪽 기업인데 이런 말을 해도 안 먹힐거 같아 쓴웃음일 짓게된다.

도시를 떠나도 당신의 삶은 여전히 괜찮다는 위로의 말, 대도시의 삶이 행복한 사람도 많겠지만 저자와 같이 그저 견디는 사람도 있을 거라는 말로 저자는 이 모든 경험을 통해 당신의 삶에서 버티든 떠나든 그 어떤 삶을 선택하더라도 괜찮을 것이라고 안심하게 만든다.

서울 이외에는 연고가 없고, 쭉 거기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서울에서 당연히 뿌리를 내리며 살다 이따금 여행을 목적으로 지방을 오는 사람들. 우스개소리로 부산이 고향인 사람에겐 니네집 앞에 바다냐? 묻는 것, 울산이 본가라 하면 니네도 집에 배 있어? 라고 묻는 것, 강원도에 친척이 있으면 평생 감자걱정은 없겠다! 라고 하는 것, 대전에서 학교 다녔다 하면 거기 빵 밖에 없잖아? 라며 그 지역 모두가 거기에만 매달릴거라 당연히 여기는 것. 그런 사람들에겐 이 책이 재미났을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이 책의 표지와 제목은 귀엽게 포장되어있지만 나로서는 조금 씁쓸한 제목이다.

그렇다보니 책을 넘기면서 계속 쓴맛이 베였다. '아! 지방에도 공무원을 뽑고 할 일이 있구나'부터 시작해서, 거기도 사람이 살아? 라고 하는 씁쓸한 질문들. 인구 소멸이 되어가고있는 과정이기는 하나 모든 곳이 사람 사는 동네다. 먹고 살기 위해서 그리고 잘 살기 위해서 일하고 돈벌고 그렇게 살아가는 곳이지 다만 수도권에 비해 인프라가 다소 축소된 경향이 있을 뿐인데 죄다 농사만 짓고 자급자족할 것 처럼 여기게 되었을까.

대도시어야만 높은 연봉과 더 높은 커리어와 함께 문화생활이든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시야의 폭도 달라지긴 하겠다만 이 또한 상대적이라 봐야되지 않을까? 꼭 거기에만 인생의 답이 있는건 아닌데 우린 으레 그래왔던 것처럼 거기에 모든 해답과 모든 길이 있노라 여기고 있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작은 도시 봉급 생활자로 살고있다. 그리고 이 생활에 큰 불편함은 못 느끼고 살고 있다. 우물안 개구리가 그럴수도 있겠고, 굳이 라는 말을 덧붙여가며 지금도 행복한데 무엇을 바라고 그 콩나물시루 같은 곳에 나까지 끼워넣으려 애써야하는가를 묻고싶다.

책 제목 위엔 복잡한 도시를 떠나도 여전히 괜찮은 삶이라 상냥하게 수도권 아니어도 살만해요 라고 하는 느낌이라 완독 후에도 여전히 떠오르는 문장이 까끌거리는 것들 뿐이다만 평생 수도권에서만 살았던 사람들, 경주마처럼 무조건 서울을 비집고 들어가 살아야겠다는 목표만 있는 사람들에겐 꽤나 흥미있는 에세이가 되어줄 듯 싶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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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 안에서 빛나게 하소서
이문재 엮음 / 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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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는 종교가 없다. 살아오면서 다양한 종교의 손짓은 있었으나 굳이라는 말로 내가 그어놓은 선에 넘어오지 않길 바랬다. 크리스마스는 예수생일, 석탄일은 부처생일인 덕에 하루를 더 쉰다는 럭키한 날이지 더한 의미는 없는 사람이었다. 기독교 설립자가 세운 대학을 다닌터라 교양필수로 채플을 들었지만 강요의 의미가 컸고, 그 믿음이 세상을 바꿀거라는 말에 반기를 들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은 자유인데 왜 굳이 강요를? 구원과 행복, 천국과 영생을 원하면 개인이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나까지 데리고 들어가려고? 라는 생각으로 멀리하게됨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이 책의 작가의 말을 보면, 오래된 기도는 본질적으로 종교색이 짙지만, 종교 못지않게 시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좋은 기도는 좋은 시에 가깝고, 좋은 시는 좋은 기도에 가깝다. 내가 보기에 기도하는 마음과 시를 읽고 쓰게 하는 마음은 서로 다르지 않다. 기도와 시는 혈연이다. 고 말한다. 간절함을 표현 할 수 있는 언어. 그리고 염원하는 마음으로 모은 두 손이 피워내는 이야기.


종교에 대한 좋은 의미보다 부정적인 면면함을 받아온 나 이기에 소박한 일상에 대한 감사와 가끔은 사랑을 속삭이는 밀어의 형태, 허물어진 세상의 고통을 목도한 뒤 반성의 의미에 좀 더 집중해서 읽는 것에 집중했다. 엮어놓은 것들을 살펴보면 우리에게 친숙한 나희덕, 안도현, 도종환, 권정생 과같은 시인의 이름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종교 없이도 읽으며 마음을 다스렸던 류시화, 이해인, 틱낫한 등 종교인이며 명필가로 알려진 이들의 글까지 촘촘하게 쌓여있다.

살면서 간절함의 끝에 목도하였을 때 자연스레 두 손을 맞대고 빌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애원의 마음과 함께 이게 정말 내 소원의 끝이니 제발 한번 쯤은 들어줘도 되지 않냐며 막판엔 딜을 하게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지금껏 종교에 돈과 정성과 시간을 쏟지 않았다고 내 바람까지 가벼이 여기진 말라며 믿음과 신념을 후불제로 값도록 한다는 서약까지 하곤 하지)

우리 간절히 바라되 결과를 수용 할 줄 아는 마음으로 그렇게 염원하자. 그러한 사람이 되려 마음을 다해보자.



📖시집을 엮으며_ 모든 종교가 타인의 처지를 헤아리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권고한다. 불교는 중생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삼는 자비심을 가지라 말하고, 유교는 내가 하기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고 하며, 기독교는 내가 대접받고 싶은 만큼 타인을 대접하라 이른다.

종교에 대한 불신이 큰 사람이다. 더 깊게 말해 돈과 대학 학위장 때문에 들어간 학교에서 강요했던 종교 수업은 광적으로 강요하는 사람 덕에 진저리쳐질 정도로 사람을 거부하게 만든 기억이 있다. 그래서 책을 훑었을 때 하느님이라는 말이 나와 이걸 내가 편히 완독 할 수있을까가 심히 걱정되어 책의 마지막 뒷편. 그러니까 시집을 엮은 이유부터 읽은 후 책 페이지를 역행하기로 했다.

일단 빌고 기도하고 염원하며 구원한다는 말은 종교색이 짙은 것이니 엮은이가 실로 바라는 주된 내용이 그에 관한건지 아니면 인간이 자신의 처지와 영역 밖에서의 무엇을 바라는 그 마음에 중심을 둔 것인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시집을 엮으며_ 나는 이 시집이 종교를 가진 독자에게는 자신의 신앙을 더욱 성숙하게 하는 계기가 되고, 종교가 없는 독자에게는 영성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전환점이 되었으면 한다.

사회적 영성은 '종교적으로는 종교에서 비롯된 자비, 사랑, 환대,돌봄의 정신을 회복'해 건강한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고, '탈종교적으로는 위아 같은 정신을 실현하려는 시민의 노력을 영성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라 말한다. 종교인은 더욱 종교인 다워지며, 비종교인은 '깨어 있는 시민'으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엮어 둔 것. 종교적인 색을 아예 털어버릴 수는 없는 글이다. 그러니 독자가 스스로 잘 걸러가며 읽어나가길 바란다. 또한 나도 그러한 마음으로 명사들의 시를 읽어내며 유연하게 거를 건 거르고 담을 건 담아가며 적절히 마음에 모아보기로 한다.




📖신년의 기도_ 어제와 함께 내일의 걱정 대신 오늘 지금 여기에 집중하게 하소서

내게서 떠나는 것들이 조용히 문지방을 넘게 하시고 다가오는 것들을 가만히 받아 안게 하소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같은 무게로 살게 하소서

오랫만에 다시 마주한 이순자 시인의 글이다. 고단한 삶에서도 자기 존엄을 지키며 담아낸 담담하고 부스러기 없는 글이다. 일흔을 이른 나이로 여기는 사람이었지 아마. 시인의 성정을 닮은 신년의 기도. 미련과 후회 과거의 기억이 그러한 단어들로 채워지니 이후의 시간들에 욕심을 내고 더 큰 욕망을 덕지덕지 붙이기 보다 멀어지는건 그대로 다가올 것도 또 무던히 봐주며 더한 욕심 없이 그렇게 잔잔하고 고요한 마음을 갖고자하는 바람이 담겨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같은 무게로 살기를, 그래서 때때로 가벼이 살길 바라며 잔꾀 부릴 마음마저 꾸욱 눌러보려는 마음이 단어들 사이에 끼워져있다.



📖기도에게_ '아무것도 빌지 않아도 될 만큼 평온한 일들이 계속되었으면'하는 큰 욕심도 있습니다.

2017년에 나온 박준 시인의 에세이 이후 오랫만에 그의 글을 만났다. 이 시 모음집에서 가장 찾고 싶었던 답을 속 시원하게 알려준 문장을 만난 반가웠고, 그 말을 해준 사람이 박준이어서 결국 같은 마음으로 바라는 이가 한 명 쯤은 있어 다행이다 싶어졌다. 비는 마음들은 다들 하나같이 '안 될걸 알지만'이라는 말을 목전에 둔 구구절절한 문장이다. 그 것만 이뤄지면 내 삶의 굴곡은 고요로 가득할 것이며, 울고 불고 화가 치미는 마음보단 평안만 자리잡을 것 같다는 작고 사사로운척 하는 큰 욕심이다.

결국 아무것도 바라지않아도 될 만한, 기도와 기대따위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평온함을 바란다는 것이니 발끝에 채이는 바람을 해소하기 보단 박준 시인처럼 이왕 바라는 거 모든 것에 절절히 마음쓰지 않아도 될 만큼의 너른 평온을 바라게 된다.(어느 신이든 그 기도를 보면 이녀석 잔머리를 써서 한방에 덮어버리려 하는구나 라며 코웃음 치게될까 두렵지만 일단 내질러보는 마음으로 이 마음 딱 하나만 빌어볼까 싶어진다)



📖나를 떠난 인연에게_ 누군가가 나를 이만큼이나 생각한다면 나는 분명 축복받은 사람일 거야

함께했던 시간보다 더 앞으로도 나는 그들을 위해 기도할 테니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는 말을 세번이나 들어먹고도 네번째의 바뀔 세상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얼마 되지 않는 인간관계이긴 하나 그래도 시간은 무시 못 한다고 나를 스친 이들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하루가 멀다하고 보던 사람들도 눈에서 멀어지니 마음에서도 야금야금 뒷걸음질 치기도 하고, 앙금으로 남아있던 이들은 이제 얼굴도 가물가물 해 질 정도로 나 스스로가 마음 덜 다치려 지워내고 있음을 느낀다. 왜 그리 되었는지는 기억도 못 하는데 굳이 왜 그런 인연으로 만들어 두었어야했나도 떠올리며 이 모든 잡생각이 부질없음에 괜한 머리쓰지 않기로 한다.

결국 바라는건 나를 떠난 이들, 또는 내가 먼저 놓아버린 이들이 잔상으로 남아 회색의 그림자만 흔적이 되었으나 그럼에도 나와 함께했던 순간이 있던 존재이니 그마저에도 안녕을 바라게된다. 더 마주하고 으르렁 거릴 필요도 없지 않던가. 남아있는 것 만이라도 아름다운 것으로 머물도록 우리가 처음 마주 했던 순간 만큼은 부정 할 수 없는 복에겨운 인연이었다며 흔적마저 미워하지 않았음 하는 기도를 드려본다.




나를 비롯한 이들의 평안을 기도하지만 결국 내가 살고자 하는 마음이 커 두 손을 맞대어본다. 나 자신으로부터 나를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

내가 당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프고 힘드니 내 속이 문드러지지 않기 위해서는 당신이 잘 되어야하지 않겠냐는 엮이고 엮인 마음쓰임이다. 그러니 내 시선이 닿는 곳 마다 바라는 것들이 가득하여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툴툴거려보기도 한다.

구원받기 위한 기도를 하고싶지 않아진다. 내 기도가 무색하리만큼 평온하면 되니까. 나는 오늘도 기도할 마음을 접어두고 '아무것도 빌지 않아도 될 만큼 평온한 일들이 계속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대놓고 비춰보련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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