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 - 식민지 조선을 위로한 8가지 디저트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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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난 조합의 제목. 호떡, 그리고 초콜릿. 둘다 내가 애정하는 주전부리들. 언제가 시작이었는지는 모르나 내 어린 시절과 지금까지 달콤한 기억으로 가득한 음식들. 한국으로 넘어 온 후 세월이 흘러 이제는 한국에 없어선 안될 존재로 한자리 꿰차고 있는 것들에 대한 기록이다. 커피, 만주, 멜론, 호떡, 라무네, 초콜릿, 군고구마, 빙수. 어떤건 배곯는 서민의 주식과도 같은 것이 있을 수 있고, 또 어떠한건 내가 그만큼 여유있는 삶을 즐기고 있다는 부유의 표현법이기도 했던 것. 시대에 따라 대변하게되는 음식의 분위기. 그 시작이 어디인지, 어떠한 풍파를 겪었고, 어떻게 세월을 넘겨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국내 유일 음식문학연구자가 풀어내는 음식과 근현대사의 이야기. 시험에만 나오는 근현대사보다 때때로 이렇게 음식과 결을 나란히 두며 시대상을 논하다보면 한국사가 더 친근하고 재미가 난 다는 것.


역시나 내가 좋아하는 것에 가장 먼저 손이 간다. 각각의 음식에 따라 그때그때 마음에 드는 걸 선택해서 읽어도 되는데, 1장부터 커피라니. 그럼 무조건 1장부터 시작해야지. 소제목을 보면 도취, 낙, 핫한, 고독이라는 단어들을 볼 수 있다. 맛이나 향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음식을 마주하고 대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무드를 무시 할 수 없는거지. 지금이야 가장 만만한 음료가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카페인으로 각성하기 위해서 아침 댓바람부터 빈속에 콸콸 들이붓는 실정인데 확실히 현재와 과거에 커피를 대하는 마음은 다르며,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용악 시인의 '다방'전문을 보고있자면 '고단한 삶의 여정에 지친 무리들이 모여드는 항구'에 비유함을 볼 수 있다. 이 시대는 식민지의 시대상, 그로인해 유쾌하지 못한 사회에 지친 젊은이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공간이며 거기에 곁들여진 음료였다. 살을 에는 추위를 뚫고 포근한 온도와 향기 가득한 커피가 있는 곳이라면 마다할 일이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 고단한 삶에서 좀 쉬어볼 곳이 이 곳이며 내 앞에 놓여진 한 잔의 커피라고 생각했겠지. 낙이자 오아시스였고, 그러니 더욱 깊게 도취되는 순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걸 알려준다.

그렇지 모. 다들 사람 사는게 똑같으니까 시대를 구분짓더라도 느끼는 바는 비슷할꺼야.

여기 있는 음식들은 읽는 독자마자 자신만의 추억거리가 한두개 쯤은 있을거다. 처음 마셔봤던 한약같던 쓴 커피의 짜릿함, 친척 결혼식에 갔다 뷔페어서 처음 만났던 달콤한 멜론, 엄마랑 시장 나들이 갔다가 찰랑이던 마가린 기름 속 뜨끈한 보름달 같던 호떡, 먹어도 먹어도 성에 안 차던 달콤함과 짜릿함의 초콜릿, 초등학교 여름방학 슈퍼에서 사온 반찬통만한 얼음을 넣어 집에서 갈아만들어 먹었던 아작아작 씹히는 시원달콤한 빙수까지.


나의 시절엔 총 8장의 음식들이 촘촘히 박혀 나를 만들어 두고 있었다. 80년대생에게도 이러한 추억이 그득하니 진짜 살아있는 근현대사를 같이 버텨온 음식임은 분명해보인다.



값싼 것이며 간단한 학생료리의 5전짜리 호떡은 돌아서면 배고픈 학생들의 소울푸드라 봐도 무관하다. 낮엔 호떡이라면 밤엔 만주나 군고구마가 우리의 출출함을 채운 것인데 이것들이 없었다면 우리의 낮과밤은 무지 삭막하고 버석했으리라. 달콤함과 탄수화물이 주는 자비로움은 삶을 윤택하게 하니 이들로 인해 우린 간간히 웃고 간간히 즐거웠음을 조선일보 1957년 1월의 삽화에서 든든함을 가늠해본다.


내가 기억하는 초콜릿의 정의는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순이가 했던 대사에 스며들어있다. "초콜릿 상자엔 한 사람의 인생이 담겨져 있거든요. <포레스트 검프>라는 영화 보셨죠? 거기 보면 주인공 엄마가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거다. 네가 무엇을 집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제가 무엇을 집느냐에 따라서 많은 게 달라지거든요, 아주 많이요. ... ... 좋은 것도 있었고 나쁜 것도 있었고.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그 상자는 제거고 어차피 제가 다 먹어야 하는 거니까요. 언제 어느 걸 먹느냐, 뭐 그 차이뿐이겠죠. ... ... 지금은 생각도 많이 하고 주저주저하면서 고르겠죠. 어떤 건 쓴 럼주가 들어있다는 걸 이젠 알거든요. 또 바라는 게 있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초콜릿 상자에 더 이상 쓴 럼주가 든 게 없었으면 좋겠다. 30년 동안 다 먹어치웠다, 그거예요." 로 표현되는 초콜릿=인생의 연장선이다.

어릴 땐 고백의 표현법, 애정의 상징이라 봤다면 나이가 좀 들어선 인생같이 느껴지고, 또 한편으론 맛있는 저놈의 당스파이크로 얄밉게 보여지기도한다. 시절보다 내가 변한 탓이겠지.

그 '로맨쓰'같은 맛. 발렌타인데이가 생겨나기 이전 식민지 시대의 여러 소설에서도 연인들이 주고받는 사랑의 물질화 기능. 그 달달함이 내가 느끼는 사랑의 맛과 다르지 않았음을 다양한 고전문학을 통해 변함없는 사랑의 상징성임을 또 한번 느낀다.

달콤함이 주는 평온과 위안. 그건 모든 시절을 막론하고 가성비 좋은 위로의 방식이었다.

세상이 언 듯한 겨울. 길거리에서 스믈스믈 피어오르는 가느다란 김. 원통에서 새어나오는 하얀 연기는 긴긴밤 당신을 위해 뜨끈하고 달근한 한덩이를 선사할 준비가 다 되었음을 알려주는 신호이기도 했다. 드라마나 소설을 통해 내가 기억하는 군고구마는 이렇게 밤을 버텨낼 재간을 마련해주는 묵직한 그것이다. 헌데 내가 기억하는건 아빠가 약물에 오랫동안 구워내어 잘 익었나 찔러보면 그 구멍으로 꿀이 폭폭 튀어올라 줄줄 흘러 진득한 달고나를 덤으로 만드는 딸래미들을 위한 아빠표 간식으로 자리잡고있다. 확실히 시대가 변하니 같은 음식 다른 생각들로 겹쳐진다. 요즘은 편의점에서 굽는다지?


화롯불에서 편의점까지 퐁당퐁당 자리 옮김을 이어가는 고구마의 삶. 일본에서 고구마 굽는 방식의 변화에도 변하지 않는건 야키 방식을 해야 더 맛있다고 느껴지는 한결같은 혀의 감각 때문이라 보며 타거나 덜 익은 부분 없이 골고루 구워 알뜰히 먹고픈 마음이라.


당신의 겨울 밤은 만주, 감자, 밤, 고구마 무엇이 있는가? 이도저도 아닌 또 다른 핫한 주전부리가 출출함을 달랠지도 모르지.

그래도 나는 여전히 같은 값이면 군고구마라는 그 말에 동의하게되는 할미입맛이다.

겨울을 폭닥하게 만든게 군고구마 녀석이었다면 여름을 알리는 빙슈, 어름랭슈. '조선어사전'을 통해 다시금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 빙수이야기. 빙수=얼음냉수와 같다=얼음을 섞은 물에 대한 시작부터 이젠 얼린 우유여야만 빙수라 생각하는 시대에 도달하기까지. 아이스크림에 패배했다 할 지언정 우린 여전히 여름의 맛으로 계절이 지나기 전에 한번은 먹어봐야 계절을 잘 났구나 여기는 맛으로 여기고있다.

1928년의 더위를 피하는 방법에 비해 지금은 너무나 다양한 계절나기가 있지만 그럼에도 목구멍을 타고 흘러간 빙수의 서늘함 만은 못하지 않을까 싶어하면서 나의 올 여름은 어떤 빙수로 더위를 멀리해봐야하나 기분좋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


나이는 나만 들었지 싶다가도 이것들이 버텨내고 살아낸 시절에 비할 바가 아님을 느꼈다. 익숙하고 당연해서 예나 지금이나 똑같겠지 싶었던 사사로운 디저트들. 그럼에도 나를 위로하고 나를 끌어올려주는 뚝심있는 한방은 여전해보이는 것들이다.

사회분위기가 바뀌고 훅훅 지나가는 빠른 세상임에도 이 디저트들을 앞에 두고 있노라면 여유라는걸 부리게 된다. 그 묘한 능력이 있어 우리는 또 그렇게 음식앞에서 쉼을 얻고 행복을 야금야금 퍼먹겠지.

역사가 지루 해 질 때 즈음, 근현대사 공부는 해야하는데 도무지 집중이 안 될 때. 아예 손 놓지 말고 시선을 살풋 돌려 디저트로 마주하는 한국근현대사 이야기. 쉬어가는 셈 치고 여기서 알려주는 디저트들 곁에두고 먹으며 공부겸 휴식겸 겸사겸사 책장을 넘기는 과정으로 파고들면 OTT 시대물 보듯 자연스레 쉼과 공부가 곱절로 얻어지지 않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하니포터 10기로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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