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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비실
이미예 지음 / 한끼 / 2024년 7월
평점 :

내가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유행하던 말이 있다.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무서운 말. 어느 조직이드 일정량의 진상, 무능력자, 얌체 등 일명 '또라이'가 존재한다는 법칙이다. 어? 우리 조직에는 그런 인간은 없는데? 라고 느끼는 순간. 자신이 그 또라이가 되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는 무서운말. 그게 번뜩 떠오른 진짜 빌런들 사이에 숨은 가짜 빌런 찾기.
이야기는 7일간의 합숙 리얼리티 쇼 '탕비실'에 섭외된 이들의 촬영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로부터 '함께 탕비실 쓰기 싫은 사람'으로 뽑혀 캐스팅 된 각각의 직장인들이다. 출판사 소개글이었던 내용인데 다음 문장이 마음을 쿵 하게 내려 치더라. 평소 자신이 동료들을 위해 베풀었던 친절과 배려가 동료들에게 더없이 불쾌하고 오싹한 소름으로 전달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며 찰영이 시작된다는 것. 누군가에게 밉상으로 보였던 점들이 정작 본인은 남을 위한답시고 일부러 하곤했던 행동들이라는 것. 그러한 면면들이 모여 미워하게되고 눈살찌푸리게 만들었다는 사실.
그래서 진짜 싫은건 누구일까? 그 사람의 행동이 싫었던 걸까, 그저 그 사람 자체가 싫어서 모든게 미워보였던 걸까를 생각해보며 읽다보면 밉상짓에 짠함이 베여있고, 잘해주려 했던 마음도 슬쩍 보여서 씁쓸하기까지 하다.

📖알 수 없는 사람으로부터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뒷말을 듣는 것이 으스스했다. 텀블러는 자기에 대한 이 설명을 얼마나 납득할 수 있을까? 내가 이걸 듣고도 앞으로 그를 선입견 없이 대할 수 있을까?
각각의 사무실 빌런으로 뽑혀 여기까지 온 사람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여기까지 온 이유를 가지고 닉네임이 불려진다. 싱크대에 안 씻은 텀블러를 늘어놓는 자칭 환경 운동가라는 사람은 이름이나 직책보다 텀블러로 불리운다. 그가 여기까지 온 이유를 자료화면을 통해 보게되는데 전후 사정을 모르는 출연자들로서는 화면속 동료들이 싫어했던 꼭지들에 대한 말만 담아듣게된다. 일면식도 좋고싫음도 없던 이가 색안경을 끼고 보게 만드는 아주 좋은 인간 분류의 방법. 내가 이러한 면들 때문에 싫었으니 너도 당연히 싫어하겠지? 라는 동조를 구하는 뉘앙스다. 이래서 사람의 입이 제일 무서운 거지.

📖나는 살면서 싫어하는 사람을 더 알아보려고 한 적이 없었다. 항상 그랬던 것 같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건 쉽지만 정말로 알아보려고 노력하는 건 어렵다.
보통은, 아니 대부분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굳이'라는 단어를 덧붙여가며 싫은 점에 대한 이유를 찾아내며 인과관계를 따져보는건 아니니까 말이다. 싫음에 대한 정확한 것은 잘 없었다. 그냥 단면적인 모습이 싫었고, 그게 계속 거슬리고, 그러니 그가 하는 모든것들이 아니꼬워 보이면서 사람 자체가 싫어지는 수순을 밟게 된다. 그러니 노력은 필요 없지. 알아볼 이유가 뭐 있을까. 그냥 시작부터 '싫다!'로 시작되는 벽이 생긴 것이니 알고싶은 마음을 안 가지게 되는 느낌이다. 그게... 정말 나만, 그리고 여기 주인공만 그러할까?
그렇다. 이건 진상 콘테스트의 단순한 게임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람을 싫어하게되는 과정, 인간과 인간 사이에 좋고 싫음이 변해가는 흐름. 그리고 알려고 하지 않으며 타인의 입으로 전해진 단면적인 상황에 전체를 덧입히는 과정으로 그렇게 사람은 구분짓는 걸 드러내고 싶었던 거다.

📖나는 그들이 내가 베푼 친절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의아했다.
누군가는 타인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고자 자신이 번거로움을 자처한 행동이었고, 누군가는 시키지도 않은 일에 대한 것과 더불어 자신을 일거수 일투족 지켜보고 따라하려는건 아닐지. 그리고 왜 이러한 정성을 들여가며 나의 편의를 봐주려하는 건지를 생각하며 감사함보다 이후에 일어날 일에 대한 걱정과 부담으로 작용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서로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잣대로만 단정지으며 좋아할 거라 기대하고, 싫어하는 짓을 저렇게 고생스럽게 하나를 생각만 할 뿐이다. 왜 말하지 않았냐고? 말 하지 않아도 알아 줄 거라 믿은 것과 함께, 내가 생각한 방향으로 상대도 그리 알아 줄 거라는 확신만 있었던 것이다. 당연한 공감을 기대했고, 의문을 넘은 의뭉스러운 두려움으로 겨루는 중인 것이다. 이 대립 관계 괜찮은걸까?

📖요약하자면 나를 오해했던 것 같다는 얘기였다. 나는 그런 걸 오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게임이 끝난 후 후일담으로 이 리얼리티 쇼를 본 후 동료들의 반응이다. 방송 잘 봤다며 미안하다고 먼저 말을 건넸다. 오해라는 말과 함께 가볍게 사과하고 넘겨보려는 두루뭉술한 반응이다. 오해라고 말은 하지만, 다들 자신들이 본 그대로가 그런 사람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굳어진 뒤 였던 것. 영상을 통해 이미 그가 했던 행동의 목적이 나왔으니 더이상 입밖으로 꺼내어선 안되는 비뚤어진 시각. 오해라 하면 모든게 없던 일이 되는건 아닌데 말이다. 이렇게 한 사람이 빌런이 되어가고 토끼몰이가 시작되며 이구역 또라이를 생성해 가는 것이겠지.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어 생활하면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소문과 뒷담화의 덩어리들 인데 매번 마주하고 나도 일원이되고 또 피해를 받는 당사자가 되기도 하지만 도통 적응하기 어려운 심리들이다.

📖작가의 말_ '싫음'에 관한 내 나름의 분출이다. 탕비실은 일상적 휴식의 공간이지만 원하는 만큼 무한정 머물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내게 필요한 것이 구비되어 있지만 그것이 완전히 나의 소유는 아니다. 나에게 허락된 공간이지만 나에게만 허락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꼭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의 축소판 같다.
회사생활을 하다보면 일이 힘든건 적응해 가면 그만이지만 사람 때문에 힘든건 참기가 어렵다. 그래서 퇴사를 하는 사람 여럿을 보았고, 나도 그러한 빌런 몇몇의 고자극 고스트레스로 인해 머리카락이 숭덩숭덩 빠지며 사람이 퀭해지는 걸 경험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냥 그 사람이 숨쉬는 것 조차 싫어지더라. 시작은 단편적인 모습이었지만 그 끝은 눈덩이 굴리듯 커지니 존재자체로 완성이 되는 싫음이었다.
탕비실은 인사만 나누면 되는 공간이다. 굳이 사생활을 공유하며 일명 노가리까고있을 곳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안면있는 사람들끼리 공유하는 잠깐의 찰나 정도겠다. 그러니 딱 오해하기 쉬운 애매함의 아는척의 시간인 것. 그러니 이해를 바라지도 이해를 해주려 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게 탕비실 빌런 생성의 시작점이다. '왜?'는 없지. 굳이 '왜?'를 들먹여가며 잡담지수를 올릴 에너지를 쓸 이유를 못 찾는 거지만 흠집 내는건 세상 재미난 못된 성질이니 계속 그렇게 밉상에 밉상을 얹어가는 온상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싫어하니 같은 동료도 그 점을 동조해주길 바라는 마음. 하지만 나는 그런 미움을 받기는 싫어하고 세상 착한 사람이고픈 어이없는 선긋기.
이게 책에서만 나오는 내용이 아니고, 현실은 더 과장되었고, 더 악독하며, 더 표독스럽게 사랍을 긁어부스럼 낸다는걸 알지만 그러한 못되쳐먹은 짓을 하는건 내가 아니라 늬들이라고 믿고픈 세상이다.
리얼리티쇼야 다른 공간에 있던 빌런들을 모아 술래를 찾고 상금을 타면 그만이지만, 현실은 상금도 없고 이 쇼가 끝나면 해체되는 일도 없는 가족보다 더 자주 보게되는 사람들로 대면하게 될 것이다. 아침부터 퇴근까지 쭉 보게될 현실. 차라리 리얼리티쇼가 낫지 현실은 매번 이렇게 전쟁이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나는 빌런을 동조하는 무리중 하나인가 빌런인가를 생각해보면 딱 경계에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에 씁쓸해진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빌런일 것이고, 내가 바라보는 시선에는 나 이외의 인간들이 빌런일 테니 말이다.
이래서 형체가 없는 귀신보다 형체가 있으면서 내 앞에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헤실헤실 웃고있는 사람이 제일 무섭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
... ... 이래서 퇴근이 마려운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