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돈키호테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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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하나같이 마음속의 돈키호테를 바라며 살고 있었다. 꿈은 꿈꾸는 것이니 꿈일 수 밖에 없다는(?) 언어유희에 반기를 들듯 삶의 전환점이 되어지고,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으면 행복해 질 수 없고 더이상 그게 좋아질 수 없다는 말들에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꿈꿔보라고 옆구리 쿡쿡 찔러가며 잠재워둔 꿈을 깨워보는 느낌마저 든다. 돈키호테가 산초가 되어지고, 산초였던 이가 어느새 돈키호테보다 더욱 배포가 큰 이로 바뀌는 과정. 돈아저씨가 솔에게 돈키호테라는 닉네임을 물려주듯 때로는 시대에 순응하기도 해야하지만 그럼에도 끌리면 꿀리지 않고 나아가는 돌진우선 주의자로 나서보는 것도 살아볼만한 삶의 방식인 듯 하다. 안하고 후회할래? 해보고 후회할래? 뭘 하든 후회는 하기 마련인데 이왕 결정되어있는 후회가득한 후반전이라면 일단 밀어붙여가며 해보는게 조금이라도 덜 억울하고, 조금이라도 덜 원망스럽지 않을까? 실패든 성공이든 뭐든간에 시도는 했으니까 미련은 없을테지.




📖셀프 고용_ 누가 알아준다고 모험을 떠나는 건 아니란다. 나만의 길을 가는 데 남의 시선 따윈 중요치 않아. 안 그러니 솔아?

지랄맞은 운명의 뒷통수는 한방에 몰아서 온다지? 1년 전 남친은 양다리를 걸치다 도망갔고, 올해엔 인간들의 제 밥그릇 찾기에서 져버린 진솔은 퇴사를 했다. 졌다는 말보단 뺏겼다는 말이 더 정확한거 같지. 드러운 방송국 놈들의 땅따먹기에 제 것 한줌 못 쥔 솔이였다. 그래서 그렇게 고향으로 내려왔다. 성심당 말곤 뭐 없다는 대전으로. 닭 튀기는 엄마의 가게로 퇴근없는 취업전선에 동참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해야 하나 갈망 할 때 솔은 어릴적 추억이 서린 돈키호테 비디오가게를 발견한다. 한창 예민하고 또 때론 감수성이 차고 넘치던 시절을 버티게 해준 라만차 클럽의 멤버들이 있고, 돈키호테를 닮은 돈아저씨가 있던 곳. 그 아지트는 카페가 되었고, 그 추억이 서린 것들은 그 건물 지하로 옮겨졌으며 돈아저씨는 사라졌다. 문득 궁금하긴 했으나 정말 어디간 걸까 싶은 사람.

사람이 그리운 것도 있었겠지만 솔에겐 그 시절이 더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남과는 조금 다른, 그래서 더 특별한 어른의 모습을 통해 솔은 어떤 어른으로 살아야 할지를 야금야금 배워나가는 시절이 가장 행복했고 재미난 순간인걸 회상장면에서 느낄 수 있지.


📖낮에 꾸는 꿈_ 내 인생 30년 동안 그 어느 때보다 살아 있다고, 가슴이 뛰고 활기가 넘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게 꿈이다. 밤잠을 방해하는 꿈이 아니라 낮에 꾸는 꿈 말이다.

방송국 놈들에게 질려서 다시는 그러한 일을 안 하리라 마음먹고 내려온 것 이었으나 결국 제일 잘하는 그걸로 다시 시작하는 솔. 다만 원하는 촬영의 소재와 프로그램의 방향은 본인이 제일 궁금해 했고, 본인이 가장 먼저 답을 듣고픈 물음에 답을 찾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솔이 꿈꿔왔고 꿈이 이뤄지며 개운하게 해결되는 수순이 프로그램 제작에 일정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보였다.

시작은 돈아저씨를 찾는 것 이었으나 학창시절 제일 행복했던 순간을 함께 했던 라만차클럽의 대주나 새롬의 안부가 궁금했을터. 이른바 먹고 사니즘에 양옆 돌아볼 틈이 없었으니 어른이 된 솔이나 다른 이들이나 여력을 주기 어려웠을거다. 나만 해도 그러하니까. 뭐, 어디서 잘 살고 있겠지를 시작으로 무소식이 희소식이랬다고 어른의 삶이 그런거며 이제와 만나봐서 뭐하겠냐는 자문자답에 취해있기 딱 좋은 시절이겠다.



📖이야기를 듣는 시간_ 어떤 용기로 한 교수 같은 권력에 맞서 싸울 수 있었는지를, 그건 부끄러웠던 자신의 모습에 대한 반문이기도 했다.

아저씨는 이렇게 답했다. 한 교수 같은 사람이 이 사회의 지식인으로 인정받으면 안 된다고, 그래서 그걸 깨기 위해 나섰다고. 지식인은 많이 배운 사람이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고, 세상을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 사람의 주변엔 많은 이들의 영향으로 갈래가 달라지기도하고, 그로 인해 인생의 방향성도 정해진다 하니 돈아저씨는 여타 다른 어른들과는 세계관부터 달라 아이들은 재미난 어른이 곁에 있어 평범하고 흔하게 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극복해 나아갈지 어느게 옳은 것인지도 구분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라만차클럽의 한빈이나 대주, 새롬 뿐만 아니라 돈아저씨의 진짜 본케인 장영수로서 살면서 학과 동기였던 권사무장, 동료 선생이었던 박원장의 이야기를 들었때 얼마나 올곧은 사람인지를 알게된다. 특히나 출판사에서 같이 일했던 승아씨의 이야기와 민PD를 통해 옳고 그른 것을 앞에 두고 휘지 못하고 부러져버리는 사람을 보면서 유연하지 못했고 흔들리지도 못했으나 진실되고 정확했던 사람을 통해 당장은 아니더라고 결국 그의 이야기가 다 옳았음을 보여주었다. 결국 진실은 승리한다는 말을 자막에 넣어주고픈 만큼 말이다.



김호연 저자의 이야기엔 우직하고 올곧으면서 또 한편으론 외골수 같은 인물이 존재한다. 사회 부적응이라는 편견을 가지게 하면서도 그를 믿어주고 기대해주며 기다려 주는 이의 시선으로 사람이 어떻게 변해하고 세상에 어떻게 스미는지를 보여준다. 불편한 편의점의 독고와 나의 돈키호테의 돈사장은 어딘가 모르게 닮아있고, 그의 세계가 궁금해지도록 만드는 인물이다.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더 알고싶어지게 만드는 사람이 되기도하고, 왜 저러나 싶어하며 시선 밖으로 보내버리는 존재로서 치부하기도 한다. 염여사나 진솔이 아니었다면 이 이야기는 책으로 나오지 못했을 것이고 우린 돈키호테의 세계관을 그냥 고전 소설의 일부로 생각하며 나의 삶과는 별개의 작품으로 이름만 들어본 그거? 라고 넘기게 될 것이다. 저자의 글 맛은 우리 주변에 있을법 하면서도 내가 외면하고 넘겨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어 술술 읽히고 더 빨리 와닿게 만드는 점이다. 이야기가 늘어지거나 탄력을 잃을 즈음 흔한 사랑이야기를 넣어가며 분량을 늘리거나 소재의 변화를 주지 않아서 더욱 마음에 든다. 더군다나 솔PD가 겪어온 청소년 시절과 현재의 시점은 80년대생인 나의 과거와 맞물려서 추억 회상용과 함께 모든 시절을 겪어온 세대가 공감하기 딱 좋은 요소가 있어서 더욱 반갑게 느껴지고 쉼 없이 읽게 만들었다.

내가 돈키호테를 읽어 본 적이 있던가? 이 이야기를 보면 나는 영락없는 산초 재질인데, 돈아저씨가 필사에 많은 공을 들였던 돈키호테를 읽으면 나도 어느정도 돈키호테같은 기질이 생길 수 있을까 싶어하며 오늘은 완독의 기쁨과 함께 고전을 들춰보며 나도 아는 인물들이 있다며 알은체를 해 볼까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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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문학과지성 시인선 601
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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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터가 왈랑거리게 만든다.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이 있던가? 를 묻는건지, 아니면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이 있었지로 마침표를 찍는 자문자답의 과거회상형인지를 궁금하게 만드는 말이다. 이건 저자가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를 담았으며, 동시에 독자들에게 그대들에게도 이러한 시절이 있었느냐고 물으며 이 책으로 인해 과거 여행하듯 당신의 사랑이 차고 넘치던 시절로 가보자며 추억팔이 하게 만드는 시집으로 보였다.

애닳고, 구구절절하며,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짠한 사랑을 수없이 해본 능력치는 없으나 적당히 서럽기도 했고, 적당히 간절하기도 했던 청춘의 순간이 있었으니 결국 이 시집의 제목에 해당하는 '사랑의 바보'로서 내 애정 루트와 저자가 말하고자하는 사랑의 방향이 같을지 다를지를 생각해보며 짧은 문장 긴 여운 속으로 빠져들어 보게된다.


📖농밀_ 당신의 눈에 빛이 비치기 시작합니다 / 사랑은 그런 것입니다

당신 눈 속에 반사된 풍경 안에 / 내 모습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 사랑은 그런 것입니다

이 제목을 보고 짙고 빽빽한 무언가를 떠올려야 할까? 아니면 서로의 관계가 두텁고 가까운 것으로 정의해야할까? 상대를 향한 마음이 촘촘하고 빽빽해서 다른 무언가가 스밀 틈이 없음으로 그만큼 우리로서 관계가 두텁고 가깝게 여기고픈 욕심 가득한 마음으로 크게 에둘러 생각해야 할까?

서로를 향하는 눈빛의 온도는 지금의 계절만큼이나 뜨겁고 진득하다. 그렇기에 유독 더 반짝일 것이다. 그리고 더 유심히 들여다보면 상대가 보고있는 프레임속에는 항상 '내 모습'도 함께 들어가 있을 것이다. 모든 시선들이 '서로'를 기준으로 삼았을테니 말이다. 그러니 어느 풍경이든 어떤 배경이든 내모습이 기준이 되어 계절과 시간을 살아낼 것이다. 그만큼 다양한 프레임이 존재 할 테지만 겹쳐 보이는건 네가 바라보고있는 내 모습일것이고 나 또한 내가 보고있는 네 모습이니 이 모든게 진득한 관계 일 수 밖에 없다는 표현이다. 다만 마지막에 적어둔 '별이 바람에 흔들릴 때면 / 당신 눈동자가 흔들린 거라 믿게 되었습니다'로 미루어 보아 혹여라고 굳건하던 시선이 옳게 마주 보기 어려워지고 외면하려고 한다면 가장 먼저 알아차릴 네 눈속에 내가 있을테니 그것만 기억해달라는 간절함이 보여졌다.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_ 이렇게 어디까지 좋아도 될까 싶어 자격을 떠올렸던 적

산 사람을 모방하고 열렬히 동의했던 적 / 나를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 만들고 / 내가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조차 상실한 적

마침내 당신과 떠나간 그곳에 먼저 도착해 있을 / 영원을 붙잡았던 적

그렇다. 이 감정은 병이다. 그래서 치료도 필요하고 예방도 필요한데 생각만큼 약발이 잘 듣지않아 애를 먹인다. 손을 씻어 세균을 털어내듯 시선을 거두어 감정의 감염을 차단하기도 어려운 질병이다. 모든 시작은 당신으로 시작했고, 그 끝도 당신으로 끝나길 바라지만 그렇지 않다는걸 이미 알기에 영원을 붙잡고도 애원하고픈 마음이 마지막 문장에 담겨있다. 나는 왜 이 시를 보면 에픽하이의 LOVE LOVE LOVE라는 노래가 생각이 날까.

사랑이라면 모든걸 내어두어도 아깝지 않을 청춘이 시작되던 스무살에 들었던 노래이며 짝사랑에 진득하게 취해 있던 그 해 겨울 이 가사때문에 꺼이꺼이 울게 만들었던 것이 지금 이 시의 구절과 닮아있다. 노래 가사중에 '이 세상의 모든 이별 노래가 당신 얘길거라 생각해 본 적'이라는 파트가 있다. 그러고보니 문장의 끝마다 '~적'이라며 내가 하던 행동들이 다 이 때문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게 아니었다면 이러한 행동들이 수반되지도 않았을 것이며, 이러한 생각 자체도 하지 않았을테니 이토록 미련한 행동들과 상황은 결국 다 사랑한 적으로 시작된 눈물나게 씁쓸한 결과물이기도 했다. 그 누군가는 이 맘을 모를 것이고 말다.




📖과녁_ 사랑이 끝나면 / 말수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이 되어 미쳐 다닌다

사랑의 끝은 행복이 아니라 남남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 모든 감정과 상황을 쓰레기봉투에 꾹꾹 눌러담고 싶게 만드는 엔딩. 그래서 결국 그와의 사랑은 쓰레기통에 쳐 넣을 만큼 보기싫고 담아두고 싶지 않아 미간을 찡그리게 만든다. 모든 화살의 끝은 그로 정해두고 싶은 것이다. 누굴 탓하겠나 싶어하며 그 사람을 과녁에 박아두는 것이다. 손으로 셈을 할 수도 없을 많큼 행복했고 사랑스러웠으며 기쁘기도하고 소중했던 기억마저 쿡쿡 찔러가며 시절 자체를 부정하게 만드는 사랑의 끝. 같은 단어와 같은 장소, 같은 사물을 보고도 사랑을 하던 순간과 사랑을 끝낸 순간엔 모든 의미가 달라지고 보여지는 형상조차 달라진다. 사랑의 언어가 풀어주는 의미와 그렇지 못한 지금의 내가 두껍게 칠하며 부정하는 그 의미들. 그토록 보기싫고 지워버리고 싶은 사랑인데, 과연 우리는 그 사랑을 덮어버릴 만큼의 더 크고 두터운 사랑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단지 그와 나눴던 사랑의 언어가 옳게 해석되지 못했을 뿐이고, 그 언어를 척하면 척하고 알아줄 공용어를 사용하는 누군가를 만나지 못했던 것이라 여겨주면 좋겠다. 사랑의 언어는 잘못이 없으니까. 그 의미를 잘못 해석하고 표현한 사람이 잘못한 거니까.



📖그네_ 당신을 쫒는 것은 답이 아닐지도요

어제의 세계와 그 세계를 갉아먹었던 불순한 버릇들과 꽃은 왜 이리 붉은 것인지에 관한 의문들을 선명하게요

되뇌이며 말을 하지만 모든 문장의 끝엔 확신이 없다. ~것일지도, ~겠지요, ~아닐지도요 로 끝맺음을 하는 걸 보면 지금 믿고 싶은 이 감정의 확신이 무조건 적인 응원과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음을 내비치는 확고하지 못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이 시의 시작이 '그래도 가려 합니다'로 먼저 마음을 툭 하고 던져둔건 아닐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당신으로 인해 이 세계가 듣고 싶은 이야기와 하고 싶은 이야기 뿐이니 부디 나와 당신이 아닌 다른 이들이 하는 말이 듣기 싫은 것들로 가득하더라도 나만이라도 듣고 싶은 것들로 덧씌워 받아들이고자 하는 다짐으로 보였다. 두 눈 질끈 감고 감내하겠다는 다짐이다. 내 마음을 밀어 당신에게 다가 간 만큼이 느껴진다면 당신도 딱 그만큼이라도 마음을 밀어 보여주길 바라는 기대감이 가득한 단어들까지. 당신을 쫒아가며 애닳게 향하는 마음이 타인이 보아도 아니라 할 지언정 확고한 답이 없음을 빤히 보아도 그래도 가려하는 거니 내가 밀어 보낸 마음 딱 그정도라도 표현하며 알고 있음을 표현해주기 바라는 간절함. 그러니까 들켜도 되는, 들키고픈 마음이 가엾게 여겨진다.

모두가 축복하고 응원하며 기대하게 만드는 사랑은 굳이 내가 아니어도 힘을 싣어 줄 테니 애걸복걸 하는 마음이 앞서지않았다. 다만 한쪽만 애절하거나 빨리 이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상황. 분명 애타는 마음을 알텐데도 모르고 살고자하는 이를 보며 유리벽 앞에서 사랑을 내밀지 못하는 가여운 마음에 우리는 더 동요하게된다.

내가 좋아하는 이도우 작가님의 문장이 머릿속에 가득해지는 순간이다. '당신의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도 무사하니까.'

그 무탈한 사랑이 제일 어렵다. 그래서 우린 이 이야기에 내 한 시절을 뜯어내어 빨리 딱지가 앉아 더 아프지 않길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겹쳐있는 쓰린 순간을 켜켜이 덧대어 놓아보면 그 순간의 선택 덕분에 내 사랑이 더 외롭고 아프게만 남지 않을거라는 기대를 하게된다. 제발 그러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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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여름에게 에세이&
최지은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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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이야기해주는 어린시절 이야기. 많이 생각하고 고민 한 후 꾹꾹 눌러담아 보였던 시집 속 몇 안되는 단어들 말고, 좀 더 편히 이야기하며 툭툭 건네주는 여린 저자의 성장과정. 엄마의 빈자리 보다 할머니의 부재가 더 두려웠던 시절. 오랜 시간은 아니나 함께 이야기하고 일상을 나눴던 아버지와의 추억. 또래 뿐만 아니라 어른이 되어 어린이 친구들과 마음을 주고받았던 순간들까지. 귀한 마음들 덕분에 저자는 인생의 뜨거운 여름의 한복판과도 같은 순간을 무탈히 지내왔음을 느낀다.

저마다의 상처를 갖고 있으며 그걸 어찌 버티고 어찌 겪어내느냐에 따라 인생을 마주하는 마음이 달라 질 수 있음을 저자를 통해 배워간다. 조손가정의 어린이로 성장했음에도 잘 자랐고, 잘 컸다고 말하는게 아니다. 부모의 부재로 인해 모자란 애착형성의 아쉬움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삶을 살아 가는 과정에서 사람을 대하는 방식, 살아가며 겪게되는 아픔과 슬픔, 환희와 기쁨의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마음에 품는지를 잘 배웠고, 기특하게 잘 써먹으며 멋진 어른으로 살아주고 있음에 대한 감사하다는 의미이다.

우린 각자의 슬픔이 가장 깊고 아픈 것이라 말하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내가 제일 불행하다는 듯 떠벌리는게 영웅심리 중 하나의 갈래인 듯 한데 저자와 독자가 바라는 방향은 그게 아니다. 내가 겪어낸 순간은 아팠지만 외면하고 싶은 것은 아니며, 때때로 떠올리며 시절을 잘 살아낸 어린 나를 애틋해하며 잘컸다고 다독여주자는 눈짓 정도? 내가 나를 알아봐주고 위해주는 그것에 대한 이야기이니 우리의 여름이 축축한 장마의 시간을 거쳐 반짝이고 환한 맑음을 바라며 살아보자며 싱긋 웃는 느낌을 가득히 전해받기로 한다.

📖자랑 같지만,_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밥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한끼 식사를 위해 집을 치우고 장을 보고 그릇을 닦으며. 몸에 좋고 마음에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시간은 새벽 2시 13분. 밥을 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고. 밥을 해주고 싶은 마음에 대해 시를 써야겠다고 혼자 생각합니다.

자랑 맞지. 좋아하는 사람의 모든걸 맞춰주고픈 마음. 내가 당신을 위하고 있으며 당신의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게 나에게 가장 큰 기쁨이라는 표현. 비싸고 좋은 것도 분명 좋은 대접이겠지만 정성과 노력을 담뿍 담아 내 손으로 상대를 위해 무언가 해 줄 수있어 뿌듯한 감정을 얻는 다는 것. 어릴 적 할머니가 어린 저자를 키워낸 방식이 그러했고, 그러한 노력의 맛을 꼭꼭 씹어 먹고 자란 어른의 저자도 할머니를 닮아 그 표현을 대물림 받아 표현하는 것. 받은 만큼 표현 할 수 있고, 얻은 만큼 나눌 수 있는 감정의 전달과정. 이 책은 어린 시절 자신을 먹여 살린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 이며, 그 기억으로 잘 먹고 살아내고 있다는 자랑과도 같은 손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햇빛 냄새_ 하지만 슬픔 없이 어떻게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슬픈 것은 슬픈 대로 그대로, 조금 더 두기로 했다.

1부의 이야기를 보면 울컥하는 부분이 많다. 할머니와 오이지. 아버지의 눈물, 에어로빅과 성난 마음, 부드럽고 고소한 호두맛 아이스크림. 외로웠고, 가난했고, 그래서 때때로 서러웠다. 그게 왜 아이의 탓이겠는가. 하지만 어른들은 어찌 할 수 없음에 화를 낸다. 아이를 향한 화가 아니라 이러한 여건에 대한 울화지만 아이는 눈치를 보게되고 움츠러들게된다. 결핍은 불안을 당겨왔고, 불안은 또 다른 걱정을 황급히 불러들여온다. 엄마가 없는건 괜찮지만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앞선 걱정. 자신은 아직 아이인데, 어른이 되려면 멀었는데 할머니의 시간은 더 빨리 흐르는 듯 해 조바심도 난다. 그래서 저자는 어린 시절 자신이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할머니와 아빠, 친구들이 주변을 에워싼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산다. 그래야만 지금을 살아내는 데에 덜 외롭고, 덜 무서운 듯 자신을 방어한다. 욕심처럼 움켜쥐고 붙들여 놓을 수 없는 시간이며 존재들이다. 그러니 기뻤던 순간도 슬펐던 순간도 다 안아들고 산다. 존재의 부재를 부정하는 것보다 순응하며 그마저도 담아주는 삶이 덜 슬프고 외로우니 말이다.



📖당신의 여름 과일이 궁금합니다_ 두려움도 미움도 잊어버리고 문득 '다 괜찮다, 그럴 수 있다'하게 되는 마음이. 그러니 매일 아침 현관문을 나서며 상상합니다. 저 방에서 할머니가 나와 오늘 나에게 하나의 심부름을 준다면 무얼까.

-기쁘렴. 기쁘게 집으로 돌아오렴.

수박이 이렇게 뭉클한 과일이었던가. 스스로 해 보도록 바라봐주는 과정과 설령 잘 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타박하지 않는 마음. 그럴 수 있다고 직접 겪어보게 만들어주며 그 실패의 결과 또한 어른이 먼저 감싸안는 방법. 할머니가 깨우치도록 하는 방식은 그런 것 이었다. 조손가정이라고 스스로가 할머니 힘들지 않도록, 적당히 잘 하자는 마음이 더 큰 아이를 위해 할머니는 당신의 울타리 안에서만이라도 다 괜찮다며 그럴 수 있다는걸 알려주고픈 수고로운 행동에 어린 저자는 더 많은걸 배우게된다. 수박보다 크고 달큰한 것은 할머니의 사랑이었다.



📖그러고도 혹여 네게 힘이 남아 있다면_ 선물을 받은 그가 그것으로 무언가를 해내고 이뤄내고 또 다른 의미를 찾아내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그저 뜻밖의 선물처럼 여기면 좋겠다. 길을 걷다 우연히 옷깃 속으로 떨어지는 조그만 낙엽 같은 기쁨 정도면 좋겠다.

나눔과 베품. 그러한 마음들을 강요하거나 닦달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자라온 환경이 그러했고, 키워낸 어른들의 성정이 그대로 스민 것일 뿐. 때론 감사했고, 또 어떤 날엔 서러움에 눈물이 장판위로 올라온 빗물만큼이나 가득 할 때 얻어진 외로움. 그냥 그걸 덜어내기 위한 마음이었고, 나만 덜어내기엔 또 미안한 마음이 큰 감정이니 같이 덜어내어 보자는 생각이었다. 타인의 기대와 반응, 그리고 주변의 시선보단 오롯이 내가 덜 슬플 방법과 내가 덜 아플 방법을 찾아낸 것 중 하나의 선택지라 보여졌다. 나 좋자고 하는 선행이고, 내가 뿌듯하자고 하는 마음의 나눔 정도. 그러니 이 마음이 잇닿은 너머의 누군가는 혼자라는 사실보다 기분좋은 호혜의 순간을 얻었다고 바라게 되나보다.

행복했던 순간은 특별할 것 없는 작은 찰나였으나 그 찰나들이 있었기에 제법 괜찮은 어른으로 클 수 있었다. 겪어낸 시간들 덕에 편히 슬픔과 상반되는 행복의 감정을 모두 알려줄 수 있는 이야기꾼이 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할머니, 아버지, 후배와 언니들, 남편과 반겨동물 둘, 계수나무 숲과 아이들의 편지. 우리도 익히 아는 단어들 이지만 이 단어가 저자의 곁에선 이야기가 되고 살아가는 양분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시인의 여름이 책 표지만큼이나 더 푸르고 반짝이나보다.

나를 에워싼 단어들이 무엇으로 이뤄졌는지를 떠올려본다. 나도 그 단어들 덕에 살아냈고 살아갈테니 말이다. 부디 내 삶의 여름도 물기 가득 머금은 그런 날 보다 반짝이며 환한, 그렇지만 때때로 시원한 바람이 부는 그런 싱그러운 순간으로 남아주길 바라게된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기록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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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월급사실주의 2024 월급사실주의 2
남궁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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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사실주의 라는 틀로 엮어진 글을 읽었던 책을 읽은지 반년이 흘렀다. 월급사실주의에 옴팡지게 젖어들어 사는 직장인 나부랭이로서 올해 두번째로 출간된 이 책을 읽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실정이다. 입에 풀칠하는 것에 애쓰며 사는 사람인지라 또 이렇게 이 세계에서 나만 힘든게 아니라는 걸로 위안 받으려고 책을 들게된다.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이라니. 내 주변 사람이 이런 캐릭터로 불리운다면 얄밉기도 하겠다만 부러움이 더 크지 않을까. 인성이 개떡같고 지랄맞아도 일이 잘 풀리고 하는 것마다 인정받아 능력치에 대한 보상이 두둑하다면 그보다 좋은건 없을테니 말이다. 때때로 밉상짓이라 할 지라도, 하는 짓이 마냥 이뻐보이진 않더라도 한 번 쯤은 나도 요렇게 인성에 비해 잘 풀리는 뭘 해도 되는놈이길 바라게된다.




📖등대_ 궁지에 몰리면 자신 같은 종업원을 보호해주지는 않을 테다. 그렇다고 앞에 나서 저들에게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느냐며 따질 상황은 아니었다. 사람들을 잘 지켜보다가 위험을 피하는 게 최선이었다.

어떻게든 그 세상 속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는 위치. 눈알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릴듯한 바쁜 사위. 그렇게 유용한 인재가 되기 위해,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짤리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하게되는 수습직원. 정직원 전환이 뭐라고, 이 과정만 잘 버텨내면 정식 직원이 될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 정신이 팔리고 앞에 뵈는게 없어지게 만드는 자연스러운 세뇌. 그렇게 달달하게 유혹하고 빨때 꼽아 쪽 빨아먹고 위기의 순간엔 가장 먼저 내동댕이 쳐지게되는 위치.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배워가면 더 많이 보이고 성공할 수 있다는 건 밑바닥을 밟기만 하지 빗자루로 쓸어본 적 없는 인간들의 하는 조직생활의 허울 아닐까.



📖두 친구_ 적어도 의료보험을 내주고 일정한 급여를 주는 직장이 생겼다는 면에서, 또한 가족이 아닌 어딘가에서 소속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면에서, 지현에게 조무사 일은 일종의 구원이었다.

한참동안 없는 사람인냥 지낸 시간들이 길었던 사이. 친구였으나 지금은 친구라 말하기도 애매한 관계의 사람들. 한 사람은 환자로, 또 다른 한 사람은 간호조무사로 같은 공간에서 만난다. 단박에 알아 볼 만큼 오랜 기억을 나눈 사이는 아니다. 그럼에도 떠올려보니 한 때 친구라는 관계로 알고 지내던 사람이라는 것. 이제와서 새삼스러운 듯 반가워하며 그간의 안부를 물어보고 하지도 않을 밥 약속과 만남을 기대하며 얼굴 보기를 바라는 반가움을 건네본다. 그 시절엔 똑같은 학생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입장차이가 한겹 더 씌워진다. 갑과 을로 따질 순 없겠으나 사람이, 결국은 직업이, 어쩌다보니 상황이 그렇게 높고 낮은 격차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그런가? 눈대중으로 재어보며 자신이 한 단계 더 높다는 이들이 으레 그렇듯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를 건네게 되고, 보다 아랫단은 밟고 있는 이들이 마뜩치 않지만 빨리 대화를 마무리하기 위해 대답을 얼버무리곤 한다.

이러한 관계까지 친구라 하는게 맞을까?



📖식물성 관상_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 이해하는 척하며 마음에 없는 말을 마음에 있는 말처럼 하는 게 일을 잘하는 걸까? 그러다보면 '자낳괴'가 되는 걸까?

비건 식당의 매니저로 스카웃 될 수 있었던 것. 관상? 관성? 분위기? 결국 오너가 잘 쥐고 이리저리 흔들 수 있는 사람으로 보였기에 가능했던걸까? 군말없이 하라면 하라는 대로, 자신의 견해는 철저하게 배제한 피노키오같은 그런 직원. 사업가의 마인드는 그렇게 돈을 쫒고, 신념보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해가는 인간이어야 짤리지 않고 밥벌이가 가능한 거겠지. 식물성 관상은 물주고 햇빛주면 주는대로 잘 받아들이고 키워내는 반항기 없는 그런 관상임을 착하게 그려낸 허상으로 보여졌다. 보이사 밑에 있게되면 자발적 식물성 관상으로 변해 주관이나 객관이나 모든 관념을 버려 둔 후 일해야 할 테니 나는 죽어도 그짓거리는 못하겠다. 결국 나는 태생보다 삶 자체가 식물성 관상은 아닌걸로.




기획의 말을 대신하여 파트에서 보면 '평범한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리는 한국소설이 드물다. 우리 시대 노동 현장을 담은 작품이 더 나와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작년에 출간되었던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보다 좀 더 예민한 부분을 건드렸다. 특수성을 띤 직업군보다는 다수가 경험했거나 다수의 손을 거치는 직업군에서 일어날만한 에피소드를 담아냈다. 그리고 한번 쯤 생각해봤을 만한 갈등을 특수한 상황으로 몰지 않고 으레 겪어야 될 만한 과정의 일부처럼 담아내어 나만 겪을 일이 아니라 나도 겪을 일로 풀어주어 나만 특이한 인간으로 내몰지 않아 고맙게 느껴졌다.

보여지는 건 화려한 프리랜서의 아나운서 이지만 매 회 재계약을 기대해야했고, 실적이 안 좋으면 다음번은 없는 삶이었다. 당장의 평온보다 다음을 위한 관계 유지가 중요한 것. 그래서 더욱 허탈해지는 나란놈 포장방식에 무딘 인간으로 살아야 했다. 돌봄교실을 운영하면서 자신의 교육 가치관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해야헸고, 그 와중에 비용 수급도 확실히 해야했다. 아이들에겐 착해야했고, 돈앞에선 냉정한 사람으로 버텨야 하는 극한의 감정 노동이 필요했다. 단순 사무직이든 서비스 직군이든 특수성을 띈 작업자든 그건 중요치 않았다. 그 무리에서 적응을 해야했고, 수습 직원에서 정직원 전환을 위해 눈칫밥도 체할만큼 먹어야만 사위가 뚜렷하게 구분이 되었다. 그렇게 목메이듯 산다고 모두가 목구멍 뚫리는 사이다를 얻을 순 없었다. 가장 애썼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먼저 나가리(국어사전에 등재된 명사 맞음)될 수 있다는걸 잊지 말자. 조직세계에서 선입선출은 당연한게 아니다. 시작은 같은 학생이었으나 그 갈래에는 무한한 변주가 있다. 한 때 같은 교복을 입고 다니던 학교의 같은 반 친구라 할 지라도 성인이 되고 밥벌이를 시작하고 내 갈길 찾아 가고나면 학창시절의 동등한 위치는 모두 옛말로 쓰여진다. 그래서일까? 앳된 얼굴이 아직 남아있어도 이름도 알고 얼굴도 눈에 익은 사람이지만 먼저 알은체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내가 못나고 니가 잘난 문제가 아니다. 엮였을 때 좋을 거 없어 뵈는 각자의 삶 바운더리 때문인 것이다. 니가 잘나서 피하는 것도, 니가 나보다 못해보여 무시한 것도 아니였다. 그냥 그 상황을 겪어야하는 과정이 피곤해서 그렇더라구. 알바의 세상은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조건없는 모임의 장이었다. 조건이 필요 있겠나. 결국 시급 맞춰 몸써가며 돈 벌려고 모이는 목적만 가진 컨베이어 벨트 앞 작업자 1과 2로 구분되는 것 뿐이다. 웃긴게 여기서도 지들끼리 서열을 나누고 공장밖에서는 좀 더 잘난 사람으로 살았더라는 라떼시절을 들먹거리는 걸 보면 여기든 거기든 왕노릇 하고 싶어하고 가르치려하는 사람들이 꼭 하나씩 있더라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와중에 나는 잘난놈, 니네랑은 다른 놈을 티내고 싶을까? 프리랜서라고 계약된 금액을 제공받고 작업을 할 때엔 그 역할만 수행하는게 돈에 대한 값어치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돈을 주는 입장이라고 통역사의 사상까지 돈을 주고 바꿔 원하는 대로 변주를 준다는 것. 그렇게 한다면 능력을 산 게 아니라 그냥 예시 인물 1의 인격을 산건데 그건 어디서 보상받나 싶어진다. 오너가 원하는 상(像)으로 만들어져 결국 오너의 미니미가 되어 일을 처리하는 것. 내 주관없이 네 주관으로 일하는 것. 오너 마인드가 아니라 오너 확성기가 되어 가는 과정. 사업가 마인드 인 척 하면서 사업가 마임을 하고 있는 모양새. 오너 확성기가 인풋과 아웃풋이 달라지는 순간 오너의 아웃을 감당해야 함을 잊어선 안된다. 시작은 모든걸 수용하는 말 잘 듣는 인재에서 끝은 할 줄 아는게 없는 놈이 시키는대로도 안하는 금쪽이가 된다는 점이다.

확실히 작년에 봐온 단편보다는 현실감이 고봉으로 담긴 이야기였다. 어느 부분은 겪어봤고 들어도 봤으며, 제 3자의 입장에서 지켜만 봤던 이야기들이 많았다. 20년 가까이 겪어보니 성인군자로서 보살미소 지으며 으쌰으쌰 해가는 아귀가 딱딱 맞는 조합의 밥벌이 전당은 없다. 오죽하면 밥벌이 전쟁터라 했고, 아침에 눈뜨면 회사 때문에 미쳐 돌아버린 동태눈깔로 출근을 하겠냔 말이다(너무 좋아 행복에 겨워 초점을 잃는 그런 상태=반어법)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은 결국 지 복을 미리 끌어다쓴 영특하면서도 앙큼한 사람이었다. 일단 이 능선은 넘어가야 다음 퀘스트를 해 볼 조건이 부여되는 것이다. 그러니 인성에 비해 잘 풀리는 것도 지 복이고 지 일머리라는 거다. 그래서 그런가. 이 문장의 조건이 나로 직결되면 좋겠다. 누가 뭐라하든 일단 나부터 잘되고 봐야지 싶은 마음이 큰 월급사실주의 삶을 사는 사람으로서 잘 되고 난 후에 생각이란걸 해보고싶은 욕망이 크다.

나만그래? 나만 그리 느껴? 인성에 비해 더 잘 풀리고픈 마음? 욕심과 욕망이라 수근거릴지라도 나도 그딴 시기 받으면서라도 잘나보고 싶고, 능력 인정받아 보고싶은 검은 속내를 슬쩍 내비치고 싶어진다. 이상 밥벌이 인생 20년을 채워가고 있는 이구역 고인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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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의 시선 (반양장) - 제17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125
김민서 지음 / 창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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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선정된 이번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이 타이틀이 대단하기에 기대감을 잔뜩 안고 보게된 책. 시작도 끝도 단박에 헤치워버리게 만드는 당연한 이유를 가진 글이다. 청소년 시절을 겪는 이들 뿐만 아니라 마음을 다쳤고, 아팠던 과거를 지닌 어른이 뒤늦게라도 이 책을 읽고 그 시절을 잘 다독여주었으면 싶어지는 소재였다.


강율. 중3. 타인과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는 아이. 타인과 시선을 교환하는 것보다 아래를 바라보는게 익숙한 이유를 가진 주인공. 과거 겪었던 사건으로 인해 정상 범주에 속하는 것들을 해주길 바라는 엄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진단과 마음의 병, 일시적인 현상, 어린 나이이니 금방 정상으로 돌아올거라는 어른들의 진단 속에서 어떤것이 '인간다운'것인지를 모르는 외계인같은 자신의 정체성.

진욱, 민우,동휘,그리고 지민과 도해. 이름이 다르고 성향이 다른 것 처럼 율이 가진 심연의 고민들을 각자의 방법으로 녹여주는 존재.

같은 반인 아이들과 달리 이도해는 다른 반이지만 율이 먼저 궁금해하며 그 친구의 흔적을 찾아다니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과거의 사건을 묻지 않았는데도 먼저 알려주며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살아가고있기에 사라지지 않기를 사라지려 하더라도 부디 마침표 없는 쉼표의 삶처럼 살아주길 바라게된다. 북극성으로 가지 않기를, 그리고 같은 세상에서 숨쉬고 버텨내길 바라면서.



📖기억하는 건, 발_ 득이 될 것 없는 상황에 나서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과연 이들 모두 신고를 하고 경찰의 질문에 곧이곧대로 대답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인간은 모두 이기적인 존재니까.

율이 과거의 기억에 묶여있을 수 밖에 없는 과정. 눈앞의 아버지를 잃게되는 순간.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없던 상황. 그렇게 살아 난 사람이 아버지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 그리고 그렇게 살았음에도 잘 살아내지 않고 있음을 인지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마음의 단호함. 사춘기 마음의 방황보다 더 아픈 사랑하는 이의 상실과 그 모든 이유가 자신에서 온 것이라 여기는 과정을 통해 아이는 생각보다 더 많은 고통속에서 살아내는 중임을 보였다. 병원의 치료만으로도 해결이 될런지, 어떻게 해야만 이전의 모습, 아니 지금보다 나은 상태가 될런지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이 아이의 불안정한 시선과 괜찮은척 하려는 말투들에 마음이 쓰였다.


📖한밤의 거래_ 타인 같은 건 생각할 여력도 없거든.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곧 익숙해지는 거야. 원래 그런 집이라고 받아들이면 그만인 거지.

학교 생활의 윤택함을 위해 일부러 친한척 하려했고 관계의 이유를 만들었던 또래지만 역시나 그 구성원들도 각자의 고민과 각각의 슬픔을 겪어내는 중임을 알게된다. 잘 사는 집 아이, 재능있는 아이, 그래서 모두의 인기를 받는 아이라 생각했지만 그러한 진욱 또한 누구에게도 말못할 가정사가 있었고, 감추고 싶고 다들 몰라주길 바라는 곪아버린 아픔이 있었다. 바로잡거나 어떻게든 전환시키기보단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마음을 닫아두면 그만이라 여겼던 진욱을 통해 그 것이 옳은 답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된다. 율은 진욱도 진욱의 아버지도 어떠한 필터 없이 직관적으로 바라본 사람이니까. 모든걸 다 안다는 듯한 말보단 담백하게 진실된 한마디로 스스로 답을 찾아가도록 해줌 이 부자간의 관계도 조금씩 달라지는 과정을 만나게 된다.


📖강한 사람이 되려고_ 지금은 엄마가 나를 지켜 주지만 엄마는 늙어 가고, 필연적으로 언젠간 나보다 약해질 것이다. 그때가 닥치기 전에 나는 강해져야한 한다. 감정을 죽이고, 타인을 버리고, 오직 나의 이득만을 위해서. 그래서 지금까지 강한 인간이 되기 위해 달려왔다.

율은 자신의 상처를 오롯이 본인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부재를 어떻게든 메꿔야한다는 의무감도 갖고 있었다. 누가 강요하지 않았으나 스스로 그리 해야됨을 느끼는 삶. 그래서 나약해져서도 안되고, 철없이 굴어서도 안된다는 자기검열속에서 애가 애처럼 굴지 못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음을 느낀다. 자신의 몫의 아니라 아버지의 역할까지 해내야 함을 살아있으니 그렇게 살아낸 댓가를 치르듯 얹어진 무게였다.



📖각자만의 세계_ 어쩌면, 아주 어쩌면 말이지, 사람들은 모두 각자만의 세계를 가진 외계인일지도 모른다.

가난을 숨겨야했던 진욱, 또래의 중심이 되고팠고 모든 소문의 근원으로 인기를 바라던 동휘의 세상, 공부도 잘하고 자존심도 세지만 강한 자존심만큼 자존감을 가지지 못한 민우의 세상도 그랬고, 이곳이 아니라 자신만의 별이 있었으며 이름도 도해가 아닌 북극성으로 불리우길 바라는 부디 반짝이는 삶이길 기대한 도해의 세상까지. 비슷할 수는 있으니 같을 수 없는 아이들의 세계를 통해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순 없겠자만 그래도 이해 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을 평생 반복하며 살아야하는 삶인것을 알려주었다.



📖쓰레기 집_ 자식에게 부모는 세계야. 싫어도 애정을 갈구하게 되는 세계.

밉다고, 싫다고 하지만 말만 그러 할 뿐 완벽하게 미워하고 없어지길 바랄 순 없는 내 세상의 시작점. 자식에게 부모는 그러한 세상의 시작점이다. 미워하리만큼 사랑하고 매번 그리워하고 손길과 시선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그런 감정. 그래서 도해도 그 집에서 더 멀리 도망치지 못했고, 율은 얻어진 삶 만큼 더 완벽하게 살고자 마음의 갑옷을 채웠고, 진욱은 아버지가 좋아하는 축구에 목메듯 모든걸 걸었던 과정을 통해 이 아이들이 너무나 사랑하니까 사랑해서 그렇게 바뀔 수 밖에 없었음에 짠하고 가엾게 느껴졌다.


📖쓰레기 집_ 별이 아름답다는 낭만적인 이유에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고개를 숙일 수 없었기에 별을 볼 수 밖에 없었다. 아래를 보는 순간 비참한 현실을 맞닥뜨릴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비참하지만 그 세계마저 자신의 마음대로 바꿔버리면 껍데기만 있던 엄마마저 사라질까봐 그 곳에서 버틸 방법을 찾은게 고개를 올려다 보는 법이었던 도해. 북극성이 얼마나 반짝이던지를 알아차려주던 율처럼 어떻게든 다시 도해가 자신의 구역에서 반짝이고 살아있음을 알려주길 바라게되는 마음. 졸업식에도 나타나지 않았고, 프롤로그에서도 잘 살고 있다고 명확하게 알리진 않았으나 율의 노트가 다시 돌아 온 것 처럼, 그렇게 멀찍이 떨어져 있더라도 꾸준히 빛을 내어 알려주는 북극성처럼 도해도 그렇게 빛나고 있길 기대하게 되는 끝맺음이다.


'난생처음 타인의 시선이 궁금해졌다.'는 말.

발밑 아래만 보던 강율이 하늘을 보게 만드는 순간, 그리고 고개를 떨구지 않고 눈을 보며 그 사람을 궁금해하고, 눈빛 너머의 생각들에 관심이 생기는 과정. 안으로만 파고 들던 마음을, 제자리걸음만 하던 표현의 방식을 진욱과 지민, 도해를 통해 드러낼 결심을 먹는 것. 그렇게 변해가고, 몸이든 마음이든 지금보다 한뼘 더 키워 나가는 것. 그렇게 율이가 바라보는 장면 속에서 어떻게 버텨내고, 기다리며 기대하는지를 따라가는 과정.

설령 모두를 만족시킬 해피엔딩은 아닐 지언정, 그래도 일말의 기대를 하게 만드는 열린 결말의 마침표가 있는 듯 하여 마음을 놓이게하는 끝맺음까지. 율의 시선을 따라가보길 잘했다 싶은 마음과 함께, 섣불리 조언하지도 다그치지도 않고 기다려봤던 마음의 진득함이 헛된게 아니었음에 또 한번 감사해지는 글로 문장속에 녹여진 아이들의 말과 눈맞춤에 어른의 내가 또 한번 위로받고 마음의 평안을 찾게된다.


📖제17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가제본 서평단이되어 도서만을 제공받고 작성된 기록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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