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이 있는 집
김진영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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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추리소설은 잘 읽지 않았는데 오랫만에 접하는 한국형 추리소설이다. OTT로 원작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가 나온다길래 궁금해서 찾아봤고, 영상으로 접하기 전에 먼저 글로 만나보기로 했다. 이미 제작은 완료된 상태이고 등장인물도 어느배우가 역을 맡았는지도 모두 공개된 상태. 그래서 예고편은 보지 않고, 배역을 맡은 배우들의 얼굴과 글 속의 등장인물을 매치하여 읽으니 몰입감이 더욱 진했다. 연기 잘 하는 배우들이 내 머릿속에서 씬을 만들어내는데, 저자의 글이 몰입하기 딱 좋은 쫀득한 상황들을 만들어주었다 틈틈이 읽으면서 이틀만에 완독하게 하는 능력을 갖게 해주더라.

의사 남편 재현, 행복한 가정과 원만한 가족이 되고자 애쓰는 주부 주란, 사춘기이지만 똑똑하고 잘생긴 인기많은 아들 승재. 남부러울것 없는 가족의 반대편에 서있는 부부가 있다. 제약회사에서 누구보다 인정받고싶었던 윤범. 이혼을 원했으나 원치않은 아이를 임신 후 포기하듯 살던 상은.

결코 겹치는 부분이 없는 이들이지만 하나의 사건으로 엮이며 서로를 주시한다. 시작은 주란의 주택 화단이다. 마당에서 나는 냄새. 마당에서 시체 냄새로 시작된 의심들. 가장 편해야하며 가장 마음을 놓고 살아야하는 집과 가족을 믿어도 될런지. 무조건적인 믿음으로 가족을 품어도 되는건지, 내 마음도 그러하니 상대도 그렇게 살고있는건지를 의심하며 주란의 공간이 '완벽한 집'이 될 수 있을지를 따라가본다.


📖 이런 의심 속에서 나는 놀랍게도 남편이 살인자일지도 모른다는 사실보다 남편이 나를 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 사실 상은이라는 여자보다 그 여자가 살고 있는 세계가 더 두려웠다. 어느 것 하나 정돈되지 않은 삶. 나는 그런 삶을 잘 알고 있다. 그 세계가 너무 끔찍했다.

주란은 의심을 하지만 그 의심에 확신이 붙지 않길 바라며 의심한다. 이 모든 평안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 굳이 왜? 라는 식의 반감도 있어보인다. 남들이 부러워 할만한 직업, 주거환경, 배우자, 자식, 부모의 배경까지 모든게 다 잘 풀린 사람인데 뭐가 부족하고, 뭐가 아쉬워서라는 마음. 그 모든 조건을 아내라는 역할로 함께 공유하는 주란은 남편이 살인자라는 결론보다 그 결론으로 파생되는 환경의 변화가 더 무서움을 내비친다. 상은과 비교하며 자칫 잘못하다간 주란도 상은의 처지로 하락하게 될까봐 무서운 것이다. 배우자가 살인자라는 결론보다, 살인자 배우자로 각인되어 조건을 포기하고 반납해야하는 자신의 처지가 끔찍한 것이다. 주란은 그런 사람이다. 신분 변화를 위해 사랑을 앞세운 조건의 결혼으로 지금의 생활을 하고 있으니 남들과는 조금 다른 두려움의 포인트가 있었다.

상은의 입장은 살인을 계획했으나 그가 자살로 결론지어지면 안된다. 목숨의 값으로 남겨진 보험금을 받아내어야만 자신도 살고 아이도 산다. 이미 죽은 남편이다. 재호가 윤범을 죽였다는 정황을 만들어야한다. 이혼을 원할 만큼, 수면제를 타서 먹일만큼 증오했던 사람이었다. 거기서 끝나도록 2억을 손에 쥐는게 목적인 상은이다. 그것마저 받지 못하고 그가 남긴 빚만 떠안게 된다면 죽을 때까지 원망하며 살아야하는 삶이다. 상은은 자신의 남은 삶을 위해서라도, 뱃속의 아이 때문이라도, 분홍 휴대폰의 일면식도 없는 아이 때문이라도 부러울만큼 반듯하고 예쁘게 짜여진 곳의 인형같은 주란이 필요했다.

껍데기만 다를 뿐 주란이나 상은이나 별반 다를게 없다. 서로 끔찍한 삶인거다. 누군가를 죽이거나 죽여야만 할 만큼의 이유가 분명한 삶 들이다.




📖 이 세상에 쉬운 삶은 없어요. 자신을 특별히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우린 모두 다 평범하게 불행한 거예요.

상은이 주란에게 할 법한 이야기를 되려 주란이 상은에게 하고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놓은 성이 무너진건 주란이다. 절망과 삶의 포기의 수순으로 갈 나약한 주란인데 제법 꼿꼿하다. 남편의 배경과 남편이 꾸려놓은 그럴사한 곳에 짜맞춘듯 살던 주란 역시 쉬워보이는 삶에서 쉽지않은 삶을 살고 있었던 거다.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자신의 풍족하지 못한 지난날이 들킬새라 그렇게 살아왔다. 행복한 삶을 기대하며 얻어지는 당연한 불행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었나보다. 그래서 지금 자신에게 일어난 상황들에 대해 이전보다 덜 예민하고 무던하게 받아들이며 이 또한 넘어야하는 삶의 불행의 순간으로 받아들이는 듯 했다. 불행에 해탈한 사람처럼 여겨진다. 남편과 평온한 삶을 위해 어린시절 삶이 미리 불행했던 것이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바라며 자신을 끼워맞추느라 본인의 삶에 불행을 얹어 쥐고 있었고, 아이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그 구덩이에서 아이와 자신을 끄집어내기위해 가장 최고조의 불행을 겪어낸것이겠지. 하나를 얻고자 하면 하나는 포기해야하며 때때로 불행도 감수해야하는 삶에 주란은 무뎌지고 있었다. 감수할만큼 남들이보기에 부러운 가족이었고, 예뻐보이는 가정이었다. 일단 그 가정이 어그러졌다. 주란에게 안온한 집의 정의가 바뀌었을까?

덧붙이기) 그런데, 왜 나는 아직도 승재가 했다고 안 믿겨질까? 승재의 이야기가 4명에 비해 약하기도 했으나 재현의 말들을 믿지 못해서인지, 모든 일들이 재현의 손을 거친 작품이니 시작도 승재가 아니라 재현일꺼라는 의구심을 품어본다. 10년이 넘도록 재현은 주란을 만들었다. 사랑하기보단 만들어 앉혀놓은 사람이다. 재현 아니면 안되는 사람으로, 재현이어야만 하는 사람으로 온순과 나약함을 얹어 순종적인 사람으로 구슬려 만든 사랑을 빙자한 세뇌의 산물이다. 그래서인지 승재가 학교에서 벌인 일이 사건의 시발점이라 하기엔 불씨가 약하다. 재현이라는 사람이 생각 보다 더 많이 무섭고 대단한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가 원하는 이 가정의 끝은 무엇이었을지를 그려본다.

오랫만에 찾아본 미스터리문학이다. 요런 장르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머릿속에 잔상이 제법 오래 남기 때문이다. 공포물을 아예 보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잡념이 많은 인간이라 그걸 지워내기가 어려운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글로만 보아도 영상이 그려지는 저자의 필력에 감탄하면서 또 때로는 너무 그럴듯한 풍경이 보이는 듯 했다. 오죽하면 회사 잔디에도 손가락이 있는건 아니겠지 싶은 생각에 피곤하기까지 하다. OTT로 전편이 공개되면 다 찾아볼지는 모르겠으나 저자의 글 만으로도 복잡하게 머리 굴릴 필요없이 딱 떨어지는 반듯한 스릴러를 맛본걸로도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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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틀 케이스릴러
주영하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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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잘 만들어진 원작 소설이나 웹툰으로 만들어지는 드라마가 많다. 앞서 완독 후 기록했던 '마당이 있는 집'도 그러하고, 뒤이어 읽었던 '알래스카 한의원'은 곧 대중에게 선보인다고 했다.(완독은 진즉 했는데 아직 글을 못 올렸네) ENA와 TVING을 통해 한창 극에 달아있는 드라마. 이달 말 즈음 완결이 날 텐데, 원작관 어떠한 차별점을 보일지. 드라마의 끝은 소설의 끝과 닿아있을지를 주목해본다.

일단 드라마는 안 봤다. 인물관계도만 보았을뿐 클립영상도 안 보고 꾹꾹 참고 완독했다. 영어유치원 학부모로 나오는 여자들 캐릭터들과 배역을 맡은 배우가 찰떡으로 잘 어울린다.(외모기준) 특히나 송정아, 김나영이 그러하다. 장미호에게 집착을 하는 엄마역의 임강숙도 어찌나 매치가 잘 되는지 인물에 빠져들어 읽기 딱 좋은 조건이다. 소재 또한 SNS의 행복배틀이라는 점에서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좋은 요소였다. 어떤이는 시간의 낭비라 할 것이고, 어떤 이는 벌이의 수단이며, 또 어떤 이는 과시와 자기만족의 무대가 되는 곳. 그래서 좋은데 무섭고, 행복한데 화가나기도 하는 그 공간에서 무엇이 그들을 이지경으로 만들었는지를 보면 책속이나 현실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에 들었던 휴대폰의 SNS 어플이 무서워진다.


미호는 오랫만에 그 이름을 대면했다. 오유진. 장미호는 업무를 통해 학창시절 절친이었다가 지금은 남처럼 살고있는 이의 이름을 떠올린다. 현재를 사는 오유진에게 연락하며 사연 채택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려는데 뜻밖의 일이 생긴다. 살인사건이다. 강남 부촌 하이프레스티지 아파트에서 끔찍한 일을 마주한다. 남편은 등에 칼이 꽂혔으나 가까스로 살았고, 아내는 베란다 난간에 배를 걸치고 사망한다. 아내 오유진 사망 사건이 17년 절연한 친구 장미호는 우연히 접한 그녀의 이름과 사건에 집착을 하게된다. 17년전 떨치지 못한 죄책감과 미련으로 장미호는 오유진의 흔적을 뒤적이며 무엇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았는지를 케기 시작한다.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자식들로 인해 친목을 다진 엄마들. 모자랄것도 부러울것도 없는 그녀들은 SNS를 무대삼아 행복배틀을 한다. 자기가 더 잘났고, 자기가 더 행복하다는 걸 보여주고픈 과시욕과 우월감을 위해 상대를 뭉개버리는 독한 말과 그 글을 적는 손. 평범치 않은 죽음. 과거의 오유진을 아는 장미호는 유진이 밝히려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며 과거의 오유진에게 용서를 하려한다. 그래서 밝히려 한게 뭔데....?


📖 더 행복해질 필요도 없어요.

... ... .

남의 행복을 부수면 되거든요.

제일 잔인했던 한마디. 나의 행복보다 남의 행복을 무너뜨리는 것이 더 빠르다고 여기는 말에서 일말의 죄책감이란 걸 느낄 수 없었다. 내가 더 잘 살고자 하는 마음은 없고, 타인을 짓이기는 것에만 생각을 모으는 사람이니 행복배틀이라는 걸 했겠지 싶은 생각도 든다.

SNS를 하다보면 이걸 보는 것 자체가 피곤해짐을 느낀다. 모두가 잘나고 잘사는 것에만 집중하여 게시하다보니 '나'라는 존재를 그 짤막한 문장과 해시테크, 몇 안되는 사진에 비교하게된다. 프레임 너머의 삶과 다 채워놓지 못한 글은 내 삶과 별반 다를게 없을텐데 나는 안되는데, 쟤는 왜 그게 될까 싶어하는 비교와 자괴감은 피로감을 가득 안긴다. 그래서 어느순간부터 내 글은 안 올리고, 타인의 것만 후루룩 넘긴 채 하트 누르는 것도 주저하게된다. 남의 행복을 부러워 하는 것도, 남의 행복에 하트 하나를 더 늘려주는 것도 모두 안하며 쟤는 저리 사나보다 싶어하는 무던한 마음을 가지고 살다보니 이들이라면 말과 글로서 충분히 사람을 죽이고도 남겠구나 싶어졌다.


📖 자기 행복에 확신이 없었던 게 아닐까. 그러니까 끊임없이 다른 누군가로부터 확인받고 증명 받고 싶어 한 거지. 자존감이 낮았을거야, 자기 확신도 없었을 거고.

그러게. 행복 같은 건 실체가 없는 건데.

확신이 없었던 것 보다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은 아닐까? 자신은 이 행복에 길들여져있다보니 잘 살고 있는 건지를 의심하게 되었다. 그러하니 외부로 오는 강한 자극에 반응하는 것이며, 그 지속성에 도취하는 과정이었다. 비교 대상이 없으면 편하지만 인간이라면 절대 그럴 순 없을테지. 일면식도 없는 이들의 좋아요와 부러움의 짤막한 문장 한줄에 도취한 부류였다. 먹고사는 것에 급급한 이들이 보기엔 저게 뭐라고 라는 식으로 어이없는 꼴이겠지만 저들이 사는 방식에선 저렇게라도 관심받고 주목받는것이 중요했나보다.

생경한 단어의조합이었다. 행복과 배틀이 이렇게 바로 옆에 서로를 붙여 놓을 수 있는 단어가 되기도 하는구나. 행복을 배틀로 삼을 만큼 사는 것이 평온한 집단의 에피소드였다. 시대를 반영한 듯 보여지는 주제와 언젠가부터 자주 등장하는 그들만의 세상살이 이야기다. 배경좋고, 돈 걱정 없고, 사는 것이 평온하고 지루해서 이러한 것들로 배틀이랍시고 하트 갯수와 댓글 몇문장에 희비가 갈리는 꼴. 모습보다는 꼴이라는 명사가 더 그럴듯해 보인다.

미호는 왜 그리도 유진의 죽음에 집착하는 것인지. 17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만난 동창의 죽음인데 본인 목숨까지 내어놓을만큼 위험을 감수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흐름이었다. 이 친구들이 웃으며 안녕을 하지 못했으나 17년의 세월이 친구의 죽음을 통해 그간 들여다보지 않고 안부를 묻지 못해 죄책감 어린 행보라 하기엔 과하게 집착하고 대책없이 들이댄다. 물론 미호 모친이 했던 말에서 자신의 잘못이 아예 없는건 아니니 사죄의 마음이라고 친다 해도 내 기준으로는 납득할 수 없었다. 이러한 의문과 과한 설정은 3부 후반에 세경이 미호에게 한번 더 오유진의 죽음을 언급하며 이해를 가능케 했다. "우리 친구 유진인 17년 전에 죽었어."라는 문장으로 17년 전의 유진이도 억울함을 품은 채 자살을 했음을 독자에게 흘려주었다.

미호는 태어난 연도도 이름도 동일한 오유진에게서 슬퍼하고 애도할 만한 기회을 얻어 케묻고, 제 손으로 해결하고자 한 것이었다. 제 상처도 덮고, 이미 죽은 유진의 상처도 같이 덮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미호의 뒤늦은 반성에 우리는 속절없이 끌려왔다. 그 오유진이 저 오유진이 아닌걸 가장 먼저 알았음에도 지켜보고만 있던 세경은 미호를 뭐라 생각했을까?

17년 전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던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게 타인에게 상처가 되든말든 상관하지 않고 제 속만 차리는 모습. 어른들은 원래 그렇겠거니 하며 자라난 이들은 성인이 된 후 자기 또래에게도 그 시절 어른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이기심을 품고있음을 볼 수 있었다. 행복과 배틀이라는 예쁘고 섬뜩한 단어 조합을 앞세워 내 행복을 위해 타인의 평온을 아무렇지도 않게 깨도 된다는 정당방위인척 하는 낯짝에서 과연 행복을 내세워야 하는 것이 맞는지, 나와 내 울타리 안에서만 즐겁고 기쁘면 안되는 것인지를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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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에 대해 쓰려 했지만
이향규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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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세이들을 많이 읽어봤지만 처음 만나는 저자의 이름이다. 이항규는 정말 나와 다른 삶의 목표를 갖고 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이었다. 다문화 청소년과 탈북 이주민, 결혼 이주 여성을 돕는 활동가이자 연구자. 재영 어린이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교육자, 소수자의 소외 문제와 연대의 의미를 탐색하는 저술가. 이향규를 일컫어 말하는 문장에는 내가 공감하고 함께하는 지점이 하나도 없었다. 언론을 통해 접하기만 했고, 탄식은 했으나 공감보다는 그러려니 하는 마음이 더 컸던 저자의 삶이라 과연 내가 이 책에서 감정 이입 될 부분이 있긴 할까 의심을 가지며 책을 보게만들었다. 저자의 전작 '후아유'도 읽지 않았고, 최근에 출간된 이 책으로 먼저 대면해도 되는건가 싶어하며 의심과 호기심을 둘 다 쥐고 일단 읽어보기로 했다. 읽다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라는 그런 마음으로.




📖 위로 음식_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엄마가 차려 준 식탁 앞에 앉은 소년이 된다. 사랑받고 위로받았던 기억이 어른이 된 그를 다시 위로해 준 것이다. 오늘 아침 고사리나물, 미역국, 김치가 나를 위로한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소울푸드라는 말 보다 위로의 음식. 아플 때 생각나는 그거! 라는 게 더 어울릴 듯한 것들이 있다. 가령 나에겐 엄마가 밥통으로 해주셨던 노오랗고 달큰한 카스테라라던가 친구들과 가정시간 요리실습을 끝낸 후 다같이 모여 양푼에 비벼먹던 비빔밥이라던가 남편이 집에 있는 것들로만 만드는데도 계속 먹게되는 볶음밥이라던가. 우리에겐 비싸거나 귀한 음식도 기억의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으나 사사로운 것들에도 추억과 낭만과 행복이라는 필터로 보정되어 계속 생각이 나곤 하더라.

저자는 타국에서 둘째를 낳고 몸을 추스릴 때, 아이들의 도시락을 챙길 때, 그런 일반적인 순간에도 음식에 대한 아련함이 같이 피어오른다. 먹고사니즘이 바빴던 우리의 어린 시절이었다. 그래서 더 많이 떠오르고, 더 많이 애틋해지나보다. 저자의 아이들도 음식을 통해 엄마를 떠올리고, 아빠를 추억하는 것들이 있어주면 좋겠다. 오래 살진 않았으나 30년 넘게 살아보니 그러한 위로의 음식과 낭만이 가득한 순간은 사는데에 제법 든든한 지지대 역할을 하게되니 지금이라도 하나 만들어보라고 일러주고싶어진다.


📖 빨래_ 존재한다는 것은 알지만 모습은 보이지 않는, 예컨대 햇볕과 바람도 빨래를 통해 그 형체를 드러낸다.

바싹 마른 빨래의 감촉과 향은 뜨거운 열기를 품고 단숨에 말려지는 건조기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뽀얀 구름이 하늘에 툭툭 얹어진 날이면 공기의 감촉도 느낄 수 있다. 그늘이 되어 줄 곳이 없는 쨍한 햇살만 비칠 때엔 후끈한 열기만 느껴지다가도 구름에 가리거나 나무덕에 그늘이 생기게 되면 목덜미에 흐르던 땀도 금새 말라가는 순간을 누리게 된다. 이런날 햇살과 바람을 담아두지 못해 아까운 마음을 달래듯 부지런히 몸을 놀려 빨래를 하고 건조대에 축축한 옷가지와 이불을 널어둔다. 가장 촌스러운 색깔의 빨랫집게를 무심하게 툭툭 꼽아놓으면 그것마저도 나름의 멋이 들곤 한다. 저녁밥을 앉혀두고 한숨돌리며 빠작하게 마른 빨래들을 걷어 어깨에 척척 얹어두면 진득했던 햇살의 내음과 유유자적 흐르던 바람의 흔적과 우리집 빨래에서만 느낄 수 있는 비누냄새까지 켜켜이 쌓여 오늘의 날씨와 시간을 헤프게 쓰진 않았음에 혼자만 느끼는 뿌듯함으로 가득해진다. 나의 빨래는 그렇게 정의하고 기록할 수 있겠다.

지금의 아이들에게 이 감성을 전해주고파도 집에 건조기가 없는건지. 왜 그렇게 말려야하는건지를 물을수도 있겠다만 이건 나이가 먹을 만큼 먹은 우리만이 갖고 있는 기쁨이라 여기고 반듯하게 개어놓고 싶어진다.


📖 깍두기_ 소외된 약자를 버리지 않는 게 아이들이 놀이할 때 지켰던 '아름다운 규칙'이라고 말하며.

아름다운 규칙이자 외면하기 싫은 아이들의 예쁜 심성으로 만들어진 단어. 집단에서 깍두기처럼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저자는 자신의 능력이 필요로 하는 곳에 자원했고, 그렇게 빈 곳을 채웠다. 그러한 시간들이 채워져 깍두기의 노고를 인정받아 학교라는 집단의 교장이 되기까지를 보면 쉽지만은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깍두기의 능력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어디서나 기존에 형성된 집단과 새로 진입하는 구성원에는 장벽이 있고 이슈가 있겠다. 그럼에도 열심히 맞춰가려한 깍두기와 무조건적인 홀대가 없었기에 가능했음을 느낀다. 생각해보면 이러한 존재마저도 김치의 한 종류인 깍두기로 명명된걸 보니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노무 김치가 참....

그리고 나는 이 단어만 보면 언니가 떠오른다. 저자는 잉여들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부제로 적어두었지만 나에게 그 단어는 챙기고픈 여린 마음이 겹쳐진다. 4살 터울 자매로 한창 무리지어 놀기 좋아하는 아이가 4살 어린 유치원도 안 다니는 동생을 데리고 다니기엔 쉽지 않았을 터. 그럼에도 몰래 도망가서 놀거나 혼자 내버려두지 않고 항상 깍두기를 옆구리에 끼고다녔을 국민학생(언니가 학교를 다닌 시절은 국민학교였다)을 눈앞에 그려보면 장하고 기특하다. 이러한 마음이 자란 어른들이 있었기에 저자도 타국에서 학교 교장까지 할 수 있었던게 아닌가 짐작해본다.

제목처럼 '사물에 대해 쓰려 했지만'..... 결국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와 감상이었고, 그러한 삶 속에서 꼭 언급하고픈 '사람'사는 이야기였다. 다문화 청소년과 탈북 이주민, 결혼 이주 여성을 돕는 활동가이자 연구자이며 남편의 투병생활을 돕고, 아이들을 양육하며 지역 아이들의 선생의 몫까지 하며 다양한 경험과 사건들에 마주한 찰나들을 보여주었다. '사물에 대해 쓰려 힜지만'그 사물로 인해 기억나는 저자의 과거 이야기. 사전적 정의와는 다르게 해석되는 저자만의 또 다른 의미들을 보면서 시대가 반영된 새로운 의미를 알게되고, 내가 귀히 여기지 않았던 점들에서도 시선을 맞추는 저자의 눈길에 배울점이 그득해 보였다. 각자의 삶을 살면서도 또 한 켠으로는 연대하며 의지하고 으쌰으쌰 하는 기운을 북돋워 줄 수 있는 존재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내일의 나에겐 어떤 사물과 단어들이 잘 살고, 잘 늙어 갈 수 있도록 지지해줄지를 생각해보면 이 세상엔 버릴게 없고, 외면할 것도 없다고 단언하고 싶어진다.


📖 미디어창비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고 기록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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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걷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백수린 외 지음, 이승희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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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어안는 소설이 가족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면 함께 걷는 소설은 우정, 혹은 친구에 대한 이야기들을 전해준다. 나의 몇 안되는 벗들이 떠오른다. 외향형이 되고싶지만 뼛속까지 내향형인 사람인지라 친구를 사귀고 유지하는게 쉽지않은 사람이다. 연초마다 학년이 바뀌고 새로운 친구들과 1년동안 반에서 지지고볶아야하는 그 시작점이 항상 걱정으로 가득했고, 이사를 하면서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낯선 이들의 시선을 한번에 받는 부담감. 끼리끼리 모두 친한 것 같은데 나만 뒤늦게 찾아와 둥둥 떠있는 느낌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런 사람도 어찌어찌하다보니 이렇게 사람들에게 섞여 살고있다.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듯 튀지 않고 무리속에 젖어든 나로 산다는 것. 주변에 어떤 이가 있느냐에따라 많은 변화를 느껴왔다. 끌어안는 소설이 가족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면 함께 걷는 소설은 우정, 혹은 친구에 대한 이야기들을 전해준다. 나의 몇 안되는 벗들이 떠오른다. 외향형이 되고싶지만 뼛속까지 내향형인 사람인지라 친구를 사귀고 유지하는게 쉽지않은 사람이다. 연초마다 학년이 바뀌고 새로운 친구들과 1년동안 반에서 지지고볶아야하는 그 시작점이 항상 걱정으로 가득했고, 이사를 하면서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낯선 이들의 시선을 한번에 받는 부담감. 끼리끼리 모두 친한 것 같은데 나만 뒤늦게 찾아와 둥둥 떠있는 느낌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런 사람도 어찌어찌하다보니 이렇게 사람들에게 섞여 살고있다.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듯 튀지 않고 무리속에 젖어든 나로 산다는 것. 주변에 어떤 이가 있느냐에따라 많은 변화를 느껴왔다.


백수린_고요한 사건

재계발을 바라고 온 이사. 부모는 이곳의 아이들 대신 옥상에서 멀리 보이는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친구를 맺기를 원한다. 교실안에서도 사는 지역으로 나뉘는 무리. 그나마 공부 잘 한다는 이유로 무시당하진 않는다. 사는 환경에 따라 자연스레 나뉘어지고 급이 생기는 관계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게 만든다.


이유리_치즈 달과 비스코티

멋지게 사는 어머니와 그렇지 못한 아들. 극명한 삶의 명암. 돌과 이야기 할 수 밖에 없던 아들의 삶. 학교 폭력을 당할 때 정당방위로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돌을 던졌던 그날. 그 이후 돌에게 자신의 처지를 말하게된다. 폭력에서 벗어나게 해준 유일한 도구이며 내 말을 들어주는 유일한 사물. 돌과 말하는 이와 만화속 등장인물을 닉네임으로 정한 이들의 대화와 에피소드. 인간 대 인간만이 친구로 단정지을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멸시와 폭력을 일삼는 이와 친구를 하기보단 생각 속 어떠한 사물과 친구가 되는게 되려 마음이 편한 이들의 모습(물론 이걸 평범하다 말할 순 없지만 폭력보단 나은거 아니겠어?)


강석희_우따

반에서 유일한 아시아인 주인공과 아프리카 계열인 우따. 눈에 띄는 차별은 없으나 외로운건 어쩔 도리가 없다. 결국 인종이 다르면 차별이 당연하고 친구가 되기는 어렵다는 걸 학교에서부터 느끼게 된다. 부당한 것에 대한 반박보다 더 센건 인종이나 특정 계층간의 서열이며, 이것이 대물림된 세대에는 크게 달라질게 없다. 친구? 그게 뭔데? 그게 어떻게 만들어지는건데




📖우따_ 더 나은 무엇이 되자. 그때 만나자.


차별이나 특정 계층에 대한 부당함은 있어선 안 된다고 하지만 그게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이 학교다. 그걸 선동하는 이가 교사가 될 수도 있고 부모가 될 수도 있으며 학생들끼리 나눈 우월집단이 주고 한다. 서슴치않고 제 멋대로 굴고, 그걸 내버려두는 꽉 막힌 세계다. 거기서 문제를 제기하고 잘못을 바로잡아보려는 마리엘이나 우따의 움직임은 감사하지만 소극적인 나로서는 적극적으로 도울 수 없어 더욱 웅크리게된다. 그들의 행동이 잘했다고 응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렇게 마음을 먹기까지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는 교장을 비롯한 그쪽 무리들도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점이다.

더 나은 무엇이 되고픈 우따.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이 있을지, 더 지독한 세상만 남은건 아닐지 최악의 상황만 떠올리는 나. 사람이 좀 긍정적이고 희망차야하는데 늘 이렇게 부정적으로 끝이 난다. 좋은 것보다 좋지 못한게 더 자극적으로 받아들여지니 이런 기억들만 오래 머물다보니 씁쓸함과 찝찝함이 남는다.

김지연_굴 드라이브

작년 봄에 읽었던 저자의 '마음에 없는 소리'에 있는 단편. 역시나 지금 봐도 속터지는 반장의 태도를 다시한번 갑갑증 느끼며 읽게된다.

우연한 동창과의 재회. 그러니 이 기회에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쩍 흘리며 말하며 잘못도 아닌걸(반장은 이걸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잘못했다며 용서를 구하는데 너그럽고 사려깊은 모습을 흉내내기에 급급한 모양새. 더 어이 없는건 어쩌면 싫어할 게 필요했는지 모르겠다는 말 마저 명치가 꽉 막히게 만든다. 과연 반장에겐 진심으로 대하는 이는 몇이나 될 지를 생각하게된다. 후반에 주인공에게 이야기했던 용서는 안 해줘도 되니 그냥 오라던 그 목소리를 떠올리면 이런 생각이 든다. 모두에게 인기와 인정을 받던 반장 시절과 다른 지금의 처지가 만든 태도에서 만약 그녀가 지금의 처지와 다른 조건이라면 알은체를 하긴 했을까?



📖굴 드라이브_ "그건 잘 모르겠어. 어릴 땐 다들 그렇잖아. 어떤 일을 하면서도 왜 하는지 몰라. 그냥 하는 거야. 어쩌면 싫어할 게 필요했는지도 모르지. 우리가 보기에 넌 뭔가 좀 이상했나 봐."




어릴 땐 다들 그렇다는 식으로 자신의 잘못 보다는 치기어린 사춘기의 불안정한 감정을 탓하라는 뉘앙스의 발뺌. 사과가 먼저라는 생각보다는 자신을 감싸기 급급해보이는 말들. 애초에 사과할 마음은 없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가보다. 화풀이용 샌드백처럼 여긴 같은반의 마음에 안 드는 애.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자신은 그래도 되지만 반장 본인의 어린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그러한 대우를 받는다면 똑같은 소리를 하게 될까? 너는 그래도 되고, 니 자식들은 그런 대우를 받아선 안된다는 식으로 태세전환한다면 반장은 더 나쁜놈이다. 결국 그게 나쁜행동이라는 걸 안다는 거니까. 알고도 그러는 놈이 더 고약하다.

천선란_그림자놀이

서이라. '깨진 거울 수술'로 공감 능력과 감정을 사라지게 만드는 수술로 감정없이 살기로 한다. 김도아. 우주탐사 참여. 어린시절 가종의 상실로 인한 슬픔을 갖고있고 추방당하듯 떠나게된 지구. 그렇게 20년간의 세월을 지구 밖에서 보내다 다시 들어온다. 많이 맴돌다 돌아왔다. 서로를 위로하고 공감해주는 존재는 이라에게 도아뿐이고, 도아에게도 이라가 유일한데 20년의 텀이 생겨버림.

이라의 수술, 도아의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시간. 자신을 온전히 보듬어주던 이의 부재는 도아의 급성 백혈병 만큼이나 서로에게 쓰리게 다가온다.



📖그림자놀이_ 과거에 대한 기억이 조금 틀어질 수 있다는 것과 타인과의 공감뿐 아니라 자발적인 감정마저도 둔화된다는 것인데, 사람들은 후자를 부작용이 아닌 극대화된 효과라고 칭했다. 타일을 통해 옮겨 오는 감정을 제외하고 인간이 하루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은 그리 많지 않았으므로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 ...

그토록 원했던 담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거울 하나만 깨뜨리면 되는 거였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나의 상태를 알리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때로는 나를 쉽게 여기도록 만드는 만드는 허술함이 되곤한다. 특히나 이라의 직업이 그러한 집단 중 하나겠지. 그래서 스스로를 먼저 지키고픈 마음에서 이 수술을 했을거라 생각된다. 이미 많은 감정의 상처가 있으니 이젠 나부터 살고보자 싶은 마음에서 감행했을 이라의 지친 마음. 그걸 알아주고 무심하게 등을 툭툭 쳐 줘야 할 도아의 부재도 분명 수술의 동기가 되겠다.

삶에 즐거움도 없고, 상처받는 상황도 없겠지만 눈물나게 행복하고 기쁨에 겨워할 감정도 둔화되는 것. 그게 안타까울 뿐이다.

내가 즐거울 때 내 즐거움을 기꺼이 들어주고 지쳐있을 때 지긋이 바라봐주는 존재가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를 도아없이 20년을 지내온 이라의 비어있는 마음이 가여워진다.

김사과_예술가와 그의 보헤미안 친구

점수따라 대학 네임에 기대어 간 곳. 그저그런 흥미 미지근한 기대감으로 국문과에 입학한 수영. 자신과 다른 성향인 한비에게 끌림을 느낀다. 잘하고 싶고,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에 쓰게된 시, 그리고 한비와의 대학생활. 자신만의 세상에 심취한 수영이 걱정되는 부모. 역시나 부모는 자기 자식보다 어울려 다니는 한비를 탓한다. 부모가 원하는 번듯한 삶의 표본은 아니지만 서른까지 달려온 수영은 수상도 했고 학원 수업도 나가고있으나 어머니의 성에는 차지 않아하며 역시나 일관되게 한비를 탓한다. 한비가 아니라면 번듯한 공무원, 책임감있는 남편이 자동완성되듯 수영의 삶에 자동 완성되어질까? 내 딸은 안 그런데 친구 잘못 만나서라는 핑계가 가득했던 어머니인데 자유로이 즐기며 제 몫 다 챙긴 한비의 삶을 들여다본다면 계속 똑같은 이야길 하실 수 있을까?


김혜진_축복을 비는 마음

이 또한 예전에 읽었던 작품. 그래서 아는 결말이며 새로운 조합의 만남이라 응원하게되는 인선과 경옥의 이야기.

입주 청소를 하는 인선, 신입 경옥. 베테랑 인선이지만 양사장에게 문제되는 지점을 지적하지 못하는 포인트를 집어네는 경옥. 좋은 사람으로 일하다보면 몸이 남아나질 않음을 터득한 사람들. 양사장과 일하지 않고 인선은 경옥과 손발을 맞추며 오늘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기길 바라는 콤비의 모습.


우정이라는 소재로 담아낸 단편들이었다. 친구가 되면 닮는다는 말을 하는데 달라서 더 끌렸고,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닮아가는 경우도있다. 여전히 나와 다른 이의 모습에 끌리는 마음도 있다. 역시나 우정이라고 불려지는 관계에서 똑같은 모습은 없다. 그리고 학창시절에 알게되고 맺어진 관계만 친구로 정의 할 수도 없다. 나이와 성별, 국적, 때론 종의 특성을 막론하기도 하지. 타인이 바라 볼때 '그게 돼?'라고 할때, 당사자들이 '그게 돼!'라고 하면 친구인거지 다른게 뭐 있을까.

이야기들을 보면 씁쓸해지는 관계도 있고, 말장난 하듯 이멤버 리멤버라고 응원하고픈 관계도 있다. 관계라는 것이 영원하진 않을 것이다. 어떠한 사건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당연한 삶의 흐름이니 무조건적인 영원함을 바라는 건 욕심이겠다.

내 나이 즈음 되면 단적인 친구뿐만 아니라 인간관계가 몇차례 걸러지는 과정을 느낀다. 초/중/고/대학을 기점으로 같은 행보냐 다른 선택이냐에 따라 훑어질 것이다. 이 과정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현상 중 하나라고 봐주자. 그런 후 사회에서 알게된 이와 더 자주 만나 질 수도 있을 것이며, 공과 사를 구분하며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관계로만 두기로 할 것이다. 또 한번의과정. 가정을 이루면서 내가 쳐 놓은 테두리 안의 존재들에 집중 하면서 자연스레 멀어지는 이들을 떠올린다. 먹고사는일에 열중하다보니 내 가족 내 새끼 챙기는데에 급급한 삶의 기간이다. 제발 쌍심지켜고 비난말고 애쓴다며 응원하며 한 발짝 멀어짐도 기꺼이 받아주면 좋겠다.

그렇게 몇번의 솎아짐을 거치고도 생존해있는 몇 안되는 나의 벗들을 떠올려본다. 애증의 관계, 걸러지지 않은 단어들로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먹는 영특한 놈들. 톡방의 단어 몇개로도 기깔나게 알아채는 무서운 이들 속에서 우리는 마음을 놓게되며 긴장을 풀어본다. 카카오톡이든 인스타그램이든 팔로우되어있지만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 목록에서 지우기엔 언제 한번 연락하지 않을까 싶고, 대뜸 연락하기엔 너무 뜬금없다 싶어 주저하게되는 이름 앞에서 생각이 많아진다. 그저 무탈한 안녕을 바라면서 그들이 대소사를 겪을 시기에 부담없이 나를 떠올리며 연락을 주었으면 싶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만 나를 찾는게 아니라, 그런 일이 있어서 나의 축하와 위로가 필요했다는 거겠지. 나 역시도 기꺼이 찾아가고프니 너도 나를 잊지 않았구나 싶어하며 생각을 고쳐먹었다. 함께 걷자며 손 내밀어주는 사람으로 살고싶으니 7편의 단편 속에서 누구처럼만은 살지 않기로 마음먹어본다.


📖 미디어창비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고 기록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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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어안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정지아 외 지음, 문실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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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들러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손사래를 쳐 보지만 꾸준히 5월은 잊지않고 와준다. 사람이 헤퍼지고 과도하게 친절해지며 베푸는 것이 당연해지는 가정의 달이다. 장성한 누군가의 딸이기도하고, 다복한 가정의 둘째 며느리이기도하며, 알아주는 조카바보로 살다보니 5월은 한없이 너그럽게 카드를 긁어대며 돈잘벌고 돈잘쓰며 심성이 착한 가족의 일원인 척 애를 써본다. 그런게 가정의 달 5월이 주는 세뇌효과라고도 할 수 있지.

각설이타령처럼 죽지도 않고 또 왔다 싶은 가정의 달. 여기저기 다 퍼주고 나니 마음은 편하다 싶은 시점이다. 다행이다. 미워하고 으르렁거리며 다신 볼 생각 말라며 으름장을 놓을 혈육이 없다는 것에 그저 감사하며 풍족하진 않으나 다복한 사람만 있어도 본전은 건진 삶임을 느낀다.


정지아_말의 온도

당신보다 당신을 바라보는 딸의 마음이 편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행복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사는 노모. 되려 얹혀살듯 이 나이 먹도록 오래사는게 딸에게 미안하면서도 감사하며 기뻐하는 마음을 숨쉬는 것보다 더 열심히 표현하는 사람. 당신이 자식들을 키우는 것에는 당연한 것이지만 자식이 노모를 보살피는 것에는 감사한 표현밖에 하지 못함을 미안해한다. 그렇게 자식과 부모는 쌍방과실이다. 둘 다 미안해하며 안쓰럽고 애닳다는 결론.



📖 말의 온도_ 어머니는 나이 들면서 좋지 않은 기억을 모두 지워가는 듯했다. 참으로 편리한 기억력이었다. 덕분에 불만 많고 까칠해서 걸핏하면 부모에게 대들던 나는 세상에 다시없는 효녀가 되었다.

부모님이라는 말보다 엄마, 아빠가 익숙한 사람들. 그리고 엄마, 아빠가 자신의 눈물버튼인 사람들. 그렇다. 그게 나다. 드라마에 나올 법한 슬픈 가족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찢어지도록 가난한 것도 아니었으며, 성장기에 뿔뿔히 흩어져 지내온 적도 없지만 그렇게 짠하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성동일이 딸의 결혼식 때 손 잡고 입장하는 것만 봐도 눈물 줄줄 흐르는 주책없는 사람. 그래서 그런지 각각의 단편들 중 정지아의 작품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저자가 어머니에게 하는 말들을 몇년 후엔 나도 똑같이 하고 있을거란 생각과 함께 아직 오지도 않은 날들을 머릿속에 그리며 사투리 가득한 엄마의 말들을 읽고있으면 자연스레 나의 엄마 목소리와 겹쳐진다. 짠하고 짠한 사람. 점점 외할머니를 닮아가고있는 엄마. 엄마도 나이들고 나도 나이를 먹고있지만 엄마의 시간이 더 빠르게 흘러가는거 같으며 혹여 우리가 함께 했던 순간들을 하나씩 지워가다가 가볍게 훌훌 털고 떠날까봐 마음이 졸여짐을 느낀다.


📖 말의 온도_ 진짜 행복해서 하시는 말씀이겠냐? 자식 손주 맘껏 못 보시는데 행복은 무슨! 당신 가시고 나도 아쉬워하지 말라고, 우리들 편하라고 하시는 말씀이지.

저자의 어머니는 행복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시고, 나의 어머니는 감사하다는 말을 항상 하시고있었다. 생각해보면 요 근래에 더 많이 그러한 표현을 한다고 느껴진다. 너네가 없었으면 어쩔뻔했니, 너희가 해주니 고맙지. 내가 참 너희 덕을 많이 보고 산다는 말로 사사로운 것에도 내 덕이며, 내가 해주니 편하다는 것. 나야 뭐 당신에게 쓸모있는 존재라서 감사하긴 하지만 이왕지사 감사하실거만 내가 원하는 만큼 오래 사시면서 나도 감사하다는 말을 질리도록 듣고싶다.

손보미_담요

남겨진 자가 남겨놓고 사라진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 그걸 곁에서 지켜보는 이도 마음이 아픈데 당사자는 오죽할까. 이미 상실의 경험을 느껴본 이라면 장에게 담요라는 물건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를 알 것이다. 이미 아들의 체취는 사라진지 오래되었을 지라도 거기에 머물러 있을거라는 믿음때문에 남겨진 자는 그걸 외면 할 수 없다. 세상에는 사라졌지만 장에게 남겨진 기억이 담요를 감싸고있으니 영영 이별도 아니겠다. 계속 붙들고 있을 수는 없다는 걸 알기에 장이 부여한 담요의 의미는 놓아두고 물건으로서의 담요가 필요한 이에게 개인적 의미를 빼어두고 넘겨준다. 남겨놓고 간의 마지막 흔적도 보냈으니 담요는 그냥 담요가 되어버린다.

황정은_모자

'모자'의 세계가 따로 존재하는 아버지. 당신이 어렸던 과거가 시작이다.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은 아버지는 그 때부터 모자가 되어버린다. 그로인해 자식들은 이사를 전전하지만 크게 아버지를 탓하진 않는다. 당신도 좋아서 모자가 되는게 아니라고 말 하신걸 보면 모자가 될 수 밖에 없던 상황에 놓여있던 어린 아버지가 안쓰럽다. 당신이 받았던 감정적인 학대로 시작된 모자로서의 변화였지만 자식들마저 그리 대우받지 않길 바랬던 마음. 어린시절의 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지만 않았더라면, 고작 다섯 알의 밥알이 흘렀을 때 좀 더 너그럽게 밥상머리 습관을 바로잡아주었다면 삼남매의 생활도 지금과는 많이 달라져있겠지?

김유담_멀고도 가벼운

보배이모와 오촌지간인 엄마와의 거리를 우리는 멀고도 가까운 친척이라 말했다. 지방에서 올라와 빠듯한 삶과 간절함이 베여있는 자신과 서울에서 모자람없이 다 누리는게 평범했다고 느끼는 은호와는 가까웠지만 멀게만 느껴지는 연인이였다. 누군가는 그게 당연했고 또 누군가는 그게 평범했다고 여기지만 상대에겐 남보다 못한 관계였고, 간절히 바랬던 모습이기도했다. 딱 내가 갖고있는 테두리를 기준으로 잡았다. 당시에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누리던 사람이 보는 시선에 상대는 이게 과연 지속될 관계인지를 먼저 가늠해본다. 생각보다 모두를 충족시키는 관계의 단위는 없다.

윤성희_유턴 지점에 보물 지도를 묻다

삼십분만 더 일찍 나왔으면 좋았을 나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생각보다 평온하지 않았던 시작이다. 어머니는 당신이 낳은 두 딸을 안아보지못했고, 1시간 남짓 먼저 나왔으나 날짜로보면 작년에 먼저 태어난 언니 또한 빠른 작별을하며 뜻하지않게 온전한 가족의 시작도 못 본 주인공. 그녀와 함께 Q, W, 고등학생의 찜질방조우. 혈연관계가 아니라 보물지도관계로 정의하면 쉽겠다. 우연찮은 조합의 시작. 민들레 꽃씨처럼 날아디니며 정착하는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연관계 못지 않은 제법 끈끈하고 단단한 보물지도관계의 구성원. 일반적인게 당연한 조합만은 아니라는 좋은예시.

김 강_우리 아빠

사회 구성원의 출생과 사회 구성원에 인위적인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한 생명윤리적 결정이지만 인구감소는 없어야하니 정부가 만들어준 우리아빠. 나라가 지정해준 생물학적 아빠로서 '우리'아빠. '우리'라는 단어가 낯설어지는 순간. 좋게 포장한 우리아이. 결국 국가가 만든 고아. 한요나 작가의 '오보는 사과하지 않는다'의 10월의 아이들이 생각나는 내용. '오보는 사과하지 않는다'가 10월의 아이들의 이야기라면, 그 아이들의 생물학적 이야기가 김강의 '우리 아빠'가 되겠지. 알고보니 이어지는 연작소설같은 주제. 마냥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의심과 예측을 만들어내는 단편.

김애란_플라이데이터리코더

엄마라는 존재의 애닳음. 차가운 철제 박스여도 좋으니 있어만 주면 감사한 것.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한 번이라도 느껴보고 싶은 엄마. 삼촌의 말이 마냥 진실이 아님이 느껴지지만 그래도 이 박스라도 엄마였으면 좋겠다 싶은 어린 녀석의 간절함.


📖 플라이데이터리코더_ 엄마는 내 이름을 불러 준 적도 없고, 나을 업어 준 적도 없고, 내가 아플 때 만져 준 적도 없고, 내가 늦었을 때 찾으러 나온 적도 없고, 필요할 때 내 옆에 항상 없었어요. 그러니까 엄마는 내 책가방을 싸 주지도 않을 거고, 내 충치를 뽑아 주지도 않을 거고, 내가 맞고 돌아와도 쫓아가 주지 않을 거고, 나와 소풍도 가지 않을 테고, 내 입학식 때도 오지 않을 거고, 나랑 같이 자지도 않을 테고, 내가 상을 타도 머리를 만져 주지 않을 테고, 언제고 내가 부를 때마다 대답을 하지 않을 테지만, 그렇지만, 그렇지만...... .

아이는 엄마가 해 주었으면 하는 것들을 쉼없이 나열한다. 대단한게 아니다. 당신은 내가 자라는 동안 옆에서 지켜봐주길 바라봐 달라는 애원같았다. 열심히 커갈테니 으레 아이들이 하게되는 성장통에도 꾀병부리지 않겠으니 곁에만 있어주는 것. 그냥 엄마로서 어디 가지 않고 내가 시선이 닿는 언저리에만 있어달라는 뜻과도 같았다. 자신에게도 엄마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세상에 태어난 것인데 자신만 모르고 산다고 여겨지는 허망함으로 보인다. 북받쳐 오르는 설움에 후두둑 흘리는 눈물을 보면 어떠한 말로도 진정시키기 어려울 듯 하다.

작가의 이야기들 속엔 겹치는 가족의 조합은 없다. 일반적이라는 말이 모순적이겠지만 우리가 익히 아는 무난하며 무탈한 가정의 조합은 없다. 이미 아는 내용이니 그 적절한 예시는 책을 읽는 본인에게서 이야기를 끌어오면 예시 하나가 추가된 8개의 조합이 만들어 지겠지.

삶의 다양화에 맞추어야 되겠다는 듯 가족 구성원의 조합도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짐을 느낀다. 이것이 옳고, 저것이 잘못된 가정이라고 단언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알고있는 단란한 가정이 모두가 단란하리라는 확신도 있을까 싶어진다.

세상에 의도하고 태어난 이는 없겠다만 그 의도와 상관없이 출생과 동시에 맺어지는 관계의 시작이 가족이겠다. 혼인으로 맺어지는 부부 이전의 시작점이다. 그 관계 속에서 우리는 자아를 키워내고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배워간다. 어르고 달래기도하고 혼구녕을내어 옳고 그름도 바로잡아주는 관계속에서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만들어진다. 애틋하며 절절하기도하고, 이가 바득바득 갈리며 남보다 못한 엔딩이 나오기도 하지만 생각하면 애닳고, 마음쓰이며 못해준것만 생각나서 짠해지는 진득한 짠내의 관계이기도하다.

끌어안고 가야만 하는 조합이다. 부디 서로 가시 세워가며 찌르는 관계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다. 보듬어서 같이 가자. 여러 엔딩중에 덜 후회하고 덜 슬퍼하며 덜 원망하는 길인 듯 하니 말이다.

📖 미디어창비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고 기록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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