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어안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정지아 외 지음, 문실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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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들러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손사래를 쳐 보지만 꾸준히 5월은 잊지않고 와준다. 사람이 헤퍼지고 과도하게 친절해지며 베푸는 것이 당연해지는 가정의 달이다. 장성한 누군가의 딸이기도하고, 다복한 가정의 둘째 며느리이기도하며, 알아주는 조카바보로 살다보니 5월은 한없이 너그럽게 카드를 긁어대며 돈잘벌고 돈잘쓰며 심성이 착한 가족의 일원인 척 애를 써본다. 그런게 가정의 달 5월이 주는 세뇌효과라고도 할 수 있지.

각설이타령처럼 죽지도 않고 또 왔다 싶은 가정의 달. 여기저기 다 퍼주고 나니 마음은 편하다 싶은 시점이다. 다행이다. 미워하고 으르렁거리며 다신 볼 생각 말라며 으름장을 놓을 혈육이 없다는 것에 그저 감사하며 풍족하진 않으나 다복한 사람만 있어도 본전은 건진 삶임을 느낀다.


정지아_말의 온도

당신보다 당신을 바라보는 딸의 마음이 편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행복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사는 노모. 되려 얹혀살듯 이 나이 먹도록 오래사는게 딸에게 미안하면서도 감사하며 기뻐하는 마음을 숨쉬는 것보다 더 열심히 표현하는 사람. 당신이 자식들을 키우는 것에는 당연한 것이지만 자식이 노모를 보살피는 것에는 감사한 표현밖에 하지 못함을 미안해한다. 그렇게 자식과 부모는 쌍방과실이다. 둘 다 미안해하며 안쓰럽고 애닳다는 결론.



📖 말의 온도_ 어머니는 나이 들면서 좋지 않은 기억을 모두 지워가는 듯했다. 참으로 편리한 기억력이었다. 덕분에 불만 많고 까칠해서 걸핏하면 부모에게 대들던 나는 세상에 다시없는 효녀가 되었다.

부모님이라는 말보다 엄마, 아빠가 익숙한 사람들. 그리고 엄마, 아빠가 자신의 눈물버튼인 사람들. 그렇다. 그게 나다. 드라마에 나올 법한 슬픈 가족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찢어지도록 가난한 것도 아니었으며, 성장기에 뿔뿔히 흩어져 지내온 적도 없지만 그렇게 짠하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성동일이 딸의 결혼식 때 손 잡고 입장하는 것만 봐도 눈물 줄줄 흐르는 주책없는 사람. 그래서 그런지 각각의 단편들 중 정지아의 작품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저자가 어머니에게 하는 말들을 몇년 후엔 나도 똑같이 하고 있을거란 생각과 함께 아직 오지도 않은 날들을 머릿속에 그리며 사투리 가득한 엄마의 말들을 읽고있으면 자연스레 나의 엄마 목소리와 겹쳐진다. 짠하고 짠한 사람. 점점 외할머니를 닮아가고있는 엄마. 엄마도 나이들고 나도 나이를 먹고있지만 엄마의 시간이 더 빠르게 흘러가는거 같으며 혹여 우리가 함께 했던 순간들을 하나씩 지워가다가 가볍게 훌훌 털고 떠날까봐 마음이 졸여짐을 느낀다.


📖 말의 온도_ 진짜 행복해서 하시는 말씀이겠냐? 자식 손주 맘껏 못 보시는데 행복은 무슨! 당신 가시고 나도 아쉬워하지 말라고, 우리들 편하라고 하시는 말씀이지.

저자의 어머니는 행복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시고, 나의 어머니는 감사하다는 말을 항상 하시고있었다. 생각해보면 요 근래에 더 많이 그러한 표현을 한다고 느껴진다. 너네가 없었으면 어쩔뻔했니, 너희가 해주니 고맙지. 내가 참 너희 덕을 많이 보고 산다는 말로 사사로운 것에도 내 덕이며, 내가 해주니 편하다는 것. 나야 뭐 당신에게 쓸모있는 존재라서 감사하긴 하지만 이왕지사 감사하실거만 내가 원하는 만큼 오래 사시면서 나도 감사하다는 말을 질리도록 듣고싶다.

손보미_담요

남겨진 자가 남겨놓고 사라진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 그걸 곁에서 지켜보는 이도 마음이 아픈데 당사자는 오죽할까. 이미 상실의 경험을 느껴본 이라면 장에게 담요라는 물건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를 알 것이다. 이미 아들의 체취는 사라진지 오래되었을 지라도 거기에 머물러 있을거라는 믿음때문에 남겨진 자는 그걸 외면 할 수 없다. 세상에는 사라졌지만 장에게 남겨진 기억이 담요를 감싸고있으니 영영 이별도 아니겠다. 계속 붙들고 있을 수는 없다는 걸 알기에 장이 부여한 담요의 의미는 놓아두고 물건으로서의 담요가 필요한 이에게 개인적 의미를 빼어두고 넘겨준다. 남겨놓고 간의 마지막 흔적도 보냈으니 담요는 그냥 담요가 되어버린다.

황정은_모자

'모자'의 세계가 따로 존재하는 아버지. 당신이 어렸던 과거가 시작이다.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은 아버지는 그 때부터 모자가 되어버린다. 그로인해 자식들은 이사를 전전하지만 크게 아버지를 탓하진 않는다. 당신도 좋아서 모자가 되는게 아니라고 말 하신걸 보면 모자가 될 수 밖에 없던 상황에 놓여있던 어린 아버지가 안쓰럽다. 당신이 받았던 감정적인 학대로 시작된 모자로서의 변화였지만 자식들마저 그리 대우받지 않길 바랬던 마음. 어린시절의 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지만 않았더라면, 고작 다섯 알의 밥알이 흘렀을 때 좀 더 너그럽게 밥상머리 습관을 바로잡아주었다면 삼남매의 생활도 지금과는 많이 달라져있겠지?

김유담_멀고도 가벼운

보배이모와 오촌지간인 엄마와의 거리를 우리는 멀고도 가까운 친척이라 말했다. 지방에서 올라와 빠듯한 삶과 간절함이 베여있는 자신과 서울에서 모자람없이 다 누리는게 평범했다고 느끼는 은호와는 가까웠지만 멀게만 느껴지는 연인이였다. 누군가는 그게 당연했고 또 누군가는 그게 평범했다고 여기지만 상대에겐 남보다 못한 관계였고, 간절히 바랬던 모습이기도했다. 딱 내가 갖고있는 테두리를 기준으로 잡았다. 당시에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누리던 사람이 보는 시선에 상대는 이게 과연 지속될 관계인지를 먼저 가늠해본다. 생각보다 모두를 충족시키는 관계의 단위는 없다.

윤성희_유턴 지점에 보물 지도를 묻다

삼십분만 더 일찍 나왔으면 좋았을 나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생각보다 평온하지 않았던 시작이다. 어머니는 당신이 낳은 두 딸을 안아보지못했고, 1시간 남짓 먼저 나왔으나 날짜로보면 작년에 먼저 태어난 언니 또한 빠른 작별을하며 뜻하지않게 온전한 가족의 시작도 못 본 주인공. 그녀와 함께 Q, W, 고등학생의 찜질방조우. 혈연관계가 아니라 보물지도관계로 정의하면 쉽겠다. 우연찮은 조합의 시작. 민들레 꽃씨처럼 날아디니며 정착하는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연관계 못지 않은 제법 끈끈하고 단단한 보물지도관계의 구성원. 일반적인게 당연한 조합만은 아니라는 좋은예시.

김 강_우리 아빠

사회 구성원의 출생과 사회 구성원에 인위적인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한 생명윤리적 결정이지만 인구감소는 없어야하니 정부가 만들어준 우리아빠. 나라가 지정해준 생물학적 아빠로서 '우리'아빠. '우리'라는 단어가 낯설어지는 순간. 좋게 포장한 우리아이. 결국 국가가 만든 고아. 한요나 작가의 '오보는 사과하지 않는다'의 10월의 아이들이 생각나는 내용. '오보는 사과하지 않는다'가 10월의 아이들의 이야기라면, 그 아이들의 생물학적 이야기가 김강의 '우리 아빠'가 되겠지. 알고보니 이어지는 연작소설같은 주제. 마냥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의심과 예측을 만들어내는 단편.

김애란_플라이데이터리코더

엄마라는 존재의 애닳음. 차가운 철제 박스여도 좋으니 있어만 주면 감사한 것.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한 번이라도 느껴보고 싶은 엄마. 삼촌의 말이 마냥 진실이 아님이 느껴지지만 그래도 이 박스라도 엄마였으면 좋겠다 싶은 어린 녀석의 간절함.


📖 플라이데이터리코더_ 엄마는 내 이름을 불러 준 적도 없고, 나을 업어 준 적도 없고, 내가 아플 때 만져 준 적도 없고, 내가 늦었을 때 찾으러 나온 적도 없고, 필요할 때 내 옆에 항상 없었어요. 그러니까 엄마는 내 책가방을 싸 주지도 않을 거고, 내 충치를 뽑아 주지도 않을 거고, 내가 맞고 돌아와도 쫓아가 주지 않을 거고, 나와 소풍도 가지 않을 테고, 내 입학식 때도 오지 않을 거고, 나랑 같이 자지도 않을 테고, 내가 상을 타도 머리를 만져 주지 않을 테고, 언제고 내가 부를 때마다 대답을 하지 않을 테지만, 그렇지만, 그렇지만...... .

아이는 엄마가 해 주었으면 하는 것들을 쉼없이 나열한다. 대단한게 아니다. 당신은 내가 자라는 동안 옆에서 지켜봐주길 바라봐 달라는 애원같았다. 열심히 커갈테니 으레 아이들이 하게되는 성장통에도 꾀병부리지 않겠으니 곁에만 있어주는 것. 그냥 엄마로서 어디 가지 않고 내가 시선이 닿는 언저리에만 있어달라는 뜻과도 같았다. 자신에게도 엄마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세상에 태어난 것인데 자신만 모르고 산다고 여겨지는 허망함으로 보인다. 북받쳐 오르는 설움에 후두둑 흘리는 눈물을 보면 어떠한 말로도 진정시키기 어려울 듯 하다.

작가의 이야기들 속엔 겹치는 가족의 조합은 없다. 일반적이라는 말이 모순적이겠지만 우리가 익히 아는 무난하며 무탈한 가정의 조합은 없다. 이미 아는 내용이니 그 적절한 예시는 책을 읽는 본인에게서 이야기를 끌어오면 예시 하나가 추가된 8개의 조합이 만들어 지겠지.

삶의 다양화에 맞추어야 되겠다는 듯 가족 구성원의 조합도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짐을 느낀다. 이것이 옳고, 저것이 잘못된 가정이라고 단언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알고있는 단란한 가정이 모두가 단란하리라는 확신도 있을까 싶어진다.

세상에 의도하고 태어난 이는 없겠다만 그 의도와 상관없이 출생과 동시에 맺어지는 관계의 시작이 가족이겠다. 혼인으로 맺어지는 부부 이전의 시작점이다. 그 관계 속에서 우리는 자아를 키워내고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배워간다. 어르고 달래기도하고 혼구녕을내어 옳고 그름도 바로잡아주는 관계속에서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만들어진다. 애틋하며 절절하기도하고, 이가 바득바득 갈리며 남보다 못한 엔딩이 나오기도 하지만 생각하면 애닳고, 마음쓰이며 못해준것만 생각나서 짠해지는 진득한 짠내의 관계이기도하다.

끌어안고 가야만 하는 조합이다. 부디 서로 가시 세워가며 찌르는 관계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다. 보듬어서 같이 가자. 여러 엔딩중에 덜 후회하고 덜 슬퍼하며 덜 원망하는 길인 듯 하니 말이다.

📖 미디어창비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고 기록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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