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골동품점
범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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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느끼는 저자의 글은 마냥 허구의 것도 아니고, 환상문학 특유의 이해하기 어려운 광활한 세계관이 없어 마음에 들었다. 적당한 선에서의 서늘함과 씁쓸함도 가진 채 세상을 향해 하고픈 말을 슬쩍 끼워넣기를 하는 능숙함이 좋았다. 훌훌 읽히지만 생각은 술술하고 지나치기 어려운 글들이라 완독 후에도 머릿속을 정리하느라 한참동안 책 표지를 뚫어지게 보게하는 매력을 지닌 필력이다.

그래서 또 홀린듯 신간이 나오자마자 단숨에 읽어내게 만들었다. 판타지, 호러, 청소년소설의 장르를 한데 모아 이른바 '무얼 좋아 할지 몰라 다 준비했어!'라는 듯이 그득한 이야기를 내어놓았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것은 레트로 텔레비전 탑과 고미술점이 늘어선 골목의 끝. 밤 11시에 문을 열어 새벽 4시까지 운영하는 수상한 가게. 돈을 벌 목적은 없어보이는 호랑골동품점. 이 상점은 사회 구조적 문제와 부조리로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의 한이 깃든 물건을 보관하는 장소이다. 이 곳을 지키는 호미, 신령한 땅의 기운이 오랜 시간을 들여 여기에 서린 불온한 힘을 정화하고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 중 미처 정화되지 못한 물건들이 인간을 꾀어 탈주하고(인간을 꾀어 데리고 나감을 당하게되니(?) 서로의 이끌림이었다고 보자) 그 덕에 우리는 그 물건이 품은 이야기를 들게된다.



📖19세기, 영국 브라이언트앤드메이 성냥_ 내가 딸한테 들었는데, 사람이 일단 몸을 쭉 펴야 마음도 펴진대.

성냥에 깃든 소녀들의 한은 장소와 시대만 달라졌지 여전히 대우받지 못하는 곳의 이야기에 닿아있다. 처우개선에 대한 것은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했던 바, 예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일들을 소재로한 영화도 있는걸 보면 여전한 곳인걸 생각하게만든다.

그 무리 속에서 서로가 똘똘 뭉치기보단 경쟁자로 삼으며 실적을 위해서 경주마처럼 옆을 볼 틈을 안주려는 마음. 미선이 바라던 '그럼에도 우리는 잘 버티자' 싶어했으나 다른 이들에겐 눈엣가시같은 것으로만 치부되기도 했다. 그 마음을, 그 진심을 알지만 다수의 흐름을 거스르면 되려 흠이 잡히게될 상황에 주저했던 규리를 보게된다.

호랑골동품점의 물건들의 한은 그 옛날 자신이 겪었던 것, 그리고 지금도 변하지 않는 그 상황에 놓인 이들을 꾀었고, 다시 그 상황에 놓여져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 곳으로 돌아와 고해성사 하듯 물건을 탐했던 것을 반성하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토로하며 알지만 외면했던 진짜를 시원스럽게 말한다. 무거운 마음을 꺼내두었다. 속이 시원했고, 이제 해야 할 일은 독자들이 상상하는 그것으로 진심을 쏟아본다.


📖19세기, 그림자인형 와양쿨릿_ 그 손을 잡아줄 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처음엔 짠했었다. 무엇보다 그의 여건이. 하지만 끝에도 짠하다.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불쌍했다. 결국 제 입 풀칠하는 것과 저 좋자고 여흥만을 생각하는 것과 여전한 이기심으로 영영 혼자 저러다 죽어도 싸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행실이었다.

각각의 이야기를 가진 물건이 나올 때마다 휴대폰을 들어 검색을 먼저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와양쿨릿. 어? 이거 내가 아는 그건데? 라는 생각을 하게되는 인형. 애니메이션에서도 한 번 즈음은 보았을 그림자놀이에 사용되는 꼭두각시인형. 이 인형으로 김택구의 이야기를 연결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이러한 사람이 우리 주변에 흔하게 존재한다는 것. 역시나 이야기 속이든 현실이든 이러한 사람의 줏대는 달라질 기미가 없다는 것. 그래서 너무나 사실적인 이야기 같아 환상소설으로 분류되는게 맞는가 의아해지기도 한다.



📖1977년, 체신1호 벽괘형 공중전화기_ 마지막 한 번은 부르지 않은 채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영원한 이별을 확인하게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대화를 하고 싶다는 열망을 눌렀다.

놓지 못하는 마음, 놓아주지 못하는 애닳음. 그래서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미 세상을 떠난 이가 갖고있던 전화번호로 연락을 하면 언젠가 한 번은 받지 않을까 하는 간절함. 애틋한 마음이 이토록 가득한데 꿈이든 현실이든 진짜 한 번은 드라마틱한 순간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간곡한 마음. 그건 1977년 체신1호 벽괘형 공중전화기에도 깃들어 있고, 지금을 살아가며 저 혼자 죽지 못해 살고있는 지운에게도 이 애틋함이 담겨있다. 죽지 못해 사는 삶, 살고 있는 와중에도 먼저 떠난이들을 만나려고 계획하게되는 삶의 마침표 준비과정.

앞에서 보았던 두 편의 단편과는 달리 이 마음을 나도 알고 있어서, 사는게 마냥 행복하지 않아서 느끼는 감정에 대한 씁쓸함이 담겨있다. 그래도 다행이지. 이유요가 그 집을 방문해 같이 밥을 먹어주었고, 잠시나마 했던 통화와 벚꽃을 피우지 않으려 애썼다는 그들의 애틋한 투정이 있었으니 살게될거다. 살아도 되겠다 싶은 마음을 먹게 해주어 감사해진다.



📖17세기, 짚인형 제웅_ 그 몸짓이 그저 애달팠다. 가장 믿던 상대에게 버림받고도 애정을 갈구하는 것이 어찌 흉할까. 흉한 것은 그 믿음을 저버린 쪽이 아닌가.

SNS의 흔한 오피스 썰이라 해도 믿을 만한 이야기. 내 상사 이야기인데 한번 들어볼래? 처럼 어찌 그리도 당연한 수순으로 외도+이혼+자녀해외유학+기러기엄마+유리천장 콤보로 사람을 쥐어짤까. 마음의 공허함이 결국 몸으로 나타나기까지했고 작고 사사로워 보이는 물건에 마음을 쓰는 것은 집착으로 이어지는 어딘가모르게 익숙한 수순. 애틋하고 애절한 쪽이 늘 작고 여린 것이어야되고 흉한 것은 그 마음을 알면서도 믿음을 저버리며 외면하는 쪽으로 갈리게되더라. 주연이 제웅을 다시 데리고 간 이유는 결국 약자의 편에서 눈물지어 봤기에 더 애틋하게 품어주고싶었노라 보여졌다. 17세기의 제웅은 어떤것도 받지 못했겠지만, 지금의 제웅은 차고 넘치게 사랑받는 제웅으로 남겠지.


결국 다들 하나같이 애틋하고 애잔하다. 그런데, 또 다들 꾸역꾸역 잘 살아간다. 그래서 더 마음쓰이고 정을주고 버티는 것에 더욱 눈길이 간다.

저자는 '<호랑골동품점>을 읽는 동안 여러분이 조금 덜 외로웠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해주었다. 각각의 물건이 갖고있는 이야기와 그 물건에 빗대어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내용들을 보면 읽어내는 '내가' 덜 외롭기 보단 이야기속 '네가' 덜 외롭길 바라는 마음으로 우선순위를 앞에 두며 순번을 바꿔주고픈 마음을 갖게된다.

기담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뒷골이 뻐근해지는 내용이 없어 읽기 수월했다. 어린시절 보았던 '은비까비'가 생각나기도 했으며 '배추도사와 무도사'에서 만났던 동화의 한 장면처럼 '모두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깔끔하게 느낌표 엔딩울 기대하게 만들었다.

이유요가 전해준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나지만 몇년 뒤 소하연이 내어주는 호랑골동품점 시즌2의 세상도 궁금해진다. 시간은 여전히 흘러가고,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바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작고 여린것에 진심을 열어두고 살며, 외로움의 비빌언덕을 찾게된다.

과거의 것들이 성냥, 와양쿨릿, 제웅, 콩주머니가 그것이었다면, 다음 호미가 상점에 놓아둘 물건은 무엇이 될지 생각하며 이후의 이야기를 기다려보고 싶어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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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자의 숲속 일기 - 메릴랜드 숲에서 만난 열두 달 식물 이야기
신혜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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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자가 기록해 둔 숲속 일기는 내가 해내지 못하는 세상의 이야기 같아 신기함 투성이었다. 그곳이 한국이 아니라 낯선 타지에서 있었던 일들을 열 두달로 꼼꼼히 적어둔 일지. 책에 기록된 메릴랜드의 연구원 생활 이전에 같은 곳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다 외롭고 괴로웠던 이력이 있었음에도 다시 4년만에 같은 일을 한번 더 한다는 것. 일에 대한 애정 뿐만 아니라 숲을 마주하고 사람을 마주하는 것에 새로운 마음을 먹기로 결심했으며, 사람과 장소에서 얻는 위로가 내가 원하는 몫까지 도달하지 못 할 즈음 무작정 숲속을 걸으며 식물에게서 모자란 마음을 얻어간다. 학자의 눈에 비친 숲과 식물은 우리가 보는 시선과 다르다. 저자가 풀어내는 식물 이야기는 타지에서 살아가는 자신또한 척박한 곳에서 자생하는 식물처럼 잘 버텨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으니 우리도 수시로 흔들리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유순하게 버텨내는 재간을 배워보기도 한다.



달별로 적혀있는 글에서 만나는 식물들은 내가 아는 것도 있지만 낯선 이름의 풀들도 존재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휴대폰을 들고 식물 명을 검색해보며 좀 더 잘 알아가려고 노력하게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표지는 물론이고, 4번의 계절마다 나뉘는 큰 단락에 있는 꽃그림들도 모두 저자의 손에서 피어난 그림들이다. 참 예쁘다 라는 말이 제일 잘 어울리는 그림이다. 사진이라 해도 될 정도의 섬세한 이파리들은 물론이고, 보송보송한 솜털의 질감을 느낄 수 있는 이파리와 빤딱빤딱거리고 맨질거리는 열매의 반짝임도 페이지를 쓰다듬으면 진짜가 아닐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대학에서 생물학과 식물분류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딴 분이 그림까지. 잘 그려주니 검색 없이도 이 친구는 이렇게 생겼구나를 알게되고, 혹시라도 숲속에서 만나면 나도 알아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눈에 계속 담아놓게 만들었다.

완독 후 조곤조곤 저자와 이야기하는 느낌을 받게 만드는 부분들이 있었다. 유채만 예뻐하기보단 냉이꽃에도 시선이 가는 지금의 계절은 물론이고, 정물화 수업 할 때 그리던 서양배는 후숙을 해야만 제 맛을 살릴 수 있다는 것. 같은 품종이더라도 환경이 달라지면 다른 삶을 살게되는 식물에게서 낙엽이 떨어지는 시기와 인간 또한 다른 땅을 딛고 살아가며 살다보면 생각하는 것 마저도 달리 하게 되는 것에서 결국 모든 생은 닮아있구나를 여기게 된다. 다시 겨울, 계절이 한 바퀴 돌면서 저자의 타국 생활도 다시 처음 왔던 그 계절로 돌아왔다. 그러고보면 식물은 이동하지 못하기에 저자가 직접 그 곳으로 가 닿으려 애썼던 시간이다. 식물을 만나러 가는 길은 용기가 필요했고, 어렵고 위험한 순간도 많았지만 그 덕에 세상을 알아가고있다고 전했다. 식물만큼이나 좋은 사람은 여전히 곳곳에 많이 있고, 그덕에 닿으려 애쓰다보면 경험도 가득하게 됨을 4년전 이곳에서의 생활보다 더 가득 안아가는 저자를 통해 나 역시 열 두달의 생을 산다면 좀 더 푸르러진 식물들처럼 두텁고 반짝이는 이파리를 내어 볼 수 있지 않을까를 기대하게 만든다.

흔하게 보는 낙엽이라도 식물학자는 떨어진 이파리를 통해 생의 흐름도 떠올리고, '운명'에 대해서도 생각하게된다. 도시의 낙엽은 일반 쓰레기와 함께 버려지기도 하며, 한데 모아 따로 수거된 것들은 퇴비나 천연 재료로 사용 되기도 한다. 일반쓰레기와 함께 뒤섞인 낙엽은 매립지에서 낙엽을 분해할 생물을 만나지 못해 썩지도 않는 끝. 동물과 곰팡이, 박테리아의 도움을 받아 분해하고 부패가된 것들은 다시 흙으로 돌아가 생의 순회를 이어가는 것을 통해 잦가의 속도와 방향을 갖으며 시간을 덧붙이는 것. 그리고 그것은 비단 식물로 범주를 좁히기보단 확장하여 타국에서의 자신의 삶에도 어떠한 요소가 작용하느냐에따라서 바뀐 생활반경과 마음가짐에도 마음을 쏟아두었다. 분명 이전과는 달랐다. 현 상황을 대하는 태도는 물론이고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준비자세까지. 그래서 이 글을 쓸 수 있었을 것이며, 메릴랜드의 숲을 우리에게도 소개시켜 줄 수 있었던 거라 보여졌다.


식물학자는 식물만 키운게 아니었다, 자신도 햇빛과 물, 토양의 힘을 빌어 힘을 얻었고, 식물이 곰팡이와 미생물들의 도움을 받았다면, 저자는 다양한 국적의 동료와 집주인 할머니, 자원봉사자들에게서 이 곳에서만 얻을 수 있는 자극을 받아 웃자람없이 단단하게 몸집을 키워 낼 수 있었다.

식물 덕에 세상을 알아가고 있다고 했던 것 처럼, 식물도 저자 덕에 더 편한 생장을 이어 갈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저자는 소망하는 이 식물 탐험을 계속 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그 덕에 지구에서 소멸하는 식물 없이 두루두루 함께 살 것이니 미리 고마움을 전해보게된다.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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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보이네 - 김창완 첫 산문집 30주년 개정증보판
김창완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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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쓴 글 8편과 직접 그린 그림 20점을 더해 나온 책. 가수, 연기자, 라디오DJ, 화가의 김창환이기 이전에, '사람'김창완의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에세이. 회고로서의 글들이 아니라 그 시절 한 컷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글 속에서 여전한 저자의 감성을 느낀다. 따뜻한 시선, 담백한 성찰, 좀 더 괜찮아지길 바라게되는 내일의 무탈한 하루를 기대하게 만드는 글이다. 글을 읽고 있노라면 나래이션을 해 주고 있는 듯한 아저씨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할 테니 이 담백한 글들을 통해 삼삼한 생을 바라게된다.



📖아픔 담아둘 서랍 하나_ 그러니 괴로움도 아픔도 없애려 하지 말고 다 담아두세요. 이것도 내 건데. 그리고 나중에 보면요, 거기서 심지어 향기도 나요. 그런 것들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거 아니겠어요?

나이가 들어서 느끼는 상실감은 어릴적 느끼던 감정과는 사뭇 달랐다. 어린시절에 반해 상처가 나더라도 아무는 것이 더디기도하고, 더 쓰리게 느껴지는 것. 아파도 티를 내어선 안 되는 듯 하다. 여기저기 투정부릴 곳도 마땅치 않아 속앓이만 하다보면 곪아지는 마음도 눈에 보이는 상흔도 아리게 다가온다. 그렇다보니 줌치 저 구탱이로 몰아넣고 영영 안 꺼내고픈 마음으로 몰아 세운다. 허나 마음이 단칸방인데 그리 쥐구멍처럼 쑤셔둔들 뭔 소용일까. 그러니 그냥 두자, 그냥 냅둬 버리자! 두어도 괜찮을거다. 다만 너무 미워만 말자. 그 순간에도 나였고, 그걸 버텨낸 것도 나니까. 쟤를 지우려하면 나라는 존재 자체도 일부 소실되는거니까.




📖당신이 지금 어디에 있든 사랑하라_ 당신이 지금 어디에 있든 사랑하라. 그리고 기뻐하라. 삶은 고달프지만 아직 더 먹을 나이가 있다. 그때까지 기다려라. 비록 임종일지라도.

채 열 살이 되지 않은 아이들, 스무 살이 된 청소년들, 스물 몇엔 '~님'이나 '~씨'로 불리울 당신들, 세상이 익숙한 서른 즈음의 당신들, 익숙을 넘어 우화(羽化)해진 마흔 대여섯의 그대들, 새삼 모든게 다시금 새로워보이지만 정작 자신은 묽어진 쉰의 여려진 시절까지. 우린 이렇게 몇 번의 과정을 넘어왔고, 몇 번의 계절을 돌아 내고 있었다. 때 마다, 철 마다 저자는 사랑하라 말하고있다. 이 찰나를 지나쳐버리면 다시 오지 않을 순간임을 알기에 아주 노력하여 사랑하며 기뻐하라고 말해준다. 당신이 살아봤는데 어떠한 문명의 발달이 온들 세월은 역행 할 수 없고, 다시 살아볼꺼라고 되감아 버릴 수 없는걸 알아 더욱 진심을 다해 말해주고있다.

이렇게도 사랑하고, 저렇게도 기뻐하다보면 삶은 생각보다 유순하게 흐르고, 다음 연령 회차의 사랑이 기대되기 때문이겠지.

어떤 이는 사랑하기도 부족한 시간이라 했고, 또 어떤 이는 사랑하기 딱 좋은 날이라 하지 않던가. 나보다 한 줌이라도 더 산 사람들이 해준 이야기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느낀다. 겪어 본 만큼의 사실감 넘치는 조언은 없으니까.



📖주정뱅이 올림_ 오늘 꼭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 '축하합니다'라고 쓴 편지.

오늘 꼭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은 / '사랑합니다'라고 부른 노래.

백만 송이 꽃보다 더 주고 싶은 것은 / 당신이 조각한 내 속의 나.

하늘보다 땅보다 더 주고 싶은 것은 / 내가 조각한 내 속 당신.

주정뱅이 올림.

이 주정뱅이 아저씨를 어찌할꼬. 잠시라도 한량이 되어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술의 힘들 빈다는 걸 알기에(어머니는 이 사실을 알게되면 또 나무라실게 뻔해보인다. 나이들어도 말 안 듣는 아들인걸 아시겠지만 걱정을 그득히 하시겠지) 아내는 가시돋힌 말 대신 북엇국으로 남편을 달랜다.(이렇게 달래주니 아저씨는 더 미안해 했겠지) 어쩌면 짠하고, 또 어쩌면 한 없이 측은한 사람을 대하며, 저리라도 풀어내야 살지 싶은 안쓰러움이 그득한 아내의 말에 저자는 정신이 번뜩 든다. 그리고 아내의 학위 수여식이 오늘이라는 것도 알아차리며. 짧막한 시에 마음을 전하는 저자만의 애정표현을 들여다본다. 때론 구구절절한 사랑의 말보다, 두손 두둑하게 만드는 애정의 물질화보다, 담백하고 응축된 애틋함의 마음. 그리고 반성하고 있노라는 글쓴이의 닉네임까지. 한 없이 쭈구러든 덩치로 아내를 맞이할 저자의 현관앞을 생각하면 비식비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진짜배기 기다림_ 그들은 행복을 기다린다. 성급한 사람은 이런 기다림 자체가 곧 행복일지 모른다고 애써 행복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행복은 착각과 다르다. 행복은 조건을 바라지 않는다. 기다림이 행복을 향한 길일 수는 있으나 행복 그 자체는 아니다.

행복을 향하는 길에서 벌써부터 행복하다 여기는 착각. 그 과정부터가 즐거운 마음이겠다만 오롯한 행복의 자체는 아니라는 점. 그래서 어렵고 단정짓기 어려운 마음이다. 기다리는 행복, 향하는 행복, 도달한 행복, 회귀하는 행복. 행복을 꾸며주는 단어들이 달라 행복인지 아닌지 아리까리해지는 틀린그림찾기 같은 감정들.

지금의 내가 겪는 감정은 진짜배기 감정일까 진짜배기에 닿기 위해 한 없이 달려가고있는 순간의 감정일까. 화려하게 꾸며진 것보다 수더분하고 푸석한 찰나를 사랑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며 진짜 남편과 아내라면 나는 거진 도달한 상태라고 믿고싶어지는 마음의 결이다.



📖길은 자신 안에 있습니다_ '남의 길 기웃거리지 말고, 너의 길을 걸어라.' 어떤 청춘이라도 겨울나무가 가진 잠재력이 있거든요.

저자가 딛은 길마다, 갈려진 방향마다 선택했던 찰나를 적어두었다. 후미진 구석방에 살 시절, 면접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지만 차비가 없어 한참을 걸어야 했던 그날의 도로, 나 하나만 건사해도 될 순간을 넘어 스물여섯에 아이를 낳아 아버지가 되어 했던 다짐. 자신의 삶에 있어 이러한 것들이 제일 커 보이는 결심의 정점이라 여기지만 결국 매 순간 선택했고, 그 이전에 고뇌했던 순간이 있음을 알렸다.

거창하다 여기는 것 말고, 매일매일 해내야 하는 일들 속에서도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못하겠으면 한번 정도는 빙 둘러도 가고, 영 자신이 없다면 오늘은 못하겠다고 말끔히 두 손을 머리위로 번쩍 들어보는 깔끔한 포기. 다 해내야하고 다 이겨야하고,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것도 죄다 나여야 함은 아니라고 알려준다. 못하겠으면 돌아도 갈 수 있는 미련 없는 이른바 개쿨한 마음. 못했다고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진 말자고 말한다. 스스로 초라하게 여기는데 어느 누가 자신을 귀히 여겨주겠냐는 마음으로 자신을 애틋해하고 그래도 된 다는 마음을 새겨보게 만든다.

내 삶은 고속도로의 초록, 분홍으로 그려진 유도선도 없고 구간단속으로하며 다그치는 지점도 없다. 쭉쭉 직진이 가능하고, 가끔은 오른쪽으로 빠져 우회해도 되는데 모두가 추천하는 최단거리만 생각한 내 삶의 방향을 반성하게 만든다.



공기가 부드러워진 봄날의 어떤 하루. 책이 주는 온도와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봄바람의 촉감이 닮아있어 더욱 집중하게 되어 글 속에 흠뻑 젖어들게 만들었다. 과장도 미화도 없어 담백하지만 그렇다고 밍숭하지 않은 글. 책 속에 남겨있는 아저씨의 구석구석을 보며, 나 역시도 모순과 결점을 폐기하지 않고 남겨두었다가 잘 숙성된 청춘이었노라 말할 수 있는 인생을 바라게된다.

드라마 삼순이의 초콜릿 상자처럼, 또 창완아저씨가 말했듯 삶의 순간 대신 입속에 훅 하고 털어넣을 쓴 커피처럼, 나의 순간이 좀 더 부드럽고 달게만 느껴지길 바라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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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사람
이창섭(BTOB)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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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그룹 비투비의 멤버보다 솔로가수의 이창섭보다 나는 뮤지컬 배우로 전환한 가수이자 유튜브 전과자를 이끌어가는 진행자로서의 저자를 더 많이 찾아 본 것 같다. 본업 만큼이나 부케의 활약도 잘 하고있는 부지런한 사람. 팬이기 전에 그저 한명의 유튜브 구독자로서 봐도 이 사람의 머릿속은 한 수 앞보다 두어 수 먼저 내다보고 말하며 허허실실 하는것 같아도 자기만의 선을 지키며 사는 제법 강단있고 줏대있는 청년같다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에세이도 궁금했다. 그 치열하다는 아이돌판에서도 버티고, 그룹에서 솔로도 활동, 아이돌 출신이 뮤지컬 배우를 했을 때 갖게되는 편견을 버리게 만드는 노래 잘 하는 사람의 모습. 자신의 능력을 움켜쥐기 보단 아카데미 운영을 통해 그간 얻어온 귀한 스킬을 알려주는 트레이닝 코치로서의 면들까지. 단순히 유명해지고싶고 인기를 얻고싶은 열망보다는 나이가 들고 흐름이 바뀌면 또 그에 맞춰 자세를 고치고 꾸준히 자신을 찾게 만들려는 능력을 쌓고있는 내공 수집가의 모습이 보였다.


📖적당한 사람_ 누군가 날 필요로 할 때는 주변에 있는 듯 존재하는 사람이었다가, 또 누군가가 날 필요로 하지 않을 때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수도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사라지지 않기 위해 억지로 흐름을 거슬러 가려 애쓰지 않고 그저 적당하게 존재했으면 좋겠다.

지금 나는 적당한 사람일까.

호흡이 긴 글이 아니어 좋았다. 때때로 느꼈던 감정들을 지루하지 않게, 이것저것 꾸미는 단어를 덕지덕지 붙여넣지 않은 담백한 것이 일상의 독백처럼 느껴지는 글들. 출간을 위해 작정하고 쓴 글이라기보단 이전부터 자신의 태블릿이나 폰에 적어두지 않았을까 싶은 익숙한 단상의 구절이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하며, 이 단편의 주제이기도 한 '적당한 사람'. 그는 지금 자신이 적당한 사람이라고 마침표를 찍기보단 수 많은 물음표를 숨겨두고 있었다. 매번 의심하고 매번 되묻는 과정을 반복하는 듯 보였다.

'감당할 수 있는 선이 맞춰진, 그 선을 내가 잘 유지하고 있는 조화로운 상태'를 지향하는 사람을 기대하는 삶. 한 쪽에선 가득 누렸다면, 또 다른 편에서는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만큼은 내어주어야 하는 균등한 주고받기가 이뤄져야함을 알게한 사회생활의 해탈형 자세.

현명하게 조율하는 것에 마음을 열어두고 애쓰고 있다면 이미 균형을 잘 잡고 가고있다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일단 알고 있잖아? 어떻게 해야 괜찮은 사람이며, 괜찮은 삶인지 인지하고 있으니까 분명 자분자분 잘 걸어가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궁금하다. 이 사람의 내년과, 또 몇년 뒤의 모습이.


📖잘 서 있기_ 무대에 뿌리를 내린 깊이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배역으로서 잘 서 있고 잘 걷기 위해서는 무대 위에서 겪는 압박과 쏟아지는 에너지를 견뎌내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런 훈련은 단기간에 열심히 연습한다고 바로 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균형잡기'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한 쪽으로 치우지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꼿꼿한 자세와 마음으로 흔들림 없이 잘 가고 있다는 뜻이니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어느 한쪽에서 끌어 당기는 마음의 요동이 일더라도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의 가장 뚝심있는 올곧음을 좋아한다.

거기에는 온전한 나의 힘도 필요 할 것이고, 귀동냥, 어깨너머의 터득도 중요하다. 저자는 선배들의 모습에서 장기간의 훈련과 꾸준한 연습, 그리고 그걸 기다려주고 차곡차곡 얹어질 시간을 배운다.

혼자 파고들고 연습을 한다고 바로 결과가 보이지 않음을 자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수 많은 발구름을 통해 자신을 받치고 있는 땅이 단단해지는걸 믿는 마음을 북돋워주고 싶다. 콩나물처럼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게 보이진 않겠지만 야금야금 알듯말듯 자라고 있을 테니, 계절이 변할 즈음 나도 모르게 쑤욱 자라있고 어지간한 바람에도 무던히 서 있을 모습을 기대하게 만든다.

한 없이 자학하고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는 나로서는 저자의 멘탈이 부럽다. 스스로의 존재 자체를 믿는 것도 있지만, 자신이 하는 행위에 대한 자기 확신도 있어보이는 확고함이 부러워지는 단편이었다.



📖건강하게 내 탓_ "네가 뭘 바라기 전에 그 사람이 해주고 싶어질 수밖에 없게끔 만들어져 있어야 해. 뭘 탓하기만 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너에게 뭔가 해 줄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도록 노력해봐."

겸손이 미덕이라는 주입식 교육이 스스로를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그렇다보니 다른 이들과 반대로 나는 잘 되면 남탓, 못 하면 내탓을 하게되는 자학형 인간으로 자라고 또 그리 지내고있다. 타고난 성정이라 할 수도 있겠다만 쉬이 변하지 않는 얕은 자기애는 계속 이렇게 탓하며 사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셀프 피곤을 자처하는거지.

내가 생각하는 탓하기 와는 반대로 겪어내는 과정이더라도 맘고생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한 갈대같은 마음을 잡아준 저자의 스승이 건넨 이야기. 기회가 생겼을 때 그걸 받아낼 수 있는 준비가 잘 되어있다면 흘러가버리지 않을 것이며, 마냥 바라고 원할 때 보다 더 좋은 제안과 일이 돌아오는 것. 탓하고 자책하기에는 다음 회차의 내 순서만 더 멀어질 뿐이다. 이래나저래나 결국 내 손과 발이 바지런하다면 결국 닿게 되어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나보다.



📖무탈한 하루_ 일상의 슴슴함에 초첨을 맞추면 사소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잦아짐을 느낀다. 오전에 집에서 내려 마시는 커피 한잔이나, 하늘에 신기한 모양으로 떠 있는 구름에게 집중할 수 있는 무탈한 하루가 좋다.

아등바등하는 순간도 있어야겠지만 깊게 숨을 내 뱉으며 숨고르기의 과정도 필요하다는 걸 알려주는 단편이었다.

저자나 나나 가장 부지런히 움직이며 열심히 사는 것이 기본 옵션이라 생각하는 세대이다. 30대는 그렇다. 잘 하려면 시간도 쪼개어 잘 써야하고 그 틈마저도 다음을 위한 발판이라 여기고 자세고치기의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기 때문이다. SNS를 보면 죄다 돈도 잘 벌고, 좋은 집, 좋은 차를 갖고 모두가 부러워 할 만한 삶을 살고 있더라. 그래서일까? 나만 뒤쳐진다 여기고 여기보단 나은 곳에 간다면 지금 내 처지보단 나을거라는 기대를 갖고 쉼을 포기하게된다. 헌데, 때때로 기계도 쉬어줘야하고 쉬는 동안 기름칠도 곳곳에 해 주어야 가성비가 좋다는 것. 그게 기계든 사람이든 결국 매한가지라는 걸 말하는 '일상의 슴슴한'이다.

나는 지인들과 이야기 할 때 '무탈한 하루'에 대한 단어를 자주 쓰곤 하는데 저자도 같은 맥락의 의미를 좋아하나보다.

뭔가 특별하고 대단하진 않더라도 그냥저냥 흘러가듯 무난하더라도 모나지 않는 순간도 있어주길 바라는 삶. 그래서 나의 마음이 유순하게 흘러 애쓰는 과정이 없이 유영하길 바라는 휴식의 과정. 장거리 마라톤에서도 긴 레이스를 이어가는 동안 물도 먹어주고, 간식도 섭취하고, 발목도 풀어주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까 우린 생각보다 긴 트랙 위에 있는 장거리 선수니까 저자가 일러주는 무탈한 하루의 어떤 것들을 조금씩 챙기며 제 몫의 쉼과 슴슴한 여유를 한 줌씩 챙겨봤음 싶다.


어려운 단어들을 나열하며 자신을 있어보이게끔 꾸미지 않는 글이라 금새 읽어지는 청년 이창섭 이야기. 동시대를 살고 있는 또래의 이야기이며 직군이 다르더라도 결국 비슷한 생각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더 잘 하려고 애쓰는 마음은 특정한 업을 가진 이라고 마음이 달리 여겨지지 않다는 점. 그도 결국 애쓰고 있었다. 이미 성공한 사람인 것 같은데 자신은 더 잘하고픈 마음이 가득한 제법 욕심이 많은 사람. 저 사람도 이토록 애쓰며 사는데, 내가 뭐라고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살았을까 싶은 정신차리게 만드는 바지런한 이와의 담화와도 같은 글.

덕분에 이창섭저자와 담백하게 이야기 나눈 듯 해서 마음이 한결 가뿟해진다. 이제 큰 고민 말고 각자가 자신이 여기기에 적당한 사람으로 잘 빚어 맞춰지도록 순박한 미소와 그렇지 못한 바지런한 마음과 행동만 있다면 각자의 몇 년 후가 더 단단해지지 않을까. 몇 년 후 만난 이창섭의 이야기가 또 출간된다면 지금보다는 확실히 굵고 묵직하리라 믿음을 보태본다. 나도 그 때 까지 좀 더 뚝심이라는 근육을 붙여보며 자랑하길 기다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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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 - 식민지 조선을 위로한 8가지 디저트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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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난 조합의 제목. 호떡, 그리고 초콜릿. 둘다 내가 애정하는 주전부리들. 언제가 시작이었는지는 모르나 내 어린 시절과 지금까지 달콤한 기억으로 가득한 음식들. 한국으로 넘어 온 후 세월이 흘러 이제는 한국에 없어선 안될 존재로 한자리 꿰차고 있는 것들에 대한 기록이다. 커피, 만주, 멜론, 호떡, 라무네, 초콜릿, 군고구마, 빙수. 어떤건 배곯는 서민의 주식과도 같은 것이 있을 수 있고, 또 어떠한건 내가 그만큼 여유있는 삶을 즐기고 있다는 부유의 표현법이기도 했던 것. 시대에 따라 대변하게되는 음식의 분위기. 그 시작이 어디인지, 어떠한 풍파를 겪었고, 어떻게 세월을 넘겨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국내 유일 음식문학연구자가 풀어내는 음식과 근현대사의 이야기. 시험에만 나오는 근현대사보다 때때로 이렇게 음식과 결을 나란히 두며 시대상을 논하다보면 한국사가 더 친근하고 재미가 난 다는 것.


역시나 내가 좋아하는 것에 가장 먼저 손이 간다. 각각의 음식에 따라 그때그때 마음에 드는 걸 선택해서 읽어도 되는데, 1장부터 커피라니. 그럼 무조건 1장부터 시작해야지. 소제목을 보면 도취, 낙, 핫한, 고독이라는 단어들을 볼 수 있다. 맛이나 향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음식을 마주하고 대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무드를 무시 할 수 없는거지. 지금이야 가장 만만한 음료가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카페인으로 각성하기 위해서 아침 댓바람부터 빈속에 콸콸 들이붓는 실정인데 확실히 현재와 과거에 커피를 대하는 마음은 다르며,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용악 시인의 '다방'전문을 보고있자면 '고단한 삶의 여정에 지친 무리들이 모여드는 항구'에 비유함을 볼 수 있다. 이 시대는 식민지의 시대상, 그로인해 유쾌하지 못한 사회에 지친 젊은이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공간이며 거기에 곁들여진 음료였다. 살을 에는 추위를 뚫고 포근한 온도와 향기 가득한 커피가 있는 곳이라면 마다할 일이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 고단한 삶에서 좀 쉬어볼 곳이 이 곳이며 내 앞에 놓여진 한 잔의 커피라고 생각했겠지. 낙이자 오아시스였고, 그러니 더욱 깊게 도취되는 순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걸 알려준다.

그렇지 모. 다들 사람 사는게 똑같으니까 시대를 구분짓더라도 느끼는 바는 비슷할꺼야.

여기 있는 음식들은 읽는 독자마자 자신만의 추억거리가 한두개 쯤은 있을거다. 처음 마셔봤던 한약같던 쓴 커피의 짜릿함, 친척 결혼식에 갔다 뷔페어서 처음 만났던 달콤한 멜론, 엄마랑 시장 나들이 갔다가 찰랑이던 마가린 기름 속 뜨끈한 보름달 같던 호떡, 먹어도 먹어도 성에 안 차던 달콤함과 짜릿함의 초콜릿, 초등학교 여름방학 슈퍼에서 사온 반찬통만한 얼음을 넣어 집에서 갈아만들어 먹었던 아작아작 씹히는 시원달콤한 빙수까지.


나의 시절엔 총 8장의 음식들이 촘촘히 박혀 나를 만들어 두고 있었다. 80년대생에게도 이러한 추억이 그득하니 진짜 살아있는 근현대사를 같이 버텨온 음식임은 분명해보인다.



값싼 것이며 간단한 학생료리의 5전짜리 호떡은 돌아서면 배고픈 학생들의 소울푸드라 봐도 무관하다. 낮엔 호떡이라면 밤엔 만주나 군고구마가 우리의 출출함을 채운 것인데 이것들이 없었다면 우리의 낮과밤은 무지 삭막하고 버석했으리라. 달콤함과 탄수화물이 주는 자비로움은 삶을 윤택하게 하니 이들로 인해 우린 간간히 웃고 간간히 즐거웠음을 조선일보 1957년 1월의 삽화에서 든든함을 가늠해본다.


내가 기억하는 초콜릿의 정의는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순이가 했던 대사에 스며들어있다. "초콜릿 상자엔 한 사람의 인생이 담겨져 있거든요. <포레스트 검프>라는 영화 보셨죠? 거기 보면 주인공 엄마가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거다. 네가 무엇을 집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제가 무엇을 집느냐에 따라서 많은 게 달라지거든요, 아주 많이요. ... ... 좋은 것도 있었고 나쁜 것도 있었고.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그 상자는 제거고 어차피 제가 다 먹어야 하는 거니까요. 언제 어느 걸 먹느냐, 뭐 그 차이뿐이겠죠. ... ... 지금은 생각도 많이 하고 주저주저하면서 고르겠죠. 어떤 건 쓴 럼주가 들어있다는 걸 이젠 알거든요. 또 바라는 게 있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초콜릿 상자에 더 이상 쓴 럼주가 든 게 없었으면 좋겠다. 30년 동안 다 먹어치웠다, 그거예요." 로 표현되는 초콜릿=인생의 연장선이다.

어릴 땐 고백의 표현법, 애정의 상징이라 봤다면 나이가 좀 들어선 인생같이 느껴지고, 또 한편으론 맛있는 저놈의 당스파이크로 얄밉게 보여지기도한다. 시절보다 내가 변한 탓이겠지.

그 '로맨쓰'같은 맛. 발렌타인데이가 생겨나기 이전 식민지 시대의 여러 소설에서도 연인들이 주고받는 사랑의 물질화 기능. 그 달달함이 내가 느끼는 사랑의 맛과 다르지 않았음을 다양한 고전문학을 통해 변함없는 사랑의 상징성임을 또 한번 느낀다.

달콤함이 주는 평온과 위안. 그건 모든 시절을 막론하고 가성비 좋은 위로의 방식이었다.

세상이 언 듯한 겨울. 길거리에서 스믈스믈 피어오르는 가느다란 김. 원통에서 새어나오는 하얀 연기는 긴긴밤 당신을 위해 뜨끈하고 달근한 한덩이를 선사할 준비가 다 되었음을 알려주는 신호이기도 했다. 드라마나 소설을 통해 내가 기억하는 군고구마는 이렇게 밤을 버텨낼 재간을 마련해주는 묵직한 그것이다. 헌데 내가 기억하는건 아빠가 약물에 오랫동안 구워내어 잘 익었나 찔러보면 그 구멍으로 꿀이 폭폭 튀어올라 줄줄 흘러 진득한 달고나를 덤으로 만드는 딸래미들을 위한 아빠표 간식으로 자리잡고있다. 확실히 시대가 변하니 같은 음식 다른 생각들로 겹쳐진다. 요즘은 편의점에서 굽는다지?


화롯불에서 편의점까지 퐁당퐁당 자리 옮김을 이어가는 고구마의 삶. 일본에서 고구마 굽는 방식의 변화에도 변하지 않는건 야키 방식을 해야 더 맛있다고 느껴지는 한결같은 혀의 감각 때문이라 보며 타거나 덜 익은 부분 없이 골고루 구워 알뜰히 먹고픈 마음이라.


당신의 겨울 밤은 만주, 감자, 밤, 고구마 무엇이 있는가? 이도저도 아닌 또 다른 핫한 주전부리가 출출함을 달랠지도 모르지.

그래도 나는 여전히 같은 값이면 군고구마라는 그 말에 동의하게되는 할미입맛이다.

겨울을 폭닥하게 만든게 군고구마 녀석이었다면 여름을 알리는 빙슈, 어름랭슈. '조선어사전'을 통해 다시금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 빙수이야기. 빙수=얼음냉수와 같다=얼음을 섞은 물에 대한 시작부터 이젠 얼린 우유여야만 빙수라 생각하는 시대에 도달하기까지. 아이스크림에 패배했다 할 지언정 우린 여전히 여름의 맛으로 계절이 지나기 전에 한번은 먹어봐야 계절을 잘 났구나 여기는 맛으로 여기고있다.

1928년의 더위를 피하는 방법에 비해 지금은 너무나 다양한 계절나기가 있지만 그럼에도 목구멍을 타고 흘러간 빙수의 서늘함 만은 못하지 않을까 싶어하면서 나의 올 여름은 어떤 빙수로 더위를 멀리해봐야하나 기분좋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


나이는 나만 들었지 싶다가도 이것들이 버텨내고 살아낸 시절에 비할 바가 아님을 느꼈다. 익숙하고 당연해서 예나 지금이나 똑같겠지 싶었던 사사로운 디저트들. 그럼에도 나를 위로하고 나를 끌어올려주는 뚝심있는 한방은 여전해보이는 것들이다.

사회분위기가 바뀌고 훅훅 지나가는 빠른 세상임에도 이 디저트들을 앞에 두고 있노라면 여유라는걸 부리게 된다. 그 묘한 능력이 있어 우리는 또 그렇게 음식앞에서 쉼을 얻고 행복을 야금야금 퍼먹겠지.

역사가 지루 해 질 때 즈음, 근현대사 공부는 해야하는데 도무지 집중이 안 될 때. 아예 손 놓지 말고 시선을 살풋 돌려 디저트로 마주하는 한국근현대사 이야기. 쉬어가는 셈 치고 여기서 알려주는 디저트들 곁에두고 먹으며 공부겸 휴식겸 겸사겸사 책장을 넘기는 과정으로 파고들면 OTT 시대물 보듯 자연스레 쉼과 공부가 곱절로 얻어지지 않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하니포터 10기로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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