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임지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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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표지가 몇 해 전 나를 되돌아 보게 만들었다. 한때 노잼의 시간이라고 말 했던 그 즈음이다. 명랑만화처럼 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우울의 늪에 빠져 사는 사람도 아니었는데 그 때엔 모든게 그저 그랬고 또 사는 것 마저도 그저 그런 날의 연속이었다. 너무 잘하고 싶었고, 너무 열심히 살고 싶었기에 그랬던 부작용처럼 느껴졌다. 제 성질에 못 이겨 차라리 미워하고 말자 싶어하며 비뚤어진 마음으로 꺾어두는 못된 진심.

그래서였을까? 이 책 제목에 홀려서, 이 표지의 뚱하고 세상 무관심의 표정에 끌려서 손에 쥐게 되었다.

누구나 한번쯤 특별한 이유 없이 무언가를 미워해본 경험. 그 '싫음'에 대한 감정은 어떤 마음에서 뻗어진 결과물일까를 생각해본다. 누군가에겐 숨기고픈 감정일테고, 누군가에겐 차라리 들켰으면 좋겠다 싶어하며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얽힌 감정. 거기에는 어떤 선망이나 외로움, 부끄러움 같은 것들이 들어있다는 걸 저자가 알려주는 글이다. 한편으론 자기가 가진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을 돋보이게 하려는, 서툰 사랑의 마음이다.

슬픔과 기쁨과 외로움. 거기에 타인이 알아주길 바라는 이른바 냉탕도 온탕도 아닌 혼탕과 같은 삶에 깊이 몸을 담그며, 미움과 사랑 사이의 낙차를 발견하는 과정이 있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마음. 입으로 내 뱉게되는 말들과 속으로 담아놓고 차마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 이는 날이 서 있는 단어의 조합들이라 잘못 꺼내어두면 서로 다치고 마음이 쓰릴까봐 이 '싫음'에 대한건 나의 세상 속에만 놓아두게 되는 과정을 거친다.



📖작가의 말_ 무언가 이유 없이 싫어지는 날이면 그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대체로 거기에 있는 건 내가 가진 진실이다. 내가 좋은 것의 집합이 아니라는 진실, 때로는 너무 중요한 것이 생김으로써 나쁜 마음이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진실, 나쁜 마음은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만큼이나 자연스럽다는 진실, 그럼에도 사람은 미움이 스스로에게 향하는 걸 두려워한다는 진실.

세상이든 인간의 본성이든 양가적인 것이라 했다. 같은 상황이라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헤아리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는 각자가 가진 삶의 방향성과도 일치할 것이고, 본성과도 연관되어지겠지? 과한 애정이 매번 이런 미움의 싹도 틔우고 애증의 잔소리도 스물스물 올라옴을 느낀다. 하지만 입밖으로 꺼냄과 동시에 이 말을 하는 세치 혀도 미워지고, 이 말을 듣는 상대의 표정을 보는 내가 빨리 지칠게 뻔하고. 결국 상대보다 내가 곱절로 지칠게 빤해보인다. 그래도 이 마음들을 마냥 묵힐 수 없으니 글을 통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며 꾹꾹 눌러담았던 울컥한 마음을 주르르 꺼내어 보는 것에 동참해본다.



📖중인배들_ 정말이지 사람은 왜 그런 걸까. 타인으로 인해 캄캄해진다는 건, 욕망이 시커멓게 비친다는 건 왜 이렇게 사람을 우습게 만들까?

SNS를 하다보면 이러한 마음이 생긴다. 나를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또 어떠한 면에선 나의 액션에 반응해주길 바라는 마음. 이러한 티나는 움직임에 상대는 무던하게 반응 할 때 과한 기대는 미움이 되기도 한다. 어디 이러한 감정으로 인기척을 내는 이들이 한둘이겠냐만 그 와중에 나는 알아주겠지 하는 그런 기대 심리. 때론 그게 너무 헛짓거리 같아서 뭐하는 짓인가 싶은 마음에 내 존재가 우스워지기도 하고, 주목받지 못하는 인물이라는 생각도 들어 한없이 쭈그러드는 옹졸함도 생긴다. 주체가 나여야 하는 삶은데 때때로 이렇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타인의 의중에 좋았다 미웠다를 반복하게 되는 자신을 들여다 보면 참 '너도 너다'라며 혀를 차게 된다. 그냥 그 모습의 내가 싫은 거다.


📖한 뼘의 자리_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부로 대해질까봐 곤두서 있던 나머지 거의 모든 날 모든 순간 나 자신을 보살피는 데 줄곧 어려움을 겪어왔다.

아마 비슷한 방식으로 내 부모는 나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로 인해 내가 부모보다 조금 더 나은 삶으로 왔다는 것. 그런 게 나를 곤두서게 하고 고지식하게 하고 상처받게 한다. 내가 서로를 위하느라 자신을 외면하는 법부터 익혀온 한 가족의 산물이라는 것 말이다.

가장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애증의 깊이는 가족이다. 엄마를 향한 마음과 동거인을 대하는 마음. 그 중 엄마를 향한 이른바 개딸의 진심은 더욱 진하고 깊다.(욱하는 마음과 어떻게든 잘 해주고픈 마음은 선명하고 진하다. 그래서 더 어찌 할 수 없는 감정의 덩어리다.) 멀찍이 내다보면 나와 꼭 닮은 사람들이자 나의 원류인 그들. 당신들이 당신을 돌보지 않아서 내가 더 울컥하고 과하게 무언갈 하게 만드는 사람들. 그건 유년기에 받았던 마음이 가세가 기울만큼 차고 넘치게 받은 사랑으로 인해 내가 값아야 할 빚처럼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금전적으로는 혜택을 받지 못했으나 심적으로는 우울함이나 불안함 없이 사랑 많이 받고 자란게 이렇게 연결되나 싶어지기도 한다. 내 부모가 당신들을 돌보지 않고 오롯이 자기 새끼만을 챙겼던 걸 어른이 되어 더 뚜렷하게 받아들이게 되니 덜 해도 된다고, 덜 해도 아무도 손가락질 하지 않는다고 일러주고픈 과거의 기억이기도 하다.



📖후회와 살기_ 하지만 사는 일엔 후회가 있다. ... ... 어느 때보다 온갖 데 열심인 나의 지금은 후회에서 온 것이니까. 동생의 후회란, 실은 동생이 더 입체적인 삶을 꿈꾼다는 증거이니까. 그 꿈이란 꾸는 것, 꿔오는 것, 빌려오는 것이라서. 나는 동생에게 빌려줄 수 있는 최대한을 빌려 주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저자에겐 가족 중 가장 아픈 손가락이 동생으로 보여졌다. '죽고 싶음'에 매번 끌려가는 저 아이를 보면 낯선 전화에 흠칫하게되고, 혼자 두었을 때의 불안감은 저자 본인이 더 크게 겪었을 감정이다. 강한 삶의 의지가 때론 과한 죽고 싶음으로 결부된다. 그게 동생이 삶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그런 아이가 호두(반려견)를 데리가 왔다는 것. 저 조막만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몸집도 능력도 더 큰 동생이 부지런히 몸을 놀려야 한다는 것. 그러니 삶을 살아야 할 동기가 하나 더 생긴 것의 시작을 담아둔 단편이다.

자신의 병식을 인식하고 자기만 아직 무엇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구에게도 걱정을 끼치지 않는 독립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것에 감사하게 되는 과정이다. 의지가 없는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호두라는 생명을 빌려 동생에게도 호두만큼의 뜨끈한 삶의 온도가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된다.



📖바람이 분다_ 내가 할 수 있는 게 결코 무의미하지는 않겠지만, 살아가는 곳이 바뀌지 않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그칠 것이다.

지하철 구석에 있던 맹인 할아버지. 복잡한 승강장을 올라 갈 때 주저하는 저자 대신 비슷한 주름의 모양을 한 할아버지가 자신의 팔을 넘겨주며 잡고 같이 올라가자는 나란한 발걸음. 병원에서 느리고 불안 한 걸음을 마주 할 때 잠깐의 시간을 내어 그 사람의 동행자가 되어 주는 찰나. 세상은 변하고 인간은 나이를 먹고 매번 배우고 깨우치는 삶의 방식이라 하지만 느려지는 걸음만큼 뒤쳐지는 삶의 대응법. 젊은이의 무던한 손짓에도 늙은이는 감사하고 또 고마움이 가득 차 오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그치겠다만 그 능력이라도 있는 것에 감사해지는 순간이 분명 존재하니 소용없는 헛된 마음과 행동은 아님을 느낀다.


시니컬한 표정의 표지 답게 세상이 미운 구석도 많지만 때론 좋아하는 것들도 많은 사람이다. 이 책을 추천한 오은 시인의 말처럼, '곡절 없이 좋아하는 것을 몇 곱절 더 소중하게 만들어주는 과정'을 통해 이 사람의 미움은 넘치는 애정이 눌러붙은 잔상이 될 수 있으니 마냥 미워보이지 않음을 느낀다. 미움도 애정이 있어야 가능한 마음이고 이 양가 감정은 모두가 겪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이 마땅한 마음을 통해 나의 불완전한 마음을 들여다 볼 용기를 얻어간다.


📖하니포터9기로 한겨레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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