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골동품점
범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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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느끼는 저자의 글은 마냥 허구의 것도 아니고, 환상문학 특유의 이해하기 어려운 광활한 세계관이 없어 마음에 들었다. 적당한 선에서의 서늘함과 씁쓸함도 가진 채 세상을 향해 하고픈 말을 슬쩍 끼워넣기를 하는 능숙함이 좋았다. 훌훌 읽히지만 생각은 술술하고 지나치기 어려운 글들이라 완독 후에도 머릿속을 정리하느라 한참동안 책 표지를 뚫어지게 보게하는 매력을 지닌 필력이다.

그래서 또 홀린듯 신간이 나오자마자 단숨에 읽어내게 만들었다. 판타지, 호러, 청소년소설의 장르를 한데 모아 이른바 '무얼 좋아 할지 몰라 다 준비했어!'라는 듯이 그득한 이야기를 내어놓았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것은 레트로 텔레비전 탑과 고미술점이 늘어선 골목의 끝. 밤 11시에 문을 열어 새벽 4시까지 운영하는 수상한 가게. 돈을 벌 목적은 없어보이는 호랑골동품점. 이 상점은 사회 구조적 문제와 부조리로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의 한이 깃든 물건을 보관하는 장소이다. 이 곳을 지키는 호미, 신령한 땅의 기운이 오랜 시간을 들여 여기에 서린 불온한 힘을 정화하고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 중 미처 정화되지 못한 물건들이 인간을 꾀어 탈주하고(인간을 꾀어 데리고 나감을 당하게되니(?) 서로의 이끌림이었다고 보자) 그 덕에 우리는 그 물건이 품은 이야기를 들게된다.



📖19세기, 영국 브라이언트앤드메이 성냥_ 내가 딸한테 들었는데, 사람이 일단 몸을 쭉 펴야 마음도 펴진대.

성냥에 깃든 소녀들의 한은 장소와 시대만 달라졌지 여전히 대우받지 못하는 곳의 이야기에 닿아있다. 처우개선에 대한 것은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했던 바, 예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일들을 소재로한 영화도 있는걸 보면 여전한 곳인걸 생각하게만든다.

그 무리 속에서 서로가 똘똘 뭉치기보단 경쟁자로 삼으며 실적을 위해서 경주마처럼 옆을 볼 틈을 안주려는 마음. 미선이 바라던 '그럼에도 우리는 잘 버티자' 싶어했으나 다른 이들에겐 눈엣가시같은 것으로만 치부되기도 했다. 그 마음을, 그 진심을 알지만 다수의 흐름을 거스르면 되려 흠이 잡히게될 상황에 주저했던 규리를 보게된다.

호랑골동품점의 물건들의 한은 그 옛날 자신이 겪었던 것, 그리고 지금도 변하지 않는 그 상황에 놓인 이들을 꾀었고, 다시 그 상황에 놓여져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 곳으로 돌아와 고해성사 하듯 물건을 탐했던 것을 반성하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토로하며 알지만 외면했던 진짜를 시원스럽게 말한다. 무거운 마음을 꺼내두었다. 속이 시원했고, 이제 해야 할 일은 독자들이 상상하는 그것으로 진심을 쏟아본다.


📖19세기, 그림자인형 와양쿨릿_ 그 손을 잡아줄 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처음엔 짠했었다. 무엇보다 그의 여건이. 하지만 끝에도 짠하다.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불쌍했다. 결국 제 입 풀칠하는 것과 저 좋자고 여흥만을 생각하는 것과 여전한 이기심으로 영영 혼자 저러다 죽어도 싸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행실이었다.

각각의 이야기를 가진 물건이 나올 때마다 휴대폰을 들어 검색을 먼저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와양쿨릿. 어? 이거 내가 아는 그건데? 라는 생각을 하게되는 인형. 애니메이션에서도 한 번 즈음은 보았을 그림자놀이에 사용되는 꼭두각시인형. 이 인형으로 김택구의 이야기를 연결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이러한 사람이 우리 주변에 흔하게 존재한다는 것. 역시나 이야기 속이든 현실이든 이러한 사람의 줏대는 달라질 기미가 없다는 것. 그래서 너무나 사실적인 이야기 같아 환상소설으로 분류되는게 맞는가 의아해지기도 한다.



📖1977년, 체신1호 벽괘형 공중전화기_ 마지막 한 번은 부르지 않은 채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영원한 이별을 확인하게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대화를 하고 싶다는 열망을 눌렀다.

놓지 못하는 마음, 놓아주지 못하는 애닳음. 그래서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미 세상을 떠난 이가 갖고있던 전화번호로 연락을 하면 언젠가 한 번은 받지 않을까 하는 간절함. 애틋한 마음이 이토록 가득한데 꿈이든 현실이든 진짜 한 번은 드라마틱한 순간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간곡한 마음. 그건 1977년 체신1호 벽괘형 공중전화기에도 깃들어 있고, 지금을 살아가며 저 혼자 죽지 못해 살고있는 지운에게도 이 애틋함이 담겨있다. 죽지 못해 사는 삶, 살고 있는 와중에도 먼저 떠난이들을 만나려고 계획하게되는 삶의 마침표 준비과정.

앞에서 보았던 두 편의 단편과는 달리 이 마음을 나도 알고 있어서, 사는게 마냥 행복하지 않아서 느끼는 감정에 대한 씁쓸함이 담겨있다. 그래도 다행이지. 이유요가 그 집을 방문해 같이 밥을 먹어주었고, 잠시나마 했던 통화와 벚꽃을 피우지 않으려 애썼다는 그들의 애틋한 투정이 있었으니 살게될거다. 살아도 되겠다 싶은 마음을 먹게 해주어 감사해진다.



📖17세기, 짚인형 제웅_ 그 몸짓이 그저 애달팠다. 가장 믿던 상대에게 버림받고도 애정을 갈구하는 것이 어찌 흉할까. 흉한 것은 그 믿음을 저버린 쪽이 아닌가.

SNS의 흔한 오피스 썰이라 해도 믿을 만한 이야기. 내 상사 이야기인데 한번 들어볼래? 처럼 어찌 그리도 당연한 수순으로 외도+이혼+자녀해외유학+기러기엄마+유리천장 콤보로 사람을 쥐어짤까. 마음의 공허함이 결국 몸으로 나타나기까지했고 작고 사사로워 보이는 물건에 마음을 쓰는 것은 집착으로 이어지는 어딘가모르게 익숙한 수순. 애틋하고 애절한 쪽이 늘 작고 여린 것이어야되고 흉한 것은 그 마음을 알면서도 믿음을 저버리며 외면하는 쪽으로 갈리게되더라. 주연이 제웅을 다시 데리고 간 이유는 결국 약자의 편에서 눈물지어 봤기에 더 애틋하게 품어주고싶었노라 보여졌다. 17세기의 제웅은 어떤것도 받지 못했겠지만, 지금의 제웅은 차고 넘치게 사랑받는 제웅으로 남겠지.


결국 다들 하나같이 애틋하고 애잔하다. 그런데, 또 다들 꾸역꾸역 잘 살아간다. 그래서 더 마음쓰이고 정을주고 버티는 것에 더욱 눈길이 간다.

저자는 '<호랑골동품점>을 읽는 동안 여러분이 조금 덜 외로웠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해주었다. 각각의 물건이 갖고있는 이야기와 그 물건에 빗대어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내용들을 보면 읽어내는 '내가' 덜 외롭기 보단 이야기속 '네가' 덜 외롭길 바라는 마음으로 우선순위를 앞에 두며 순번을 바꿔주고픈 마음을 갖게된다.

기담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뒷골이 뻐근해지는 내용이 없어 읽기 수월했다. 어린시절 보았던 '은비까비'가 생각나기도 했으며 '배추도사와 무도사'에서 만났던 동화의 한 장면처럼 '모두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깔끔하게 느낌표 엔딩울 기대하게 만들었다.

이유요가 전해준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나지만 몇년 뒤 소하연이 내어주는 호랑골동품점 시즌2의 세상도 궁금해진다. 시간은 여전히 흘러가고,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바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작고 여린것에 진심을 열어두고 살며, 외로움의 비빌언덕을 찾게된다.

과거의 것들이 성냥, 와양쿨릿, 제웅, 콩주머니가 그것이었다면, 다음 호미가 상점에 놓아둘 물건은 무엇이 될지 생각하며 이후의 이야기를 기다려보고 싶어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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