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보이네 - 김창완 첫 산문집 30주년 개정증보판
김창완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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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쓴 글 8편과 직접 그린 그림 20점을 더해 나온 책. 가수, 연기자, 라디오DJ, 화가의 김창환이기 이전에, '사람'김창완의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에세이. 회고로서의 글들이 아니라 그 시절 한 컷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글 속에서 여전한 저자의 감성을 느낀다. 따뜻한 시선, 담백한 성찰, 좀 더 괜찮아지길 바라게되는 내일의 무탈한 하루를 기대하게 만드는 글이다. 글을 읽고 있노라면 나래이션을 해 주고 있는 듯한 아저씨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할 테니 이 담백한 글들을 통해 삼삼한 생을 바라게된다.



📖아픔 담아둘 서랍 하나_ 그러니 괴로움도 아픔도 없애려 하지 말고 다 담아두세요. 이것도 내 건데. 그리고 나중에 보면요, 거기서 심지어 향기도 나요. 그런 것들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거 아니겠어요?

나이가 들어서 느끼는 상실감은 어릴적 느끼던 감정과는 사뭇 달랐다. 어린시절에 반해 상처가 나더라도 아무는 것이 더디기도하고, 더 쓰리게 느껴지는 것. 아파도 티를 내어선 안 되는 듯 하다. 여기저기 투정부릴 곳도 마땅치 않아 속앓이만 하다보면 곪아지는 마음도 눈에 보이는 상흔도 아리게 다가온다. 그렇다보니 줌치 저 구탱이로 몰아넣고 영영 안 꺼내고픈 마음으로 몰아 세운다. 허나 마음이 단칸방인데 그리 쥐구멍처럼 쑤셔둔들 뭔 소용일까. 그러니 그냥 두자, 그냥 냅둬 버리자! 두어도 괜찮을거다. 다만 너무 미워만 말자. 그 순간에도 나였고, 그걸 버텨낸 것도 나니까. 쟤를 지우려하면 나라는 존재 자체도 일부 소실되는거니까.




📖당신이 지금 어디에 있든 사랑하라_ 당신이 지금 어디에 있든 사랑하라. 그리고 기뻐하라. 삶은 고달프지만 아직 더 먹을 나이가 있다. 그때까지 기다려라. 비록 임종일지라도.

채 열 살이 되지 않은 아이들, 스무 살이 된 청소년들, 스물 몇엔 '~님'이나 '~씨'로 불리울 당신들, 세상이 익숙한 서른 즈음의 당신들, 익숙을 넘어 우화(羽化)해진 마흔 대여섯의 그대들, 새삼 모든게 다시금 새로워보이지만 정작 자신은 묽어진 쉰의 여려진 시절까지. 우린 이렇게 몇 번의 과정을 넘어왔고, 몇 번의 계절을 돌아 내고 있었다. 때 마다, 철 마다 저자는 사랑하라 말하고있다. 이 찰나를 지나쳐버리면 다시 오지 않을 순간임을 알기에 아주 노력하여 사랑하며 기뻐하라고 말해준다. 당신이 살아봤는데 어떠한 문명의 발달이 온들 세월은 역행 할 수 없고, 다시 살아볼꺼라고 되감아 버릴 수 없는걸 알아 더욱 진심을 다해 말해주고있다.

이렇게도 사랑하고, 저렇게도 기뻐하다보면 삶은 생각보다 유순하게 흐르고, 다음 연령 회차의 사랑이 기대되기 때문이겠지.

어떤 이는 사랑하기도 부족한 시간이라 했고, 또 어떤 이는 사랑하기 딱 좋은 날이라 하지 않던가. 나보다 한 줌이라도 더 산 사람들이 해준 이야기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느낀다. 겪어 본 만큼의 사실감 넘치는 조언은 없으니까.



📖주정뱅이 올림_ 오늘 꼭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 '축하합니다'라고 쓴 편지.

오늘 꼭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은 / '사랑합니다'라고 부른 노래.

백만 송이 꽃보다 더 주고 싶은 것은 / 당신이 조각한 내 속의 나.

하늘보다 땅보다 더 주고 싶은 것은 / 내가 조각한 내 속 당신.

주정뱅이 올림.

이 주정뱅이 아저씨를 어찌할꼬. 잠시라도 한량이 되어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술의 힘들 빈다는 걸 알기에(어머니는 이 사실을 알게되면 또 나무라실게 뻔해보인다. 나이들어도 말 안 듣는 아들인걸 아시겠지만 걱정을 그득히 하시겠지) 아내는 가시돋힌 말 대신 북엇국으로 남편을 달랜다.(이렇게 달래주니 아저씨는 더 미안해 했겠지) 어쩌면 짠하고, 또 어쩌면 한 없이 측은한 사람을 대하며, 저리라도 풀어내야 살지 싶은 안쓰러움이 그득한 아내의 말에 저자는 정신이 번뜩 든다. 그리고 아내의 학위 수여식이 오늘이라는 것도 알아차리며. 짧막한 시에 마음을 전하는 저자만의 애정표현을 들여다본다. 때론 구구절절한 사랑의 말보다, 두손 두둑하게 만드는 애정의 물질화보다, 담백하고 응축된 애틋함의 마음. 그리고 반성하고 있노라는 글쓴이의 닉네임까지. 한 없이 쭈구러든 덩치로 아내를 맞이할 저자의 현관앞을 생각하면 비식비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진짜배기 기다림_ 그들은 행복을 기다린다. 성급한 사람은 이런 기다림 자체가 곧 행복일지 모른다고 애써 행복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행복은 착각과 다르다. 행복은 조건을 바라지 않는다. 기다림이 행복을 향한 길일 수는 있으나 행복 그 자체는 아니다.

행복을 향하는 길에서 벌써부터 행복하다 여기는 착각. 그 과정부터가 즐거운 마음이겠다만 오롯한 행복의 자체는 아니라는 점. 그래서 어렵고 단정짓기 어려운 마음이다. 기다리는 행복, 향하는 행복, 도달한 행복, 회귀하는 행복. 행복을 꾸며주는 단어들이 달라 행복인지 아닌지 아리까리해지는 틀린그림찾기 같은 감정들.

지금의 내가 겪는 감정은 진짜배기 감정일까 진짜배기에 닿기 위해 한 없이 달려가고있는 순간의 감정일까. 화려하게 꾸며진 것보다 수더분하고 푸석한 찰나를 사랑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며 진짜 남편과 아내라면 나는 거진 도달한 상태라고 믿고싶어지는 마음의 결이다.



📖길은 자신 안에 있습니다_ '남의 길 기웃거리지 말고, 너의 길을 걸어라.' 어떤 청춘이라도 겨울나무가 가진 잠재력이 있거든요.

저자가 딛은 길마다, 갈려진 방향마다 선택했던 찰나를 적어두었다. 후미진 구석방에 살 시절, 면접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지만 차비가 없어 한참을 걸어야 했던 그날의 도로, 나 하나만 건사해도 될 순간을 넘어 스물여섯에 아이를 낳아 아버지가 되어 했던 다짐. 자신의 삶에 있어 이러한 것들이 제일 커 보이는 결심의 정점이라 여기지만 결국 매 순간 선택했고, 그 이전에 고뇌했던 순간이 있음을 알렸다.

거창하다 여기는 것 말고, 매일매일 해내야 하는 일들 속에서도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못하겠으면 한번 정도는 빙 둘러도 가고, 영 자신이 없다면 오늘은 못하겠다고 말끔히 두 손을 머리위로 번쩍 들어보는 깔끔한 포기. 다 해내야하고 다 이겨야하고,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것도 죄다 나여야 함은 아니라고 알려준다. 못하겠으면 돌아도 갈 수 있는 미련 없는 이른바 개쿨한 마음. 못했다고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진 말자고 말한다. 스스로 초라하게 여기는데 어느 누가 자신을 귀히 여겨주겠냐는 마음으로 자신을 애틋해하고 그래도 된 다는 마음을 새겨보게 만든다.

내 삶은 고속도로의 초록, 분홍으로 그려진 유도선도 없고 구간단속으로하며 다그치는 지점도 없다. 쭉쭉 직진이 가능하고, 가끔은 오른쪽으로 빠져 우회해도 되는데 모두가 추천하는 최단거리만 생각한 내 삶의 방향을 반성하게 만든다.



공기가 부드러워진 봄날의 어떤 하루. 책이 주는 온도와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봄바람의 촉감이 닮아있어 더욱 집중하게 되어 글 속에 흠뻑 젖어들게 만들었다. 과장도 미화도 없어 담백하지만 그렇다고 밍숭하지 않은 글. 책 속에 남겨있는 아저씨의 구석구석을 보며, 나 역시도 모순과 결점을 폐기하지 않고 남겨두었다가 잘 숙성된 청춘이었노라 말할 수 있는 인생을 바라게된다.

드라마 삼순이의 초콜릿 상자처럼, 또 창완아저씨가 말했듯 삶의 순간 대신 입속에 훅 하고 털어넣을 쓴 커피처럼, 나의 순간이 좀 더 부드럽고 달게만 느껴지길 바라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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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사람
이창섭(BTOB)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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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그룹 비투비의 멤버보다 솔로가수의 이창섭보다 나는 뮤지컬 배우로 전환한 가수이자 유튜브 전과자를 이끌어가는 진행자로서의 저자를 더 많이 찾아 본 것 같다. 본업 만큼이나 부케의 활약도 잘 하고있는 부지런한 사람. 팬이기 전에 그저 한명의 유튜브 구독자로서 봐도 이 사람의 머릿속은 한 수 앞보다 두어 수 먼저 내다보고 말하며 허허실실 하는것 같아도 자기만의 선을 지키며 사는 제법 강단있고 줏대있는 청년같다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에세이도 궁금했다. 그 치열하다는 아이돌판에서도 버티고, 그룹에서 솔로도 활동, 아이돌 출신이 뮤지컬 배우를 했을 때 갖게되는 편견을 버리게 만드는 노래 잘 하는 사람의 모습. 자신의 능력을 움켜쥐기 보단 아카데미 운영을 통해 그간 얻어온 귀한 스킬을 알려주는 트레이닝 코치로서의 면들까지. 단순히 유명해지고싶고 인기를 얻고싶은 열망보다는 나이가 들고 흐름이 바뀌면 또 그에 맞춰 자세를 고치고 꾸준히 자신을 찾게 만들려는 능력을 쌓고있는 내공 수집가의 모습이 보였다.


📖적당한 사람_ 누군가 날 필요로 할 때는 주변에 있는 듯 존재하는 사람이었다가, 또 누군가가 날 필요로 하지 않을 때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수도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사라지지 않기 위해 억지로 흐름을 거슬러 가려 애쓰지 않고 그저 적당하게 존재했으면 좋겠다.

지금 나는 적당한 사람일까.

호흡이 긴 글이 아니어 좋았다. 때때로 느꼈던 감정들을 지루하지 않게, 이것저것 꾸미는 단어를 덕지덕지 붙여넣지 않은 담백한 것이 일상의 독백처럼 느껴지는 글들. 출간을 위해 작정하고 쓴 글이라기보단 이전부터 자신의 태블릿이나 폰에 적어두지 않았을까 싶은 익숙한 단상의 구절이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하며, 이 단편의 주제이기도 한 '적당한 사람'. 그는 지금 자신이 적당한 사람이라고 마침표를 찍기보단 수 많은 물음표를 숨겨두고 있었다. 매번 의심하고 매번 되묻는 과정을 반복하는 듯 보였다.

'감당할 수 있는 선이 맞춰진, 그 선을 내가 잘 유지하고 있는 조화로운 상태'를 지향하는 사람을 기대하는 삶. 한 쪽에선 가득 누렸다면, 또 다른 편에서는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만큼은 내어주어야 하는 균등한 주고받기가 이뤄져야함을 알게한 사회생활의 해탈형 자세.

현명하게 조율하는 것에 마음을 열어두고 애쓰고 있다면 이미 균형을 잘 잡고 가고있다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일단 알고 있잖아? 어떻게 해야 괜찮은 사람이며, 괜찮은 삶인지 인지하고 있으니까 분명 자분자분 잘 걸어가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궁금하다. 이 사람의 내년과, 또 몇년 뒤의 모습이.


📖잘 서 있기_ 무대에 뿌리를 내린 깊이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배역으로서 잘 서 있고 잘 걷기 위해서는 무대 위에서 겪는 압박과 쏟아지는 에너지를 견뎌내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런 훈련은 단기간에 열심히 연습한다고 바로 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균형잡기'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한 쪽으로 치우지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꼿꼿한 자세와 마음으로 흔들림 없이 잘 가고 있다는 뜻이니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어느 한쪽에서 끌어 당기는 마음의 요동이 일더라도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의 가장 뚝심있는 올곧음을 좋아한다.

거기에는 온전한 나의 힘도 필요 할 것이고, 귀동냥, 어깨너머의 터득도 중요하다. 저자는 선배들의 모습에서 장기간의 훈련과 꾸준한 연습, 그리고 그걸 기다려주고 차곡차곡 얹어질 시간을 배운다.

혼자 파고들고 연습을 한다고 바로 결과가 보이지 않음을 자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수 많은 발구름을 통해 자신을 받치고 있는 땅이 단단해지는걸 믿는 마음을 북돋워주고 싶다. 콩나물처럼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게 보이진 않겠지만 야금야금 알듯말듯 자라고 있을 테니, 계절이 변할 즈음 나도 모르게 쑤욱 자라있고 어지간한 바람에도 무던히 서 있을 모습을 기대하게 만든다.

한 없이 자학하고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는 나로서는 저자의 멘탈이 부럽다. 스스로의 존재 자체를 믿는 것도 있지만, 자신이 하는 행위에 대한 자기 확신도 있어보이는 확고함이 부러워지는 단편이었다.



📖건강하게 내 탓_ "네가 뭘 바라기 전에 그 사람이 해주고 싶어질 수밖에 없게끔 만들어져 있어야 해. 뭘 탓하기만 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너에게 뭔가 해 줄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도록 노력해봐."

겸손이 미덕이라는 주입식 교육이 스스로를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그렇다보니 다른 이들과 반대로 나는 잘 되면 남탓, 못 하면 내탓을 하게되는 자학형 인간으로 자라고 또 그리 지내고있다. 타고난 성정이라 할 수도 있겠다만 쉬이 변하지 않는 얕은 자기애는 계속 이렇게 탓하며 사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셀프 피곤을 자처하는거지.

내가 생각하는 탓하기 와는 반대로 겪어내는 과정이더라도 맘고생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한 갈대같은 마음을 잡아준 저자의 스승이 건넨 이야기. 기회가 생겼을 때 그걸 받아낼 수 있는 준비가 잘 되어있다면 흘러가버리지 않을 것이며, 마냥 바라고 원할 때 보다 더 좋은 제안과 일이 돌아오는 것. 탓하고 자책하기에는 다음 회차의 내 순서만 더 멀어질 뿐이다. 이래나저래나 결국 내 손과 발이 바지런하다면 결국 닿게 되어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나보다.



📖무탈한 하루_ 일상의 슴슴함에 초첨을 맞추면 사소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잦아짐을 느낀다. 오전에 집에서 내려 마시는 커피 한잔이나, 하늘에 신기한 모양으로 떠 있는 구름에게 집중할 수 있는 무탈한 하루가 좋다.

아등바등하는 순간도 있어야겠지만 깊게 숨을 내 뱉으며 숨고르기의 과정도 필요하다는 걸 알려주는 단편이었다.

저자나 나나 가장 부지런히 움직이며 열심히 사는 것이 기본 옵션이라 생각하는 세대이다. 30대는 그렇다. 잘 하려면 시간도 쪼개어 잘 써야하고 그 틈마저도 다음을 위한 발판이라 여기고 자세고치기의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기 때문이다. SNS를 보면 죄다 돈도 잘 벌고, 좋은 집, 좋은 차를 갖고 모두가 부러워 할 만한 삶을 살고 있더라. 그래서일까? 나만 뒤쳐진다 여기고 여기보단 나은 곳에 간다면 지금 내 처지보단 나을거라는 기대를 갖고 쉼을 포기하게된다. 헌데, 때때로 기계도 쉬어줘야하고 쉬는 동안 기름칠도 곳곳에 해 주어야 가성비가 좋다는 것. 그게 기계든 사람이든 결국 매한가지라는 걸 말하는 '일상의 슴슴한'이다.

나는 지인들과 이야기 할 때 '무탈한 하루'에 대한 단어를 자주 쓰곤 하는데 저자도 같은 맥락의 의미를 좋아하나보다.

뭔가 특별하고 대단하진 않더라도 그냥저냥 흘러가듯 무난하더라도 모나지 않는 순간도 있어주길 바라는 삶. 그래서 나의 마음이 유순하게 흘러 애쓰는 과정이 없이 유영하길 바라는 휴식의 과정. 장거리 마라톤에서도 긴 레이스를 이어가는 동안 물도 먹어주고, 간식도 섭취하고, 발목도 풀어주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까 우린 생각보다 긴 트랙 위에 있는 장거리 선수니까 저자가 일러주는 무탈한 하루의 어떤 것들을 조금씩 챙기며 제 몫의 쉼과 슴슴한 여유를 한 줌씩 챙겨봤음 싶다.


어려운 단어들을 나열하며 자신을 있어보이게끔 꾸미지 않는 글이라 금새 읽어지는 청년 이창섭 이야기. 동시대를 살고 있는 또래의 이야기이며 직군이 다르더라도 결국 비슷한 생각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더 잘 하려고 애쓰는 마음은 특정한 업을 가진 이라고 마음이 달리 여겨지지 않다는 점. 그도 결국 애쓰고 있었다. 이미 성공한 사람인 것 같은데 자신은 더 잘하고픈 마음이 가득한 제법 욕심이 많은 사람. 저 사람도 이토록 애쓰며 사는데, 내가 뭐라고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살았을까 싶은 정신차리게 만드는 바지런한 이와의 담화와도 같은 글.

덕분에 이창섭저자와 담백하게 이야기 나눈 듯 해서 마음이 한결 가뿟해진다. 이제 큰 고민 말고 각자가 자신이 여기기에 적당한 사람으로 잘 빚어 맞춰지도록 순박한 미소와 그렇지 못한 바지런한 마음과 행동만 있다면 각자의 몇 년 후가 더 단단해지지 않을까. 몇 년 후 만난 이창섭의 이야기가 또 출간된다면 지금보다는 확실히 굵고 묵직하리라 믿음을 보태본다. 나도 그 때 까지 좀 더 뚝심이라는 근육을 붙여보며 자랑하길 기다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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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 - 식민지 조선을 위로한 8가지 디저트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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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난 조합의 제목. 호떡, 그리고 초콜릿. 둘다 내가 애정하는 주전부리들. 언제가 시작이었는지는 모르나 내 어린 시절과 지금까지 달콤한 기억으로 가득한 음식들. 한국으로 넘어 온 후 세월이 흘러 이제는 한국에 없어선 안될 존재로 한자리 꿰차고 있는 것들에 대한 기록이다. 커피, 만주, 멜론, 호떡, 라무네, 초콜릿, 군고구마, 빙수. 어떤건 배곯는 서민의 주식과도 같은 것이 있을 수 있고, 또 어떠한건 내가 그만큼 여유있는 삶을 즐기고 있다는 부유의 표현법이기도 했던 것. 시대에 따라 대변하게되는 음식의 분위기. 그 시작이 어디인지, 어떠한 풍파를 겪었고, 어떻게 세월을 넘겨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국내 유일 음식문학연구자가 풀어내는 음식과 근현대사의 이야기. 시험에만 나오는 근현대사보다 때때로 이렇게 음식과 결을 나란히 두며 시대상을 논하다보면 한국사가 더 친근하고 재미가 난 다는 것.


역시나 내가 좋아하는 것에 가장 먼저 손이 간다. 각각의 음식에 따라 그때그때 마음에 드는 걸 선택해서 읽어도 되는데, 1장부터 커피라니. 그럼 무조건 1장부터 시작해야지. 소제목을 보면 도취, 낙, 핫한, 고독이라는 단어들을 볼 수 있다. 맛이나 향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음식을 마주하고 대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무드를 무시 할 수 없는거지. 지금이야 가장 만만한 음료가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카페인으로 각성하기 위해서 아침 댓바람부터 빈속에 콸콸 들이붓는 실정인데 확실히 현재와 과거에 커피를 대하는 마음은 다르며,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용악 시인의 '다방'전문을 보고있자면 '고단한 삶의 여정에 지친 무리들이 모여드는 항구'에 비유함을 볼 수 있다. 이 시대는 식민지의 시대상, 그로인해 유쾌하지 못한 사회에 지친 젊은이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공간이며 거기에 곁들여진 음료였다. 살을 에는 추위를 뚫고 포근한 온도와 향기 가득한 커피가 있는 곳이라면 마다할 일이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 고단한 삶에서 좀 쉬어볼 곳이 이 곳이며 내 앞에 놓여진 한 잔의 커피라고 생각했겠지. 낙이자 오아시스였고, 그러니 더욱 깊게 도취되는 순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걸 알려준다.

그렇지 모. 다들 사람 사는게 똑같으니까 시대를 구분짓더라도 느끼는 바는 비슷할꺼야.

여기 있는 음식들은 읽는 독자마자 자신만의 추억거리가 한두개 쯤은 있을거다. 처음 마셔봤던 한약같던 쓴 커피의 짜릿함, 친척 결혼식에 갔다 뷔페어서 처음 만났던 달콤한 멜론, 엄마랑 시장 나들이 갔다가 찰랑이던 마가린 기름 속 뜨끈한 보름달 같던 호떡, 먹어도 먹어도 성에 안 차던 달콤함과 짜릿함의 초콜릿, 초등학교 여름방학 슈퍼에서 사온 반찬통만한 얼음을 넣어 집에서 갈아만들어 먹었던 아작아작 씹히는 시원달콤한 빙수까지.


나의 시절엔 총 8장의 음식들이 촘촘히 박혀 나를 만들어 두고 있었다. 80년대생에게도 이러한 추억이 그득하니 진짜 살아있는 근현대사를 같이 버텨온 음식임은 분명해보인다.



값싼 것이며 간단한 학생료리의 5전짜리 호떡은 돌아서면 배고픈 학생들의 소울푸드라 봐도 무관하다. 낮엔 호떡이라면 밤엔 만주나 군고구마가 우리의 출출함을 채운 것인데 이것들이 없었다면 우리의 낮과밤은 무지 삭막하고 버석했으리라. 달콤함과 탄수화물이 주는 자비로움은 삶을 윤택하게 하니 이들로 인해 우린 간간히 웃고 간간히 즐거웠음을 조선일보 1957년 1월의 삽화에서 든든함을 가늠해본다.


내가 기억하는 초콜릿의 정의는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순이가 했던 대사에 스며들어있다. "초콜릿 상자엔 한 사람의 인생이 담겨져 있거든요. <포레스트 검프>라는 영화 보셨죠? 거기 보면 주인공 엄마가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거다. 네가 무엇을 집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제가 무엇을 집느냐에 따라서 많은 게 달라지거든요, 아주 많이요. ... ... 좋은 것도 있었고 나쁜 것도 있었고.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그 상자는 제거고 어차피 제가 다 먹어야 하는 거니까요. 언제 어느 걸 먹느냐, 뭐 그 차이뿐이겠죠. ... ... 지금은 생각도 많이 하고 주저주저하면서 고르겠죠. 어떤 건 쓴 럼주가 들어있다는 걸 이젠 알거든요. 또 바라는 게 있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초콜릿 상자에 더 이상 쓴 럼주가 든 게 없었으면 좋겠다. 30년 동안 다 먹어치웠다, 그거예요." 로 표현되는 초콜릿=인생의 연장선이다.

어릴 땐 고백의 표현법, 애정의 상징이라 봤다면 나이가 좀 들어선 인생같이 느껴지고, 또 한편으론 맛있는 저놈의 당스파이크로 얄밉게 보여지기도한다. 시절보다 내가 변한 탓이겠지.

그 '로맨쓰'같은 맛. 발렌타인데이가 생겨나기 이전 식민지 시대의 여러 소설에서도 연인들이 주고받는 사랑의 물질화 기능. 그 달달함이 내가 느끼는 사랑의 맛과 다르지 않았음을 다양한 고전문학을 통해 변함없는 사랑의 상징성임을 또 한번 느낀다.

달콤함이 주는 평온과 위안. 그건 모든 시절을 막론하고 가성비 좋은 위로의 방식이었다.

세상이 언 듯한 겨울. 길거리에서 스믈스믈 피어오르는 가느다란 김. 원통에서 새어나오는 하얀 연기는 긴긴밤 당신을 위해 뜨끈하고 달근한 한덩이를 선사할 준비가 다 되었음을 알려주는 신호이기도 했다. 드라마나 소설을 통해 내가 기억하는 군고구마는 이렇게 밤을 버텨낼 재간을 마련해주는 묵직한 그것이다. 헌데 내가 기억하는건 아빠가 약물에 오랫동안 구워내어 잘 익었나 찔러보면 그 구멍으로 꿀이 폭폭 튀어올라 줄줄 흘러 진득한 달고나를 덤으로 만드는 딸래미들을 위한 아빠표 간식으로 자리잡고있다. 확실히 시대가 변하니 같은 음식 다른 생각들로 겹쳐진다. 요즘은 편의점에서 굽는다지?


화롯불에서 편의점까지 퐁당퐁당 자리 옮김을 이어가는 고구마의 삶. 일본에서 고구마 굽는 방식의 변화에도 변하지 않는건 야키 방식을 해야 더 맛있다고 느껴지는 한결같은 혀의 감각 때문이라 보며 타거나 덜 익은 부분 없이 골고루 구워 알뜰히 먹고픈 마음이라.


당신의 겨울 밤은 만주, 감자, 밤, 고구마 무엇이 있는가? 이도저도 아닌 또 다른 핫한 주전부리가 출출함을 달랠지도 모르지.

그래도 나는 여전히 같은 값이면 군고구마라는 그 말에 동의하게되는 할미입맛이다.

겨울을 폭닥하게 만든게 군고구마 녀석이었다면 여름을 알리는 빙슈, 어름랭슈. '조선어사전'을 통해 다시금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 빙수이야기. 빙수=얼음냉수와 같다=얼음을 섞은 물에 대한 시작부터 이젠 얼린 우유여야만 빙수라 생각하는 시대에 도달하기까지. 아이스크림에 패배했다 할 지언정 우린 여전히 여름의 맛으로 계절이 지나기 전에 한번은 먹어봐야 계절을 잘 났구나 여기는 맛으로 여기고있다.

1928년의 더위를 피하는 방법에 비해 지금은 너무나 다양한 계절나기가 있지만 그럼에도 목구멍을 타고 흘러간 빙수의 서늘함 만은 못하지 않을까 싶어하면서 나의 올 여름은 어떤 빙수로 더위를 멀리해봐야하나 기분좋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


나이는 나만 들었지 싶다가도 이것들이 버텨내고 살아낸 시절에 비할 바가 아님을 느꼈다. 익숙하고 당연해서 예나 지금이나 똑같겠지 싶었던 사사로운 디저트들. 그럼에도 나를 위로하고 나를 끌어올려주는 뚝심있는 한방은 여전해보이는 것들이다.

사회분위기가 바뀌고 훅훅 지나가는 빠른 세상임에도 이 디저트들을 앞에 두고 있노라면 여유라는걸 부리게 된다. 그 묘한 능력이 있어 우리는 또 그렇게 음식앞에서 쉼을 얻고 행복을 야금야금 퍼먹겠지.

역사가 지루 해 질 때 즈음, 근현대사 공부는 해야하는데 도무지 집중이 안 될 때. 아예 손 놓지 말고 시선을 살풋 돌려 디저트로 마주하는 한국근현대사 이야기. 쉬어가는 셈 치고 여기서 알려주는 디저트들 곁에두고 먹으며 공부겸 휴식겸 겸사겸사 책장을 넘기는 과정으로 파고들면 OTT 시대물 보듯 자연스레 쉼과 공부가 곱절로 얻어지지 않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하니포터 10기로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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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 - 우리 근현대사의 무대가 된 30개 도서관 이야기, 2025 한국출판평론상 수상작
백창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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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더한 '도서관 덕후'를 자처하는 이가 책 이야기가 아닌 도서관 이야길 내어놓았더라. '역사책을 소장한 공간'인 동시에 '역사를 바꾼 공간'이니 말못하는 이 녀석은, 내색없이 무던하게 이야기를 품고있는 이 공간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쥐고 있을까를 알은체 해주는 저자.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를 너머 사소한 역사라 하지만 결고 사소하게 넘길 수 없는 진짜 제대로 된 역사에 대한 일화들.

나에게 도서관이 주는 의미 만큼이나 세월이 갖고있는 도서관에 대한 의미. 벽돌책 만큼이나 두텁고 묵직한 시절에 대한 것들을 살펴보며 존재에 대한 이유부터 시작해 도서관을 지켜야하고 키워야만 하는 진심에 대해서도 얻어내어보기로 한다.

생각보다 만들어진 사유를 보면 의외성을 가진 목적이 수두룩했다. 학문의 목적을 방패삼아 자신의 권력을 보여주고자 했던 곳도 있었으며, 일제나 독재 정권에 의해 만들어진 곳, 사람을 모으기 위한 장소적 수단. 내가 익히 아는 도서관에 대한 정의, 단순히 책을 모아두고 학문에 대한 편차가 없도록 시민의 알 권리를 공평히 나누려는 이유는 생각보다 뒷 순위로 밀려있기도 했다. 굳이? 왜? 뭐때문에? 라는 생각보다 그 시절엔 그럴 수 밖에 없었구나를 생각하며 일단 이해하려 생각을 모았다. 지금 존재하는 도서관은 어떠한 목적과 어떠한 진심으로 설립되었고 유지되고있는지도 생각해보며 책을 품고 있는 도서관 이야기와 함께 오랫만에 근현대사 훝기도 겸해본다.


학교조차 드물었던 시절 도서관을 통해 인재를 키워내려했던 시도를 했던 우현서루. 그 시절 먹고 사는 것에 급급했을텐데 인재들에게 열린 공간을 제공하며 학문에 뜻이 있는 자들을 키우려 했던 생각 자체가 놀라울 뿐이다. 도서관이 있으면 학당이 이어오고, 학당이 있다면 학문에 뜻이 있지만 형편이 변변치 못한 이들에게 숙식을 무료 제공하기까지 했던 제도. 유명한 강사를 초빙하여 강연과 토론을 했고, 국내외 도서를 자유롭게 볼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것. 지금의 국비 장학생 못지 않은 혜택이 아닐 수가 없다.

시선을 틔우고 인재를 양성하려했던 시도는 늘 시절에 무릎을 꿇는 듯 하다. 잘 나가다 주저앉을 때엔 늘 일제시대가 들러붙더란 말이지. 강제 폐쇄된 만권당 우현서루는 지금 은행지점이 되어 그 때의 뜻을 이어 갈 순 없지만 건물 외벽에 '민족 계몽과 지성, 자주독립과 우국의 현장 우현서루 옛터'라는 글을 새겨 그 마음을 두고두고 기리는 곳이 되었다. 과거의 명성과 깊은 뜻을 기념하는 곳, 현재는 그 존재로서의 실요성이 달리하고 있지만 깊은 뜻은 변함이 없다는 걸 언급하였기에 언제 한번 대구를 가게되면 이 도로를 꼭 지나보고 싶어 지도앱에 맛집만 표기하는 내가 가봐야할 도서관 옛터로 기록을 하게되었다.



시대극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SNS 클립으로 보다 단숨에 챙겨보게된 '오월의 청춘'이 생각나는 '도서관 앞 광장'편. 그리고 꼬꼬무에서 보았던 '6울 항쟁'에 대한 사건까지.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세상 이야기이며, 근현대사 시간에 배웠고 책으로 살펴본 것을 다시금 도서관 이야기에서 만나니 기분이 묘했다. 이 사건을 처음 접한 10대의 내가 생각한 대학 도서관은 모든 성역의 구역이라 생각했는데 정권은 그 모든 권한을 부여받은 듯 들쑤시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는걸 느꼈다.

어떻게 해서든 무얼 해서든 통치를 하기 위해 아득바득 이를 갈았던 일제. 무단통치 실패했다고 문화 통치 한답시고 도서관을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했던 과거. 통치 도구로서의 구실. 맞아, 박완서님 작품에도 나왔지. 그러고보면 근현대사든, 문학이든 알게 모르게 우리는 많이 들어왔는데 이야기의 흐름의 하나로 수단으로서의 배경으로 도서관을 그렇게 스치듯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조선총독부도서관이 국립도서관이되고, 국립중앙도서관이 되지만 결국 시대의 배경일 뿐이라 여긴건지 롯데백화점자리가 되고 롯데호텔의 터가 되며 그저 '국립중앙도서관 옛터'가 새겨진 비석으로 시대를 떠올리게 만든다. 흑역사라 지우기 급급했던건지 도서관이라는 구실보단 노른자땅에 대한 잇속이 더 컸던지는 관계자들만 알지 않을까.

모르던 이야기들이 참 많다. 북한에 대한 이야기나 종교와 얽힌 내용들은 흥미유발하기 딱 좋은 소재이기도 하다. 역사와 전통보다는 그 해에 이력을 하나 추가하기 위한 대표들이나 정치적인 액션의 증거이기도 하며, 그만큼 몸집을 키운 이들이 남기고픈 이력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원님덕에 나발 분다고 나처럼 책만 좋아하는 사람에겐 횡재가 아닐 수 없겠다만 그래도 품고있는 서사도 알아감에 허투루 만들어진 것은 없고, 허투루 여겨질 것도 없음에 오랫만에 근현대사 배우듯 도서관이야기도 알아가니 순서에 맞춰 읽지 않고, 총 4개의 부분 중 하나씩 골라감에 읽는 세상이야기로 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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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나니까 퇴근할게요
메리엠 엘 메흐다티 지음, 엄지영 옮김 / 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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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은 물론이고 출판사가 제공했던 책 소개를 보면 닮은 구석이 너무 많아 20대의 내가 많이 보여 벽돌같은 책을 후루룩 읽게 만들었다.

퇴사는 글러먹은거 같으니 퇴근이라도 무사히 할 수 있기를. 무사 퇴근이라 하면 오늘 내가 별일 없이 다행히 하루를 살았다는 이유가 될 테니 부디 그러한 시간이 되길 바라며 메리엠의 하루와 나의 하루가 무탈하기를 빌며 읽어본다.


📖양측 모두 돈도 못받는 야근을 하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업무도 기꺼이 맡아서 하는가 하면, 결코 받지도 못할 인정을 받기 위해 무한히 참고 견뎠다. 결국 그들은 때가 되기도 전에 기운이 소진되어 무기력해져버렸다.

누군가는 시켜야 하는 입장, 어떤이는 시키지 않아도 해야만 하는 여건. 나의 부모님 세대가 그러한 편이고, 계약직과 현장에 있는 분들이 이렇게 사서 일을 만들고 몸을 고단하게 만들었다. 차라리 수당이라도 나오면 몸은 고될지언정 한달 후 통장은 든든할텐데, 그럴일은 없어보이고 밉보이기 싫다는 생각에서 자처하게되는 행동들이다. 이 집단에서 남아나려면 해야하는 부지런함으로 봐야할까, 시대상의 반영으로 감안해야하는 분위기일까. 이것부터가 과거와 현재를 구분짓는 사회생활의 분위기임을 언급하는 비교과정이기도 했다.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내 가치가 의문스러웠고, 매일 오후 내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때마다 당장 그만두고 싶었다.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인데, 퇴근할 때면 이상한 죄책감이 점점 더 많이 쌓여 등에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인턴, 신입, 이직 후 새로운 환경에 버틸 때마다 느끼는 말라 비틀어진 내 존재감. 이건 마치 신학기에 낯선 교실에 적응하는 소심쟁이의 두근거리는 마음과 닮아있다. 학교가기 전날부터 배가 아픈거 같고 자고 일어나면 다시 주말이길 바라는 잿빛의 여린 아이같은 안쓰러움. 누군가는 즐거운 두근거림일테고, 누군가는 이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는 불안함의 시작점이겠지.


📖무슨 소리예요. 당신은 어떤 일이든 혼자 알아서 꼼꼼하고 야무지게 처리하잖아요. 게다가 정해진 목표는 반드시 달성하고요. 나는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제대로 일하는 사람이 필요해요. 그래서 내가 보다 효율적으로 업무를 추진할 수 있도록 당신이 옆에서 도와주면 좋겠어요.

이 한마디를 바란건지도 모르겠다. 그간의 설움과 그간의 오해와 그간의 자책들을 녹아내리게 만드는 한 마디. 미사여구 가득한 칭찬이 아니라 담백한 문장. 그간의 내 노고를 알고 있었다는 내용과 함께 잘 하고 있다는 그 한마디여도 족하거든. 내가 이 무리 속에서 필요한 존재라는 이유를 명확하게 명시해주는 말들. 나이가 들더라도,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도, 이 집단이 응원과 격려를 몹시도 아끼는 팀인걸 알아도 바라게 되는 달콤한 말들.


이따금 주인공은 부모에게 회사에 있었던 일을 토로한다. 메리엠의 부모는 무던하게 그 말들을 다 들어준다. 그럴 수 있었고, 그럴만한 처지이니 들어주는 입장은 이전세대가 하는 공감의 방식이기도하고, 들어줌으로써 한시름 덜어낼 아이를 다독이는 방식이기도 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내 말을 들어주길 바라게되고, 사회생활을 하고 일로서 얽혀있는 집단에게는 내가 듣고픈 말을 해주길 바라는 조금은 다른 관계의 대응.

그러기 위해서는 나도 바뀌어야 했고, 그들도 조금씩 유연하게 대해야하는 어려운 소통이었다.


📖화장실에서 다른 사람이 우는 소리를 들은 다음부터는 눈물이 터질 것 같아도 화장실에 가지 않았어요. 대신 옥상에서 석유시추선을 바라보며 울기 시작했죠. 하지만 욜란다도 옥상에서 운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옥상 말고 창고에 숨어서 울어요.

회사의 후미진곳, 구석에 박혀 흘리는 눈물은 다양한 의미를 갖게된다. 자책, 설움, 후회, 한심, 실망, 한탄, 분노, 원망, 반성, 의심까지. 그렇게 많은 감정을 눈물로 뽑아내다보면 결국 그 시작은 나의 부족함 같아 쪼그라드는 물풍선의 꼴이 되고만다. 나는 뭐 그렇다 쳐도 욜란다도 운다는 사실을 목격하고나니 익숙함에 무던함을 무장한 직장인이라도 내 마음 토로하며 뱉어낼 일은 늘 있기 마련임을 알아가는거지.


📖어쩌면 행복이란 영원히 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스쳐지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항상 행복할 순 없으니. 가끔 한번씩 행복할 뿐이니.

항상 행복 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언제나 맑을 순 없고, 언제나 반짝일 수 없다는걸 알게되는 나이. 불현듯 찾아온 깨달음이라 했으나 2년 사이 메리엠은 무르던 마음마저도 단단해지고 두터워짐을 느낀다. 뭐랄까, 마냥 투정부리고 씩씩거리던 이전에 비해 이정도는 꿀꺽하며 침 삼키듯 넘겨 버릴 수 있겠다 싶은 사람으로 말이지. 그간 자신을 갈아내어 일했고, 그렇게 긁어모은 돈으로 이사를 하며 제 집을 얻고 거기에 누워 보는 세상으로 해탈하듯 얻어낸 육신의 평온. 결국 이렇게 행복하려고 그간 마음 쓰이고 몸 고생했다하면 엄청 씁쓸하게만 여겨질텐데, 그럼에도 이 곳이 가장 안전한 피신처와도 같으니 여기서라도 가끔의 행복을 모으려 생각을 고쳐먹는 것에 결국 사람 사는건 다 똑같구나. 메리엠이나 나나 이러려고 출근도장찍으며 청춘을 받치게됨을 느낀다.

90년대생 저자가 낸 첫번째 책. 자신의 모든게 고스란히 담겨있는 글들. 저자보다 몇년 조금 더 살아낸 내가 겪어낸 이야기들이 겹쳐보였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으니 예전과는 다를거라는 기대를 얹어 희망가득한 결말을 바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를 붙여가며 나아지지 않았을까를 원했다. 역시 내 기대는 뒷통수 얻어맞기 딱 좋았다. 간간히 보이는 여성, 이민자, 무슬림, MZ세대에 대한 시선과 툭툭 뱉어지는 말들은 일부러 꾸미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 대립이 언급이되고, 상황들이 특수한 것이 아니라 세대가 다르고 각각의 갈래가 나눠진 여건으로 생기는 시선의 격차라 할 수 있었다. 저마다 자신을 기준으로 두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어디 출신인지 묻는 지역 선긋기부터 시작해서 저 편한대로 부르는 이름은 기본이요, 아무것도 모를거라는 신입의 인식으로 하대하거나 배제시키려는 은연중의 대화는 말이 아니라 날이선 칼이 되어 상대를 쑤셔대기도 했다. 나라만의 특성이라 생각했던 세태는 사람사는 어느 곳이든 다 똑같구나를 여기니 마음은 편하지만 씁쓸함은 감출 길이 없더라. 우리는 아닌척 하지만 여전히 칭찬받기 좋아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내 몫의 일이 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는 어른이의 부류다. 어린이와 어른 그 어줍잖은 중간의 위치. 성별이나 출신지를 떠나 내가 쓸모있는 존재로서의 대우를 받기를 바라지만 모든게 내 맘 같은 것은 없다는 것에 넘치는 열망을 꾹꾹 눌러 좀 더 현실의 필터를 씌워 보기로 한다. 그리고 메리엠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이정도도 버텼는데 뭐가 무섭겠어!'

📖출판사에서 도서만을 제공받아 기록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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