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내 이름은 루시 바턴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편히 잠들지 못했던 날. 창밖의 풍경을 멍하니 보는것도 지겹게 느껴지던 밤이라 휴대폰만 만지작 거리며 몇시인지 들춰보던 시간. 인스타그램에 서미란PD님이 라이브 한다는 알림이 떠서 오랫만에 마주한 목소리였다. 푸른밤이 끝난 후로 딱히 라디오에 애정을 못 쏟던 날들. 별밤이 내 취향이 아니기도 했고, 긴 시간동안 푸른밤의 팬이었고, 서미란PD님의 이야기를 좋아했던 터라 반갑게 들었던 목소리였고 책 이야기 였던건지도 모르겠다. 사담이 컸던 라이브였지만 소소한 인원 덕에 좀 더 가까이 이야기하는 느낌도 있었고, 매번 추천해주시는 책이 좋았기에 꼭 읽어봐야지 라며 캡춰해두었던 라이브방송의 배경 화면. 문학은 좋아하지만 다른 나라의 저자의 글은 가까이하지 않았던 날들이다. 독서 편식도 심하고, 타국 저자들의 세계관이든 글의 결이든 뭔가 내 정서에 맞지 않다 생각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글은 이미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고, 시리즈처럼 여겨지는 책이지만 순서를 정하지 않고 읽어도 될 이야기라고 했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소개를 보면 저자의 글에는 늘 관계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 전했다. 복잡 미묘한 인간관계와 다층적이고 모순적이기도한 인간의 내면을 그려내는 것에 탁월함을 보이는데 이 책은 과거를 회상하며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가는 여성 소설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일인칭 화자로서 한 인간을 에워싸고있는 인생의 의미와 함께 주변인들로부터 이뤄지는 존재성, 정체성에 대한 견해를 가장 명확한 자기 예시를 통해 알려주고있음을 볼 수 있었다.




📖 엄마가 이곳에 와서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애칭으로 나를 부르자 내 몸이 따뜻해지면서 액체로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내가 느끼는 모든 긴장감이 예정에는 고체였는데 이제는 아닌 것처럼. 대체로 나는 한밤중에 깨어 자다 깨다를 반복하거나, 유리창 밖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며 뜬눈으로 밤을 새우곤 했다. 하지만 그날 밤에는 한 번도 깨지 않고 깊은 잠을 잤다. 아침에 눈을 뜨니 엄마가 어제 앉아 있던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괜찮아."

엄마라는 존재가 애틋함을 주는 무언가가 있긴 하지만, 그녀에겐 더욱 의아한 등장이었다. 오랜시간동안 왕래가 없었기도 했으며,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상호작용이라는 느낌보단 애정을 갈구하는 과거회상이 더 많았기에 애칭으로 불러주는 한 마디와 편히 잘 자도록 진득히 바라봐주며 잠에서 깨어난 후에도 있어주는 그 존재가 주는 안정감이 남달랐을지도 모르겠다. 어린시절 그토록 바라던 거였는데 뜻하지 않았던 장소에서 마주했으며, 아이의 엄마가 되어버린 나이든 자식에게 하는 애틋한 애칭이라니.

후반부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둘째를 임신하고 남편과 말다툼을 했던 날. 엄마와 아빠가 보고싶었고 문득 어린시절의 한 장면도 떠올랐다며 그 모든게 사무치도록 그리워 부모님 집에 전화를 걸었고, 교환원이 엄마에게 했던 말과 돌아오는 대답에 한없이 무너지던 순간이 있었다.

루시 바턴이 통화를 원하는데 요금을 지불하겠느냐는 물음에 엄마는 "아니요. 이제는 그애한테도 요금을 지불할 만한 돈이 있을 테니 직접 내라고 전해주세요." 라는 말을 교환원을 통해 전해듣는 순간. 나는 온전한 사랑을 전했고 그 온전한 마음이 닿아서 자신도 그렇게 귀하고 애틋하게 여겨지길 바라는 마음이었을텐데 막혀버린 벽에 대고 외사랑을 하고있는 모습처럼 느껴져 이 사람의 어린시절은 얼마나 더 시렸고 아렸을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크리시가 지금의 남편에 대해 말하며 아이가 받았을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이 겪어낸 아픔과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아이가 겪어내고 있을 아픔의 고리. 자신도 어린시절 기억에 붙들려 살고 있었고, 아이또한 붙잡고 어찌 하지 못하며 살아갈 기억의 꺼풀에 대해 많은 생각과 걱정을 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아이였을 때 품게 되는 아픔에 대해, 그 아픔이 우리를 평생 따라다니며 너무 커서 울음조차 나오지 않는 그런 갈망을 남겨놓는다는 사실에 대해 내가 아주 잘 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것을 꼭 끌어아는다. 펄떡거리는 심장이 한 번씩 일으킬 때마다 끌어안는다. 이 기억의 조각은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으며 미화되어 자신의 착각했던거라며 예쁘게 포장 할 수도 없다. 루시는 반복해서 자신의 기억과 진술이 사실이 아닐수도 있음을 밝히지만 불안전한 기억과 타인에게 받았던 감정은 그렇게 오랫동안 잔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꾸준히 기억하고 꾸준히 곱씹었으니 그 기억에 살점이 붙고 일정 부분은 흐릿해지겠지만 그 때의 자신이 겪어낸 감정은 지울 수 없는거니까. 그게 좀먹고 흐릿해진다 한들 없어지는건 아니니까.





📖 책이 내 외로움을 덜어주었다. 이것이 내 말의 요점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도 사람들이 외로움에 사무치는 일이 없도록 글을 쓰겠다고!

학교에서 받는 대우를 부모에게 편히 말 할 수없던 시절. 그리고 아이들과 거리를 둘 수 밖에 없던 상황. 춥고 아무것도 없는 집에 있을 바에 학교에 머물며 지내는게 오히려 더 편했던 과거까지. 공부를 하고싶은 마음보다는 따뜻한 교실이 주는 안정감이 좋아서 공부했던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면 외로움과 서글픔은 그녀를 빨리 어른으로 만들었으리라 보였다. 외로움을 채우는 데엔 책이 한몫했던 자신의 시절을 떠올리면 분명 자기와 같은 사람들이 있으리라는 생각과 함께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연민에서 오는 목표로 보였다.




📖 내가 무엇보다 원한 건 엄마의 목소리 그 자체였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목소리 자체에 귀를 기울였다.

나이가 어리든 많든 엄마라는 존재가 주는 안정감은 확실하게 보장된 요소일지도 모른다. 각각의 사정이야 어떻든 보편화된 존재의 의미가 그러하다는 뜻이다. 지지고 볶고 싸우고 어느 하나가 삐쳐서 안본다고 가시돋힌 말을 하더라도 다른 한쪽은 애절하고 애틋함이 있다. 그게 특히나 엄마와 딸 사이라면 더 그러하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을 공감한다. 미사여구를 다 떼어놓고 보아도 단어 그거 하나. '엄마'라는 말에는 큰 눈물버튼이 있거든. 그러니 그녀 역시 대단한 사랑과 따스한 마음을 원없이 얻지 못했던 시절이 있더라도 그냥, 그러니까 진짜 그냥 엄마라는 존재로서의 곁에 있는 그 기운을 그리워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또 외사랑이지 모.





📖 누군가가 그 자신은 인식하지 못한 채 스스로 망신거리가 되었을 때 그 사람의 실수를 덮어주는 것. 내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내 생각에, 많은 순간에 그런 사람이 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병원에 있는 그 기간동안 엄마가 곁에 있었던 잠깐을 담아두었지만 이야기는 과거 회상을 하며 어린시절 겪어낸 순간과 현실 속 나이든 자신의 지금 감정을 교차하며 담아두었다. 이건 병원에서 상담치료를 받는 느낌이 들기도 하며, 스스로에게 그럼에도 잘 자랐고 지금은 괜찮지? 라는 식으로 다독이는 기분을 받게된다. '그때의 나는 이게 최선이라 생각했고,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는데 이 이야길 듣는 당신도 그렇다고 해주겠죠?'의 공감을 기다리는 뉘앙스도 받았으며, 그 판단은 여전히 유효한데 엄마가 갖고 있던 그 기억도 같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품으로 계속 엄마의 반응을 살피게된다.

침상 옆에 있는 엄마와 이야길하며 나눈 주제들은 대단한게 아니다.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며 하

는 시시콜콜한 잡담같은 것. 몇년만에 엄마를 마주한게 아니라 지난주까지 있다가 며칠 쉬고 다시 병원에서 간병하러 와준 제일 가깝고 제일 편한 사람처럼 서로에게 스스럼없이 이야길 한다. 이 모습만을 볼때 그녀가 이야기했던 과거사가 허상은 아닐까 싶을 정도이니 서로가 느끼는 시간의 간극은 정말 다름을 느끼게한다. 엄마만의 방식, 딸 만의 생각만 있는 것이지 서로에게 강요하고 맞춰주길 바라면 안되는 정말 다른 성향의 존재라는걸 인식하게 만든다.




📖 이번에는 내가 시카고에 있는 병원에 가서 엄마의 침대 발치에 앉게 되었다. 나는 엄마가 내게 준 것을 엄마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내 곁을 지킨 그 며칠 동안 잠도 자지 않고 주의깊게 돌봐준 엄마의 그 한결같음을 돌려주고 싶었다.

역시나 내맘과 네맘이 나란하지 않구나를 느끼는 문장. '나는 엄마가 왔었던 그 순간이 별거 아닌거 같아도 좋았는데, 엄만 아닌가봐?' 라는 까칠하고 싸늘한 속마음을 대놓고 드러내고 싶어지는 부분이다. 당신의 사랑을 바라지 않았지만 당신의 존재가 그리웠고, 당신이 나를 필요로 하는 순간이 있다면 기꺼이 모든걸 내어줄 준비가 되어있지만 상대는 선을 그어두고 넘어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엄마라면 자식을 보호해야 하는 거라 했던 말처럼 자식이라면 엄마를 지켜야하는 건데 왜 이들의 상호작용은 늘 어긋날까?

모든걸 나란히 둘 수 없는 관계성이다. 엄마와 루시만의 관계가 가장 컸지만 자라오면서 느낀 환경에 대한 다름도 관계성의 일정 부분을 차지했다. 빈부의 차로 인해 느껴지는 가난과 멸시. 약자로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했던 학대의 기억까지. 좀 더 세련되지 못함에서 오는 시선과 출신지에 대한 자부심의 정도. 이웃의 불행이나 주변인들에 대한 서슴없는 혐오. 이건 가십거리이며 대화를 이어가기 좋은 심심풀이 껌과도 같은 비교였다. 루시는 그게 싫었지만 결국 그녀도 별반 다를바 없이 그러한 심기를 내비치며 동요하길 바란다. 결국 삶이란 드라마틱하거나 디즈니 만화처럼 내가 원하는 대로 이뤄지길 바라며 비비디 바비디부 노래 부를 수 없는 것임을 보여준다.

미련도 있고 아쉬움도 있으나 뭐 어쩌겠어 삶은 계속 되는 걸. 이게 결국 내 이야기 이고, 이 모든게 루시 바턴의 삶인걸 그냥 받아들여야지 모. 라는 식으로 그렇게 흘려보낼 수 있다는게 신기할 뿐이다. 서럽고 화나고 마음아프고 울컥하기도 한데 그럴수도 있지 라는 식의 반응에 이게 된다고? 라는 말만 반복하게된다.

내 성깔은 그러지 못하는데 이게 되는 루시 바턴이라니. 와... 나는 안될거 같아. 나는 글러먹었어. 이게 안되는 성질머리야.(˘・_・˘)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데루코와 루이
이노우에 아레노 지음, 윤은혜 옮김 / 필름(Feelm)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디든 떠나고픈 마음을 먹게 만드는 책 표지와 함께 '인생 2회차, 두 여자의 통쾌한 질주'라는 말에 더 구미가 당겼는지도 모르겠다. 책띠지에도 적힌 것 처럼 '일흔 살에도, 그 이후에도 삶은 여전히 반짝일 수 있다!'는 말에 일흔살을 지는 해로 표현하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고, 여전히 청춘 일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가지게 되는 문장들 속에 내가 살아갈 미래의 순간이 책 표지의 그녀들처럼 역동적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득해진다. (요즘 청춘에 관련된 음악을 주구장창 들어대서 더욱 와닿았나보다) 몇번 눈만 깜빡이면 나도 40대가 되어있을거 같아 주인공들 나이에 더욱 예민하게 감정이입했는지도 모르겠다.



가부장적인 남편을 두고 떠나는 '데루코'와 노인 아파트에서 뛰쳐나온 '루이' 일흔살 동갑내기인 그녀들이 감행한 일탈. 참기만 했었고 자신을 우선 순위에 두지 않았던 삶이었다. 결국 꾹꾹 누르던 마음이 팡 하고 터진 루이는 데루코에게 신호를 보냈고, 그녀 역시 같은 마음으로 함께 나선다. 70년 동안 그림자처럼 자신을 뒤로 숨겼던 과거를 놓아두고 진짜 나를 찾으려 떠나는 여정. 일탈? 해방? 자유? 그걸 넘어선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으려는 모습을 통해 더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으면서, 그간 참아왔을 당신들의 삶이 애틋해진다.




이들을 보면 델마와 루이스가 떠오르기도 하지만(책 뒷부분 옮긴이의 말에 보면 '델마와 루이스'를 오마주한 작품이라 언급했음), 노희경님의 디어 마이 프렌즈 속 정아와 희자가 떠오르기도 한다.(앞서 언급했던 두 작품과 함께 데루코와 루이 역시 차를 타고 신나게 달리는 여인의 모습을 보면 일탈이라는 단어보다 자유라는 의미가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느낌을 받는다)

나의 삶도 그렇게 특별나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책 속의 그녀들 역시 주변에서 볼 법한 아줌마, 할머니의 삶으로 넘어가는 과정인데 어떻게 다들 한결같이 희생을 강요하듯 자신을 후순위에 두는걸까를 생각해보면 천성이라기보다 그럴 수 밖에 없던 환경을 탓하게된다.

결혼생활을 하든, 화려한 솔로로서 복권 당첨금으로 노인아파트에 들어가 멋드러진 싱글라이프를 살든 각각의 삶의 테두리 안에서는 열심히 살았고, 또 그만큼의 행복을 누렸겠지만 그 너머의 세상이 궁금했을 것이고 한번 사는 인생인데 그 한번의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거 같으니 안 해본것, 못 해본 것들이 탐이났고 그래서 감행한 진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의 퇴직금 계좌 비번이 그와 그의 여친 이니셜과 각각의 생일이라는 걸 통해 마냥 사랑받고 살던 세월은 아니었다는 것도 느꼈고, 살면서 제 집 앞마당의 눈을 치워야 좀 더 편한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는 부지런함도 깨우친다. 그렇다. 세상을 잘 안다고 여겼는데 매번 이렇게 뒷통수 쳐 가며 눈 똑바로 뜨고 살라고 말해주는 에피소드들로 가득하다.




📖 잘 있어요. 이 한마디면 충분하다 싶었지만, 억측의 여지를 남겼다가는 쓸데없이 일이 커져서 뒷수습이 귀찮아질지도 모른다. 잘 있어요. 저는 떠납니다.

데루코가 남편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였다. 정중한 굿바이 인사. 부들부들 떨면서 아내를 찾지 않도록, 그리고 정말 진심을 다해 마침표를 찍고자 하니 성급한 결정이 아님을 드러내는 부분이었다. 사건 사고에 대한 걱정과 더불어 실종 신고라도 하며 호들갑 떨며 남 탓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더불어 도시로 자신으로 인해 일어난 결과라는 걸 담담하게 받아들이라는 뉘앙스이기도 했다.

45년에 이르는 결혼 생활이 마냥 행복하고 순탄하지만은 않았다는 걸 비춰주는 데루코의 울분의 인사였다. 운전을 가르쳐 준 것도 함께 드라이브하며 행복한 순간을 보내기 위함이 아니라 술마신 도시로를 데리러 가던가 술마실 예정일 도시로를 모셔다 드리는 대리기사노릇을 위한 것. 모두의 행복이 아니라 일방적인 한 사람을 위한 편의를 위한 것. 그걸 40년 가까이 해댔으니 이제 데루코는 온전히 자신을 위한 핸들을 잡은 것으로 보여 은색 BMW를 잡은 손이 결연했으리라 느껴졌다.

요즘 심심찮게 보이는 황혼이혼과 졸혼의 과정이 이 부부에게도 필요했나보다. 마냥 행복 할 순 없겠지만 마냥 불행할 수도 없으니까. 그러기엔 우리의 삶에 2회차가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으니 데루코는 더 늦기전에, 더 주저하기 전에 딱 이 날만을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 그리고 그 외의 일들도 우리 스스로 해내고 싶었으니까. 우리의 긍지 문제예요.

각각의 삶에 쳐져있던 바운더리를 벗어난 새로운 시작. 설렘과 동시에 두려움을 더한 걱정이 가득한 낯선 걸음들. 뭐든 해 내야 했다. 그러니 주저해서도 안되는 것이었고 피할 수도 없음을 보여주는 표현법이었다. 스스로 해내야 했고, 그래야만 다음을 기대 할 수 있음을 아는 삶을 좀 살아본 사람다운 답변이었다.

소형 트럭을 몰아보는 것도, 자투리 목재를 구하러 가는 것도, 친구를 데리고 나오며 화목난로 앞에서 지폐를 던져 넣어가며 아닌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다부진 마음까지. 아마 45년에 한 해 두 해 더한다고 달라질것 없을 생에 도파민 가득 터지게하는 에피소드들은 어떻게든 자신들이 자신답게 살아내고 있음을 내비치는 증명같아 보이기도 했다.




안 될거 같던 것들도 일단 하면 해내어 지는게 사람이더라. 우물안 개구리라는 뜻 보다 안 해봐서 못 했던 걸로 예쁘게 포장하고싶은 변화된 삶이다. 어떻게든 탈출하면 숨통이 트일것 같던 순간도 있었고, 예전의 익숙함이 그리워지는 찰나도, 살아온 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반절의 삶 또한 잘 보내야 하기에 진득하니 정주도 살아야하는 변화된 주변까지. 서로를 배려만 하지 말고 대화를 하며 꽁꽁 닫아만 두었던 과거와 진심, 그리고 바라는 마음들까지. 그래서 이 관계가 좀 더 오래 진득하니 유지되길 바라게된다. 후반부에 나오는 데루코가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은 잔잔해진 이후의 삶에 또 다른 일렁임으로까지 다가오니 마지막까지 그녀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보기로 하면 좋겠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작성된 글 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시티 뷰 - 제1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우신영 지음 / 다산책방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 겨울 혼불 문학상 수상작인 '지켜야 할 세계'를 제법 흥미롭게 읽었기에 이번 수상작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컸다. 그래서 또 이렇게 챙겨보게되는구나. 이번엔 우신영 저자의 시티-뷰. 저자의 이름이 생소하긴 하나 책소개에 적혀있는 소재를 살펴보니 뜬금없는 이야기가 아니라서 관심이 갔다. 뭔가 현대 생활 밀착형 소설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함께 마냥 허구의 이야기는 아닐테니 머릿속에 영상을 그려보며 이 작품이 OTT를 통해 구현되면 또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는 재미도 있었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읽게되고, 꼬여있는 이야기들과 인물이 감추고 있는 숨은 뜻을 찾는 그야말로 머리싸움하게되는 글이 아니다보니 더욱 단숨에 이들의 속내를 꿰뚫어보는 정공법으로 그들의 진심을 긁어 낼 수 있었다.

바다를 메워 만들어진 도시 송도. 필라테스 센터가 편의점보다 많고, 온종일 걸어도 노인을 보기 힘든, 아찔한 높이의 유리 빌딩이 거대한 숲을 이룬 신도시. 마천루 숲 아래 묻혀 있는 바다처럼, 욕망은 도시생활자들의 고상한 가면 아래에 도사리고 있는 곳에서 시작된다.

의사 석진과 필라테스 센터장인 수미. 각자의 욕망과 결핍을 서로에게 감춘 채 이른바 쇼윈도 부부로서 SNS상 워너비 커플로 만들어둔다. 그리고 각자의 욕망과 사사로운 마음들은 다른쪽을 향해 있다. 수미는 자신의 헬스 트레이너에게, 석진은 자신의 환자인 공단 노동자 유화에게 눈길을 돌리게 된다. 상대에 대한 미안한 마음? 그런건 애초에 없지. 있었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겠지. 사소한 부도덕이라 하니 어쩌면 이 둘은 자라온 환경과 성향이 다름에도 결국 똑같은 부류였기에 결혼을 했고, 그렇게 사는 걸지도 모르겠다. 상대방의 집안 재력을 무시 할 수 없는 형편, 상대의 번지르르한 직업을 외면 할 수 없는 실정. 잘난 집안의 돈 많고 예쁜 사람, 못사는 집안에서 공부머리 하나로 용이 나버린 이른바 '~사'자 돌림의 능력가진 사람. 각자의 결핍에 아귀가 맞는 충족요건이니 애정보단 생존의 유연한 지위를 우선시하는 조합을 보며 제대로 신도시 워너비 부부 다운 재질임을 느낀다.

이야기가 깊어질 수록 서로는 뭔가를 알아낸 것 같기도 하지만 그걸 명확하게 드러내어 불편한 심기임을 표현하지 않았다. 석진에게 풍겨지는 싸구려 화장품 냄새에도 차분했다. 외국인 관광객에 묶어 파는 알로에 마스크팩이나 달팽이크림 같은 냄새에도 평정심을 가장한 수미를 보며 평소 성격같지 않았던 대응에 독자인 나는 '얘 성격에? 말을 안한다고?'라는 의문이 가득했으나 자신이 청렴하지 못하니 긁어내지 않더라. 석진은 또 어떠한가. 어디선가 본 적있는, 그렇지만 확신하지 않으려하는 수미의 옆구리의 작은 타투. 새긴지 얼마 안 된 듯 홍조와 부기가 남아있지만 그 날개 타투로 왈가왈부하지 않는 이른바 흐린눈으로 외면하는 방식을 보며 이러니 같이 사나보다. 결국 부부는 이렇게 서로의 싫어하는 모습을 가장 먼저 닮아가나보다 싶어졌다. 때때로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는 눈이 사랑이라 보이고 싶지만 경멸한 것들만 보려했다. 내가 익히 아는 부부랑 다른 관점이지.

알지만 꺼내선 안되는 금기어 같기도 하며, 그렇게 상대를 까발리기엔 자신이 깨끗한 마음이지 못하기에 알고 있지만, 짐작은 가지만 자신의 고고한 입에 그러한 상황을 입에 올리지 않는 기분이랄까? 그들은 결국 껍데기는 달랐으나 그 속에 숨겨진 속내는 도긴개긴인 격.




📖석진에게 바뀌라고 요구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제 가족의 등을 데워주고 배를 불려주는 남자였다. 하지만 배부른 소리란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인간은 등 따시고 배불러도 아쉬운 소리를 하게끔 욕망의 구조가 설계된 동물인 터.

보여지는 삶에 대한 충족은 남편에게 얻고, 숨겨도 티가 안날만한 욕망에 대한 충족은 거의 스무 살 정도 차이가 나는 트레이너에게 채우는 욕망 충족에 몹시도 성실한 수미의 인생 철학을 옅보게 된다. 애들은 시터 이모님이 키우고, 남편은 서재라 부르는 동굴에 박혀있고, 그럼 염수미는 어디에 있냐고? 화려한 필라테스 센터 원장으로 살고, 또 한켠에는 고층 바에서 이렇게 젊고 탱탱한 연하의 남자와 비싼 와인을 나눠마시는 삶으로 드라마같은 인생을 유지한다. 뭔가.... 사랑과 전쟁에서 볼법한 부부의 균열 밑밥같네?(요즘 부부리얼리티는 모르겠다. TV를 안봐서 비교 불가)




📖시골 쥐들은 말이야, 항상 뭘 그렇게까지 하냐 싶을 만큼 해야 해. 노력도, 연기도, 서울말도. 도시 쥐 비슷하게 보이려면.

여기서 느껴지는 석진의 결핍과 약점. 어린시절 자극이 되어버린 부모의 갈등과 가정형편. 그 때부터 시작된 곱절의 노력. 그리고 양가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재력에 늘 굽어있는 마음. 페이닥터로 살며 실적에 더욱 연연할 수 밖에 없는 눈칫밥 그득히 먹은 자의 시선. 뭐, 이러한 형편 마저도 처가에서 돈 들이고 신경 써 주어 병원을 차리니 수미를 채근하거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상황을 안 만드는 미지근한 사람이 된다. 그렇게 미적지그리한 인간이 거짓말을 해서까지 수미와 정 반대이며 어쩌면 석진의 과거랑 많이 닮아있는 유화를 만나는 모습이 나름의 일탈 같으면서도 석진보다 우위에 있다고 느껴지는 수미의 우월감이라는 감정을, 석진은 유화를 통해 얻어내고 싶었던게 아닐까도 생각하게 만든다. 사람이란 결국 줄세우기를 통해 쟤보다 내가 더 나은 것임을 증명받는 과정에서 얻는 쾌락을 바란건지도 모르겠다.




📖심사평_ 의도를 한껏 밀어놓고 인물들의 복잡한 욕망과 그 욕망의 발원지를 면도칼로 저미듯 해부해간다.

저자는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를 마지막 페이지에 적어두었는데 그걸 보니 수미와 석진이 진짜 원하는 삶의 진심이 보였다. 화려한 도시 시티 뷰를 담기 위해 많은 유리를 청소하는 일꾼.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어두고 높은곳에서 위험한 일을 감내한다. 목숨줄을 걸고 생계의 밥줄을 이어가는 사람. 그 한편엔 실내 클라이밍 현수막이 걸려있다. 도시인의 억압된 야성과 본능을 되찾으라는 말. 누군가는 목숨줄을 걸어둔 채 하강 하는 곳이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욕망의 줄을 걸어두고 눈을 굴리며 기를 쓰고 올라가는 반대의 삶. 그게 이 시티-뷰의 주인공이며 그들이 외도한 인물의 상반된 삶의 방향이라 할 수도 있겠다.

결혼을 했음에도 외도를 하게되는 각각의 인물. 외도? 바람? 어떠한 포장을 하더라도 참작의 사유가 되거나 그럴만 했겠다 하는 수긍으로 이들을 가엾게 볼 마음은 없다. 송도 원장부부를 멀찍이 내다보는 입장에서는 서로가 가해자이며 서로가 피해자로 누가 먼저 시작했고 누가 딥하게 외도를 했냐에 대한 시작점 줄세우기가 무색해보였다.

모두 반질반질하니 화려한 삶이다.(유화와 남자친구였던 해룡을 제외하고) 뭐 화려함의 밝기는 다를 지언정 필라테스 센터로 사는 원장 수미, 처가의 등에 업힌 채 바지사장처럼 이름으로 장인장모 위신 세워주는 내과 원장 석진, 멀끔하고 반듯하게 틈이 보이지 않도록 가꾸지만 속내는 신물 올라오도록 단백질 쉐이크 먹어가며 최저가 닭가슴살로 냉장고든 뱃속이든 채워가는 주니, 고향을 떠나 더 나은 삶이길 바라며 한국으로 넘어와 고된 일을 하지만 짙은 마스카라로 자신을 추켜세우며 면도 칼을 삼키는 유화까지.

이야기가 시작되는 시점에 먼저 일러둔 시티-뷰의 배경. 그 화려함만을 본다면 나 또한 욕심나는 삶의 배경이다. 헌데 마음 한켠에 남는 어딘가 모를 불편함이 스믈스믈 기어나오더니 기어코 이야기 끝에서는 굳이 이렇게까지 살아야하나로 떫은 입맛을 다시게 만든다. 돈으로 메꾸는 것에는 도가 텄지만 그걸 제외하고나면 남는게 없다. 수미가 굳이 석진과 재혼 할 사유도, 주니가 수미의 비유를 맞출 이유도, 석진이 수미의 심기를 안 건들이고 살아야하는 목적도, 옥란이 이 큰 집에 형제들을 케어하며 개수발까지 들 상황도, 유화가 면도칼을 삼키면서까지 기어코 살아야 하나 싶은 타국에서의 삶도. 결국 화려함이 눈에 익어버려 그것만 쫓아가는 불나방같은 삶으로 자진해서 걸어들어간 자들의 세상이 바로 이 시티-뷰 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촉법소년 네오픽션 ON시리즈 29
김선미 외 지음 / 네오픽션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썩 유쾌하지 않은 단어다. 그리고 마냥 측은해지지도 않은 이야기들이다. 그럼에도 읽었다. 진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모두가 알아야하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읽다보면 화딱지나며 울컥하기도하고, 뭐 이딴 일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성질이 솟구치지만 소설같아도 소설만큼이나 현실에는 촉법소년이라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망나니마냥 깽판치는 연놈들이 많다는 거다.

네오픽션 ON시리즈 29권으로 만난 범죄 앤솔러지 촉법소년. 다섯명의 작가가 서로 다르게 바라보았을 촉법소년의 면면이 이 한권에 모여있다. 여기에는 사건의 피해자가 이야기를 전개하기도 하고, 피해자의 부모나 교사 등 주위 사람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이어가기도 한다. 가해자의 목소리를 빌려 생생하게 전달하기도 했으며 소설이긴하나 다양한 인물시점으로 촉법소년과 소년범죄의 실상을 여실이 드러내주었다. 이젠 하도 흔해져서 모든 감각이 무뎌진게 아닐까 싶었으나 글로 읽은 이야기는 그간 봐왔던 영상이나 기사들로 켜켜이 쌓이다보니 머릿속에 그 현장이 그려져 더욱 사람에게 질려버리는 감정도 느낄 수 있었다.

이미 성인의 덩치마냥 훌쩍 커 버렸으나 아직은 보호받아야 할 아이 인 척 하는 설익은 인간. 누군가가 기분이 나빠져도, 다치고 상처 입는 상황이 주어져도, 심지어 죽더라도 괜찮다는게 말이 될까? 촉법소년이라서 괜찮다는 저 덤덤한 모양새는 과연 이 제도가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를 의심하게 되면서 사람은 고쳐쓰는게 아니라던 어떤이의 말들이 머릿속을 맴돌뿐이다.



📖레퍼토리_ 나 같은 밥벌레도 형사처벌 늪에서 빼내 소년원으로 보내주는 좋은 법이지. 교정교육으로 비행을 예방할 거라는 순진한 발상은 안타깝긴 하지만.

히어로도 아닌 것이 다크 빌런도 되지 못하는 놈이 뭐라도 된것 마냥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기도하고, 자신의 기분에 맞춰주지 않는다 하여 이러한 일을 저지르는 상황. 소년원에서 썩는게 그 2년이라는 시간이 길었다며 심신미약, 우발적 살인으로 9호 처분을 받고 6개월말 살다가 나왔어야하는데 그전 절도 보호관찰때문에 재수없이 10호받았다며 짜증을 내는 목소리. 교정교육과 예방을 위해 시간을 벌어주는 게 의미가 있을까. 뚜렷한 목적의식이라도 있는게 아니라 그저 심기를 거슬리게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위해 행위에 죄책감이 없다는 것. 한 번이 어려운거지, 반복되다보면 습관이되고 무뎌진다는 말을 이러한 상황에 쓰니 더욱 씁쓸하기만 하다. 이미 교정이 안 될 지경에 이르렀는데 므슨 소용이 있을까 싶은 행정상 절차. 아마 소년원에 이어 교도소 수감과 석방이 반복된다 하더라도 뉘우침 보다 또 똑같은 삶의 반복 이어갈 삶처럼 느껴졌다. 부디 이 인간의 주변에 무해한 사람들의 사건사고가 없기를 이 인간의 행동반경에서 멀어지길 바랄 뿐이다.


📖징벌_ 그때 난 어렸어, 어렸다고. 뭘 몰라서 그랬어. 그런데 이건 아니잖아. 말로 할 수 있잖아.

그때도 지금도 말로 할 수 있었다. 말이 안 통하는 상황이 아니었다. 너는 해도 되고, 네가 당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웃기지. 진솔은 연예인이랍시고 자신을 케어해주는 주변 사람들을 하대하고 있다. 매니저도 안다. 그렇지만 얘가 캐스팅이 안 되면 자신의 밥벌이도 끊길 것이니 비유를 맞춰줘야했고, 떠받들어 주며 오냐오냐 해주며 감정을 꾹꾹 누르고 버틴다.

전진솔에겐 이러한 까칠함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청소년 시절 왕따와 학교폭력을 일삼던 무리였다. 그러한 비행이 도를 넘다보니 단편에서는 2045년 청소년들의 촉법소년 징벌 강화를 위해 '정신 징벌'이 제정된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대상자는 징벌 포켓에 들어가 자신이 벌인 일을 똑같이 당하고, 미래까지 엉망이 되는 경험을 체험하는데 그 충격은 실제로 당하는 것과 흡사하도록 구성되어있다. 정신을 놓거나 극도의 불안 장애를 얻으며 사회에 대한 공포를 얻게 된다. 과거 자신들이 상대에게 했고, 상대가 겪었던 만큼 그대로 겪는 상황을 통해 정신징벌 집행의 과정을 보여준다. 논란 끝에 법은 통과되었으나 인권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신 징벌 연구소장 최연희는 단호하게 말한다.

"잊지 말아요, 우리는 이제 가해자의 인권 따위를 우위에 두지 않기로 했어요."

그렇다. 상대의 인권을 존중해 주지 않은 채 청소년이며 아직 보호 받아야 할 덜 자란 아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천둥벌거숭이처럼 살았었다. 존중 받고 싶다면 그에 맞는 행실을 했어야겠지. 설령 이러한 상대의 존중과 예의를 모른다 할 지라도, 다 커서는 사람 구실을 했어야 하는데 제 버릇 개 못 준 겪으로 살아왔으니 그만틈 되돌려받고있음에 나도 연구소장과 같은 마음으로 감정을 뺀 채 바라보게 되었다. 백방 말해봐야 소용이 없구나. 직접 겪어봐야 피눈물 흘리며 싹싹 빌게되는 모습을 보니 반성? 갱생? 그런건 말로 해서는 이뤄지지 않는 부류임에 다시금 변할거라는 기대를 놓게된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감정의 억제나 해선 안된다는 도덕적 정의는 분명 교육받았을텐데 이들의 머릿속엔 남아있는게 없어 보였고, 촉법소년을 위해 시청각 교육이든 언어순화와 대화의 과정이든 피부로 즉각적으로 와닿는 강력한 대응과 비교 할 때 무의함에 회의감이 든다. 어릴때 교사들이 꼭 그런 레퍼토리를 한 적이 있지. '꼭 매를 들어야 말을 듣니?' 라는 문장. 진솔에겐 딱 그정도, 똑같이 위해를 가해야만 타격을 받는 것을 통해 순화교육만이 꼭 정답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들의 갱생확률이 있긴 할지 생각하게 만든다.



📖네메시스의 역주_ 오늘 너 때문에 돈 엄청 썼으니까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해서 다 갚아야 한다!

개인적인 복수, 그리고 법이 다 채우지 못한 틈. 범죄의 양면. 예린이 선택한 건 핏불 테리어를 통한 복수였다. 단편의 시작은 디데이부터 이 일을 준비하기까지의 과정을 역순으로 보여준다. 복수를 위한 과정을 결말부터 이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계기까지 거꾸로 올라가다보면 그럴 수 밖에 없던 이유에 대해 수긍하게된다. 해서는 안 되는 것 이지만 그럴만큼의 이유가 타당해보였던 슬픈 목적. 이야기 초반을 보면 복수를 위해 예린를 칠 것 처럼 돌진하는 장면이 보여진다. 조사관도 알고 예린도 안다. 일부러 그러했다는 것. 자신의 아들이 예린의 개에게 물렸으니 이렇게 해서라도 위협을 주고 싶었던 것으로 속에서 드글거리는 화가 진정 이 아버지 뿐인가를 생각하다가 후반에 가면 모두 화가 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누굴 탓해야할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아들의 잘못을 타이르기 보단 수습하느라 쓴 돈과 시간, 그리고 자신의 커리어에 흠이 간 것이 짜증스러운 부모의 말을 통해 하루는 가정에서 뉘우치고 옳고 그름의 정확한 정의와 함께 잘못을 뉘우칠 만한 회귀의 과정을 영영 얻을 순 없음을 비춰낸다.


📖OK목장의 혈투_ 그러니까 이 또라이 선생님아, 외지인이면 외지인답게 그냥 곱게 있다 꺼지세요. 왜 남의 일에 끼어들어, 끼어들기를. 그냥 모른척하고 꺼지라고!

아이를 키우는 데에 온 마을이 필요하댔지? 아이를 망나니를 키우는 데에도 온 마을이 필요한거였다! 라는 말로 이 단편을 표현 할 수 있었다. 그 십자가 귀고리를 한 아이는 아버지를 등에 엎은 후 제 멋대로 구는 악마로 변해있었고, 아버지는 그걸 수습하기 위해서 온 마을에 돈을 쏟아부으면서 허허실실 자선가 행세를 했다. 그리고 봉사와 나눔이라는 이름을 거들먹거리며 보여지기에는 참 좋은 사람으로 살았고, 그렇게 해서라도 자식놈의 허울을 덮기 위해 바삐 살았다. 알면서도 외면하는 마을 사람들, 알지만 어찌 할 수 없는 권력과 재력 앞에서 보고도 못본척, 들어도 모르는척 그렇게 벙어리 귀머거리 봉사로 사람들은 그 마을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지방 소도시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사건이라고 한 건 지역사회가 가지는 결속력이 이러한 방향으로 흘러서 외지인이나 힘없는 사람을 한순간에 병신취급하고 되려 네가 이상한 놈이라는 방식으로 몰아세우기 때문에 저자는 소설의 배경을 지방의 소도시로 지정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되기 전에 아이를 바로 잡는 것은 기대도 하지 않겠다. 촉법소년이라는 소재에 빌붙어 어른들의 무책임함과 권력 앞의 외면을 통해 정작 도움 받아야 할 아이가 손가락질 받는 상황을 보면서 모든게 완벽하게 어그러진 세상임을 느꼈다.


📖그는 선을 넘지 않았다_ 당신도 나와 똑같은 심정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가해자가 사실과 다르게 빠져나간다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말이에요.

그는 선을 넘지 않았지. 이미 예전부터 선을 넘었기에 더이상의 넘을 정도의 선이 없었을 뿐인 상황이다. 부모가 자식놈의 범죄를 촉법소년이라는 것으로 덮어두면 평생 잘 먹고 잘 살줄 알았겠지.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기억속에서도 자연스레 잊혀질거라는 기대감과 함께 부모가 자식놈의 명줄을 제 손으로 비틀었음을 느낀다. 자식놈이 반성하며 살아갈 몇번의 기회를 매번 외면 한 것도 부모였으니까. 제 자식 만큼이나 남의 자식도 그만큼 귀한 줄 알아야 하는데 꼭 이렇게 사람이 죽어나가야만 실감하는 모습을 보면 어불성설로 끝까지 자기 아들만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고 일관하는 모습에서 역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 고쳐쓰이질 못할 인간 심은 데에 똑같은 인간이 나는 거였다는 걸 느낀다.

마지막 문장에서 사람이라면, 적어도 어른이라면 반성과 후회의 기미가 있길 기대한 내가 바보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사람을 죽였음에도 그는 자신의 아들을 교통사고 사망에 이르게 한 사람을 제 손으로 벌하였다며 끝까지 과거의 잘못을 들먹이진 않겠지. 어째 죽어서도 고쳐먹을 껀덕지가 없어뵈나 모르겠군.

.... 그리고 나에게는 촉법소년이라는 최후의 보루가 있었다. 다는 말로 아들을 감싸는 아버지라는 작자의 세치 혀를 잘라버리고 싶게 만들기도 했다.

다섯편의 이야기들은 호흡이 길지 않았고, 바로바로 상황을 직시할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세세한 설명이 아니더라도 익히 아는 사건들로 인해 데이터가 많이 쌓여있으니 몇몇의 문장들로 모든 극의 배경과 에피소드들이 머릿속에 구현되었다. 그리고 다시 책 표지를 봤다. 눈은 뜨고 있으나 동공이 풀린건지 집중을 해야하지만 관심이 없는건지 알 수 없는 눈빛과 자신을 향해 하는 말을 듣긴 들겠지만 담아두지 않겠다는 낯빛통해 일단 이 책에 있는 촉법소년들은 말귀를 알아 먹지 못할 애들의 조합이었음에 다시금 명치가 갑갑해져온다.

과연 법이 저 아이들을 봐주기 위해 이러고 있는 걸까.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흉악 소년범죄는 일부이며, 대부분은 교화가 가능했고 그러한 반복적인 교육을 통해 가정으로 돌아가 다시금 정상적이라 할 수 있는 범주 내에서 살아간다고 했다. 그리고 촉법 연령을 낮추는 것으로 법 개편을 요구하기도 한다지만 연령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보호를 해주고, 개화의 기회를 주는 것. 글쎄, 나로서는 촉법소년으로 불리워 질만한 시도를 한 것으로도 잘못된 사안을 인지하지 않고 했다고 간주하게 된다. 이들이 지속적인 학습을 통해 잘못된 것이며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었고, 자신으로 인해 빚어진 사건에 대해 반성과 사과의 마음이 순수한 100% 진심으로 사죄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출판사에서 홍보문구로 기록해둔 카드 문구의 마지막을 보면 욱하는 마음이 솟구친다. '법의 가호를 받는 건 과연 누구인가' 라는 문장을 통해 또래들 사이에서 영웅이 된 것 마냥 떠벌려 질까 무서워지며 결국 이러한 모든 사건은 피해자의 손을 잡아 주려 하기보단 '애는 착해요~'라는 말로 덜 영근 인간을 감싸기에 급급해보여 마음이 아린다.

법이 저 아이들을 봐주었고, 법이 당한 사람들을 다독인다. 그냥 '괜찮아? 괜찮아!' 라고 하면 끝나는 이 다섯편의 피해자들 속에서 우리가 진짜 봐 주어야 하는 존재를 놓치고 있는건 아닌지를 걱정하게 만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 기자·PD·아나운서가 되기 위한 글쓰기의 모든 것
김창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론인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필독서가 될 것이고, 생활하면서 글을 쓰는 활동이 보다 가깝게 느껴지는 이라면 곁에 두고 보며 나를 다듬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나도 책상 위에 올려두며 손이 닿는 곳에 항상 두려한다.

직장인 나부랭이로 살면서 내가 글을 쓰는 일이 얼마나 될까 싶지만 생각보다 많더라. 입사 11년차로 과장 나부랭이는 마냥 모르쇠로 일관된 포지션을 유지 할 수 없다는 것. 분기별로 실적 보고는 물론이며, 오너와 실무진에게 요청에 즉각적으로 작성해 전달해야하는 자료들(연말이 두려운 이유), 그리고 공문서 발행까지. 명확한 주제 전달은 물론이며 군더더기 없는 문장 구사. 논증에 대한 확실한 피력이 필요한 것이 문서이다보니 결국 나는 밥벌이 하는 세계 안에서 저널리즘 글쓰기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책에서 저자는 이렇게 전했다. 시각이나 접근법만 달리해도 새로워지는 게 콘텐츠의 세계라는 것. 언론인이라면 글을 쓸 때 항상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했다. 내 글만이 줄 수 있는 걸 항상 생각하기. 그리고 내가 보여 줄 수 있는 새로움이 바로 나의 브랜드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글이 완성됨을 느낀다.


총 3장의 갈래로 나눠두었으며 부록으로는 역대 한터 온라인 백일장 논술과 작물 부분 당선작 사례를 들어두며 사례들 속에서 어떤 글쓰를 해야 할 지를 탐닉하는 과정을 이어가기로 한다.

1장) 저널리즘 글쓰기의 기초 / 2장) 논술, 설득하는 글쓰기 / 3장) 작문, 뇌를 깨우는 글쓰기

그 중 어느 현장이든 사용 할 수 있는 설득하는 글쓰기가 가장 얻어갈 게 많은 부분이라 여겼다. 논리적 표현과 논리적 구성. 이건 대입 논술 공부를 하면서 많이 접했던 파트이긴 하나 대입과 함께 내 머릿속에 지웠던 단어이기도 하다. 결국 표현력&구성력 / 논증법 / 논제 정리를 통해 내용의 정확성과 적절성에 밸런스를 맞춰 표현의 강함에 치중하기 보단 튼실한 내용을 쌓아하는 방식을 얻어 갈 수 있었다.

논증은 결국 주장함에 있는 힘인데 구성요소를 촘촘하게 만들어 사이사이에 전제를 배치하여 설득을 하는 방식에 대한 확실한 정의를 내려주었다. 나만 그런가? 근거가 되는 사례 제시에 있어서 다양하다며 이것저것을 내어두지만 나열하기만 하고 정리하며 일관됨을 피력하지 않는다면 결국 아는 건 많지만 그게 정확히 무얼 말하는지 알려주지 못하는 자료 줄세우기 밖에 되지 못한다. 하나의 사례를 들더라도 왜 주장을 뒷받침 하는 지에 대한 친절하고도 정확한 정리가 있어야만 그 논증은 더 단단해지는 것이다.

이건 언론인이든 대입이든 취업 준비든 해두면 두고두고 유용하게 쓰일듯한 글쓰기의 핵심이지 않을까 싶다. 논제 속에 숨어있는 충돌하는 가치를 찾는 과정의 반복, 반론을 고려하며 논증하면서 합리성을 키우고 설득의 폭을 넓히는 과정이야말로 말싸움 글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는 툴이니 업무연락이나 협의를 빙자한 니탓내탓 편가르며 잘잘못 가리게되는 회의석상에 칼자루를 쥐는 힘이라 느꼈다.



기초가 기반이 되어야 하고, 그걸 가지고 응용하며 설득력을 붙이는 과정. 마지막으로 내 것의 글, 나의 색이 뚜렷한 작문으로서 타인에게 각인시키는 방법을 통해 작문 전형에 맞춰진 비슷한 글밥속에서 나를 튀게 만드는 방식.역시나 깊이 탐구하는 건 기본이며, 본질을 통해 나를 더 우위에 두는 과정. 그래서 결국 많이 읽고 많이 보고 많이 뜯어봐야 답이구나를 느낀다.

언론고시라 할 만큼 언론사 입사 준비를 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강의를 들을 여력이 되진 않으니 이렇게 현직 언론인이 공부한 저널리즘 글쓰기의 스킬을 읽어가며 나름의 글쓰기 습관을 다시금 돌아보며 리뉴얼하는 과정을 가져보니 더욱 잘 쓸 수 있는 글의 스타일을 찾아가고픈 마음이 커진다.

결국 글을 쓰기에 앞서 글을 보는 눈이 필요했고, 정도의 선과 함께 어떠한 방식을 더해야만 목표치에 다다를 수 있을지에 대한 방향성이 조금 세워진 듯 하다. 여전히 이렇게 쓰면 안 될 글에 허우적거리기 보단 이러한 인문학 도서로 도움을 받는 과정은 나이가 들어도 해야하는 학습이라 느낀다.


📖하니포터9기로서 한겨레출판을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한 기록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