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그림자 안에서 빛나게 하소서
이문재 엮음 / 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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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는 종교가 없다. 살아오면서 다양한 종교의 손짓은 있었으나 굳이라는 말로 내가 그어놓은 선에 넘어오지 않길 바랬다. 크리스마스는 예수생일, 석탄일은 부처생일인 덕에 하루를 더 쉰다는 럭키한 날이지 더한 의미는 없는 사람이었다. 기독교 설립자가 세운 대학을 다닌터라 교양필수로 채플을 들었지만 강요의 의미가 컸고, 그 믿음이 세상을 바꿀거라는 말에 반기를 들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은 자유인데 왜 굳이 강요를? 구원과 행복, 천국과 영생을 원하면 개인이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나까지 데리고 들어가려고? 라는 생각으로 멀리하게됨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이 책의 작가의 말을 보면, 오래된 기도는 본질적으로 종교색이 짙지만, 종교 못지않게 시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좋은 기도는 좋은 시에 가깝고, 좋은 시는 좋은 기도에 가깝다. 내가 보기에 기도하는 마음과 시를 읽고 쓰게 하는 마음은 서로 다르지 않다. 기도와 시는 혈연이다. 고 말한다. 간절함을 표현 할 수 있는 언어. 그리고 염원하는 마음으로 모은 두 손이 피워내는 이야기.


종교에 대한 좋은 의미보다 부정적인 면면함을 받아온 나 이기에 소박한 일상에 대한 감사와 가끔은 사랑을 속삭이는 밀어의 형태, 허물어진 세상의 고통을 목도한 뒤 반성의 의미에 좀 더 집중해서 읽는 것에 집중했다. 엮어놓은 것들을 살펴보면 우리에게 친숙한 나희덕, 안도현, 도종환, 권정생 과같은 시인의 이름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종교 없이도 읽으며 마음을 다스렸던 류시화, 이해인, 틱낫한 등 종교인이며 명필가로 알려진 이들의 글까지 촘촘하게 쌓여있다.

살면서 간절함의 끝에 목도하였을 때 자연스레 두 손을 맞대고 빌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애원의 마음과 함께 이게 정말 내 소원의 끝이니 제발 한번 쯤은 들어줘도 되지 않냐며 막판엔 딜을 하게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지금껏 종교에 돈과 정성과 시간을 쏟지 않았다고 내 바람까지 가벼이 여기진 말라며 믿음과 신념을 후불제로 값도록 한다는 서약까지 하곤 하지)

우리 간절히 바라되 결과를 수용 할 줄 아는 마음으로 그렇게 염원하자. 그러한 사람이 되려 마음을 다해보자.



📖시집을 엮으며_ 모든 종교가 타인의 처지를 헤아리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권고한다. 불교는 중생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삼는 자비심을 가지라 말하고, 유교는 내가 하기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고 하며, 기독교는 내가 대접받고 싶은 만큼 타인을 대접하라 이른다.

종교에 대한 불신이 큰 사람이다. 더 깊게 말해 돈과 대학 학위장 때문에 들어간 학교에서 강요했던 종교 수업은 광적으로 강요하는 사람 덕에 진저리쳐질 정도로 사람을 거부하게 만든 기억이 있다. 그래서 책을 훑었을 때 하느님이라는 말이 나와 이걸 내가 편히 완독 할 수있을까가 심히 걱정되어 책의 마지막 뒷편. 그러니까 시집을 엮은 이유부터 읽은 후 책 페이지를 역행하기로 했다.

일단 빌고 기도하고 염원하며 구원한다는 말은 종교색이 짙은 것이니 엮은이가 실로 바라는 주된 내용이 그에 관한건지 아니면 인간이 자신의 처지와 영역 밖에서의 무엇을 바라는 그 마음에 중심을 둔 것인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시집을 엮으며_ 나는 이 시집이 종교를 가진 독자에게는 자신의 신앙을 더욱 성숙하게 하는 계기가 되고, 종교가 없는 독자에게는 영성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전환점이 되었으면 한다.

사회적 영성은 '종교적으로는 종교에서 비롯된 자비, 사랑, 환대,돌봄의 정신을 회복'해 건강한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고, '탈종교적으로는 위아 같은 정신을 실현하려는 시민의 노력을 영성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라 말한다. 종교인은 더욱 종교인 다워지며, 비종교인은 '깨어 있는 시민'으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엮어 둔 것. 종교적인 색을 아예 털어버릴 수는 없는 글이다. 그러니 독자가 스스로 잘 걸러가며 읽어나가길 바란다. 또한 나도 그러한 마음으로 명사들의 시를 읽어내며 유연하게 거를 건 거르고 담을 건 담아가며 적절히 마음에 모아보기로 한다.




📖신년의 기도_ 어제와 함께 내일의 걱정 대신 오늘 지금 여기에 집중하게 하소서

내게서 떠나는 것들이 조용히 문지방을 넘게 하시고 다가오는 것들을 가만히 받아 안게 하소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같은 무게로 살게 하소서

오랫만에 다시 마주한 이순자 시인의 글이다. 고단한 삶에서도 자기 존엄을 지키며 담아낸 담담하고 부스러기 없는 글이다. 일흔을 이른 나이로 여기는 사람이었지 아마. 시인의 성정을 닮은 신년의 기도. 미련과 후회 과거의 기억이 그러한 단어들로 채워지니 이후의 시간들에 욕심을 내고 더 큰 욕망을 덕지덕지 붙이기 보다 멀어지는건 그대로 다가올 것도 또 무던히 봐주며 더한 욕심 없이 그렇게 잔잔하고 고요한 마음을 갖고자하는 바람이 담겨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같은 무게로 살기를, 그래서 때때로 가벼이 살길 바라며 잔꾀 부릴 마음마저 꾸욱 눌러보려는 마음이 단어들 사이에 끼워져있다.



📖기도에게_ '아무것도 빌지 않아도 될 만큼 평온한 일들이 계속되었으면'하는 큰 욕심도 있습니다.

2017년에 나온 박준 시인의 에세이 이후 오랫만에 그의 글을 만났다. 이 시 모음집에서 가장 찾고 싶었던 답을 속 시원하게 알려준 문장을 만난 반가웠고, 그 말을 해준 사람이 박준이어서 결국 같은 마음으로 바라는 이가 한 명 쯤은 있어 다행이다 싶어졌다. 비는 마음들은 다들 하나같이 '안 될걸 알지만'이라는 말을 목전에 둔 구구절절한 문장이다. 그 것만 이뤄지면 내 삶의 굴곡은 고요로 가득할 것이며, 울고 불고 화가 치미는 마음보단 평안만 자리잡을 것 같다는 작고 사사로운척 하는 큰 욕심이다.

결국 아무것도 바라지않아도 될 만한, 기도와 기대따위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평온함을 바란다는 것이니 발끝에 채이는 바람을 해소하기 보단 박준 시인처럼 이왕 바라는 거 모든 것에 절절히 마음쓰지 않아도 될 만큼의 너른 평온을 바라게 된다.(어느 신이든 그 기도를 보면 이녀석 잔머리를 써서 한방에 덮어버리려 하는구나 라며 코웃음 치게될까 두렵지만 일단 내질러보는 마음으로 이 마음 딱 하나만 빌어볼까 싶어진다)



📖나를 떠난 인연에게_ 누군가가 나를 이만큼이나 생각한다면 나는 분명 축복받은 사람일 거야

함께했던 시간보다 더 앞으로도 나는 그들을 위해 기도할 테니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는 말을 세번이나 들어먹고도 네번째의 바뀔 세상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얼마 되지 않는 인간관계이긴 하나 그래도 시간은 무시 못 한다고 나를 스친 이들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하루가 멀다하고 보던 사람들도 눈에서 멀어지니 마음에서도 야금야금 뒷걸음질 치기도 하고, 앙금으로 남아있던 이들은 이제 얼굴도 가물가물 해 질 정도로 나 스스로가 마음 덜 다치려 지워내고 있음을 느낀다. 왜 그리 되었는지는 기억도 못 하는데 굳이 왜 그런 인연으로 만들어 두었어야했나도 떠올리며 이 모든 잡생각이 부질없음에 괜한 머리쓰지 않기로 한다.

결국 바라는건 나를 떠난 이들, 또는 내가 먼저 놓아버린 이들이 잔상으로 남아 회색의 그림자만 흔적이 되었으나 그럼에도 나와 함께했던 순간이 있던 존재이니 그마저에도 안녕을 바라게된다. 더 마주하고 으르렁 거릴 필요도 없지 않던가. 남아있는 것 만이라도 아름다운 것으로 머물도록 우리가 처음 마주 했던 순간 만큼은 부정 할 수 없는 복에겨운 인연이었다며 흔적마저 미워하지 않았음 하는 기도를 드려본다.




나를 비롯한 이들의 평안을 기도하지만 결국 내가 살고자 하는 마음이 커 두 손을 맞대어본다. 나 자신으로부터 나를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

내가 당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프고 힘드니 내 속이 문드러지지 않기 위해서는 당신이 잘 되어야하지 않겠냐는 엮이고 엮인 마음쓰임이다. 그러니 내 시선이 닿는 곳 마다 바라는 것들이 가득하여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툴툴거려보기도 한다.

구원받기 위한 기도를 하고싶지 않아진다. 내 기도가 무색하리만큼 평온하면 되니까. 나는 오늘도 기도할 마음을 접어두고 '아무것도 빌지 않아도 될 만큼 평온한 일들이 계속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대놓고 비춰보련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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