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급류 ㅣ 오늘의 젊은 작가 40
정대건 지음 / 민음사 / 2022년 12월
평점 :

사랑은 급류와 같다.
왈칵 밀려와 어찌 하지 못할 정도로 흠뻑 젖어들기도하고, 또 한 편으로는 휘몰아치며 물이 밀려 나가 남겨진 자의 공허함도 느끼게되는 물의 흐름은 사랑이 변하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게 사랑이었고, 이 책의 주인공인 도담과 해솔이 느끼는 감정으로 보였다. 헌데 이 책 표지가 주는 깊은 무드에 비해 내가 보는 이들의 사랑은 급류에 휘말려 매번 자맥질하느라 버거운 존재로 느껴졌다. 어떤 급류가 휘감더라도 우리는 사랑이며, 계속 사랑하게 될 수 밖에 없는 존재라 말하려하는 두 남녀. 헤어지고 만나고를 반복하면서 사랑에 빠진 이유도, 헤어지는 이유도, 다시 만나게되며 서로를 찾게되는 이유마저 결국 너라서 그런 거라는 걸 보며 그게 된다고?의 물음을 가지게 만든다. 잔잔하고 고요한 사랑을 지향하며, 똑같은 이유로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는 피곤함을 주지만 그로인해 더 애틋하다는 마음에 완벽한 이해를 하긴 어려웠다. 결국, 그러니까 또 언젠 그 이유로 헤어지지 않을까를 예견하게되는 현실주의자 독자가 보는 이들의 사랑.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엔딩은 결국 이들은 떨어지기보다 곁에 있으며 모든 급류를 온전히 떠앉더라도 이 사랑을 지키겠다는 글의 뉘앙스를 느끼게 된다.

아픈 엄마, 소방관 아버지 그리고 딸 도담. 소방관으로서 인명구조에 힘쓰는 아버지를 존경한다. 아버지와 함께 하는 순간을 사랑하는 도담. 그에게 수영도 배우며 엄마가 채워주지 못하는 사랑을 아버지를 통해 가득 얻어 사는 존재. 어머니와 함께 진평으로 온 해솔. 편모에게만 받던 사랑에서 아버지라는 존재가 주는 큰 마음을 도담의 아버지를 통해 어떤 마음인지를 알아가며 그와 동시에 그의 딸인 도담에게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얻게된다. 도담과 해솔에서 그치면 좋았으련만, 도담의 아버지도 해솔의 어머니도 같은 마음을 받으며 감정을 키워간다. 그게 이 이야기 비극의 정점이다. 가족의 불륜을 목격한 아이들. 그들이 불어난 계곡물의 급류에 휩쓸려 사망을 했고, 목격한 각자의 아이들은 자신의 사랑이 결국 불륜의 끈으로 연결되어있음에 모든 이들의 손가락질을 받았고,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며 애증의 양면을 드러내게된다. 좋아하지만 미워할 수 밖에 없어 자신을 부정하는 과정. 하지만 자신들이 먼저 좋아했다며 그 마음마저 부정할 수 없다는 듯 서로를 찾게된다. 서로의 얼굴을 보면 과거가 떠올라 자신과 상대를 상처내는 과정의 반복. 이 감정 변화는 청소년에서 성인이되고, 성인이 된 후 시간이 흘러도 헤어나오지 못하며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던 타인마저 급류속으로 끌어당겨 자폭하게만든다. 결국 저 둘이 사랑해야만 끝이 나는 이 이야기의 끝. 자신의 상처마저도 보듬어주려했고 기다려주었던 이들의 마음은 모르겠고, 그냥 둘이 붙어있어야만 이 이야기가 마무리된다는 좀 많이 이기적이었던 사랑의 투정.
📖 "우린 애인이 아니라 채무 관계 같아. 서로 빚진 사람들 같다고."
숨겨야 하는 마음이고, 서로의 눈치를 봐야만 하는 마음의 전달 과정. 해솔에게 못되게 굴어도 해솔은 화를 내지 못한다며 단정짓는다. 스스로를 죄인이라 생각하니까 날을 세운 말들로 해솔을 난도질 하지만 해솔은 반박히지 못한다. 혹여라도 같이 날을 세우면 도담이 찔려 도망갈까봐 삼키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애인은 아니다. 사랑이라는 마음보다 미안함이 더 커져버린 관계. 그래서 어찌하든 비유맞추는 것에 시선이 얹어진 사이. 장기전은 안될거 같다. 한명이 지치든 한명이 열폭하든 결국 더 크게 어긋날 마음으로밖에 보여지지 않았다.

📖 다정함에 끌리는 마음을 애써 눌렀다. 이대로도 좋다고 생각했다.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에서 서로를 의지한다는 건 함께 가라앉는 것 같았기에. 도담은 더 이상 먼저 손 내미는 사람이 아니었다.
도담은 상대가 호감을 갖고 다가오면 방어기제를 세워 마음의 선긋기를 야멸차게 해버린다. 저도 다정함에 끌렸고, 외로움에 마음 둘 곳이 없어 붕 뜬 상태였음에도 뒷일에 대한 걱정과 그 너머의 관계형성에 겁내며 이대로도 좋다는 듯 마음의 담을 세웠다. 자신은 들락거리지만 상대는 자신에게 못 넘어오도록. 나는 이기적인 사랑이라고 밖에 못 하겠다. 그게 해솔이 느끼는 도담만의 매력이겠다만 멀찍이 물러나 도담, 승주, 해솔, 선화를 보면 배워놓은 사랑의 끝이 그 뿐이고, 해본 사랑의 전달력이 거기까지였던 도담이라 할 지라도 이건 세상에 자신만 불쌍하고 자신만 사랑받지 못한다며 생떼부리는 꼴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 추억 때문이다. 좋았던 날들에 대한 반가움과 지나가 버린 한때에 대한 슬픔일 수도. 이성에 대한 열정? 호르몬 작용은 진작 끝났다. 소식이 궁금하고 그리워하는 마음. 걱정하고 애타게 보고 싶은 마음. 꽉 끌어안고 안기고 싶은 마음. 그런 때도 분명히 있었다. 마음의 불씨는 전부 사그라져 버렸다. 완전한 전소. 남은 거라고는 그을린 시커먼 자국과 탄내 가득한 폐허.
그런 줄 알았다. 해솔을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이게 첫사랑에 대한 마음의 정의겠지? 첫사랑은 대부분 좋았던 시절에서 멈췄고, 그래서 더 애틋했으며, 이뤄지지 못한 쉼표같으니 남은 이야기의 마침표를 위해 한없이 미화되어가는 과정의 수순을 보인다.그렇다보니 자연스레 도담도 해솔이 그리웠으리라. 자신에게 한 없이 다정했고, 잘 보듬어주는 아빠와 연인의 몫까지 두루 해준 존재. 다들 각자의 마음 한 구석에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있겠지만 미완성으로 두는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소설은 다르지. 도담은 또 그렇게 물어뜯고 할퀴어댄 존재가 또 사무치게 그리워 해솔을 만나게된다. 이걸 사랑의 완성이라 봐야할까 사랑의 이기적인 방식이라 봐야 할까. 그건 독자의 몫이겠지만 해솔의 마음이야 어찌되었든 도담만 놓고 보면 사랑을 갈구하지만 제 입맛에 맞는 사랑을 얻기 까지의 과정이 그리 예뻐보이진 않았다.
📖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이 하는 사랑처럼 한 사람을 세상에서 가장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 이건 한때 끓고 식는 종류의 마음이 아니다. 남들이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다. 도담은 그 어느 때보다 맑은 정신으로 다짐했다. 영원히 살 것처럼이 아니라.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해솔을 사랑하겠다고. 두 사람에게 어떤 고난이 닥쳐도 해솔과 다시는 헤어지지 않겠다고.
도담은 해솔에 대한 마음은 연애 감정의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할머니의 사랑과 비슷하다며 그 영역을 확대시켰다. 그러한 큰 마음이라며 자신의 허한 감정을 오랜시간 달래주고 기다려준 승주에게 작별을 고한다. 감정의 극과 극을 다 맛본 사랑의 관계. 그래서 어떤 고난이 닥쳐도 해볼만한 싸움이라는듯 다시는 해솔과 헤어지지 않겠다며 지금의 사랑에게 말하는 모습을 보면 솔직하다못해 자신은 쿨한듯 깔끔한 안녕을 부탁한다. 어느 사랑에 쿨함과 담백함이 존재했던가? 그거야 오롯이 그러한 통보를 하는 자가 느끼는 환상같은 것이지. 자신은 쿨해보일거라며, 구질구질 하지 않겠다며 깔끔한 안녕을 했다 생각하지. 지금껏 야금야금 받아먹기만 했던 마음이니 훅 하고 뱉어버리면 그만이다 싶은 가벼운 사랑처럼 말하는 모습에 도담의 방식이 미워진다.(아니 계속 미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 그때 생각했어. 누군가 죽기 전에 떠오르는 사람을 향해 느끼는 감정. 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사랑이란 말을 발명한 것 같다고. 그 사람에게 한 단어로 할 수 있는 말을 위해 사랑한다는 말을 만든 것 같다고.
그때 깨달았어. 사랑한다는 말은 과거형은 힘이 없고 언제나 현재형이어야 한다는 걸.
몇번의 고난이 반복된 사랑이다. 각자의 부모로 인해 어린시절 꺾여버린 마음. 마음을 외면한 채 성인으로 살다가 마주한 둘.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다가도 보고있으면 각자의 부모가 떠올라 마냥 행복하지 않았던 감정. 좋지만 마냥 좋을 수 없는 서사. 그래서 더 긁어내고 상처를 만들어 헤어진다. 또 몇년이 흘러 우연히 소식을 알게되고 확고한 마음이라며 영영 떨어질 일 없을 거라는 듯 애틋한 마음으로 모든 이유를 사랑이라는 말로 덮어버린다. 언제나 그리고 꾸준히, 앞으로도 사랑한다는 말로 상대를 예쁘게 보듬을거라는 둘의 마음.
나는 어지간하면 이야기 속 사랑을 응원하는 편이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처럼 언제나 사랑이 무사하길 바라는 사람이라 그 마음들이 변치 않고 진득하길 바라는 사랑 평온주의자로서 도담과 해솔은 이후로도 헤어지지 않고 잘 붙어 있을까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같은 이유로 몇번이고 돌아선 사람들인데,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거라는 믿음이 있을까? 운명적 사랑이라 했다. 헌데 생각해보면 사랑이라는 감정의 교류에서 그들의 부모나 자식들인 도담과 해솔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내가 있던 도담의 부. 승주가 있음에도 해솔에게 갈 거라는 말로 사랑을 끝맺으려 하는 도담. 결혼의 유무를 떠나서 자신들은 진지하게 운명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저 똑같은 환승법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풋 사랑에서 마무리가 될 것인지, 결국 부모를 닮아버린 사랑의 환승으로 저들만 애틋한 로맨스라 봐야 될 것인지는 각자가 추구하는 사랑의 우선순위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 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