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윤성희 외 지음, 강미연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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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10대의 청소년의 성장과 우정의 시작부터 20대의 첫 출근, 70대에 시작하는 사랑까지. 살면서 마주할 법한 시작의 장면들을 다양한 연령의 눈으로 만나 볼 수 있도록 꾸려두었다.

독서 편식이 심한 사람인데 이러한 테마 소설을 읽음으로서 다양한 저자의 글을 만나 볼 수 있고, 내가 모르던 저자의 새로운 글맛을 알게되니 읽는 즐거움의 폭이 확실히 넓어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백한번째 이력서와 첫 번째 출근길_ 연봉도 많이 올랐다. 2,663만원. 그러면 이제 세후 201만원. 월세 50, 관리비 7, 공과금 10, 인터넷 1, 핸드폰 요금이랑 할부금 7, 남친은 없지만 혹시 모를 언젠가를 대비한 결혼자금용 적금 55, ....... 앞으로는 교통비 포함 하루 만천원씩 쓰는 게 목표였다.

이미 잘 아는 저자이며, 2020년에 읽었던 단편의 작품을 2024년의 끝자락에 읽으니 느낌이 묘했다. 그 때 똑 같은 문장에 밑줄을 긋게되고 다시 살펴보지만 다가오는 감정은 더욱 촘촘해졌음을 느낀다. 그래봐야 똑같은 30대의 내가 읽는 것인데 30대 초반이 떠올리던 그 시절 나와 30대 후반이 되어 그 시절을 겹쳐보는 나는 확실히 달라졌음을 실감한다.


더운 여름 땀으로 번질 블라우스가 걱정되 마시는 아이스아메리카노, 첫출근에 늦을까봐 올라탄 택시. 정직원이 되면서 받은 건강검진에서 질병이 발견되 퇴사 권고가 될까봐 건물 입구에서부터 드는 불필요한 걱정들. 앞선 기대들도 포함. 이제는 정규직이니 휴가도 갈 수 있겠다 싶어 내년 여름엔 해외에 있을 꿈만으로 가득한 발걸음. 또각또각 거리는 새로산 구두굽의 경쾌함. 한남동 빌딩숲 사이에 내가 일할 곳이 있고, 당당한 발걸음과 정장 차림의 나는 누가봐도 이 동네 회사의 직원이며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고있으니 그토록 부러워하던 직장인이 된 거 같아 으쓱해지는 어깨. 끝이 있긴 한가 싶은 이력서 작성의 순간. 내년엔 되겠지 하던 계약직의 하루살이 같은 시간들. ‘정.규.직’이라는 이 단어가 뭐가 그리 대단했던건지 사람을 참 비참하게도 때로는 몹시 커보이게 만드는 것 같아 씁쓸해진다. 돌아보면 내가 버텼던 2년의 계약직 시간들도 별반 다른게 없었으니 말이다. 계급이 없는 사회? 평등한 사회? 모두가 걱정없이 살 수 있는 나라? 글쎄, 지금 현생은 아닌거 같다. 다시 태어날지 어찌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생에는 글렀다 싶어.

-여기까지다 2020년 02월에 내가 기록 해 둔 글이다.

그 때의 나는 대학 졸업반 시절 기업 면접을 보러다니는, 아직 정장이 어색한 모습의 내가 보였고, 또 이야기의 후반부 즈음엔 20대 중반 계약직으로 눈칫밥 먹고 자발적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며 정규직들 사이에서 주눅들어있는 계약직의 내 모습을 글에 녹여내며 많이 울컥했던 때가 떠올랐다.

지금의 나는? 그러니까 지금의 나의 조건은 어떤가? 입사 10년이 훌쩍 넘어버렸고, 이젠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더 많고, 회사에서는 허리쯤 오는 위치로 레벨업 된 상태. 언니, 누나라는 말보단 과장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우고 있는 고인물이 되어버렸다. 여전히 막내이고 싶으나 책임을 져야하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이력서 파일 갱신 일자도 까마득 해 졌고, 증명사진을 찍어 둔 것도 입사를 위해 풀메이크업하며 공들여 찍은 날도 언제였는지 까마득할 지경이다. 언제 다시 저 입장이 될런지는 모를 일이겠지만 익숙해져버린 이 자리를 뺏기지 않으려 나는 또 내 위치에서 또 아등바등거릴게 빤해보인다. 누군가에겐 입사를 위한 종종거림이 시작이겠지만, 또 누군가에겐 아침마다 무탈히 출근을 하며 한뼘도 안 되는 내 명함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 출근하는 시작이 있을 것이다. 오늘도 아침 해가 뜨기 전 푸르스름한 새벽 스타터를 딛고 시작한 내 하루의 시작이 부디 무사히 마무리되어 결승점에 골인하길 바라게 될 뿐이다.(결승점=퇴근 후 집앞에 무사히 주차하며 시동을 끌 수 있는 그 즈음)




📖근육의 모양_ 나는 그러니까 어디에 있건 존중을 받고 싶었던 것이라고, 언제나 어디에서나 다른 사람이 귀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고... ... 그건 직업을 바꾼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내가 상대를 대하는 정중한 마음 만큼 나 또한 그렇게 대접받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데, 생각보다 돌아오는 마음은 성에 차지 않는다. 융숭한 대접을 기대하지도 않지만 어딘가 모자라고 또 어느 지점에서는 하대하다 싶을 정도의 짤막한 끝맺음의 태도는 매번 내가 하대받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회사를 다니면서 이른바 '넵넵 봇'이 되기도 하고, 메일을 발송 할 때 '반갑습니다'와 '감사합니다'를 반복하는 나를 보면 뭐가 그리 반가워서 인사를 건네고, 뭐가 그리 감사해서 이 문장을 꼬리표처럼 줄줄 엮어사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진짜 반가운거 맞아? 정말 감사한게 있긴 한가? 를 떠올려 보지만 이러한 문구를 적고 있는 내 표정은 항상 (ㆆ_ㆆ) 딱 요정도. 좋고 싫음도 없는 좌표 0의 상태의 입꼬리와 눈꼬리를 갖고있다.

매번 그러는 꼴이 싫어 퇴사를 하고 다른 직군으로 발을 들여놓더라도 상황만 달라질 뿐 또 비슷한 갈래의 고민을 하게되고 타인의 반응을 기대하게되는건 어쩔 수 없음을 느낀다. 그저 나이가 드는 만큼 상대에게서 얻어지는 반응에 인이 박혀 굳은살이 생겨 뜨뜨 미지근한 반응이 오더라도 그걸 초월 할 만큼 두터운 마음을 가져 덜 찔리고 덜 베이는 두둑한 마음을 갖길 바랄 뿐이다.


📖어제의 일들_ 나는 그가 무엇을 미안하다고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오랜만에 만나면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 유행인지 약속인지, 보는 사람마다 미안하다고, 다 가지 때문에 내가 이 지경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흔하디흔한 말이 별로 감동적이지 않았다.

학창시절 선생과의 사이를 오해한 친구들의 따돌림, 그리고 선생의 외면으로 옥상에서 뛰어내린 주인공. 그 때 다친 후로 그 일들을 기억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고 간병을 해주었던 여인의 배려로(=엄마라고 부르게됨) 주차장 관리를 하며 그림책의 삽화가로 살게된다. 주인공 상현에게 동창인 율희가 찾아와 과거의 일들을 끄집어내며 그 때 있었던 일을 기억하게 만든다.

상현의 상황만 놓고 보면 극단적인 결정과 그 선택으로 얻어진 정신적,육체적 장애는 타인이 보기에 안타까울 수 밖에 없는 조건이다. 하지만 상현자체를 놓고 보면 그녀는 그렇게 슬프거나 비관적으로 살아오지 않았던 장면이 더러 있다.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부분을 도려내어 살았기에 그에 해당한 정신적 육체적 값을 지불 한 듯 거기서 더 나아간 비극은 아니었다는 생각도 하게된다. 안타까움과 동시에 차라리 잊고 살며 어른 율희를 만나기 전이 더 나은건 아니었을까를 생각이 들었다. 잔잔히 살던 상현의 머리를 헤집는 율희가 나로서는 반갑지 않았거든.

그제서야 미안하다고 말하고 사과를 건네고 그 한마디를 통해 자신은 미뤄뒀던 사죄를 한 것에 두다리 뻗고 잘 수 있을 후련함을 만드는 것. 사과받는 이는 모르겠고 오로지 제 마음 하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식의 몸만 자란 동창이란 자들의 말들. 시간이 흐르는 동안 께름직한 과거에 묶여있다 후련히 사과하고 가볍게 시작하고픈 마음이 나는 달갑지 않다. 상현은 그들이 할퀴고 갔던 이후의 삶을 어렵게 시작했고 제 속도로 더디지만 잘 나아가고 있었다. 잊고 살던 일련의 상황을 다시 다 들여다 보았고, 이젠 모를 수 없는 과거를 쥔 채 다시 마음을 다 잡아야 한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며 깊은 숨을 몰아 쉰 후 시작해야하는 무거운 스타트. 이것 마저 상현의 몫이지만 동창이라는 그들도 일정부분 공동부담하며 계속 쥐고 살아줬음 싶은 명치 언저리의 무거운 돌이길 바라게 된다.




📖어제의 일들_ 모든 게 화무실일홍인 거라. 후회하고 원망하고 애끓이면 뭐 해. 좋은 날도 더러운 날도 다 지나가. 어차피 관 뚜껑 닫고 들어가면 다 똑같아. 그게 얼마나 다행이냐.

나는 위에 언급 한 듯 동창이라는 자들이 이 무거운 마음을 공동부담하고 평생 떠앉고 죄책감 가득 안고 살길 바라는 심보인데, 어른 상현이 된 시점에 엄마가 되어준 그녀가 한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그리 미워하고 그리 원망하며 나를 찌르듯 상대를 찔러가며 서로 미움을 쥐고 살면 뭐하겠냐는 듯한 말에 뒷통수를 쎄게 후려맞은 기분을 갖는다. '미워해서 뭐하냐, 달라질 건 없는데' 라는 뉘앙스로 쟤는 저러고 살겠지, 너는 너대로 살아라 싶은 마음으로 해주신 말씀에 타인을 탓하고 원망하며 쏘아대는 마음을 단박에 잘라버리게 만드셨다. 상현이 어머니가 해준 말을 밥 한숟가락과 함께 먹어 삼키는 것 처럼 나도 한입 가득 넣고 곱씹으며 꿀떡 삼키려 한다. 상현이 말하듯 돌이킬 수도 없고, 명백히 지나가 버렸고, 기세등등한 위력은 잃은지 오래니 말이다. 상현의 어머니를 통해 나도 못된 심보를 먹어 없앨 수 있어 다행이다.



단편의 시작들은 '마법사들'을 통해 10대 시절의 순간부터 차곡차곡 연령을 높여가며 이야기를 얹어주었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시작'의 기회를 만나지만 그럴 때마다 자신있게 뛰어들지 못하는 주저하는 마음, 결과와 과정에 대한 불안함,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대한 두려움을 다양한 예시처럼 들려주며 이럴수도 있고, 저럴수도 있는 삶을 들려주었다. 모든 결정에는 용기가 있어야 했고, 모든 결정에는 곱절의 고민을 헤치고 나와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생의 진행형을 확인했다. '시작'이 반이라 하지만 '시작' 조차 두려운게 사실이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아무거라도 하는 것'이 덜 한 후회와 덜 한 아쉬움을 남긴다는 걸 우린 실감하며 산다.

그러니 매 순간 시작하며 매 순간 과절하고 또 그만큼 고뇌할 테지만 그 때마다 안하는 것보다 나았음에 안도하며 일단 해보길 권해본다. 그렇게 해도 세상은 두쪽이 날 만큼 무너지지도 않았고, 나름 괜찮게 살아가는거 같으니 말이다.


📖창비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기록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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