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류 오늘의 젊은 작가 40
정대건 지음 / 민음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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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급류와 같다.

왈칵 밀려와 어찌 하지 못할 정도로 흠뻑 젖어들기도하고, 또 한 편으로는 휘몰아치며 물이 밀려 나가 남겨진 자의 공허함도 느끼게되는 물의 흐름은 사랑이 변하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게 사랑이었고, 이 책의 주인공인 도담과 해솔이 느끼는 감정으로 보였다. 헌데 이 책 표지가 주는 깊은 무드에 비해 내가 보는 이들의 사랑은 급류에 휘말려 매번 자맥질하느라 버거운 존재로 느껴졌다. 어떤 급류가 휘감더라도 우리는 사랑이며, 계속 사랑하게 될 수 밖에 없는 존재라 말하려하는 두 남녀. 헤어지고 만나고를 반복하면서 사랑에 빠진 이유도, 헤어지는 이유도, 다시 만나게되며 서로를 찾게되는 이유마저 결국 너라서 그런 거라는 걸 보며 그게 된다고?의 물음을 가지게 만든다. 잔잔하고 고요한 사랑을 지향하며, 똑같은 이유로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는 피곤함을 주지만 그로인해 더 애틋하다는 마음에 완벽한 이해를 하긴 어려웠다. 결국, 그러니까 또 언젠 그 이유로 헤어지지 않을까를 예견하게되는 현실주의자 독자가 보는 이들의 사랑.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엔딩은 결국 이들은 떨어지기보다 곁에 있으며 모든 급류를 온전히 떠앉더라도 이 사랑을 지키겠다는 글의 뉘앙스를 느끼게 된다.


아픈 엄마, 소방관 아버지 그리고 딸 도담. 소방관으로서 인명구조에 힘쓰는 아버지를 존경한다. 아버지와 함께 하는 순간을 사랑하는 도담. 그에게 수영도 배우며 엄마가 채워주지 못하는 사랑을 아버지를 통해 가득 얻어 사는 존재. 어머니와 함께 진평으로 온 해솔. 편모에게만 받던 사랑에서 아버지라는 존재가 주는 큰 마음을 도담의 아버지를 통해 어떤 마음인지를 알아가며 그와 동시에 그의 딸인 도담에게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얻게된다. 도담과 해솔에서 그치면 좋았으련만, 도담의 아버지도 해솔의 어머니도 같은 마음을 받으며 감정을 키워간다. 그게 이 이야기 비극의 정점이다. 가족의 불륜을 목격한 아이들. 그들이 불어난 계곡물의 급류에 휩쓸려 사망을 했고, 목격한 각자의 아이들은 자신의 사랑이 결국 불륜의 끈으로 연결되어있음에 모든 이들의 손가락질을 받았고,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며 애증의 양면을 드러내게된다. 좋아하지만 미워할 수 밖에 없어 자신을 부정하는 과정. 하지만 자신들이 먼저 좋아했다며 그 마음마저 부정할 수 없다는 듯 서로를 찾게된다. 서로의 얼굴을 보면 과거가 떠올라 자신과 상대를 상처내는 과정의 반복. 이 감정 변화는 청소년에서 성인이되고, 성인이 된 후 시간이 흘러도 헤어나오지 못하며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던 타인마저 급류속으로 끌어당겨 자폭하게만든다. 결국 저 둘이 사랑해야만 끝이 나는 이 이야기의 끝. 자신의 상처마저도 보듬어주려했고 기다려주었던 이들의 마음은 모르겠고, 그냥 둘이 붙어있어야만 이 이야기가 마무리된다는 좀 많이 이기적이었던 사랑의 투정.




📖 "우린 애인이 아니라 채무 관계 같아. 서로 빚진 사람들 같다고."

숨겨야 하는 마음이고, 서로의 눈치를 봐야만 하는 마음의 전달 과정. 해솔에게 못되게 굴어도 해솔은 화를 내지 못한다며 단정짓는다. 스스로를 죄인이라 생각하니까 날을 세운 말들로 해솔을 난도질 하지만 해솔은 반박히지 못한다. 혹여라도 같이 날을 세우면 도담이 찔려 도망갈까봐 삼키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애인은 아니다. 사랑이라는 마음보다 미안함이 더 커져버린 관계. 그래서 어찌하든 비유맞추는 것에 시선이 얹어진 사이. 장기전은 안될거 같다. 한명이 지치든 한명이 열폭하든 결국 더 크게 어긋날 마음으로밖에 보여지지 않았다.


📖 다정함에 끌리는 마음을 애써 눌렀다. 이대로도 좋다고 생각했다.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에서 서로를 의지한다는 건 함께 가라앉는 것 같았기에. 도담은 더 이상 먼저 손 내미는 사람이 아니었다.

도담은 상대가 호감을 갖고 다가오면 방어기제를 세워 마음의 선긋기를 야멸차게 해버린다. 저도 다정함에 끌렸고, 외로움에 마음 둘 곳이 없어 붕 뜬 상태였음에도 뒷일에 대한 걱정과 그 너머의 관계형성에 겁내며 이대로도 좋다는 듯 마음의 담을 세웠다. 자신은 들락거리지만 상대는 자신에게 못 넘어오도록. 나는 이기적인 사랑이라고 밖에 못 하겠다. 그게 해솔이 느끼는 도담만의 매력이겠다만 멀찍이 물러나 도담, 승주, 해솔, 선화를 보면 배워놓은 사랑의 끝이 그 뿐이고, 해본 사랑의 전달력이 거기까지였던 도담이라 할 지라도 이건 세상에 자신만 불쌍하고 자신만 사랑받지 못한다며 생떼부리는 꼴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 추억 때문이다. 좋았던 날들에 대한 반가움과 지나가 버린 한때에 대한 슬픔일 수도. 이성에 대한 열정? 호르몬 작용은 진작 끝났다. 소식이 궁금하고 그리워하는 마음. 걱정하고 애타게 보고 싶은 마음. 꽉 끌어안고 안기고 싶은 마음. 그런 때도 분명히 있었다. 마음의 불씨는 전부 사그라져 버렸다. 완전한 전소. 남은 거라고는 그을린 시커먼 자국과 탄내 가득한 폐허.

그런 줄 알았다. 해솔을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이게 첫사랑에 대한 마음의 정의겠지? 첫사랑은 대부분 좋았던 시절에서 멈췄고, 그래서 더 애틋했으며, 이뤄지지 못한 쉼표같으니 남은 이야기의 마침표를 위해 한없이 미화되어가는 과정의 수순을 보인다.그렇다보니 자연스레 도담도 해솔이 그리웠으리라. 자신에게 한 없이 다정했고, 잘 보듬어주는 아빠와 연인의 몫까지 두루 해준 존재. 다들 각자의 마음 한 구석에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있겠지만 미완성으로 두는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소설은 다르지. 도담은 또 그렇게 물어뜯고 할퀴어댄 존재가 또 사무치게 그리워 해솔을 만나게된다. 이걸 사랑의 완성이라 봐야할까 사랑의 이기적인 방식이라 봐야 할까. 그건 독자의 몫이겠지만 해솔의 마음이야 어찌되었든 도담만 놓고 보면 사랑을 갈구하지만 제 입맛에 맞는 사랑을 얻기 까지의 과정이 그리 예뻐보이진 않았다.



📖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이 하는 사랑처럼 한 사람을 세상에서 가장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 이건 한때 끓고 식는 종류의 마음이 아니다. 남들이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다. 도담은 그 어느 때보다 맑은 정신으로 다짐했다. 영원히 살 것처럼이 아니라.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해솔을 사랑하겠다고. 두 사람에게 어떤 고난이 닥쳐도 해솔과 다시는 헤어지지 않겠다고.

도담은 해솔에 대한 마음은 연애 감정의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할머니의 사랑과 비슷하다며 그 영역을 확대시켰다. 그러한 큰 마음이라며 자신의 허한 감정을 오랜시간 달래주고 기다려준 승주에게 작별을 고한다. 감정의 극과 극을 다 맛본 사랑의 관계. 그래서 어떤 고난이 닥쳐도 해볼만한 싸움이라는듯 다시는 해솔과 헤어지지 않겠다며 지금의 사랑에게 말하는 모습을 보면 솔직하다못해 자신은 쿨한듯 깔끔한 안녕을 부탁한다. 어느 사랑에 쿨함과 담백함이 존재했던가? 그거야 오롯이 그러한 통보를 하는 자가 느끼는 환상같은 것이지. 자신은 쿨해보일거라며, 구질구질 하지 않겠다며 깔끔한 안녕을 했다 생각하지. 지금껏 야금야금 받아먹기만 했던 마음이니 훅 하고 뱉어버리면 그만이다 싶은 가벼운 사랑처럼 말하는 모습에 도담의 방식이 미워진다.(아니 계속 미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 그때 생각했어. 누군가 죽기 전에 떠오르는 사람을 향해 느끼는 감정. 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사랑이란 말을 발명한 것 같다고. 그 사람에게 한 단어로 할 수 있는 말을 위해 사랑한다는 말을 만든 것 같다고.

그때 깨달았어. 사랑한다는 말은 과거형은 힘이 없고 언제나 현재형이어야 한다는 걸.

몇번의 고난이 반복된 사랑이다. 각자의 부모로 인해 어린시절 꺾여버린 마음. 마음을 외면한 채 성인으로 살다가 마주한 둘.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다가도 보고있으면 각자의 부모가 떠올라 마냥 행복하지 않았던 감정. 좋지만 마냥 좋을 수 없는 서사. 그래서 더 긁어내고 상처를 만들어 헤어진다. 또 몇년이 흘러 우연히 소식을 알게되고 확고한 마음이라며 영영 떨어질 일 없을 거라는 듯 애틋한 마음으로 모든 이유를 사랑이라는 말로 덮어버린다. 언제나 그리고 꾸준히, 앞으로도 사랑한다는 말로 상대를 예쁘게 보듬을거라는 둘의 마음.

나는 어지간하면 이야기 속 사랑을 응원하는 편이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처럼 언제나 사랑이 무사하길 바라는 사람이라 그 마음들이 변치 않고 진득하길 바라는 사랑 평온주의자로서 도담과 해솔은 이후로도 헤어지지 않고 잘 붙어 있을까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같은 이유로 몇번이고 돌아선 사람들인데,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거라는 믿음이 있을까? 운명적 사랑이라 했다. 헌데 생각해보면 사랑이라는 감정의 교류에서 그들의 부모나 자식들인 도담과 해솔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내가 있던 도담의 부. 승주가 있음에도 해솔에게 갈 거라는 말로 사랑을 끝맺으려 하는 도담. 결혼의 유무를 떠나서 자신들은 진지하게 운명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저 똑같은 환승법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풋 사랑에서 마무리가 될 것인지, 결국 부모를 닮아버린 사랑의 환승으로 저들만 애틋한 로맨스라 봐야 될 것인지는 각자가 추구하는 사랑의 우선순위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 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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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독서 - 한 권의 책이 리더의 말과 글이 되기까지
신동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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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한다는 것은 혼자 있는 시간을 내면의 대화로 채운다는 말로 설명되기도 한다. 그렇다보니 말의 힘도 알고, 글의 묵직함도 알기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 복기하며 다듬었을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더군다나 나라의 수장으로 구현해 낼 문장들은 모든 것에 책임이 뒤따르기에 더욱이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이고, 당위와 현실 사이에서의 균형도 잃지 않아야하며 청자를 존중한다는 것 또한 일관되게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니 더욱 어렵고 고된 글이며 밖으로 나오는 순간 담아놓고 덮어두지 못하는 말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대통령이 모든 연설문이나 담화문을 작성하는 지는 알 수 없으나 그래도 자신이 피력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 지시하고 표현할 것이라는 점. 그럼 그 글이 가진 뉘앙스와 분위기를 고스란히 옮겨 줄 수 있는 보좌관 또한 같은 결을 지니며 단차가 적은 깊이의 글쓰기와 말하기가 수반되어야함을 생각하게된다.


전 대통령의 연설과 메시지 작성을 보좌한 신동호 시인의 첫 단독 에세이. 역대 대통령의 연설문, 담화문, 기고문에 담긴 독서의 흔적들과 함께 이러한 문장을 표현하는 사람의 생각의 시작점을 찾아가는 과정.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어떻게 엮어내고 지탱할 수 있게 해주는 지도 살펴보는 과정이라 할 수 있었다.

추천사를 담아낸 하림의 말 처럼 단순히 개인적인 독서 이력을 알고자 함은 아니라는 점이다. 관심사가 무엇이며 그 책으로 인해 얻고자 했던 진짜 이야기들을 나의 방식으로도 찾아보는 것. 그리고 함께 읽고 사유 할 수 있는 글을 고르는 능력을 기대하는 과정. 우린 그걸 바란건지도 모르겠다.

책은 총 20장의 이야기를 담아놓고 있다. 그 중 마음에 남기고픈 주제와 이야기들을 기록해 볼까 한다.


📖3장 우리는 더 친절해져야 한다_ 모든 연설과 담화에서 '모두를 위해(For every)'라는 문구를 즐겨 썼고, '누구를 위한(For whom)' 희생정신이냐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에서 공감과 공존을 읽어 낸 것이다. '인종도, 성별도, 사회적 위치도 다른 모든 사람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미국에 변혁의 종을 울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증오의 열기가 더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고있는 중이다. 2024년의 끝자락에 다다른 상태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찬 바닥에서 빛을 쥐고 존재를 표현했으며 목소리를 모았고, 불행한 시대에서 굳은 얼굴로 상대를 마주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난, 폭력, 귄위주의의 굳은 얼굴을 먼저 풀라고 이야길 한다. 그것이 새로운 시대를 여는 방법이며 흩날린 꽃잎들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길이라고 알려준다. 같이 살아낼 이들을 위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워지려 애쓰게되고, 더 많은 삶이 남아있을 다음 세대를 생각하면 시선을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게되고 눈에 힘을 빼게된다. 그게 자연스럽게 세상과 말을트는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쌍심지를 켜고, 또 누군가에게 온화한 시선을 줄 지 아는 사람들이다. 나도 당신들이 말하듯 모두에게 친절한 그런 존재로 남고싶을 뿐이다. 나는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매번 세상이 뒷통수를 칠 뿐이지.



📖9장 국민 한 사람의 존엄이 곧 애국_ "이것은 모두 백성들의 독립 정신이 뇌수에 맺히어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데도 저들은 분수없이 '동화'라는 쓸데없는 말을 한단 말인가"라고.

애국은 언제나 거창하지 않은 것에서 시작해왔다. 평범함 삶이 나누는 소박한 애정이 비상 시기에 애국으로 드러난다. 애국은 영토와 재산, 생명을 지키는 일이라 하지만 무엇보다 한 개인의 존엄한 삶을 지키는 일이기에 소중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국위선양이라는 말로 거창하게 알리는 이들도 있겠지만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며, 주변을 살피는 일. 무탈한 일상이 될 수 있도록 손과 발을 바삐 움직이며 이상 없음을 유지 하는 일련의 과정.

매 해 간절했고, 매 번 울컥하는 3.1절과 광복절엔 더더욱 그 마음을 어렴풋이 헤아려본다.

그러니 다음 수장에게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과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는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 대한 의무를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길 바랄뿐이다.



📖17장 당신 발자국에 내 발자국을 포개며_ 시대의 경험이란 피해 갈 수 없다. 광주든, 세월호든, 촛불이든, 이태원이든 함께 분노했다고 한 시대가 모두 같은 삶을 살아간 것도 아니다. 이래라저래라 할 것 없다. 앞선 세대가 그랬듯 자신들의 언어 안에 꿈과 색깔이 있다. 오직 오늘 내 발걸음이 중요하다.

윗 세대는 지금의 청년들에게 요청하는 바가 많다.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투표해야 한다, 투쟁해야 한다, 이 모든 말은 기성세대가 멋대로 설계한 유토피아에서 인형극처럼 움직여주길 바라는 사항들이다. 자신의 세계를 자신이 살아가고, 느끼고, 개선하도록 용기를 주고 기꺼이 그 도전에 응전해야한다. 나는 기성세대와 청년들 사이에 끼여있는 세대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보다 더 산 이들의 말도 많이 들어왔고, 나보다 총명한 청년들의 이야기와 움직임에도 시선이 가는 사람이다. 생각보다 그들은 사리분별이 빠르고 어떻게 해야 자신에게 최선의 결과가 주어질 지 아는 명석한 머리들을 갖고있다. 그러니 한 번 쯤은 기다려봐줘도 괜찮을 듯 하다. 당신들이 청춘 이었을 때도, 내가 청춘이라 부를 수 있던 시절의 불타오르는 나를 떠올려보면 충분히 그래줘도 되는 열망이니까.

📖20장 다시, 책 읽는 대통령을 기다리며_ 책은 읽는 사람을 끊임없이 겸손하게 하고, 자기 생각을 의심하게 하고, 심지어 다른 책으로 옮겨 가도록 유혹하기 십상이어서 책을 많이 읽을수록 함부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물론 논쟁에서 우위를 갖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종이 책이 사라지고, 이야기가 소멸되는 세상을 걱정하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그런 세상이 빠르게 발치에 닿진 않을 듯 하다. 여전히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들이 많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이들도 많은 세상이니 우린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정신을 살찌우는 이야기들을 잘 뽑아 곁에두는 능력만 꾸준하게 길러도 될 듯 하다. 그러니 이야기를 소중히 여기고, 진정성 있게 자기 생각을 구축하며 앵무새 없이 오롯한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를 기대하며 우리의 수장 역시 그러한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길 바랄 뿐이다.

자신 안에서 논쟁을 벌일 줄 아는, 타인의 옳고 그름을 분별 할 줄 알며, 책이 모든 걸 알려 줄 수는 없더라도 역지사지의 태도에 익숙하고 합의점을 가늠할 줄 아는 그런 대통령을 기다릴 뿐이다.

📖하니포터9기로 한겨레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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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새롭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 30년 정신과 전문의가 들려주는 5060 마음 성장
김녹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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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정신과 전문의가 들려주는 5060 마음성장 도서. 끝없는 자기계발을 위한 중년의 자기계발 인문서.

마흔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위한 심리학 도서를 먼저 읽어두어야 하는 나이지만 이 책의 제목이 눈에 띄었다. 새롭게 나이 들 수 있다는 말이 끌렸거든. 어느정도 살아봤다는 생각이 가득하고, 영위하고 있는 삶에 익숙하다보니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익히 해온 것에 대한 방식을 유지하는게 더 편한 나이가 되어버린 사람에게 정신차리라고 알려주는 느낌이 강했거든.

성장이라는 말보다는 노화의 카테고리에 속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면 독자들을 설득 하는 것에 능해야 할 것이다. 현명하게 나이 들고 싶은 5060 세대를 위한 책이니 다방면으로 우월한 사람들에게 나이 듦을 이해시키고 어떻게 나이가 들 것인지에 대한 방향성을 확실히 잡아줘야 겠지. 외골수가 되어가는 생각의 연속성을 끊어내고 부정적인 통념에 휩쓸리지 않고 보다 긍정적이고 의미 있게 나이들어가는 방식을 알려주는 법. 그걸 좀 미리 배워보고 싶어 골라봤다.


이 책은 50 이후 당면한 삶의 과제는 어떤 것이 있는지,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는 동안의 과정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지,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를 꾸준한 성장이라는 주제로 보고 이야길 하고 있었다. 속된말로 가는 거에는 순서 없다고 말하지만 심심찮게 말하는 100세 시대를 기준으로 잡아보면 50 이후는 후반전이다. 얻는 것보다는 잃어가는 소멸되는 것에 익숙해지는 시간이라는 것. 그에 맞는 단어를 찾아보면 상실, 쇠퇴로 이어지는 키워드를 벗어나 삶을 재구성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시점의 성장의 시작점이라 보도록 이 나이를 예쁘게 구현해 주고 있다.



책은 총 4장의 큰 틀을 담고 있다. 성장은 상실을 앞세우고 찾아온다 / 다시 푸는 관계의 방정식 / 지혜와 감정의 성장 / 죽음은 인생의 마지막 성장 이라는 문장으로 분류를 해 두었는데 아직 직면하지 않은 나이대라 그런지 상실을 앞세우고 찾아오는 삶의 단락을 보여주는 말들보다는 2장의 다시 푸는 관계의 방정식에 울컥하는 소제목들이 많았다.



역시나 세대를 막론하고 우리는 관계를 형성하며 살게된다. 유년기에는 부모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함께 사는 방식을 얻고, 처음 사회라는 곳으로 여겨지는 보육기관이 다음 수순이 되겠지. 그렇게 계주처럼 연속성을 띄고 있던 삶의 관계는 정점을 찍고 하락세를 보이게 된다. 그건 지금까지 살아온 관계 형성의 단절이 아니라 다시 시작되는 관계의 선긋기 과정이라 보였다. 나 자신과의 관계로 뻗어지는 것이 자녀로 인해 얻어지는 관계의 가지치기. 이건 어린 자식이 성장 후 다시 그들의 자식으로 향하는 일명 내리사랑이자 끝나지 않은 육아와 캥거루 가족의 삶. 성장이 멈춘 자녀와 성장을 시작한 다음세대의 손주와의 동반 성장의 겹쳐진 세대. 그리고 그 울타리 속에서 얻어지는 갈등과 고민. 드라마에서 보던 가족사가 내 이야기로 변해지며 매번 어려운 선택들. 나를 지켜주던 울타리가 내가 지켜야하는 품이 되어지고, 그 안에 빼곡해진 나의 분신들을 굽어살피며 건강하게 나이들어야 하는 과정은 아침드라마보다, 리얼리티 가족 다큐보다 더 다채롭고 절절해짐에 우리집 사정만은 아님에 공감을 그득하게 만든다.

태어나고 살아내며 죽어가는 과정은 당연한 생의 흐름이고 익히 아는 엔딩인데 늘 어렵다. 죽음을 지켜보는 것도 심장이 쪼그라들고 마음 한 구석이 바스라지는데 마지막을 앞두고 있는 당사자가 되었을 때 처연할지, 담담할지, 후련할지, 애쓴 삶에 대한 마침표로 담백하게 끝낼지도 저자는 성장의 계기라며 말해주고있다. 죽음은 피할 수 없지만 태도는 선택 된다 하니 마지막 문장을 준비하는 스스로에게도, 나로 인해 가지를 뻗어낸 그들에게도 좋은 삶과 좋은 죽음이었다고 기억되도록 할지도 미리 배워두고 미리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주고있었다.



마음은 어린아이 같은데 몸은 점점 노인의 꼴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 나이 들어가는 걸 자각하는 순간. 사준기 시절 거울 앞에서 변해가는 모습이 두근거리는 어른의 단계였다면 늙어 가는 것은 더 짙은 두려움으로 요동칠 것이다.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어쩔 수 없는 격한 감정.

적어도 이 마음을 스스로에게 만이라도 감추지 않고 끄집어 내어 잘 보듬어 주면 좋겠다. 괜찮게 나이들고 싶고, 새롭게 나이들며, 멋지게 늙어가는 방향을 미리 배워놓는 것. 잘 하고 있는 삶의 예습이라 생각해 보고싶어진다.

📖하니포터9기로서 한겨레출판을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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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윤성희 외 지음, 강미연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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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10대의 청소년의 성장과 우정의 시작부터 20대의 첫 출근, 70대에 시작하는 사랑까지. 살면서 마주할 법한 시작의 장면들을 다양한 연령의 눈으로 만나 볼 수 있도록 꾸려두었다.

독서 편식이 심한 사람인데 이러한 테마 소설을 읽음으로서 다양한 저자의 글을 만나 볼 수 있고, 내가 모르던 저자의 새로운 글맛을 알게되니 읽는 즐거움의 폭이 확실히 넓어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백한번째 이력서와 첫 번째 출근길_ 연봉도 많이 올랐다. 2,663만원. 그러면 이제 세후 201만원. 월세 50, 관리비 7, 공과금 10, 인터넷 1, 핸드폰 요금이랑 할부금 7, 남친은 없지만 혹시 모를 언젠가를 대비한 결혼자금용 적금 55, ....... 앞으로는 교통비 포함 하루 만천원씩 쓰는 게 목표였다.

이미 잘 아는 저자이며, 2020년에 읽었던 단편의 작품을 2024년의 끝자락에 읽으니 느낌이 묘했다. 그 때 똑 같은 문장에 밑줄을 긋게되고 다시 살펴보지만 다가오는 감정은 더욱 촘촘해졌음을 느낀다. 그래봐야 똑같은 30대의 내가 읽는 것인데 30대 초반이 떠올리던 그 시절 나와 30대 후반이 되어 그 시절을 겹쳐보는 나는 확실히 달라졌음을 실감한다.


더운 여름 땀으로 번질 블라우스가 걱정되 마시는 아이스아메리카노, 첫출근에 늦을까봐 올라탄 택시. 정직원이 되면서 받은 건강검진에서 질병이 발견되 퇴사 권고가 될까봐 건물 입구에서부터 드는 불필요한 걱정들. 앞선 기대들도 포함. 이제는 정규직이니 휴가도 갈 수 있겠다 싶어 내년 여름엔 해외에 있을 꿈만으로 가득한 발걸음. 또각또각 거리는 새로산 구두굽의 경쾌함. 한남동 빌딩숲 사이에 내가 일할 곳이 있고, 당당한 발걸음과 정장 차림의 나는 누가봐도 이 동네 회사의 직원이며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고있으니 그토록 부러워하던 직장인이 된 거 같아 으쓱해지는 어깨. 끝이 있긴 한가 싶은 이력서 작성의 순간. 내년엔 되겠지 하던 계약직의 하루살이 같은 시간들. ‘정.규.직’이라는 이 단어가 뭐가 그리 대단했던건지 사람을 참 비참하게도 때로는 몹시 커보이게 만드는 것 같아 씁쓸해진다. 돌아보면 내가 버텼던 2년의 계약직 시간들도 별반 다른게 없었으니 말이다. 계급이 없는 사회? 평등한 사회? 모두가 걱정없이 살 수 있는 나라? 글쎄, 지금 현생은 아닌거 같다. 다시 태어날지 어찌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생에는 글렀다 싶어.

-여기까지다 2020년 02월에 내가 기록 해 둔 글이다.

그 때의 나는 대학 졸업반 시절 기업 면접을 보러다니는, 아직 정장이 어색한 모습의 내가 보였고, 또 이야기의 후반부 즈음엔 20대 중반 계약직으로 눈칫밥 먹고 자발적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며 정규직들 사이에서 주눅들어있는 계약직의 내 모습을 글에 녹여내며 많이 울컥했던 때가 떠올랐다.

지금의 나는? 그러니까 지금의 나의 조건은 어떤가? 입사 10년이 훌쩍 넘어버렸고, 이젠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더 많고, 회사에서는 허리쯤 오는 위치로 레벨업 된 상태. 언니, 누나라는 말보단 과장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우고 있는 고인물이 되어버렸다. 여전히 막내이고 싶으나 책임을 져야하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이력서 파일 갱신 일자도 까마득 해 졌고, 증명사진을 찍어 둔 것도 입사를 위해 풀메이크업하며 공들여 찍은 날도 언제였는지 까마득할 지경이다. 언제 다시 저 입장이 될런지는 모를 일이겠지만 익숙해져버린 이 자리를 뺏기지 않으려 나는 또 내 위치에서 또 아등바등거릴게 빤해보인다. 누군가에겐 입사를 위한 종종거림이 시작이겠지만, 또 누군가에겐 아침마다 무탈히 출근을 하며 한뼘도 안 되는 내 명함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 출근하는 시작이 있을 것이다. 오늘도 아침 해가 뜨기 전 푸르스름한 새벽 스타터를 딛고 시작한 내 하루의 시작이 부디 무사히 마무리되어 결승점에 골인하길 바라게 될 뿐이다.(결승점=퇴근 후 집앞에 무사히 주차하며 시동을 끌 수 있는 그 즈음)




📖근육의 모양_ 나는 그러니까 어디에 있건 존중을 받고 싶었던 것이라고, 언제나 어디에서나 다른 사람이 귀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고... ... 그건 직업을 바꾼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내가 상대를 대하는 정중한 마음 만큼 나 또한 그렇게 대접받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데, 생각보다 돌아오는 마음은 성에 차지 않는다. 융숭한 대접을 기대하지도 않지만 어딘가 모자라고 또 어느 지점에서는 하대하다 싶을 정도의 짤막한 끝맺음의 태도는 매번 내가 하대받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회사를 다니면서 이른바 '넵넵 봇'이 되기도 하고, 메일을 발송 할 때 '반갑습니다'와 '감사합니다'를 반복하는 나를 보면 뭐가 그리 반가워서 인사를 건네고, 뭐가 그리 감사해서 이 문장을 꼬리표처럼 줄줄 엮어사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진짜 반가운거 맞아? 정말 감사한게 있긴 한가? 를 떠올려 보지만 이러한 문구를 적고 있는 내 표정은 항상 (ㆆ_ㆆ) 딱 요정도. 좋고 싫음도 없는 좌표 0의 상태의 입꼬리와 눈꼬리를 갖고있다.

매번 그러는 꼴이 싫어 퇴사를 하고 다른 직군으로 발을 들여놓더라도 상황만 달라질 뿐 또 비슷한 갈래의 고민을 하게되고 타인의 반응을 기대하게되는건 어쩔 수 없음을 느낀다. 그저 나이가 드는 만큼 상대에게서 얻어지는 반응에 인이 박혀 굳은살이 생겨 뜨뜨 미지근한 반응이 오더라도 그걸 초월 할 만큼 두터운 마음을 가져 덜 찔리고 덜 베이는 두둑한 마음을 갖길 바랄 뿐이다.


📖어제의 일들_ 나는 그가 무엇을 미안하다고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오랜만에 만나면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 유행인지 약속인지, 보는 사람마다 미안하다고, 다 가지 때문에 내가 이 지경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흔하디흔한 말이 별로 감동적이지 않았다.

학창시절 선생과의 사이를 오해한 친구들의 따돌림, 그리고 선생의 외면으로 옥상에서 뛰어내린 주인공. 그 때 다친 후로 그 일들을 기억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고 간병을 해주었던 여인의 배려로(=엄마라고 부르게됨) 주차장 관리를 하며 그림책의 삽화가로 살게된다. 주인공 상현에게 동창인 율희가 찾아와 과거의 일들을 끄집어내며 그 때 있었던 일을 기억하게 만든다.

상현의 상황만 놓고 보면 극단적인 결정과 그 선택으로 얻어진 정신적,육체적 장애는 타인이 보기에 안타까울 수 밖에 없는 조건이다. 하지만 상현자체를 놓고 보면 그녀는 그렇게 슬프거나 비관적으로 살아오지 않았던 장면이 더러 있다.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부분을 도려내어 살았기에 그에 해당한 정신적 육체적 값을 지불 한 듯 거기서 더 나아간 비극은 아니었다는 생각도 하게된다. 안타까움과 동시에 차라리 잊고 살며 어른 율희를 만나기 전이 더 나은건 아니었을까를 생각이 들었다. 잔잔히 살던 상현의 머리를 헤집는 율희가 나로서는 반갑지 않았거든.

그제서야 미안하다고 말하고 사과를 건네고 그 한마디를 통해 자신은 미뤄뒀던 사죄를 한 것에 두다리 뻗고 잘 수 있을 후련함을 만드는 것. 사과받는 이는 모르겠고 오로지 제 마음 하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식의 몸만 자란 동창이란 자들의 말들. 시간이 흐르는 동안 께름직한 과거에 묶여있다 후련히 사과하고 가볍게 시작하고픈 마음이 나는 달갑지 않다. 상현은 그들이 할퀴고 갔던 이후의 삶을 어렵게 시작했고 제 속도로 더디지만 잘 나아가고 있었다. 잊고 살던 일련의 상황을 다시 다 들여다 보았고, 이젠 모를 수 없는 과거를 쥔 채 다시 마음을 다 잡아야 한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며 깊은 숨을 몰아 쉰 후 시작해야하는 무거운 스타트. 이것 마저 상현의 몫이지만 동창이라는 그들도 일정부분 공동부담하며 계속 쥐고 살아줬음 싶은 명치 언저리의 무거운 돌이길 바라게 된다.




📖어제의 일들_ 모든 게 화무실일홍인 거라. 후회하고 원망하고 애끓이면 뭐 해. 좋은 날도 더러운 날도 다 지나가. 어차피 관 뚜껑 닫고 들어가면 다 똑같아. 그게 얼마나 다행이냐.

나는 위에 언급 한 듯 동창이라는 자들이 이 무거운 마음을 공동부담하고 평생 떠앉고 죄책감 가득 안고 살길 바라는 심보인데, 어른 상현이 된 시점에 엄마가 되어준 그녀가 한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그리 미워하고 그리 원망하며 나를 찌르듯 상대를 찔러가며 서로 미움을 쥐고 살면 뭐하겠냐는 듯한 말에 뒷통수를 쎄게 후려맞은 기분을 갖는다. '미워해서 뭐하냐, 달라질 건 없는데' 라는 뉘앙스로 쟤는 저러고 살겠지, 너는 너대로 살아라 싶은 마음으로 해주신 말씀에 타인을 탓하고 원망하며 쏘아대는 마음을 단박에 잘라버리게 만드셨다. 상현이 어머니가 해준 말을 밥 한숟가락과 함께 먹어 삼키는 것 처럼 나도 한입 가득 넣고 곱씹으며 꿀떡 삼키려 한다. 상현이 말하듯 돌이킬 수도 없고, 명백히 지나가 버렸고, 기세등등한 위력은 잃은지 오래니 말이다. 상현의 어머니를 통해 나도 못된 심보를 먹어 없앨 수 있어 다행이다.



단편의 시작들은 '마법사들'을 통해 10대 시절의 순간부터 차곡차곡 연령을 높여가며 이야기를 얹어주었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시작'의 기회를 만나지만 그럴 때마다 자신있게 뛰어들지 못하는 주저하는 마음, 결과와 과정에 대한 불안함,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대한 두려움을 다양한 예시처럼 들려주며 이럴수도 있고, 저럴수도 있는 삶을 들려주었다. 모든 결정에는 용기가 있어야 했고, 모든 결정에는 곱절의 고민을 헤치고 나와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생의 진행형을 확인했다. '시작'이 반이라 하지만 '시작' 조차 두려운게 사실이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아무거라도 하는 것'이 덜 한 후회와 덜 한 아쉬움을 남긴다는 걸 우린 실감하며 산다.

그러니 매 순간 시작하며 매 순간 과절하고 또 그만큼 고뇌할 테지만 그 때마다 안하는 것보다 나았음에 안도하며 일단 해보길 권해본다. 그렇게 해도 세상은 두쪽이 날 만큼 무너지지도 않았고, 나름 괜찮게 살아가는거 같으니 말이다.


📖창비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기록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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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임지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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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표지가 몇 해 전 나를 되돌아 보게 만들었다. 한때 노잼의 시간이라고 말 했던 그 즈음이다. 명랑만화처럼 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우울의 늪에 빠져 사는 사람도 아니었는데 그 때엔 모든게 그저 그랬고 또 사는 것 마저도 그저 그런 날의 연속이었다. 너무 잘하고 싶었고, 너무 열심히 살고 싶었기에 그랬던 부작용처럼 느껴졌다. 제 성질에 못 이겨 차라리 미워하고 말자 싶어하며 비뚤어진 마음으로 꺾어두는 못된 진심.

그래서였을까? 이 책 제목에 홀려서, 이 표지의 뚱하고 세상 무관심의 표정에 끌려서 손에 쥐게 되었다.

누구나 한번쯤 특별한 이유 없이 무언가를 미워해본 경험. 그 '싫음'에 대한 감정은 어떤 마음에서 뻗어진 결과물일까를 생각해본다. 누군가에겐 숨기고픈 감정일테고, 누군가에겐 차라리 들켰으면 좋겠다 싶어하며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얽힌 감정. 거기에는 어떤 선망이나 외로움, 부끄러움 같은 것들이 들어있다는 걸 저자가 알려주는 글이다. 한편으론 자기가 가진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을 돋보이게 하려는, 서툰 사랑의 마음이다.

슬픔과 기쁨과 외로움. 거기에 타인이 알아주길 바라는 이른바 냉탕도 온탕도 아닌 혼탕과 같은 삶에 깊이 몸을 담그며, 미움과 사랑 사이의 낙차를 발견하는 과정이 있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마음. 입으로 내 뱉게되는 말들과 속으로 담아놓고 차마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 이는 날이 서 있는 단어의 조합들이라 잘못 꺼내어두면 서로 다치고 마음이 쓰릴까봐 이 '싫음'에 대한건 나의 세상 속에만 놓아두게 되는 과정을 거친다.



📖작가의 말_ 무언가 이유 없이 싫어지는 날이면 그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대체로 거기에 있는 건 내가 가진 진실이다. 내가 좋은 것의 집합이 아니라는 진실, 때로는 너무 중요한 것이 생김으로써 나쁜 마음이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진실, 나쁜 마음은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만큼이나 자연스럽다는 진실, 그럼에도 사람은 미움이 스스로에게 향하는 걸 두려워한다는 진실.

세상이든 인간의 본성이든 양가적인 것이라 했다. 같은 상황이라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헤아리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는 각자가 가진 삶의 방향성과도 일치할 것이고, 본성과도 연관되어지겠지? 과한 애정이 매번 이런 미움의 싹도 틔우고 애증의 잔소리도 스물스물 올라옴을 느낀다. 하지만 입밖으로 꺼냄과 동시에 이 말을 하는 세치 혀도 미워지고, 이 말을 듣는 상대의 표정을 보는 내가 빨리 지칠게 뻔하고. 결국 상대보다 내가 곱절로 지칠게 빤해보인다. 그래도 이 마음들을 마냥 묵힐 수 없으니 글을 통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며 꾹꾹 눌러담았던 울컥한 마음을 주르르 꺼내어 보는 것에 동참해본다.



📖중인배들_ 정말이지 사람은 왜 그런 걸까. 타인으로 인해 캄캄해진다는 건, 욕망이 시커멓게 비친다는 건 왜 이렇게 사람을 우습게 만들까?

SNS를 하다보면 이러한 마음이 생긴다. 나를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또 어떠한 면에선 나의 액션에 반응해주길 바라는 마음. 이러한 티나는 움직임에 상대는 무던하게 반응 할 때 과한 기대는 미움이 되기도 한다. 어디 이러한 감정으로 인기척을 내는 이들이 한둘이겠냐만 그 와중에 나는 알아주겠지 하는 그런 기대 심리. 때론 그게 너무 헛짓거리 같아서 뭐하는 짓인가 싶은 마음에 내 존재가 우스워지기도 하고, 주목받지 못하는 인물이라는 생각도 들어 한없이 쭈그러드는 옹졸함도 생긴다. 주체가 나여야 하는 삶은데 때때로 이렇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타인의 의중에 좋았다 미웠다를 반복하게 되는 자신을 들여다 보면 참 '너도 너다'라며 혀를 차게 된다. 그냥 그 모습의 내가 싫은 거다.


📖한 뼘의 자리_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부로 대해질까봐 곤두서 있던 나머지 거의 모든 날 모든 순간 나 자신을 보살피는 데 줄곧 어려움을 겪어왔다.

아마 비슷한 방식으로 내 부모는 나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로 인해 내가 부모보다 조금 더 나은 삶으로 왔다는 것. 그런 게 나를 곤두서게 하고 고지식하게 하고 상처받게 한다. 내가 서로를 위하느라 자신을 외면하는 법부터 익혀온 한 가족의 산물이라는 것 말이다.

가장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애증의 깊이는 가족이다. 엄마를 향한 마음과 동거인을 대하는 마음. 그 중 엄마를 향한 이른바 개딸의 진심은 더욱 진하고 깊다.(욱하는 마음과 어떻게든 잘 해주고픈 마음은 선명하고 진하다. 그래서 더 어찌 할 수 없는 감정의 덩어리다.) 멀찍이 내다보면 나와 꼭 닮은 사람들이자 나의 원류인 그들. 당신들이 당신을 돌보지 않아서 내가 더 울컥하고 과하게 무언갈 하게 만드는 사람들. 그건 유년기에 받았던 마음이 가세가 기울만큼 차고 넘치게 받은 사랑으로 인해 내가 값아야 할 빚처럼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금전적으로는 혜택을 받지 못했으나 심적으로는 우울함이나 불안함 없이 사랑 많이 받고 자란게 이렇게 연결되나 싶어지기도 한다. 내 부모가 당신들을 돌보지 않고 오롯이 자기 새끼만을 챙겼던 걸 어른이 되어 더 뚜렷하게 받아들이게 되니 덜 해도 된다고, 덜 해도 아무도 손가락질 하지 않는다고 일러주고픈 과거의 기억이기도 하다.



📖후회와 살기_ 하지만 사는 일엔 후회가 있다. ... ... 어느 때보다 온갖 데 열심인 나의 지금은 후회에서 온 것이니까. 동생의 후회란, 실은 동생이 더 입체적인 삶을 꿈꾼다는 증거이니까. 그 꿈이란 꾸는 것, 꿔오는 것, 빌려오는 것이라서. 나는 동생에게 빌려줄 수 있는 최대한을 빌려 주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저자에겐 가족 중 가장 아픈 손가락이 동생으로 보여졌다. '죽고 싶음'에 매번 끌려가는 저 아이를 보면 낯선 전화에 흠칫하게되고, 혼자 두었을 때의 불안감은 저자 본인이 더 크게 겪었을 감정이다. 강한 삶의 의지가 때론 과한 죽고 싶음으로 결부된다. 그게 동생이 삶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그런 아이가 호두(반려견)를 데리가 왔다는 것. 저 조막만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몸집도 능력도 더 큰 동생이 부지런히 몸을 놀려야 한다는 것. 그러니 삶을 살아야 할 동기가 하나 더 생긴 것의 시작을 담아둔 단편이다.

자신의 병식을 인식하고 자기만 아직 무엇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구에게도 걱정을 끼치지 않는 독립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것에 감사하게 되는 과정이다. 의지가 없는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호두라는 생명을 빌려 동생에게도 호두만큼의 뜨끈한 삶의 온도가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된다.



📖바람이 분다_ 내가 할 수 있는 게 결코 무의미하지는 않겠지만, 살아가는 곳이 바뀌지 않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그칠 것이다.

지하철 구석에 있던 맹인 할아버지. 복잡한 승강장을 올라 갈 때 주저하는 저자 대신 비슷한 주름의 모양을 한 할아버지가 자신의 팔을 넘겨주며 잡고 같이 올라가자는 나란한 발걸음. 병원에서 느리고 불안 한 걸음을 마주 할 때 잠깐의 시간을 내어 그 사람의 동행자가 되어 주는 찰나. 세상은 변하고 인간은 나이를 먹고 매번 배우고 깨우치는 삶의 방식이라 하지만 느려지는 걸음만큼 뒤쳐지는 삶의 대응법. 젊은이의 무던한 손짓에도 늙은이는 감사하고 또 고마움이 가득 차 오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그치겠다만 그 능력이라도 있는 것에 감사해지는 순간이 분명 존재하니 소용없는 헛된 마음과 행동은 아님을 느낀다.


시니컬한 표정의 표지 답게 세상이 미운 구석도 많지만 때론 좋아하는 것들도 많은 사람이다. 이 책을 추천한 오은 시인의 말처럼, '곡절 없이 좋아하는 것을 몇 곱절 더 소중하게 만들어주는 과정'을 통해 이 사람의 미움은 넘치는 애정이 눌러붙은 잔상이 될 수 있으니 마냥 미워보이지 않음을 느낀다. 미움도 애정이 있어야 가능한 마음이고 이 양가 감정은 모두가 겪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이 마땅한 마음을 통해 나의 불완전한 마음을 들여다 볼 용기를 얻어간다.


📖하니포터9기로 한겨레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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