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문학과지성 시인선 601
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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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터가 왈랑거리게 만든다.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이 있던가? 를 묻는건지, 아니면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이 있었지로 마침표를 찍는 자문자답의 과거회상형인지를 궁금하게 만드는 말이다. 이건 저자가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를 담았으며, 동시에 독자들에게 그대들에게도 이러한 시절이 있었느냐고 물으며 이 책으로 인해 과거 여행하듯 당신의 사랑이 차고 넘치던 시절로 가보자며 추억팔이 하게 만드는 시집으로 보였다.

애닳고, 구구절절하며,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짠한 사랑을 수없이 해본 능력치는 없으나 적당히 서럽기도 했고, 적당히 간절하기도 했던 청춘의 순간이 있었으니 결국 이 시집의 제목에 해당하는 '사랑의 바보'로서 내 애정 루트와 저자가 말하고자하는 사랑의 방향이 같을지 다를지를 생각해보며 짧은 문장 긴 여운 속으로 빠져들어 보게된다.


📖농밀_ 당신의 눈에 빛이 비치기 시작합니다 / 사랑은 그런 것입니다

당신 눈 속에 반사된 풍경 안에 / 내 모습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 사랑은 그런 것입니다

이 제목을 보고 짙고 빽빽한 무언가를 떠올려야 할까? 아니면 서로의 관계가 두텁고 가까운 것으로 정의해야할까? 상대를 향한 마음이 촘촘하고 빽빽해서 다른 무언가가 스밀 틈이 없음으로 그만큼 우리로서 관계가 두텁고 가깝게 여기고픈 욕심 가득한 마음으로 크게 에둘러 생각해야 할까?

서로를 향하는 눈빛의 온도는 지금의 계절만큼이나 뜨겁고 진득하다. 그렇기에 유독 더 반짝일 것이다. 그리고 더 유심히 들여다보면 상대가 보고있는 프레임속에는 항상 '내 모습'도 함께 들어가 있을 것이다. 모든 시선들이 '서로'를 기준으로 삼았을테니 말이다. 그러니 어느 풍경이든 어떤 배경이든 내모습이 기준이 되어 계절과 시간을 살아낼 것이다. 그만큼 다양한 프레임이 존재 할 테지만 겹쳐 보이는건 네가 바라보고있는 내 모습일것이고 나 또한 내가 보고있는 네 모습이니 이 모든게 진득한 관계 일 수 밖에 없다는 표현이다. 다만 마지막에 적어둔 '별이 바람에 흔들릴 때면 / 당신 눈동자가 흔들린 거라 믿게 되었습니다'로 미루어 보아 혹여라고 굳건하던 시선이 옳게 마주 보기 어려워지고 외면하려고 한다면 가장 먼저 알아차릴 네 눈속에 내가 있을테니 그것만 기억해달라는 간절함이 보여졌다.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_ 이렇게 어디까지 좋아도 될까 싶어 자격을 떠올렸던 적

산 사람을 모방하고 열렬히 동의했던 적 / 나를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 만들고 / 내가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조차 상실한 적

마침내 당신과 떠나간 그곳에 먼저 도착해 있을 / 영원을 붙잡았던 적

그렇다. 이 감정은 병이다. 그래서 치료도 필요하고 예방도 필요한데 생각만큼 약발이 잘 듣지않아 애를 먹인다. 손을 씻어 세균을 털어내듯 시선을 거두어 감정의 감염을 차단하기도 어려운 질병이다. 모든 시작은 당신으로 시작했고, 그 끝도 당신으로 끝나길 바라지만 그렇지 않다는걸 이미 알기에 영원을 붙잡고도 애원하고픈 마음이 마지막 문장에 담겨있다. 나는 왜 이 시를 보면 에픽하이의 LOVE LOVE LOVE라는 노래가 생각이 날까.

사랑이라면 모든걸 내어두어도 아깝지 않을 청춘이 시작되던 스무살에 들었던 노래이며 짝사랑에 진득하게 취해 있던 그 해 겨울 이 가사때문에 꺼이꺼이 울게 만들었던 것이 지금 이 시의 구절과 닮아있다. 노래 가사중에 '이 세상의 모든 이별 노래가 당신 얘길거라 생각해 본 적'이라는 파트가 있다. 그러고보니 문장의 끝마다 '~적'이라며 내가 하던 행동들이 다 이 때문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게 아니었다면 이러한 행동들이 수반되지도 않았을 것이며, 이러한 생각 자체도 하지 않았을테니 이토록 미련한 행동들과 상황은 결국 다 사랑한 적으로 시작된 눈물나게 씁쓸한 결과물이기도 했다. 그 누군가는 이 맘을 모를 것이고 말다.




📖과녁_ 사랑이 끝나면 / 말수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이 되어 미쳐 다닌다

사랑의 끝은 행복이 아니라 남남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 모든 감정과 상황을 쓰레기봉투에 꾹꾹 눌러담고 싶게 만드는 엔딩. 그래서 결국 그와의 사랑은 쓰레기통에 쳐 넣을 만큼 보기싫고 담아두고 싶지 않아 미간을 찡그리게 만든다. 모든 화살의 끝은 그로 정해두고 싶은 것이다. 누굴 탓하겠나 싶어하며 그 사람을 과녁에 박아두는 것이다. 손으로 셈을 할 수도 없을 많큼 행복했고 사랑스러웠으며 기쁘기도하고 소중했던 기억마저 쿡쿡 찔러가며 시절 자체를 부정하게 만드는 사랑의 끝. 같은 단어와 같은 장소, 같은 사물을 보고도 사랑을 하던 순간과 사랑을 끝낸 순간엔 모든 의미가 달라지고 보여지는 형상조차 달라진다. 사랑의 언어가 풀어주는 의미와 그렇지 못한 지금의 내가 두껍게 칠하며 부정하는 그 의미들. 그토록 보기싫고 지워버리고 싶은 사랑인데, 과연 우리는 그 사랑을 덮어버릴 만큼의 더 크고 두터운 사랑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단지 그와 나눴던 사랑의 언어가 옳게 해석되지 못했을 뿐이고, 그 언어를 척하면 척하고 알아줄 공용어를 사용하는 누군가를 만나지 못했던 것이라 여겨주면 좋겠다. 사랑의 언어는 잘못이 없으니까. 그 의미를 잘못 해석하고 표현한 사람이 잘못한 거니까.



📖그네_ 당신을 쫒는 것은 답이 아닐지도요

어제의 세계와 그 세계를 갉아먹었던 불순한 버릇들과 꽃은 왜 이리 붉은 것인지에 관한 의문들을 선명하게요

되뇌이며 말을 하지만 모든 문장의 끝엔 확신이 없다. ~것일지도, ~겠지요, ~아닐지도요 로 끝맺음을 하는 걸 보면 지금 믿고 싶은 이 감정의 확신이 무조건 적인 응원과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음을 내비치는 확고하지 못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이 시의 시작이 '그래도 가려 합니다'로 먼저 마음을 툭 하고 던져둔건 아닐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당신으로 인해 이 세계가 듣고 싶은 이야기와 하고 싶은 이야기 뿐이니 부디 나와 당신이 아닌 다른 이들이 하는 말이 듣기 싫은 것들로 가득하더라도 나만이라도 듣고 싶은 것들로 덧씌워 받아들이고자 하는 다짐으로 보였다. 두 눈 질끈 감고 감내하겠다는 다짐이다. 내 마음을 밀어 당신에게 다가 간 만큼이 느껴진다면 당신도 딱 그만큼이라도 마음을 밀어 보여주길 바라는 기대감이 가득한 단어들까지. 당신을 쫒아가며 애닳게 향하는 마음이 타인이 보아도 아니라 할 지언정 확고한 답이 없음을 빤히 보아도 그래도 가려하는 거니 내가 밀어 보낸 마음 딱 그정도라도 표현하며 알고 있음을 표현해주기 바라는 간절함. 그러니까 들켜도 되는, 들키고픈 마음이 가엾게 여겨진다.

모두가 축복하고 응원하며 기대하게 만드는 사랑은 굳이 내가 아니어도 힘을 싣어 줄 테니 애걸복걸 하는 마음이 앞서지않았다. 다만 한쪽만 애절하거나 빨리 이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상황. 분명 애타는 마음을 알텐데도 모르고 살고자하는 이를 보며 유리벽 앞에서 사랑을 내밀지 못하는 가여운 마음에 우리는 더 동요하게된다.

내가 좋아하는 이도우 작가님의 문장이 머릿속에 가득해지는 순간이다. '당신의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도 무사하니까.'

그 무탈한 사랑이 제일 어렵다. 그래서 우린 이 이야기에 내 한 시절을 뜯어내어 빨리 딱지가 앉아 더 아프지 않길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겹쳐있는 쓰린 순간을 켜켜이 덧대어 놓아보면 그 순간의 선택 덕분에 내 사랑이 더 외롭고 아프게만 남지 않을거라는 기대를 하게된다. 제발 그러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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