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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나니까 퇴근할게요
메리엠 엘 메흐다티 지음, 엄지영 옮김 / 달 / 2025년 2월
평점 :

책 제목은 물론이고 출판사가 제공했던 책 소개를 보면 닮은 구석이 너무 많아 20대의 내가 많이 보여 벽돌같은 책을 후루룩 읽게 만들었다.
퇴사는 글러먹은거 같으니 퇴근이라도 무사히 할 수 있기를. 무사 퇴근이라 하면 오늘 내가 별일 없이 다행히 하루를 살았다는 이유가 될 테니 부디 그러한 시간이 되길 바라며 메리엠의 하루와 나의 하루가 무탈하기를 빌며 읽어본다.

📖양측 모두 돈도 못받는 야근을 하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업무도 기꺼이 맡아서 하는가 하면, 결코 받지도 못할 인정을 받기 위해 무한히 참고 견뎠다. 결국 그들은 때가 되기도 전에 기운이 소진되어 무기력해져버렸다.
누군가는 시켜야 하는 입장, 어떤이는 시키지 않아도 해야만 하는 여건. 나의 부모님 세대가 그러한 편이고, 계약직과 현장에 있는 분들이 이렇게 사서 일을 만들고 몸을 고단하게 만들었다. 차라리 수당이라도 나오면 몸은 고될지언정 한달 후 통장은 든든할텐데, 그럴일은 없어보이고 밉보이기 싫다는 생각에서 자처하게되는 행동들이다. 이 집단에서 남아나려면 해야하는 부지런함으로 봐야할까, 시대상의 반영으로 감안해야하는 분위기일까. 이것부터가 과거와 현재를 구분짓는 사회생활의 분위기임을 언급하는 비교과정이기도 했다.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내 가치가 의문스러웠고, 매일 오후 내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때마다 당장 그만두고 싶었다.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인데, 퇴근할 때면 이상한 죄책감이 점점 더 많이 쌓여 등에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인턴, 신입, 이직 후 새로운 환경에 버틸 때마다 느끼는 말라 비틀어진 내 존재감. 이건 마치 신학기에 낯선 교실에 적응하는 소심쟁이의 두근거리는 마음과 닮아있다. 학교가기 전날부터 배가 아픈거 같고 자고 일어나면 다시 주말이길 바라는 잿빛의 여린 아이같은 안쓰러움. 누군가는 즐거운 두근거림일테고, 누군가는 이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는 불안함의 시작점이겠지.

📖무슨 소리예요. 당신은 어떤 일이든 혼자 알아서 꼼꼼하고 야무지게 처리하잖아요. 게다가 정해진 목표는 반드시 달성하고요. 나는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제대로 일하는 사람이 필요해요. 그래서 내가 보다 효율적으로 업무를 추진할 수 있도록 당신이 옆에서 도와주면 좋겠어요.
이 한마디를 바란건지도 모르겠다. 그간의 설움과 그간의 오해와 그간의 자책들을 녹아내리게 만드는 한 마디. 미사여구 가득한 칭찬이 아니라 담백한 문장. 그간의 내 노고를 알고 있었다는 내용과 함께 잘 하고 있다는 그 한마디여도 족하거든. 내가 이 무리 속에서 필요한 존재라는 이유를 명확하게 명시해주는 말들. 나이가 들더라도,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도, 이 집단이 응원과 격려를 몹시도 아끼는 팀인걸 알아도 바라게 되는 달콤한 말들.
이따금 주인공은 부모에게 회사에 있었던 일을 토로한다. 메리엠의 부모는 무던하게 그 말들을 다 들어준다. 그럴 수 있었고, 그럴만한 처지이니 들어주는 입장은 이전세대가 하는 공감의 방식이기도하고, 들어줌으로써 한시름 덜어낼 아이를 다독이는 방식이기도 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내 말을 들어주길 바라게되고, 사회생활을 하고 일로서 얽혀있는 집단에게는 내가 듣고픈 말을 해주길 바라는 조금은 다른 관계의 대응.
그러기 위해서는 나도 바뀌어야 했고, 그들도 조금씩 유연하게 대해야하는 어려운 소통이었다.

📖화장실에서 다른 사람이 우는 소리를 들은 다음부터는 눈물이 터질 것 같아도 화장실에 가지 않았어요. 대신 옥상에서 석유시추선을 바라보며 울기 시작했죠. 하지만 욜란다도 옥상에서 운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옥상 말고 창고에 숨어서 울어요.
회사의 후미진곳, 구석에 박혀 흘리는 눈물은 다양한 의미를 갖게된다. 자책, 설움, 후회, 한심, 실망, 한탄, 분노, 원망, 반성, 의심까지. 그렇게 많은 감정을 눈물로 뽑아내다보면 결국 그 시작은 나의 부족함 같아 쪼그라드는 물풍선의 꼴이 되고만다. 나는 뭐 그렇다 쳐도 욜란다도 운다는 사실을 목격하고나니 익숙함에 무던함을 무장한 직장인이라도 내 마음 토로하며 뱉어낼 일은 늘 있기 마련임을 알아가는거지.

📖어쩌면 행복이란 영원히 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스쳐지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항상 행복할 순 없으니. 가끔 한번씩 행복할 뿐이니.
항상 행복 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언제나 맑을 순 없고, 언제나 반짝일 수 없다는걸 알게되는 나이. 불현듯 찾아온 깨달음이라 했으나 2년 사이 메리엠은 무르던 마음마저도 단단해지고 두터워짐을 느낀다. 뭐랄까, 마냥 투정부리고 씩씩거리던 이전에 비해 이정도는 꿀꺽하며 침 삼키듯 넘겨 버릴 수 있겠다 싶은 사람으로 말이지. 그간 자신을 갈아내어 일했고, 그렇게 긁어모은 돈으로 이사를 하며 제 집을 얻고 거기에 누워 보는 세상으로 해탈하듯 얻어낸 육신의 평온. 결국 이렇게 행복하려고 그간 마음 쓰이고 몸 고생했다하면 엄청 씁쓸하게만 여겨질텐데, 그럼에도 이 곳이 가장 안전한 피신처와도 같으니 여기서라도 가끔의 행복을 모으려 생각을 고쳐먹는 것에 결국 사람 사는건 다 똑같구나. 메리엠이나 나나 이러려고 출근도장찍으며 청춘을 받치게됨을 느낀다.
90년대생 저자가 낸 첫번째 책. 자신의 모든게 고스란히 담겨있는 글들. 저자보다 몇년 조금 더 살아낸 내가 겪어낸 이야기들이 겹쳐보였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으니 예전과는 다를거라는 기대를 얹어 희망가득한 결말을 바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를 붙여가며 나아지지 않았을까를 원했다. 역시 내 기대는 뒷통수 얻어맞기 딱 좋았다. 간간히 보이는 여성, 이민자, 무슬림, MZ세대에 대한 시선과 툭툭 뱉어지는 말들은 일부러 꾸미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 대립이 언급이되고, 상황들이 특수한 것이 아니라 세대가 다르고 각각의 갈래가 나눠진 여건으로 생기는 시선의 격차라 할 수 있었다. 저마다 자신을 기준으로 두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어디 출신인지 묻는 지역 선긋기부터 시작해서 저 편한대로 부르는 이름은 기본이요, 아무것도 모를거라는 신입의 인식으로 하대하거나 배제시키려는 은연중의 대화는 말이 아니라 날이선 칼이 되어 상대를 쑤셔대기도 했다. 나라만의 특성이라 생각했던 세태는 사람사는 어느 곳이든 다 똑같구나를 여기니 마음은 편하지만 씁쓸함은 감출 길이 없더라. 우리는 아닌척 하지만 여전히 칭찬받기 좋아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내 몫의 일이 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는 어른이의 부류다. 어린이와 어른 그 어줍잖은 중간의 위치. 성별이나 출신지를 떠나 내가 쓸모있는 존재로서의 대우를 받기를 바라지만 모든게 내 맘 같은 것은 없다는 것에 넘치는 열망을 꾹꾹 눌러 좀 더 현실의 필터를 씌워 보기로 한다. 그리고 메리엠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이정도도 버텼는데 뭐가 무섭겠어!'
📖출판사에서 도서만을 제공받아 기록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